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로서 바라보는 교육정책-1
이번 글의 등장으로 고개를 갸웃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당신은 교사 일이 싫어서 도망쳐온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라는 연재물에 이런 글을 쓰신다고요? 이율배반 아닙니까?'와 같은 질문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은 일로부터 도망쳐온 것이 맞지만, 이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도망쳐오지도 못했을 거라고. 일하는 동안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임했고, 교육계라는 세계를 잘 알고 싶어서 온갖 책들을 미친 듯이 읽어댔다. 심지어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요령 같은 공식 책자들도 파고들었다. 내가 활자중독자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내가 몸담고 있는 일터인 학교에 대해 잘 알고 있을수록 사는 데에 유리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더 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도 바뀌는데, 지금은 2022 개정 교육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는 과도기이다. 올해 1학년이 된 아이들부터 적용되는 교육과정이고, 그래서 지금 학교는 두 가지 교육과정이 혼재하여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일선 학교의 혼란을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고, 이러한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이 교육과정을 실행해야 하는 명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별다른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원고는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이 집필한 <다시 공부, 다시 학교>와 교육트렌드 2025 집필팀이 작성한 <대한민국 교육 트렌드 2025>, 정미라 외, <팩트체크, 고교학점제를 말하다> 등의 저서들을 기반으로 작성하고자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가장 도드라진 지점은 바로 '고교학점제'이다. 나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반감이 매우 심한 교사 중 한 사람이다. 그 반감이 어쩌면 고교학점제에 대한 섣부른 오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여, 오해가 있다면 풀고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에 위의 을 집어들게 되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의 오해는 진실이었으며 저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상이야말로 학교 현장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심각한 오류이다.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씩 짚어나가 보겠다.
고교학점제는 보편교육을 지향하는 국가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한다
고교학점제를 비판하는 목소리 중에는 고등학교는 보편교육을 지향해야 하는데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을 일찍부터 불필요한 과목 선택으로 내몰아 보편교육을 축소시킨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이 말이 과연 사실일까?
일단 국가교육과정은 급변하는 미래사회 대비 필수적인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국민에게 필요한 보편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어도 각 학교는 국가교육과정에서 선정한 과목을 학교 교육과정으로 편성하여 학생들이 일부는 필수로, 일부는 선택으로 수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고등학교에서 편성하는 교육과정은 보편교육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본책 p.21
모든 학생이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을 통해 보편교육을 실현한다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언급되어 왔지만, 그만큼 오래 학교에서 소외되어온 수포자를 생각해보자. 2019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제공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고등학교 학생 중 수포자는 절반이 넘는 59.7%에 이른다. 그동안 고등학교 교육에서 이런 학생들에 대한 기본학력 보장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3학년이 되면 교과서는 제쳐두고, EBS 수능특강, 수능완성을 주교재로 수업과 평가를 실시해왔다. 기본학력에도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그 어떤 책임교육도 제공하지 않은 채, 그저 기계적으로 학년이 상승할수록 위계가 높은 과목을 의무적으로 강제해온 것이 현실 아닌가? 학생의 현재 역량으론 배울 수도 없는 교육과정이나 문제집 풀이를 일방적으로 제공해준 것을 과연 보편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학생의 준비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학년별로 위계가 높은 과목만을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학교 지정과목으로 편성해놓은 것을 보편교육이라고 포장할 순 없다. (중략)
무엇보다 이미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선택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지정과목은 학생의 요구조사나 학부모의 의견 수렴 없이 단순히 교원 수급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경우도 있다. 고교학점제 시대에 진정성 있는 보편교육을 실현하려면 누구도 교육과정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본책 p.22~23
아름다운 취지이다. 고등학교 교육이 가져야 하는 본질인 '보편교육'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간 잃어버리고 지내 왔기 때문에 이제라도 되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름답다. 실로 아름답고 교육적이어 마지않은 태도이다.
그럼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볼까. 일단 우리는 고교학점제에 대해 오해하고 있지 않다. 적어도 대학과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내용으로 알고 있지 않았다. 기존의 '단위'라고 규정되어 있던 것을 '학점'으로 바꾸고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는 학과별로 교육과정 트랙이 달리 운영되는 반면 고등학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국가교육과정을 기반으로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게 대학의 학점제와 고등학교의 학점제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로 대충 얼버무리려 하는 것 같은데, 국가교육과정으로 편제되어 있는 과목 수는 적다고 생각하는가? 국가교육과정하의 그 많은 과목들을 늘어놓고 학생들의 수요에 따라 과목을 편성하고, 우리가 가르칠 여력이 안 되면 자격증이 없는 외부 교원까지 끌어다가 코티칭(co-teaching)까지 해야 한다고?
언제까지 대학입시 탓만 하며 혁신을 머뭇거릴 것인가?
'기-승-전-대입제도'가 버티고 있는 한 아무리 좋은 교육 정책들도 학교에서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여전히 고교학점제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학교 현장의 신중한 입장에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교과 중심의 수시 전형'과 '학생부 종합 전형'의 확대라는 대입제도의 긍정적 변화가 꾸준히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교육의 변화는 왜 이리 더디기만 할까. 정말 대학입시에 종속된 탓에 고등학교 교육이 혁신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혹시 대학입시라는 굴레를 스스로 눌러 쓴 채 마냥 혁신을 미뤄 왔던 것은 아닐까.
본책 p.90~91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분개했던 부분이 등장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는 말에 냉정을 잃었다. 지금 냉정하게 생각해보자고 했는가? 수시전형의 확대, 말은 좋다. 수시전형은 수능과 아예 상관이 없나? 수시전형에 지원해도 (전형마다 다르겠지만) 수능최저등급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수능 공부가 필요하다. 아니,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고교학점제라는 모델을 외국에서 빌어올 때, 아이들의 동의를 받았는가? 학부모에게 희망 여부를 확인했는가? 교사들의 업무 과중을 고려했는가? 아이들이, 학부모가, 교사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물어보지도 않은 채 당신들 머릿속에서 우리의 욕구를 함부로 재단하고, 대학입시라는 틀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이루어질 수 없는 높은 이상을 억지로 우리 현실에 끼워맞추려 한다는 생각은 안 드는가? 단 한 번이라도, 학교 현장에 직접 와서 현실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교사도, 학생도, 어쨌든 지금 학교라는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이미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새롭고 낯설기만 한 고교학점제를 어떻게 더 짊어지란 말인가? 이럴 때 하는 말이 있다.
"너희가 와서 해라."
심지어 현재 1학년이 3학년이 되어 수능을 치르게 되면, 탐구과목의 경우 '통합사회', '통합과학'으로 선택과목이 없어지고 사회/과학 과목이 죄다 통합된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1학년 때 배운 것으로 진도가 완료되기 때문에 2~3학년 때 사회/과학 수업 시간에는 아마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학생이 버젓이 다른 과목 책을 펴놓고 공부하고 있어도 교사가 제지할 방법이 없다. "저는 수능 공부 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래도 내 수업 시간에는 내 수업이 중요하니까 네 수능 준비 같은 건 집어치우고 무조건 내 수업에 집중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고교학점제에는 어떠한 오해도, 왜곡도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깨달았다. 우리는 교육의 파멸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교육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 이미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학교는 점점 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될 것이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가 되어 단절과 분리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교사가 일주일 내내 영혼을 갈아넣어서 수업 준비를 해 간들, 그 수업은 어떤 학생도 듣지 않는 공허하고 무의미한 시간일 것이다.
이쯤에서 다른 책 이야기를 해 볼까. 이 책은 내가 1급 정교사 자격연수(이하 1정연수)를 들을 때 선물로 받은 책이다. 뭐... 사실 선물이라고 보긴 뭣하고 이 책을 읽고 다같이 토의토론을 해 보자는 의미였는데 어쨌든 책을 받으면 왠지 선물같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니까. 사진에서 보이듯, 테이프까지 붙여가며 정성스레 읽었다. 읽으면서 느낀 건 여전히 막막하기만 한 교육계의 현실이었지만...
큰 줄기만 말하자면, 이 책은 우리나라의 교육의 큰 문제였던 주입식 교육과 강의식 교수법의 폐해를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활동식 수업이 과연 대안으로 적절했는가를 고찰해 보는 책이다.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이 학교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약 반 년 정도의 밀착실험과 인터뷰 등을 통해 사례를 모으고, 사실상 활동식 수업이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나도 임용을 준비하면서 강의식 수업은 고루한 옛날 방식이므로 무조건 지양해야 하며, 토의토론식이나 활동식 수업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배웠고, 심지어 초임 시절에 모교에서 수업실연을 했을 때 강의식 수업으로 진행하여 교과협의회 시간에 젊은 교사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피드백도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 학교에서는 억지로 활동 수업을 많이 해 보려고 나름 애쓰기도 했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있긴 했다. 이렇게 한들 저렇게 한들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책에서도 분명히 말하고 있지만, 활동 수업에는 빈틈이 많다. 무임승차 효과는 물론, 잘하는 아이 몇몇이서 과제를 빨리 해결해 내고 각자 할 일을 한다든가, 학업 성취도가 낮은 아이들은 참여하고 싶어도 아예 대화에조차 끼지 못하는 등 학습결손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선진교육의 모범적인 모습으로 추앙받았던 핀란드도 지금은 기초학력 저하로 교육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강의식 수업이 과연 정말 나쁜가를 도로 되묻고 있다.
정리하면, 강의식 수업 방식 자체는 나쁜 방법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핵심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강의식 수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강의식 수업을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에만 그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답은 간단하다. 학생에게 진정으로 '배움'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교사가 '가르친' 것과 학생이 '배운' 것은 확연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걸 모르는 교사가 있겠는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우리 교사들은 늘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학생이 진정으로 배우고 있는지를 형식적으로 확인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연수 때 이 책과 관련하여 강의해 주신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학생에게 진정한 배움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하고 활발한 상호작용을 수업 시간에 나누려면 수능 제도부터 없어져야(혹은 바뀌어야) 한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정해진 답만 외우는 데에 익숙한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어떤 건지도 모르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수능을 둘러싼 엘리트 중심 교육, 치맛바람, 선택적 학습 등의 병폐를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데 왜 시스템의 본질을 바꿀 생각은 않고 애꿎은 교육과정만 자꾸 바꾸면서 허울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변화'라고 우기는가? 누굴 바보로 아는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수립할 때,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공청회까지 여는 등, 교육 전문가들끼리 논의해서 만들어냈던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시도한 것은 바람직하다. (물론 약간의 진통은 있었으나, 그 또한 의미 있다고 본다. 새로운 바람은 언제나 좀 더 시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 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교육과정(교육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는 이 점을 얼마만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일선 학교의 교사들이 무력해지는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껴질 때이다. 나는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여기에 왔는데, 아이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때로는 귀찮아한다는 걸 느꼈을 때, 학교에서 교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과목의 중요도에 따라 학생들은 선택적 학습을 한다. 그걸 두고 무작정 학생들을 나무랄 수 있는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예의의 문제를 들고 나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떠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고 말할 것인가? 언제까지, 어느 바닥까지 교사들을 내리떨어뜨려 비참하게 만들 작정인가?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일선 학교에 일단 와서 현장을 직접 느껴라. 교육실습생이 학교에 올 게 아니라 교육감이, 국회의원이, 더 나아가 대통령이 움직여라. 힘이 있는 사람이 직접 현장의 곪아터져가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당신들이 고민해라.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러 학교에 온 것이다. 그것이 본질인데 지금은 그 본질이 너무 훼손되어 교사들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다. 23학년도 입시에서 교대와 사범대 지망 비율을 확인해 보라. 발령대기 중이었던 교사들이 그만두고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보라. 이것이 지금 교육의 현실이다.
이 문제를 교사에게 고민하라는 건 당신들의 책임을 애먼 우리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다소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지만, 원하는 건 단 하나다. 내가, 학교에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가치로운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확신만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마지막 책은 볼륨이 상당하다.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를 분야별로 촘촘하게 고찰한 책이기에 다 읽는 데에 진땀을 꽤 뺐다. 특히 AI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과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이슈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어떤 의견을 견지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그 부분에 특히 주목하여 읽어보았다.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현안은 총 20가지로, 아래와 같다.
1. 통계로 본 2024년 한국 교육
2. 정책으로 본 2024년 한국 교육
3. 복잡해진 교육생태계, 학교문화의 현주소
4. 교육공동체 회복의 실마리, 학부모
5. 공존의 교실을 위한 다문화교육의 오늘과 내일
6. 교육계의 화두, 교사 교(육)권과 학생 인권 논란
7. 2025년 유보통합은 실현 가능한가?
8. 2025년 늘봄학교 진단
9. AI 디지털교과서란 선택, 교실을 혁명시킬 것인가?
10.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무엇이 달라지는가?
11. 의대 입학정원 확대와 무전공 입학이 가져올 2025학년도 입시 변화
12. 위기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사회적 조정이 필요한 때
13. 교육자치제도와 교육감 선거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14. 21대 국회 성찰과 22대 국회 교육 관련 과제
15. 특구 전성시대, 교육은 어떻게 될까?
16. 대학의 위기, 대학 체제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17. 국가교육위원회, 2년의 평가와 제언
18. 글로벌 환경 속 독일 교육: 도전과 혁신 방향
19. 인구 소멸 1호 국가, 저출산 정책과 교육의 미래
20. 5·31 교육 개혁 30년, 한국 교육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현장에 있다 보면 우리 홀로 외딴섬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위안을 받는다. 물론 이러한 고민이 현실에서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쨌든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어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면의 한계상 많은 원고를 소개할 수 없어 아쉽지만, '취업양성소'로 전락한 지 오래인 '대학'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 16번 원고인 '대학의 위기, 대학 체제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홍창남)'에서 발췌한 내용을 보겠다.
대학은 학문 분야별로 세계 수준의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연구역량을 갖추어야 하고, 이를 응용하여 다른 연구기관이나 기업체 등과 협력하여 산업사회의 변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의 연구개발 역량은 장기적으로 국가 사회의 성장과 유지를 보장할 지적 자산이 된다. 이와 동시에 대학은 학생들이 졸업 이후 직업적,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대학의 교육역량은 졸업생들의 필요와 직업 사회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기반이 된다.
본책 p.442~443
필자가 생각하는 대학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한 대목인데, 과연 우리 대학이 현재 저러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나도 대학 생활을 해보았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대학이 왜 존재하지?'라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그토록 박터지게 경쟁해서 대학교에 진학했는데, 그렇게 노력해서 올 만한 가치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통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전공에 대한 심화학습을 이어가는 학생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전술했던 대학의 본연의 역할은 전혀 작동되지 않고, 그저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버는 용도로 대학이 활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고3 학생들에게 '대학 가면 무조건 인생이 나아진다.'라고 말하는 건 기만이다. (나도 기만당했다!)
이쯤에서 이 책을 전체적으로 읽고 난 후의 내 소감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교육의 방향만큼은 제대로 잡았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교육은 겉만 반드레할 뿐, 실속이 없다. 다양한 정책들이 화려하게 포진하고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애초에 교육이 어느 방향을 가리켜야 하는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든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묻고 싶다. 어떤 인재를 양성하기를 원하는가? 교육을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이 무엇인가? 5·31 교육개혁이 1990년대에 일어났는데, 이때의 키워드는 교육수월성과 경쟁, 효율성이었다. 즉 시장성 있는 인재, 소수의 엘리트 위주의 교육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이 기조를 유지하며 30여 년을 살아왔다. 지금은 5·31 시대처럼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할 때가 아니다. 아이 한명 한명에 대한 책임교육을 강조하고 보편교육을 실현해야 할 때이다. 그렇게 방향을 잡았다면, 주저할 필요 없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를 바꾸어야 하고,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교사 한 사람, 혹은 한 계층만이 움직여서 될 일은 아니다. 교육주체 모두가 현재의 교육 트렌드와 방향을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5>에 수록된 중요한 내용을 우리 교사들만 알 것이 아니라 교육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 범박하게는 전국민이 알고 공유해야 한다. 인터넷 기사나 뉴스와 같은 언론 매체에 마지막으로 당부하자면, 허구헌 날 윗사람들 싸우는 장면, 약자를 학대하는 장면, 연예인 마약 뉴스 같은 자극적인 현안들만 보도하지 말고 국민들이 현안에 대해 제대로 알 권리를 보장해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용이 상당히 길다만, 정리를 좀 하자. 보편교육을 지향한다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 실정과는 괴리가 너무나도 크고, 이러한 괴리 때문에 발생하는 일선 학교에서의 혼란을 극복하는 것이 큰 숙제로 남아 있다. 그 숙제는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거리를 쳐내면서도 텅 빈 눈의 학생들과 텅 빈 시간을 보내는 텅 빈 교사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입 제도의 개편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대학이 '취업양성소'가 아닌, 최고의 지성인을 배출하는 '지식의 상아탑'으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대학 이외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다양한 역할과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이 교육답게 작동할 수 있도록, 교사가 교사답게 당당하게 교단에 설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교사들의 마음에 꽉꽉 들어찬 병이 나을 수 있다. 더 이상은 아프고 싶지 않다. 아파서 죽고 싶지 않다. 나도 웃으며 학교로 다시 돌아가서 가르치고 때로는 배우기도 하며 살고 싶다. 원하는 건 오직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