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PSY)
그가 처음 가요계에 등장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강렬했던 데뷔가 싸이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또 있었을까?(유일하게 비벼볼 만한 건 JYP 정도?) 싸이가 데뷔한 2001년 당시에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학교에서는 온통 싸이에 대한 근거 없는 논란과 억측으로 가득했다. 조폭과 연루되어 있다느니,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게 맞다느니 틀리다느니... 온갖 말말말이 무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이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갔다.
그러니까 이게 싸이의 정규 1집인 [PSY From The Psycho World]이다. 그 유명한 데뷔곡 '새'가 수록되어 있고, 아련한 이별을 담은 '끝'도 이 앨범의 숨은 명곡이다. 이 앨범에는 인트로, 아웃트로를 포함하여 무려 20곡이라는 압도적인 수록곡 수를 자랑하는데, 싸이가 데뷔를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싸이의 데뷔에는 웃픈 비하인드가 있다. 싸이는 데모곡을 인터넷에 올려 나름대로 유명세를 얻고 있었는데, 곡을 들어보고 싸이를 마음에 들어했던 당시 소속사가 미국에 있던 싸이에게 전화를 걸어 데뷔시켜 줄 테니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했다(전화 목소리가 아주 젠틀하니 얼굴도 잘생겼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ㅠㅠ) (그러나 현실은...). 현실을 목도한 소속사 임원진은 싸이를 놓고 이 '사태'를 어쩔 거냐며 '대책회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어째저째 회의가 끝나고 뒷풀이를 하러 간 노래방에서 소속사 대표는 싸이의 보통 넘는 '끼'를 알아보았고, 결국 데뷔를 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싸이는 여러모로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며 성공적인 데뷔 신고식을 치렀고, 나름 귀여운 '엽기가수'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싸이의 정규 1집 앨범은 그리 대중친화적이라거나 접근성이 좋은 앨범이라고 하기엔 어렵다. 노골적인 성 묘사나 욕설, 정치풍자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싸이의 이러한 음악적 기조는 정규 2집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데뷔 1주년을 겨우 넘긴 시점에 발표된 정규 2집 [싸2]이다. 하지만 이 시기 즈음 싸이는 대마초 파문으로 활동중단 및 자숙의 시기를 겪게 된다. 그렇게 이 앨범의 존재는 묻히게 되는데...
이 앨범에서 이야기할 만한 건 박지윤의 히트곡 '성인식'을 리메이크한 '신고식'이다. 이야말로 노이즈 마케팅의 정석이 아닐까 하는데... 단순히 '성인식'이라는 곡만 리메이크한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와 안무, 의상까지도 거의 그대로 따 왔다. 그런데 그걸 싸이가 한 것이다. 상상이 가능한가? 큰웃음과 안구 테러를 원한다면 한 번쯤 찾아보길 권한다. 덧붙이자면,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얼씨구'인데, 그냥 묻혀버리기 아까울 만큼 사운드가 훌륭하다. 불편한 표현들 때문에 앨범을 통째로 듣기에 부담스럽더라도 타이틀곡인 '얼씨구'만큼은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이 앨범은 싸이가 여태껏 발표한 모든 앨범들 가운데 가사들의 수위가 가장 세다. 데뷔 앨범보다도 더. 이 시기의 싸이는 아마도 '갱스터 힙합'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사에 노골적인 표현들을 태연자작하게 뱉어내는 건 힙합이라는 세계관에서는 어찌 보면 이상할 건 없다. 힙합의 본토인 미국에서는 그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대마초 파문과 2집 앨범의 흥행 실패라는 일련의 상황을 마주한 싸이는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생각의 내용인즉슨 앞으로 자신이 한국의 가수로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을 테다. 자숙 중이었을 테니 생각할 시간도 많았을 테고...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되고, 싸이의 가수 인생 2막이 열린다.
2002년 월드컵에서의 대한민국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무려 4강에까지 진출하면서 전국민을 월드컵 열풍에 들썩이게 만들지 않았는가. 자숙 중이던 싸이도 거리 응원에 나왔다가 엉겁결에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가수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런 배경으로 만들어진 정규 3집 앨범 [3마이]에는 '강남스타일' 이전 싸이의 최대 히트곡인 '챔피언'이 수록되어 있다.
타이틀곡 '챔피언'은 전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응원곡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흥행에 대성공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앨범의 다른 곡들은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조차도 싸이의 앨범 전곡을 다 듣기보다는 타이틀곡과 유명한 곡 몇 곡만 들어보고 마는 걸 더 선호했었으니 말이다. 특히 이 앨범은 전곡을 다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 특집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다 들어봤는데, 1,2집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날이 서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긴 한다. 하지만 세상 대중적인 타이틀곡 '챔피언'이나 쿨의 이재훈과 함께한 무척 부드러운 러브송 '낙원'의 존재로 말미암아 볼 때, 이 앨범을 시작으로 '대중가수' 싸이로서의 정체성을 서서히 만들어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온갖 풍파와 시련을 딛고(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가수로 복귀하는 데에 성공한 싸이는 3.5집으로 리메이크 스페셜 앨범을 제작하게 된다. 타이틀곡은 정수라 원곡의 '환희'.
이 앨범으로 싸이는 대중가수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우선 '리메이크'라는 시도 자체가 대중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노림수로 읽힐 수 있는 것이고, 선택된 곡들도 김현식의 '사랑했어요', 이상은의 '언젠가는', 신해철(넥스트)의 '도시인',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등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들이기에 이 앨범을 '대중가수 싸이'의 본격적인 신호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이 앨범은 '리메이크 스페셜 앨범'이기도 하지만, '3.5집'의 성격도 지니고 있어 신곡들도 조금 실려 있다. 전작인 3집에서 '낙원'으로 함께 재미를 본 적이 있어서인지 이 앨범에서도 '벌써 이렇게'로 쿨의 이재훈과 호흡을 한번 더 맞추었다. 그리고 록 사운드와 감동적인 노랫말의 조화로 많은 사랑을 받은 '아버지' 또한 필청 트랙.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나, 싸이는 정규 4집 앨범 [싸집]을 발표한다. 타이틀곡은 역시 싸이의 대표곡 중 하나인 '연예인'이었는데, 이 앨범에서 싸이가 여태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13번 트랙 '비오니까'를 통해 무려 '발라드'를 선보이게 된 것!
싸이의 작사·작곡 능력과 랩 실력, 춤 실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과연 그가 '발라드'를 발라드스럽게 잘 불러낼 수 있는 가창력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당시로서는) 의심할 여지가 충분했던 것.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의외의 감성적인 가창력에 깜짝 놀라게 될지니. 지금의 멀티 엔터테이너이자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모습은 이때부터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4집부터 5집 사이의 공백은 무려 4년으로, 매우 긴 시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은 아마 싸이의 팬이 아니더라도 그 배경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자들이 흔히 '악몽'으로 종종 대면하곤 하는, 군대에 두 번 가는 '꿈'이 싸이에게는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싸이처럼 불행한 남자는 다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이시여... 왜 그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늘: 2년만 더 기다려 봐~) 우여곡절 끝에 만든 5집은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우선 타이틀곡 'Right Now'는 싸이 특유의 강렬하고도 정확한 랩과 YG 사운드의 정체성을 이루는 전자음의 조화가 절묘하다.
이쯤에서 싸이의 딕션(diction)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싸이의 음악을 들으면서 가사집을 찾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가사집을 따로 보지 않아도 가사가 잘 들렸기 때문에... 그만큼 정확한 발음과 딱딱 내리꽂히는 발성을 구사하기 때문에 싸이는 래퍼로서도 좋은 자질을 갖추고 있는 재원이다. 하지만... 그 넘치는 끼와 엔터테이너적인 자질이 래퍼로서의 자질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기에 래퍼 싸이가 비교적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대중들이여, 싸이는 연예인, 엔터테이너이기 이전에 뛰어난 래퍼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
타이틀곡 'Right Now' 이외에도 싸이 특유의 응큼함이 귀엽게 깃들어 있는 흥겨운 댄스곡 '오늘밤새', 이제는 빠지면 섭섭한 싸이 피쳐링 군단의 선봉장 쿨의 이재훈과 함께한 '내 눈에는', 싸이가 개인적으로 최고로 애착을 갖고 있다는 곡 '예술이야' 등도 이 앨범의 필청 트랙들이다. 그리고 2년 뒤...
2012년, 당대 트렌드에 맞춰 반쪽짜리 형태로 무심코 발표한 앨범 한 장으로 싸이는 결코 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 앨범에는 싸이의 인생 히트곡인 '강남스타일'이 수록되어 있다. '강남스타일'이 만든 기록을 굳이 줄줄이 나열할 필요가 있을까? 이 앨범 발표 이전의 싸이가 잘해봐야 '국민가수' 정도였다면, 이 앨범 이후부터의 싸이는 '월드스타'인 것을.
하지만 전술했듯, 이 앨범은 반쪽짜리 앨범이다. 즉 정규 6집의 'Part 1'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싸이는 수록곡을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하면서 '콜라보레이션 앨범' 컨셉트로 제작하고자 했다. 그 와중에 궁금한 건 '강남스타일'은 왜 혼자 녹음했을까? 타이틀곡이라서? (하긴 부틀렉(bootleg) 성격으로 나왔던 '현아' 버전의 '오빤 딱 내 스타일'이라는 변주곡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이러한 의문이 해결되려면 6집 Part 2가 나왔어야 했던 건데 결국 그 앨범은 제작되지 않았다. '강남스타일'의 (예상치 못했던) 유례 없는 대성공으로 인해 Part 2를 제작할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강남스타일'의 성공 이후, 그 이듬해에 싱글로 세상에 나온 'GENTLEMAN'은 싸이 특유의 B급 감성이 잔뜩 가미된 뮤직비디오와 노랫말로 나름대로 사랑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GENTLEMAN'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싸이를 볼 때, 싸이가 '강남스타일'의 성공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그 부담감과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과 함께 뮤직비디오에서 펼친 연기도 뭐랄까... 뻔히 보이는 노림수랄까... 작위적이랄까... 그 이전의 퍼포먼스들이 (특히 '강남스타일'에서의 그것이) 가식이나 왜곡 없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국민가수에서 월드스타로 발돋움한 싸이는 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한 다음 행보를 서서히 준비하게 된다. 3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월드스타로서의 바쁜 일상을 보내며 틈틈이 작업한 정규 7집 앨범 [칠집싸이다]가 그 결과물이다.
이 앨범의 곡들을 가만히 들어보고 있노라면, 1,2집 때 그렇게 날을 잔뜩 세우고 있던 싸이와 '나팔바지'를 부르며 엉덩이를 살랑거리는 싸이가 과연 같은 사람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만큼 관록이 쌓이고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 앨범은 '나팔바지'와 'DADDY (feat. CL of 2NE1)'의 더블 타이틀로 나왔는데, 나는 디스코 풍의 '나팔바지'를 조금 더 좋아한다. 'DADDY'는 전자음 위주의 EDM 장르이고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와 싸이 특유의 역동적인 안무를 주목할 만하다.
이 앨범은 타이틀곡 이외에도 아련함이 물씬 풍기는 'I Remeber You (feat. Zion.T)',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리더 윌아이엠(will.i.am)과의 호흡이 인상적인 'ROCKnROLLbaby', 중년으로 접어든 남자의 이야기를 재치있게 담은 '아저씨SWAG (feat. 개코 of Dynamic Duo)' 등을 추천할 만하다.
싸이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 [PSY 8th 4X2=8]은 2017년에 발표되었다. 타이틀곡은 'I LUV IT'과 'New Face'로 역시 더블 타이틀이었다. 'I LUV IT'의 뮤직비디오에는 배우 이병헌이 출연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싸이 특유의 익살스러운 노랫말에 주목할 만하다. 'New Face' 뮤직비디오에는 그룹 에이핑크(Apink) 출신의 손나은이 출연하여 싸이와 코믹 연기를 선보였는데 의외로 코믹 코드와 잘 맞는 듯...
이외에도 모델 '이성경'의 청아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어쿠스틱 팝 곡인 '마지막 장면', 빅뱅의 메인보컬 태양과 호흡을 맞춘 'LOVE', 블루지한 7080 감성이 돋보이는 록 발라드 '기댈곳' 등을 추천할 만하다. 그런데 이 앨범을 듣다가 깜짝 놀란 대목이 있었는데, 바로 5번 트랙 'BOMB (feat. B.I & BOBBY)'을 들으면서였다.
'BOMB'은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아니었다. 2015년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박진영이 유재석에게 처음 소개했던 곡이 이 곡이었던 것. 하지만 유재석은 템포가 느리다는 이유로 이 곡을 거절했고, 다시 만들어서 내놓은 곡이 'I'm So Sexy'였던 것. 그 'BOMB'이 싸이한테 갔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I'm So Sexy'보다는 'BOMB' 쪽이 더 멋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솔직히 'I'm So Sexy'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My Name Is Not Susan'과 리프가 너무 비슷해서 그리 애착이 가지 않는다.
대망의 마지막(2025년 현재 기준으로) 정규 앨범이자, 싸이의 아홉 번째 정규 앨범 [싸다9]이다. 이 앨범은 '강남스타일'의 성공으로부터도 무려 10년이나 지나 발표한 정규 앨범답게, 그 어느 때보다도 '싸이스러운' 모습이 가득 담겨 있는 명반이다. 다소 여담이지만, 우리 아들이 싸이에 입덕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That That (Prod by. SUGA of BTS)'의 뮤직비디오 때문이었다.
'That That'의 뮤직비디오에는 두 명의 싸이가 등장한다. 서부 카우보이를 위시한 본연의 싸이와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버전의 싸이(편의상 전자는 진짜 싸이로, 후자는 가짜 싸이로 부르도록 하겠다.). '강남스타일'의 시그니처 안무인 말춤을 추며 등장한 가짜 싸이는 BTS의 슈가(SUGA)로부터 불꽃싸다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제거(?)되고, 카우보이 옷을 입은 진짜 싸이는 슈가를 비롯한 많은 댄서들과 'That That'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춘다. 이것은 더 이상 강남스타일의 성공이란 그늘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일종의 메시지로 읽힐 수 있겠다.
이 앨범의 수록곡은 한 곡도 빠짐없이 모두 좋았다. 다른 앨범에서는 한 곡 정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이 꼭 하나쯤은 있었는데 이 앨범은 정말 거를 타선이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싸이가 '작정하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쓰에이(miss A) 출신 배우 수지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여 도움을 준 'Celeb', 6집의 '뜨거운 안녕' 이후로 오랜만에 성시경과 호흡을 맞춘 '감동이야', 크라잉넛의 명곡을 오마쥬한 '밤이 깊었네 (feat. 헤이즈)', 서울패밀리의 원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제는 (feat. 화사)', 나와 같은 중년들이 듣는다면 왠지 눈시울이 붉어질 듯한 위로의 찬가(얼마 전에 이 곡으로 글을 쓴 적도 있었던) '나의 월요일' 등을 특히 추천한다.
덕계못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싸이를 생각하면 희한한 상상을 하곤 했다. 언젠가 싸이를 실제로 만나서 술도 같이 마시고 노래방에 같이 가서 춤도 같이 추고, 노래도 같이 부르면서 노는 상상. 다른 가수들과는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싸이를 보면 그런 상상이 저절로 되곤 했다. 그게 싸이가 여타 연예인들과는 달리 친근하고 재미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우리 아들이 싸이를 좋아하게 되고 나서부터는 그 상상 속에 술은 쏙 빠지고(내가 술을 끊었기 때문에) 우리 아들이 같이 쏙 들어왔다. 나는 몰라도 우리 아들이 싸이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좋아하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몇 년 전(아마 'That That'으로 한창 활동하고 있던 2022년의 일이었을 것이다), 부산의 모 공원에서 이미테이션 싸이가 공연하는 걸 다같이 본 적이 있는데, 넋을 놓고 공연을 보고 있던 아들의 입에서 나오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싸이가 진짜 있었어.'
영상 속에서, 혹은 꿈 속에서나 봤던 존재를 실제로 보았다는 것이 아이에게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는 반증이다. 물론 이미테이션이긴 했지만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싸이였고, 그렇기에 아들에게 굳이 '저 사람은 가짜야'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훗날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겠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아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들과 함께 싸이의 콘서트를 보러 가고 싶다. 물을 흠뻑 맞으며 싸이의 멋진 퍼포먼스를 즐기고 실컷 웃고 소리치고 떠들고 싶다.
젊은 날의 싸이가 이 세상의 무엇으로 남아야 하는가 고민하며 방황했던 시기가 무색하게도, 싸이는 지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민이 애정하는 국민가수가 되었다. 데뷔로부터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흠뻑쇼'라는 자신의 브랜드 공연을 매년 개최하며 건재함을 알리고 있다. 이런 싸이의 올곧은 행보를 보며 우리에게도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이 세상의 무엇으로 남아야 하는가? 싸이처럼 대단한 사람들만 이런 고민을 해야 할까? 아니다. 오히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 집요하게 질문해야 한다. 너는 세상의 무엇이 될래?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