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소울의 모태를 제공한 카리스마 소울 디바
왼쪽부터 정규 앨범 [Chaka] (1978), 베스트 앨범 [Epiphany: Best Of Chaka Khan, Vol. 1] (1996), 정규 앨범 [Funk This] (2007), [I Feel For You] (1984)이다.
샤카 칸(Chaka Khan). 아프리카나 몽골 같은 부족 사회 족장의 이름 같은 느낌이다. 음악을 들어보면 과연 이름값을 한다 싶을 정도로 카리스마와 폭발력이 강렬하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과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을 적절하게 배합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카리스마 빼면 시체인 네오 소울 디바 에리카 바두(Erykah Badu)나 질 스콧(Jill Scott) 등에게서 샤카 칸의 흔적이 엿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테다.
1978년에 발표한 솔로 데뷔 앨범 [Chaka]는 'I'm Every Woman'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워 활동했는데, 큰 히트를 기록하며 샤카 칸의 이름을 단번에 세상에 알렸다. 훗날 'I'm Every Woman'은 후배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리메이크하며 다시 한 번 재조명되기도 한다. 이 앨범은 고전 소울의 흔적이 묻어나면서도 샤카 칸만의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성이 여과 없이 표현되어 있어서 전곡을 듣기에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특히 조지 벤슨(George Benson)과 함께 부른 'We Got The Love'를 주목할 만하다.
1984년작 [I Feel For You] 앨범도 아주 좋게 들었다. 이때부터 조금씩 당대의 트렌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고전 소울보다는 컨템포러리 R&B 쪽에 무게중심을 잡아가고 있는데, 워낙 가창력이 출중하다 보니 뭘 하든 찰떡같이 어울린다. 이 앨범의 압권은 단연 타이틀곡 'I Feel For You'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곡은 프린스(Prince)의 원곡을 리메이크하였다. 게다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하모니카 연주를 보태며 원곡의 아성을 압도하는 뛰어난 리메이크 넘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에 샤카 칸은 본인의 활동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베스트 앨범 [Epiphany: Best Of Chaka Khan, Vol. 1]을 발표한다. 정식 데뷔 이전에 그룹 활동을 했던 샤카 칸은 그룹 활동 시절의 명곡 'Ain't Nobody'를 첫 곡으로 내세운다. 훵키 소울(Funky Soul)의 정석이라 일컬어질 만큼 뛰어난 곡이니 반드시 청취를 권한다. 이 밖에도 재즈 스탠더드인 'A Night In Tunisia'를 R&B로 재해석한 'And The Melody Still Lingers On', 라이브 실황으로 수록된 'Tell Me Something Good', 샤카 칸의 곡 중에 대중적인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Through The Fire', 드물게 팝 발라드의 형식에 맞춰 부른 'Your Love Is All I Know' 등 베스트 앨범다운 위용을 당당히 드러내는 명반이다.
이 이후에 발표한 정규 앨범 중에서 유일하게 들어본 앨범은 2007년작인 [Funk This]였다. 샤카 칸도 약물 문제 등으로 꽤나 오랫동안 방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Funk This]는 기나긴 공백기를 깨고 아주 오랜만에 발표한 앨범이었다. 'I Feel For You'로 재미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이 앨범에도 프린스의 곡 'Sign O The Times'가 재해석되어 있다.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지만, 프린스의 곡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프린스가 허락을 해 주고 안 해주고의 문제가 아니라 워낙 원곡의 색깔이 강하기 때문에 잘해도 본전이다. 그런데 샤카 칸은 두 번씩이나 프린스의 곡을 건드렸고, 또 둘 다 제대로 해냈다. 이 정도면 샤카 칸을 보통 이상으로 인정해 줘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Funk This]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트랙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와 함께 부른 'Disrespectful'이다. 다른 곡은 놓치더라도 이 곡만큼은 말 그대로 'Funk This'이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제대로 빈티지하고 제대로 훵키한 반주 위에서 두 소울 디바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게 노닌다.
아레사 프랭클린 이후로 이렇게 카리스마 넘치는 소울 디바가 또 있었을까. '90년대 3대 디바들을 잊었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들은 팝에 편승했기 때문에 논외라고 답하고자 한다. 샤카 칸의 독보적인 존재감이 있었기에 소울과 훵크, 애시드 재즈가 융합된 네오 소울이라는 장르가 90년대에 태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만 보면 세상에 우연은 없다. 샤카 칸도 그저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했을 뿐인데, 그게 훗날 또 다른 음악으로 파생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쯤되면 샤카 칸을 네오 소울의 모태라고 추종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