#10.

윤수와 난주. 그 못다한 이야기

by Charles Walker

그렇게, 몇몇 아이들에게는 어정쩡한 채로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왁자지껄한 학교를 뒤로 한 채, 윤수는 홀로 골목을 거닐며 생각했다.

‘어쩐지...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

윤수의 생각은 다름 아닌 난주에게 가 있었다. 분명 이루 말할 수 없을 상실감을 겪었을 텐데. 심신이 멀쩡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가 봐야겠어.’

윤수는 처음에는 걷다가, 조급한 마음에 점점 걸음이 빨라졌고,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난주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난주야. 제발 살아만 있어 줘.’

도어록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윤수는 그대로 누르고 조심스레 들어갔다. 목소리가 들리면 오히려 상대가 더욱 동요할까 봐서 고양이 걸음처럼 살금살금 걸었다. 함께 머물렀던 방, 식사를 함께했던 거실을 지나 욕실을 열어보고 윤수는 그 자리에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정난주!!!”



윤수의 급박한 신고로 119가 출동하여 난주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안정을 취하는 중이다. 팔목을 칼로 수차례 그었지만 상처가 깊지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윤수가 처음 발견했을 때 난주는 욕조에 눕듯이 앉아서 팔을 늘어뜨리고 눈을 감고 있어 윤수 생각에는 그녀가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다고 했다. 지금은...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고맙다, 난주야... 그리고 정말 미안하다...’

어쩌다 친구의 복수를 대신하게 되었지만, 난주에게 받은 마음은 진심으로 느꼈기에 윤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러다 난주의 자퇴 소식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생존 기계의 본능이랄까. 아니면 잠시라도 살을 부대끼며 지냈던 사람의 촉이랄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느낌이 윤수 곁을 떠나질 않았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난주를 살릴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윤수는 난주의 손을 잡고 그녀가 정신을 차리길 기다리다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돌연 머리통이 박살 나는 듯한 고통에 깜짝 놀라 잠을 깨 앞을 바라보니 잔뜩 화가 나 씨근거리는 난주의 얼굴이 보였다.

“하, 정난주. 박치기 실력 여전하네.”

윤수는 난주가 들이받은 머리를 매만지며 농을 걸었다.

“나 왜 살렸어, 이 나쁜 새끼야.”

“죽지 마. 왜 나 같은 놈 때문에 죽어, 네가.”

“개새끼...”

“욕해, 실컷. 그래서 네 맘이 풀릴 수 있다면 밤새도록 들을게.”

난주는 씩씩거리다 이불을 얼굴까지 푹 뒤집어썼다. 그리고 말했다.

“너새끼 내가 다시는 안 볼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난 여기 있어.”

“넌 집도 절도 없냐? 집에 안 가?”

“나 집 없어. 몰랐어?”

난주가 이불을 살짝 내리고 눈만 빼꼼 내밀어 윤수를 바라보았다.

“뭐?”

“내가 어떻게 네 집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고 생각했냐? 나한테 가족이 있었으면, 그게 가당키나 했다고 생각해?”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윤수는 한 번도 자신의 가족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난주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주가 서울 제패의 꿈에 눈이 멀어 있는데, 윤수의 시시콜콜한 가족사까지 관심이 닿을 리 만무했다.

“그럼 너도... 혼자 살아?”

“하숙집에.”

“가족은... 원래 없어?”

“교통사고로. 다 죽었어. 엄마도, 아빠도, 형도. 나만 겨우 살았고.”

윤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하, 씨발. 이 얘기 건이 새끼한테도 말 안 한 건데.”

“...너 이건 진짜지? 너 이번에도 약 파는 거면 씨발 진짜 죽일 거야.”

“가족 갖고 약 파는 새끼는 죽어도 싸.”

“너 그럼 왜 내 꿈 갖고는 약 팔았어? 왜 마지막에 퇴짜 놨냔 말이야.”

“그건 진짜 미안해. 건이를 차마 배신할 수가 없었어. 그날 너한테 당한 반이 때문에 건이 이 새끼가 거의 정신을 놨었단 말야. 그날 네가 심했던 것도 너 인정하잖아. 반이는 솔직히 아무 상관 없는 일에 휘말렸던 거잖아. 안 그래?”

윤수가 몰아붙이자 난주는 다시 기가 죽었다.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동시에 반이 년이 부럽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지켜주다니. 나는 아무도 없는 채 홀로 죽어가야 했는데.

“짜증 나.”

난주는 그 많고도 복잡한 심상들을 한 마디에 함축하여 내뱉었다. 그 속내를 윤수가 모를 리가 없다.

“이제 나랑 같이 놀자. 너 혼자 있지 마.”

난주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윤수를 쏘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수는 말을 이어갔다.

“일진놀이 같은 것도 그만해. 학교는 기왕 자퇴했으니까 검정고시 준비해. 아니면 너 요리 잘하니까 요리 제대로 배워서 취업 준비하든가.”

“...무슨 아빠 같네.”

“아빠 해 줄게. 오빠도 해 줄게. 친구도 해 주고 원하면 남편도 해 줄게.”

“...나한테 왜 잘해주는데?”

“너 죽을까 봐 진짜 겁났어.”

“왜. 너 죄책감 가질까 봐? 난 너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라고 이 짓거리 한 거야. 겁이 나서 깊이 못 그은 게 천추의 한이다. 이래도 내가 살아난 게 좋아?”

“된장찌개.”

뭔 맥락 없는 소린가 싶어 난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시는 그 된장찌개 못 먹게 될까 봐 겁났다고, 임마. 너 그게 아무 데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줄 알아? 그 귀한 솜씨를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벌받아, 너.”

난주는 어이가 없어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채윤수. 너 진짜 꼴통이다.”

“몰랐냐?”

난주는 이불을 반쯤 걷어 내리고는 팔을 벌렸다.

“안아줘.”

“...뭐, 주사바늘로 찌르고 그러는 거 아니지?”

“아, 씨발. 내가 너냐? 뒤통수 안 칠 테니까 빨리 안아달라고.”

윤수는 누워 있는 난주를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뒤끝 장난 아니네.”

“평생 갈 거거든. 나랑 있으면 질리도록 들을 거다, 아마도.”

윤수는 난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짐했다. 그 잔소리. 평생 감당할 거라고. 그리고 난주가 다시 엇나가지 않도록 자신이 지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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