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효신
가끔 박효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저 학생들 나이였을 때도 대장은 이미 건재한 가수였는데, 세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젊은 세대들에게 그 실력과 내공을 인정받는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아무나 할 수는 결코 없을 일이다. 지금은 뮤지컬에 집중된 행보를 보이느라 음악 팬들에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는 대장나무 박효신. 그의 여덟 번째 정규앨범 소식은 2019년에 나온 4번째 선공개 싱글인 [연인(戀人)]을 마지막으로 무려 6년째 감감무소식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당시의 분위기는 앨범이 거의 완성 단계인 것처럼 보였고 콘서트 때도 8집에 수록될 미공개곡들을 라이브로 선보인 적도 있었다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이렇게 오랫동안 8집 앨범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대장의 악명 높은(?) 완벽주의 때문일까? 아니면 데뷔 때부터 꾸준히 대장을 괴롭혀 왔던, 소속사와의 원활하지 못했던 관계 때문이었을까?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에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지만 이런 내 속을 대장은 알랑가몰라...
어쨌든, 8집을 기다리다 지쳐 1집부터 다시 쭉 들어보며 대장의 과거, 나의 과거를 떠올려보고 있다가 문득 지금 대장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즉흥적으로 써 보려 한다. 대장이 여태껏 걸었던 발자취를 나름 나의 추억과 함께 곁들여 한 편의 글로 남길 것이다.
1999년 12월 1일, 신촌뮤직에서 발굴한 신인 남성 R&B 가수가 첫 앨범을 발표했다. 무려 고3의 나이로, 미국의 R&B 레전드 가수인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를 떠올리게끔 하는 원숙하고도 노련한 실력을 선보이며 온 세상을 놀라게 한 그의 이름은 박효신. 신재홍 작곡의 '해줄 수 없는 일'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워 활동했다. 신재홍 작곡가의 곡은 감정선이 깊고 섬세하여 표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신재홍 작곡가의 곡으로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한 가수는 박효신 이전까지는 임재범 정도가 유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런 어렵고도 아름다운 곡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실로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는 점이다. 당시 신촌뮤직에서 중책을 맡고 있던 가수이자 프로듀서였던 권인하 또한 박효신을 '천재'라고 추켜세우며 '손댈 데가 없었다'라는 극찬을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데뷔 때부터 완성된 상태로 세상에 나온 박효신은 조우진 작곡의 후속곡 '바보'로 연속 히트를 치며 승승장구한다.
이 앨범은 '해줄 수 없는 일'과 '바보' 말고도 박화요비와의 듀엣으로 선보인 R&B 발라드인 '애써', 여름밤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발라드 '피아니스트', 애절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하늘은 왜 내게', 네오 소울에 대한 시도가 엿보이는 'Inside Love' 등 뛰어난 곡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다. 데뷔 앨범은 아무래도 좀 어딘가 모르게 성긴 데가 있게 마련인데, 박효신의 데뷔 앨범은 데뷔 앨범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그 퀄리티가 상당하다. 대중에게 어필할 만한 발라드 넘버와 흑인음악에 대한 조예를 엿볼 수 있는 R&B, 소울 넘버가 균형 있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듣는 동안 확실히 위화감이 덜하다.
성공적인 데뷔를 마치고, 그 기운을 그대로 타서 1년여 만에 야심차게 발표한 정규 2집 앨범 [Second Story]이다. 1집 때와 비교하면 원숙미와 애절한 감성이 조금 더 부각된 듯한 느낌이다. 이 2집은 유명 작곡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사격 끝에 만들어진, 이른바 종합선물세트라고나 할까. 일단 윤상이 타이틀곡인 '먼곳에서'와 또 다른 수록곡 '편지'를 선사했고, 토이의 유희열이 '위안'을, 김동률이 후속곡 '동경'을, 조규만이 '사랑 그 흔한 말'을 주었다.
그런데 나는 박효신의 이 2집 앨범을 들으며 매번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이 당시 작곡가들 입장에서 박효신의 등장이 참 신선한 충격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젊고 뛰어난 보컬리스트를 데리고 이것저것 시켜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표현이 적절할지 잘 모르겠지만 실험대에 올려놓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하며 음악적 갈증을 해소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뭐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조차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확실히 결과물을 받아들고 나면 작곡가들은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타이틀곡은 '먼곳에서'였지만, 인기몰이를 했던 쪽은 후속곡 '동경'이었다. 언뜻 들으면 두 곡 모두 다소 밋밋하게 들려서 난이도가 평이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만, 막상 불러보면 박효신의 표현력이 얼마나 뛰어난 수준인지, 왜 일반인들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된다. 특히 '동경'의 경우 초반부의 프레이즈가 굉장히 길고 느리게 흘러가는데 이게 자칫 잘못 표현하면 듣는 이에게 피로감과 지루함을 줄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수를 안고 있는 곡을 (겁도 없이) 스무 살짜리 핏덩이 신인가수에게 시켜서 결국 원하는 결과물을 뽑아내는 김동률의 근성도 알아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1집에 비해 2집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앨범은 아니다. 너무 다양한 작곡가들에게 곡을 맡기다 보니 앨범의 유기성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보컬리스트 박효신으로서의 존재감이 옅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 꽤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유명 작곡가들의 곡이 아닌데, 1번 트랙인 'Show Your Love'(문창배 작곡), 6번 트랙 '내가 사랑한 사람'(조우진 작곡, 1집의 '바보'를 작곡한 그 사람 맞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인 'Please'(김선민 작곡)가 그러하다.
아무튼 이 시기에도 가수들과 작곡가들로부터 듀엣과 피쳐링 제의도 많이 받고 라이브 무대에도 자주 불려다니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박효신이었다. 그러다가 1년 뒤...
2002년 가을은 박효신의 데뷔 이후 첫 전성기라고 할 만한 시기이다. 이때 발표한 3집 앨범 [Time-Honored Voice]는 타이틀곡 '좋은 사람'(신재홍 작곡)의 히트로 무려 5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1,2집에서 보여준 가창력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3집 앨범을 들어보면 오히려 1,2집 때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발전되고 정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박효신이라는 가수가 세상에 처음 나올 때부터 좋아했지만, 이때 내가 그에게 보여준 사랑은 그야말로 맹목적인 사랑이었다. 당시 나는 고1이었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고비를 넘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 힘든 나날들 중에 박효신의 3집 앨범은 나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이 앨범 한 장을 수백 번, 수천 번 돌려 들으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냈다. 지친 몸으로 학교에서 돌아오면 홀로 텅 빈 방 안에서 이 앨범의 노래들을 따라 부르며 가만히 나 자신을 달래곤 했다.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의 노래가, 그의 목소리가 내 곁에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박효신은 내게 그저 '가수' 이상의 의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앨범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이 앨범의 곡들은 그때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아직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전곡의 가사를 다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수록곡 전곡이 명곡이라 어느 하나를 꼽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15곡을 다 들어볼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몇 곡을 뽑아 보겠다. 우선 1번 트랙 '나비의 겨울'(신재홍 작곡)은 보컬리스트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한다. 전곡을 다 듣기 힘들다면 1절까지만이라도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 왜냐하면 '절제된 표현'의 정석이기 때문이다. 1,2집의 표현력과 3집의 그것을 비교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바로 이 '절제'의 미학이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 이 사람이 뭔가 중요한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걸 깨닫고 곧바로 체화하여 앨범 녹음에 적용했고 성공까지 거두었다. 무서운 사람...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이 앨범 얘기만으로도 지면을 다 채울 것 같다. 몇 곡 골라 뽑기가 귀찮으니 전곡을 다 들어 보시라. 아무래도 이 앨범만큼은 이렇게 얘기하고 넘어가는 편이 낫겠다.
3집 앨범을 끝으로 박효신은 신촌뮤직과의 인연을 끝내고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즉 직접 1인 기획사 형태의 회사를 세우고 단독 아티스트로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신촌뮤직은 아티스트의 동의 없이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여 수익을 챙기는 등 만행을 저질렀고, 이처럼 신촌뮤직과의 마무리가 매끄럽지 않았던 만큼, 연예기획사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박효신은 데뷔 이전에도 소속사의 계약금 갑질 등으로 피해를 많이 입었던 이력이 있다. 실력이 뛰어난 보컬리스트가 이런 이슈들로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4월, 정규 4집 앨범인 [Soul Tree]가 발표된다. (앨범명인 'Soul Tree'는 팬클럽 이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애칭인 대장나무도 이때 나오는 이름이다.) 이 4집 앨범 또한 3집에 이어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명반이다. 데뷔곡 '해줄 수 없는 일'과 커리어 사상 최고의 히트곡 '좋은 사람'을 작곡한 신재홍 작곡가가 이 앨범에도 타이틀곡 '그곳에 서서'를 선사해 주었다. '좋은 사람'만큼의 범국민적 히트를 기록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마니아들에게는 '좋은 사람'보다 '그곳에 서서'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모양새이다.
직접 불러본다면 아마 난이도 측면에서 후덜덜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박효신의 모든 노래가 다 그렇지만, 이 '그곳에 서서'는 남성의 목소리에서 가장 조절하기 어려운 음역대를 정확하게 건드리고 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맘놓고 내지르기에는 너무 거칠고 투박하여 어울리지 않고, 그렇다고 어줍잖게 절제해야겠다 싶어 기어들어가 버리면 밋밋하거나 세상 어설프게 표현되고 마는 것이다. 정확한 밸런스가 잡힌, 단단하면서도 확실한 소리가 나와줘야 하는데 그게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아닐 수 없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그곳에 서서' 말고도, 방시혁 작곡의 '나처럼', 아이리쉬 휘슬 소리가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찾을 수 없는 길', R&B 가수 앤(Ann)과 듀엣으로 호흡을 맞춘 '몰랐죠', 김범수와의 찰떡 호흡으로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았던 '친구라는 건', 더 원(The One)의 곡을 리메이크한 '보낼 수 없는 너', 3집의 '살아있는 건'을 받으며 인연을 맺은 이기찬에게 받은 또 다른 곡인 '왜 눈물만 나는지', 김현철의 곡과 이소라의 노랫말로 애절함을 극대화한 발라드 '그 흔한 남자여서' 등 이 앨범에도 명곡이 참 많다.
박효신이 발표한 처음이자 마지막 리메이크 앨범이다. 2004~5년 사이에 성시경, 김범수, 나얼 등 내노라 하는 가수들이 차례로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한창 리메이크 열풍이 불고 있던 중이었다. 박효신의 리메이크 앨범은 이들보다는 약간 후발주자 느낌으로 세상에 나왔는데, 리메이크 곡 발표로 따지자면 박효신의 '눈의 꽃'만큼 큰 성공을 거둔 곡은 적어도 2004~5년 중에는 없을 것이다.
이 리메이크 앨범이 박효신의 '소몰이 창법'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앨범이다. 이 앨범부터 조금씩 힘을 빼고 편안하게 소리내는 방식을 시도하게 되는데, 어떤 피드백을 받았던 건지 아니면 본인이 불편함을 느꼈던 건지 그 의중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4집의 곡들을 들어보면 고음에서 소리가 허스키한 톤으로 약간 벌어지는데 그게 매력적으로 들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게 참 답답하게 들렸었다.
훗날 본인이 직접 고백하기로는 어렸기 때문에 멋부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소위 말해 그냥 편하게 부르면 녹음을 봐 주던 디렉터들이 긴가민가하다가 조금 '긁어' 주면 ok를 해 줬다고 한다. 하긴 이때의 대중들은 누가누가 더 많은 소를 몰 수 있는가(...)로 가창력의 척도를 판단하려 했었으니까 무리는 아니다.
아무튼 이 앨범에서는 3,4집 때처럼 답답한 고음이 아닌, 마음껏 시원하게 뻗는 고음을 오랜만에 들어볼 수 있다. 특히 김현식의 '사랑 사랑 사랑'에서 보여주는 고음 애드립도 훌륭하고, 박미경의 '기억 속의 먼 그대에게'는 정말 훌륭한 리메이크이다. 하지만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강수지의 '흩어진 나날들'은 애절함을 가득 머금고 (아마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마음껏 엉엉 울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리메이크 앨범에는 보컬리스트 박효신의 '과도기'가 엿보인다. 소리에 대한 깊은 고민을, 즐겨 들었던 노래들의 재해석으로 맘껏 풀어헤쳐 보려는 박효신의 실험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정말 경이로운 건 뭐냐면, 1,2,3,4집, 그리고 리메이크 앨범을 거치면서 이 사람은 음색과 표현력, 감정선 등이 계속해서 변화하면서도 위화감 전혀 없이 끝내 대중들을 설득해 낸다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앨범을 낼 때마다 변화를 시도한다면 변화된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팬들이 탈덕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텐데, 그러한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대장은 끊임없이 도전과 실험을 해 왔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의 커리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오히려 앞으로 발표하는 5,6,7집의 경우는 위화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변화의 폭이 큰데도 대중들은 여전히 박효신에게 열광한다. 이쯤되면 본인의 영혼과 대중들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하게 연결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오랜 팬으로서 보자면, 이 5집 앨범 시기의 박효신은 음악적으로는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가창력 측면에서도 이때의 소리가 본인의 신체와 영혼에서 나올 수 있는 최상의 소리였고 수록곡의 퀄리티도 이 이상 뽑아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이렇게 완벽한 5집 앨범을 만들어낸 박효신은 이 시기에 가수 인생 최악의 고비를 맞이하게 된다.
5집 앨범을 발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효신은 어느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되고, 끝내는 연축성 발성장애 판정을 받게 되는데, 박효신은 이것이 소속사의 지나친 압박과 가혹한 스케줄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며 계약을 무효화해 달라고 했고 소속사는 계약 위반으로 박효신을 고소하는 등 악재가 겹치게 된다. 이때 시작된 법적 분쟁은 무려 9년 동안 박효신을 괴롭히게 되는데... 이 밖에도 자료가 많으니 자세한 내용을 굳이 여기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무튼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의 퀄리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타이틀곡 '추억은 사랑을 닮아'(박효신, 황성제 공동작곡)를 비롯하여 '눈의 꽃'의 작곡가인 마쓰모토 료키가 선물한 '메아리(喊)', 에릭 베네(Eric Benet)의 곡을 연상케 하는 드라마틱한 발라드 'Lost', 전해성 작곡가 특유의 아련함이 돋보이는 '미워하자', 경이로운 가성 애드립이 인상적인 '그립고 그리운', 재즈 분위기의 애잔한 발라드 '사랑을 비우다', 버블시스터즈의 최아롬과 듀엣으로 부른 'Like A Star',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따뜻하게 노래한 '1991年, 찬바람이 불던 밤' 등 명곡이 많으니 전곡을 모두 들어보길 권한다.
2008년에서 2011년 정도까지? 정규 앨범을 반쪽으로 잘라 발표하는 것이 유행이던 시기가 있었다. 이러한 시류에 편승하듯 박효신의 6집 [Gift]도 Part 1과 2로 나뉘어 발표되었고, Part 1의 타이틀곡인 '사랑한 후에'(김도훈, 황세준 공동작곡), Part 2의 타이틀곡인 '사랑이 고프다'(황세준, 김세진 공동작곡)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Part 2의 '사랑이 고프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여태껏 발표했던 박효신의 타이틀곡 중에서 가장 밝은 분위기의 곡이며, 구사하는 창법과 음색 또한 그에 걸맞게 가볍고 쨍하다. 5집에서 6집으로 넘어오면서 가장 도드라진 변화가 바로 '음색'의 변화인데,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고유의 음색을 바꾼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창법의 변화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성공적으로 대중을 설득하여 유입률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요인이 될 수 있는데, 음색을 바꾸는 것은 대중의 입장에서 볼 때 그 가수의 이미지나 팬덤의 세계관 전체를 뒤흔들고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위험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가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박효신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앨범을 거듭해서 낼 때마다 목소리를 바꾸지만, 계속해서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데에 성공해 내는 박효신 말이다. 이 대목은 왠지 좀 위인전 같기도 한데, 사실이지 않은가? 그저 얼마간의 시기에만 반짝 성공하고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적 실험은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영혼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 속의 수많은 시련들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악 속에서만큼은 진실한 마음과 순수한 열정을 가득 담아 표현하려 노력했다. 거짓말 같은가?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 보라.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듣고 울고 웃었던 나날들을 떠올려 보라. 노래는 거짓말을 못한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노래에 귀기울이는 당신의 감정 또한 거짓말을 못한다.
진심으로 우리에게 노래로 마음을 전했던 아티스트와, 진심으로 노래로 위로받았던 팬이 아름답게 교감하였으면 그것으로 이미 게임 끝난 것이다. 목소리를 바꾸든, 창법을 바꾸든 이제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박효신은 다음 커리어에서 자기 자신마저도 극복해 버린다.
2014년, 7집 앨범 발표 전 선공개로 선보였던 싱글 '야생화'(박효신, 정재일 공동작곡)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노랫말과 극강의 가창력으로 박효신의 팬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좋은 사람' 때의 히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야생화'는 '불로초'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차트에도 오랫동안 머무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사랑받았다.
이후 'Happy Together'(박효신, 정재일 공동작곡), 'Shine Your Light'(박효신, Andy Platts 공동작곡) 등을 차례로 선공개하더니 마침내 2016년 10월 3일, 'Home'(박효신, 정재일 공동작곡)을 타이틀곡으로 한 정규 7집 앨범 [I Am A Dreamer]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 앨범에도 대장의 또다른 별명인 '늑대'를 만들어낸 곡인 'The Dreamer (I Am A Dreamer)'(박효신, 정재일 공동작곡), 더블 타이틀곡 'Beautiful Tomorrow'(박효신 작곡), 선공개를 통해 많은 이들을 위로한 '숨'(박효신, 정재일 공동작곡) 등 명곡이 많다. 그리고 이 앨범은 첫 곡의 가사가 '꿈'이며 마지막 곡의 마지막 가사가 '꿈'이다. 즉 '꿈'에서 시작해서 '꿈'으로 끝난다!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그랬든 아니든 참 묘하고 공교롭다.
이렇게 진심을 다해 새벽 늦게까지 글을 쓸 정도로 대장을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현재 내가 소장하고 있는 대장의 유일한 앨범이 7집 앨범 [I Am A Dreamer] 하나뿐이다. 나머지도 당연히 소장하고 있었지만 과거 어느 시기에 생계 유지가 어려웠던 나날들을 보내며 갖고 있던 앨범들을 죄다 팔아넘기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지금 대장의 앨범들은 중고시장에서도 고가의 레어템이 되어 있다. 5집 앨범의 경우 10~13만원선으로 알고 있고, 3집 앨범도 초판본 기준으로 1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 대장 앨범들을 팔러 가는 나를 만난다면 멱살 잡고 다시 끌고 오고 싶다. 안 되면 다리몽댕이를 뿐질러서라도 주저앉히고 싶다! 그런 희대의 명반들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라면 사 먹을 돈이 없어 그걸 헐값에 그렇게 넘겨 버릴 만큼 너는 왜 그렇게밖에 못 살았던 것이냐? 라고 다그치며 혼내고 싶다. 그렇게 사는 동안 나를 혼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난 세상에게 된통 혼나고 있었다. 하루를 더 살기 위해 내 살을 깎아먹으며 살아야 했던 나의 어두운 어제를 생각하면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현실을 배웠고,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태어나 한 번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사는 연습 같은 건 없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하기엔 나의 청춘은 하자보수도 어려울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넘어져도 남들의 몇 배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넘어졌고, 방향을 잃은 채 헛되이 여기저기를 기웃대며 서성일 뿐이었다.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은 뻔지르르하게 했지만 정작 열정을 다하지는 않고 흉내내기와 허세 부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멋없고, 하찮았다. 이걸 깨닫고 부끄럽게 내뱉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걸 박효신 대장에 대한 연모와 기다림의 편지 끝에 덧붙이게 될 줄은 몰랐다.
어째저째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지금은 안 그런 척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대장에 대한 글을 쓰며 대장의 옛 모습을 떠올렸고, 그런 대장에게 흠뻑 빠져 살았던 어린날의 내 모습을 오랜만에 만났다. 어느덧 대장과 함께한 세월도 30년을 바라보며 가고 있다. 대장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말하고 싶다.
대장의 오늘은 행복한가요? 8집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그걸 내는 게 지금 대장에게 행복하지 않다거나 현실적으로 무리가 되는 일이라면 굳이 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대장이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무대에서 당당하게, 행복하게 노래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만 한다면, 그렇게만 바라고 있을게요. 있죠. 살다 보니까 기다림에도 내공과 깊이가 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맹목적으로 '다음 앨범 빨리 안 내놔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하면서 애처럼 보채기만 했는데, 어른이 되어 가면서 그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저도 나이를 먹어 가면서 기다림의 밀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걸 느껴요. 대장이 '이때다' 싶을 때가 언젠가 오겠죠? 그날을, 기다리지 않는 척하며 기다리고 있을게요.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도, 그대라면 기꺼이 감수할게요. 부디 건강하기만 해 줘요. 보고 싶습니다. 나의 대장. 내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