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부리는 건 멋이 없어
밴드 '다섯손가락'의 정규 1집 앨범인 [새벽기차]를 듣게 된 계기는 이 앨범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는 다섯손가락이라는 밴드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80년대 밴드라고 해 봐야 '들국화', '송골매', '이치현과 벗님들', '부활' 정도였을까. 나는 80년대에는 저 밴드들이 가요계를 전부 씹어먹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많은 밴드들이 있었을 줄이야.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다섯손가락'이었다.
다섯손가락의 음악은 멋부리지 않은 소박함이 매력인 듯했다.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새벽기차'에서 인트로의 피아노 연주에서 재즈의 터치가 살짝 엿보이고, 그 다음을 차분하고 꾸밈없는 보컬이 이어받는다. 격정적이지 않지만 분명 마음을 울리는 노래이다. 80년대 노래들이 으레 그렇다. 멋부리는 것 하나도 없는데 멋이 느껴진다. (근데 사실을 말하자면 멋부리는 건 멋이 없다.)
이 앨범의 또 다른 킥은 아무래도 히트를 기록했던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일 것이다. 다섯손가락은 몰랐어도, 이 노래는 워낙 리메이크도 많이 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내게 가장 익숙한 버전은 김범수의 그것인데, 그것과 비교해도 원곡이 훨씬 훌륭했다. 원래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란 거의 발견하기 어려운 법. 다섯손가락이 부르고 연주한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에는 연인에게 장미를 건네기 전의 고민과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 풋풋한 젊은 연인의 아름다움이 이 곡의 진짜 모습이다. 가창력이 뛰어난 김범수의 노래는 이 곡의 진짜 모습을 의도치 않게 가려버린다. 앞서 말했듯, 멋부리면 멋이 없다. (김범수 曰 : 프로듀서가 시켰어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새벽기차'와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말고도, 밴드 연주의 매력을 십분 살린 '오늘은 정말', 80년대의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록 발라드 '그대', 블루스의 흔적이 살짝 엿보이는 '고독한 이에게' 등 전곡이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명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