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roit 디트로이트,
영화 로보캅과 트랜스포머의 배경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공업 도시.
Ford 포드, Carhartt 칼하트,
그리고 Eminem 에미넴의 고향.
3월 말에도 눈이 펑펑 오는데, 어쩔 땐 2월에 최고 기온이 20도로 반팔을 입고 피크닉을 하기도 하는 예측불허의 날씨를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예전부터 이런 짤들이 돌 정도로 디트로이트의 이미지는 최악 중의 최악. 치안에 대한 평가로는 거의 볼티모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으니...
내가 교환학생 면접을 보던 날, 미국 교수님 두 분께서 나를 보고 웃으시며 “디트로이트에 갈 마음의 준비는 됐니?“ 라고 물으셨었다. 그만큼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기피하는 동네구나, 싶어 도착하기 전까지는 많이 겁먹었었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 글들을 보면 디트로이트에는 KFC에 방탄유리 설치가 되어 있고, 새해 기념으로 하늘로 총을 쏘고, 시내를 돌아다니려면 총 맞고 칼 맞을 준비는 해야 한다. 는 글들이 난무하던데, 내가 있는 2024년의 디트로이트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단언컨대 절대로 그 정도의 나쁜 수준은 아니다.
허나 디트로이트는 82%의 압도적인 흑인 인구 비율을 가지고 있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흑인이라는 인종과 범죄율의 상관관계를 유의미하게 보는 추세이며 실제로 그런 부분도 있으니 부정할 수는 없다.
내 미국 룸메이트는 흑인인데, 백인에게 밀려난 흑인 노동계층이 거주하는 곳이 디트로이트이고 그건 자신도 흑인으로써 마음 아픈 역사이지만 자기 가족은 돈을 열심히 모아서 조금 더 “White" ish한 동네로 건너갔다고 한다.
지금 내 위치로 표시된 곳이 디트로이트 중심부-다운타운이고, 그 위쪽 동네가 소위 White-ish 한 동네. 트로이, 스털링 하이츠 등. 여긴 한인도 꽤 있다.
여기서 차로 40분 정도 가면 Ann Arbor 앤아버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미시간 내 한인이 아주 많이 사는 곳이고, 미시간 주립대학교가 위치한 곳이다.
미국을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이라면 아시다시피 미국은 어느 주, 어느 도시를 가든 안전한 구역과 위험한 구역이 나뉘어 있고 그 경계가 멀지 않다. 예를 들어 LA 다운타운에서도, 시끌벅적한 곳에서 단 두세블럭 정도만 지나면 으스스한 곳이 나온다.
디트로이트도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학교 근처가 가장 안전하고 다운타운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학교 경계에서 동쪽이나 서쪽으로 2블럭 정도만 가면 위험하다. 대체로 그런 곳들은 발을 들이게 되면 본능이 먼저 반응해 등털이 쭈삣 서곤 한다.
꼭 시카고와 비슷한 느낌인 디트로이트 다운타운. 낮에 다니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운타운에서 학교까지는 도보로 30분 정도의 직선거리인데, 솔직히 밤 10시에 걸어다녀도 별로 위험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동/서로 벗어나는 건 금물.
지금까지 학교 내에서 해프닝이 일어난 건 2번.
첫 번째는 학교 기숙사에 불이 난 사건. 한창 낮잠을 자던 차에 화재 경보가 울려 모든 기숙사생이 계단으로 대피하고, 밖에 나가보니 벌써 경찰들이 도착해 무장하고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미국이 경찰이나 119 도착은 정말 빠른 듯.)
모든 기숙사생들이 거의 4~5시간을 난민처럼 밖에서 앉아있었는데, 다시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냄새가 확 나는 걸 보고 모두가 이게 실제 화재였음을 알게 됐다는...(원인은 방에 피워둔 캔들이었다고 함.)
또 하나는 다른 기숙사생 한 명의 실종 사건인데, 며칠간 학교 메일로 알람도 오고 학교 홈페이지에도 메인으로 신상정보를 띄워 막 찾고 그랬는데 잘 마무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으시시하네.
그 외에는 한 번 학교 메일로 특정 인물의 인상착의나 신상정보를 알려주면서, 보이면 신고하거나 자리를 피하라고 한 적이 있다. 듣자 하니 학교 근처 식당의 팁 통을 훔쳐간 남자에 대한 경고 메일이었다.
또 다른 일로는 새벽 한밤중에 아동 실종 신고 알람이 울린 적이 있는데, 3살 배기 흑인 여자 아이가 도난 차량에 납치되어 있다는 무시무시한 알람이었다.
룸메의 말로는 여기서도 흔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사실 디트로이트의 안전 지역들이야 내 교환 학생 어드바이저가 26년간 큰 사고를 본 적이 없다고 했을 만큼 안전한 곳이다. 경찰도 항상 학교 안팎으로 순찰을 돌기도 하고.
하지만 디트로이트 뉴스를 가끔 들어가 읽다 보면 이렇게 우범지역에서의 범죄는 어디에서나 그렇지만 여전히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고, 방심하지 않고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미국에 사는 이상, 여기는 한국이나 일본, 싱가포르가 아니기 때문에 밤에는 어디든지 긴장하면서 다니는 게 맞다.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의 동네는 아니고, 시카고와 비슷한 그런 사람 사는 동네라는 것이다. (안 좋은 얘기 다 해놓고 급 훈훈한 마무리를 하려는 것 같지만...) 2015년 이후에는 메이저 브랜드도 입점을 많이 했고 그 이후로 굉장히 많이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에는 이 도시에 사는 백인들을 죄다 볼 수 있다는 농담을 우리끼리 하기도 하는데, 디트로이트는 특히 하키 팀이 잘하기도 하고 하키라는 종목이 인기가 많아서 경기 날이면 다운타운이 북적거린다. 사진은 피아니스트 유자왕이 온다고 해서 보러 간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장. 전부 백인 아니면 아시아인이었다.
인터넷에서 디트로이트 여행하기가 무서워서 차 타고 한 바퀴 쭉 둘러보기만 하고 왔다는 글을 보아서 쓰는데, 다운타운은 밤 10시까지 맘 놓고 구경하셔도 괜찮으니 점심에 Detroit vs Everybody(디트로이트 의류 브랜드), 칼하트 본점, 에미넴의 Mom's
spaghetti를 구경하고 저녁에는 블루스 바나 펍을 가는 코스를 추천드린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디트로이트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캐나다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도시라 당일치기 캐나다 윈저 여행을 가도 좋다.
여튼 디트로이트가 미국 여행에서 꼭 가야 하는 도시다! 이런 건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한 번쯤 둘러볼 만은 한 거친 회색 야수의 매력이 있는 도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