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고평가되어야 마땅할 거장 뮤지션
김수철은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을까. 90년대를 어린이로 보낸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을 부른 '치키치키차카차카 아저씨'로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어른의 세계를 몰래 곁눈질했던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아 여보게 정신차려 이 친구야!'를 외치며 양발을 앞뒤로 째고 점프를 하며 기타를 치던 아저씨의 모습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종합하면, 우리의 머릿속 김수철 아저씨의 모습은 좋게 말하면 친근하고, 나쁘게 말하면 가볍다. 허나 적어도 2025년에 내가 생각하는, 나의 김수철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김수철의 기타 실력부터 이야기해 보자. 다행스럽게도 김수철은 신중현과 함께 기타 실력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심지어 국악과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기타산조'를 작곡하였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새로운 버전으로 꾸준히 공연에 올리고 있다. 작년에 발표한 45주년 기념 앨범 '너는 어디에'에서도 마지막 트랙에 '기타산조'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기타는 김수철의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조금 더. 조금 더 고평가되어야 한다.
발매년도 순서로 밴드 '작은거인'의 2집 앨범인 1981년작 앨범을 들어보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자그마치 1981년이다. 그 옛날에 이런 사이키델릭하면서도 프로그레시브한 록을 펼쳐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훗날 정규 1집에도 수록되는 '별리'가 이 앨범에서 최초로 등장하는데, 정규 1집 버전에 비해 조금 덜 다듬어진 듯한 느낌이 오히려 좋다. 그 외에도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사이키델릭 록을 연상케 하는 '새야'라든지, 중간에 테마가 반전되는 부분이 인상적인 '행복',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느낌을 잔뜩 풍기는 경음악 '어둠의 세계' 같은 트랙들은 반드시,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비록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더!!)
그러고 나서 1983년, 정규 1집 '못다핀 꽃 한 송이'가 발표된다. 이 앨범에는 타이틀곡이자 가공할 만한 히트를 기록한 '못다핀 꽃 한 송이'를 비롯하여 '세월', '내일', '별리'까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명곡들이 줄줄이 수록되어 있다. 그야말로 초기 김수철 음악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명작이다. 이 앨범 역시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리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다.
김수철의 음악 커리어를 말하면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될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한영애이다. 포크 그룹 해바라기 출신의 싱어로 1집을 발표하며 미적지근한 출발을 했던 한영애는 조금 더 존재감 있는 앨범을 만들기를 원했고, 그렇게 기용한 프로듀서가 바로 김수철이었던 것. 김수철은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한영애의 음악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2집 앨범 [바라본다]를 제작했다. 물론 히트곡은 윤명운 작곡의 '누구 없소'였지만, 이 앨범 또한 전곡이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은 명반이다(훗날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일단은 여기서 패스.).
1989년에는 두 앨범을 나란히 발표하는데, 국악 크로스오버 앨범 [황천길]과 정규 앨범 [One Man Band]이다. [황천길]은 미처 구하지 못하여 나의 보관함에는 없지만,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여전히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적어도 이 앨범을 듣고 나면 '치키치키차카차카 아저씨' 이미지는 완전히 지워질 것이다. 장담한다.
그리고 [One Man Band]이다. 앨범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김수철은 이 앨범에서 노래, 작사, 작곡, 편곡, 모든 악기의 연주, 믹싱, 마스터링까지 혼자서 다 해내는 기염을 토한다. 자신의 모든 음악성을 갈아넣어 만든 앨범인 것이다. 이 앨범에 그의 히트곡 중 하나인 '정신차려'가 수록되어 있다.
미처 몰랐는데, 작년인 2024년에 45주년 기념 앨범이 '너는 어디에'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고 하여 들어보았다. 김수철 음악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사운드 어레인지가 좀 더 세련되어진 상태로 엮여 있는 앨범이었다. 오랜만에 김수철 음악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내겐 반가운 소식 같은 앨범이 되어주었다.
요약하면, 김수철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더 고평가되어야 한다. 적어도 희화화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누구도 신중현을 희화화하지는 않지 않는가. 김수철은 의심할 여지 없이 뛰어난 실력과 남다른 음악적 지향성을 가진 거장이다. 상업성을 장담하지 못하는 국악과의 크로스오버를 끊임없이 시도하며 빚더미에 나앉기도 하고, 이 빚을 갚기 위해 대중성 있는 음악도 병행하는 등 그는 음악 이외의 방법을 모르는 음악 바보이다. 이런 사람을 뮤지션이라고,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