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친 아이, 그 슬픈 초상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내 친구 중호가 어느 날 후배 하나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싹싹하고 괜찮은 애"라며 중학교 3학년 후배를 데려왔는데, 그 아이가 바로 상철이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었지만, 만난 첫인상은 참 반듯했다.
상철이를 처음 만난 곳은 그의 집이었다. 상철이는 그곳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자취를 시작한 이유를 물어보니, 어린 시절 할머니와 살다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친척 집을 전전하다 결국 혼자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부터 자취를 시작했다니,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상철이는 특유의 싹싹함으로 사람들을 잘 따랐다. "형님, 필요한 거 없습니까? 제가 사 오겠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특히 나와는 유독 친했다. 중호보다도 나를 더 의지하며 연락을 자주 해왔다. 밥이 떨어지면 내가 쌀과 반찬을 챙겨주곤 했고, 음식도 자주 사주며 자연스럽게 친한 형동생 사이가 되었다.
상철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중학교 2학년 여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둘은 상철이의 자취방에서 함께 동거했다. 사실, 여자친구와 동거 이전까지 상철이 자취방은 우리 친구들이 모이던 아지트였다. 학교와 가정을 벗어나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 하지만 상철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후, 자연스럽게 발길이 뜸해졌다.
시간이 지나며 연락도 뜸해졌다. 그렇게 거의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상철이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라 반가운 마음에 받았지만, 상철이의 목소리는 떨리고 불안에 가득 차 있었다. "형님... 저 사람을 죽였어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자세한 건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답뿐이었다. 나는 곧바로 중호와 다른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30분이 지나도록 상철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중 상철이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상철이 잡혀갔어요. 지금 경찰서에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경찰서로 향했다. 도착하니 상철이의 어머니와 그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상철이가 같이 동거하던 여자친구를 칼로 여러 번 찔러 죽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상철이가 정말 그런 짓을 했는지, 왜 그랬는지 물었지만, 수사 중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상철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경찰은 오히려 나에게 상철이와의 통화 내용을 물었다. 나는 상철이가 갑자기 전화해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고,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상철이도 만나지 못한 채 경찰서를 나왔다.
경찰서 앞 식당에서 상철이의 어머니, 상철이의 친구, 그리고 내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곳에서 상철이의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상철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냉담했다. 어릴 때부터 말썽을 많이 피우고 소년원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 아들을 "인간쓰레기", "말종"이라 부르며 비하했다. 자식을 이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있다니 충격적이었다.
상철이의 어머니는 외모가 화려했다. 얼굴에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었고, 술집을 운영하는 것 같았다. 식사 중에도 계속 담배를 피워대며 전화를 받느라 들락날락했다. 내가 보아온 어머니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며칠 후, 경찰의 조사 기록이 나왔고 상철이의 어머니가 그것을 나에게 공유해 주었다. 그제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상철이와 그 중학교 2학년 여자친구가 동거하던 중, 여자친구가 임신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둘은 큰 싸움을 벌였다. 상철이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지만, 여자친구는 낳아서 키우겠다고 고집했다. 결국 상철이는 격분해 여자친구를 칼로 찔러 죽인 것이었다. 여자의 몸에는 20군데가 넘는 칼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상철이의 사건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상철이 어머니를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때는 내가 스무 살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공장에서 일하며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아저씨들과 술을 마신 뒤, 기분이 올라 2차로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노래방은 어둑하고 번쩍이는 불빛 사이로 주황빛 조명이 간간이 비추는 공간이었다. 술기운에 잔을 기울이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바로 상철이 어머니였다. 처음엔 나도, 그녀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알아본 순간, 서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도 모르게 당황스러웠다. 상철이의 어머니와 이런 곳에서 다시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눈을 피하며 자리에서 슬그머니 물러나려는 듯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시선은 마주쳤고, 나는 미처 피할 타이밍을 놓쳤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순간, 그녀가 마치 무대 위에서 내려온 배우처럼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오랜만이네요."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잔을 채우고 술을 단숨에 털어 넣더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 사이로 피어오르는 침묵은 무거웠다. 그녀의 얼굴은 술기운에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 눈빛은 어딘가 비어 있었다.
"상철이, 잘 지내나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잠시 침묵했다. 긴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그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잘 지내긴... 그 아이는 이제 끝났어요. 감옥에서 평생 살아야지. 잘 살아보겠다고 애써봤지만, 결국 이렇게 됐네요."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상철이의 어두운 과거가 떠올랐다. 그 아이가 겪어온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결국 저지른 비극적인 선택까지.
그녀는 담배를 다시 입에 물며, 흐릿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알잖아. 그 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는 아이가 어떻게 혼자 버티겠어. 근데 나도...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작았지만, 그 울림은 깊었다. 마치 깊은 우물 속에서 메아리치는 소리처럼 내 가슴을 울렸다.
그날 밤, 나는 노래방을 나서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죄책감, 안타까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허무함. 상철이가 남긴 상처는 단지 그 아이의 인생에만 남은 것이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도 깊은 흔적을 남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