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섬
오늘은 아주아주 멀리 떠나는 날이다. 인버네스에서 3시간 정도 대서양 쪽으로 달리면 나오는 'The Isle of Skye(스카이 섬)'에 위치한 탈리스커 증류소 투어를 하고, 스카이 섬 투어도 할 예정이다. 스카이 섬은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스코틀랜드 트레킹족들이나 세계 여행자들에게는 이미 많이 알려진 아름다운 섬이라고 해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자연경관은 장소마다 정말 느낌이 다르고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스카이 섬을 가는 길은 더더욱 그러했다. 광활한 자연, 아름다운 호수들, 멀리 보이는 스카이 섬, 알록달록 귀여운 항구 도시.
그렇게 도착한 Talisker Distillery(탈리스커 증류소)는 왕좌의 게임 에디션에서 'House Greyjoy' 가문을 맡은 이유를 알 수 있는 포스를 뿜어내며 바다 절벽에서 바다 냄새를 잔뜩 안겨주며 우리를 맞이 했다. 여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오나 싶었는데, 스카이 섬 자체를 방문을 많이 해서인지, 사람들이 꽤 많았고, 디아지오 다른 증류소를 통틀어서도 방문자수가 손에 꼽히게 많다고 했다. 원래 스카이 섬에는 7개의 증류소가 있었지만 현재는 탈리스커만 남아있고, 최근에 1개 증류소가 오픈했다고 한다. 그래서 탈리스커에는 자랑스럽게 'From the oldest Distillery on the Isle of Skye, Made by the SEA'라고 쓰여 있다. 피트, 그리고 바다내음으로 유명한 탈리스커.
그렇지만 탈리스커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숙성고들이 증류소 내에 모두 있다고 생각했는데, 숙성고는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꽤 많았다.(다른 증류소에는 굳이 설명해주지 않았었는데, 탈리스커에서 처음 듣고 놀랬다.) 탈리스커도 그중 하나였고, 스카이 섬 숙성고는 잠시 거쳐 대부분 글래스고 근처 숙성고로 이동한다고 했다. 온전히 바다 내음을 모두 품지 못하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를 아쉬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번외로, 글렌드로냑 증류소를 갔을 때는, 가이드가 글렌드로냑은 모든 숙성고가 증류소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지형과 공간의 느낌이 담긴다고 표현을 해주었는데, 물론 창고 자체의 기술력이 워낙 좋아져서 '지역'의 중요성은 예전만큼 크지 않다고 하나, 글렌드로냑 방식에 더 감동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투어를 마치고, 탈리스커 Storm을 무한 시음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6000병 밖에 생산하지 않은 Distillery Exclusive Bottling을 기분 좋게 들고, 스카이 섬 투어를 시작하러 탈리스커 증류소를 출발했다.
가장 먼저 이름이 너무 매혹적인 'Fairy Pools'로 향했다. 정말 요정이 사는 공간을 보존하는 것처럼, 여기가 관광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람의 흔적이라곤 표지판뿐이었다. 안개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샘물 줄기를 따라 트래킹을 하다 보면 자연 그대로의 폭포와, 연못들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다. 어디까지가 트레킹의 끝인 건지, 저 안개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신비의 공간.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도 많이 보이고, 어린아이들도 많지만 쉽지 않은 코스이기도 했다. 1시간 정도 걸어가다가 배고픔에 지쳐서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스카이 섬의 작은 항구도시 포트리로 가서, 배를 채우곤 다시 관광지로 향했다. 최종 목적지는 '태초의 모습'을 지구에서 아직 가지고 있다고 하는 'Quiraing(퀴랑)'이었다. 퀴랑으로 가는 길에 'Old man of Storr'와 'Kilt Rock View Point'를 들렸다. 6천 만년의 나이를 먹은 우뚝 솟은 바위기둥과, 절벽에서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힘찬 폭포수와 망망대해의 조화도 멋졌지만, 퀴랑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꽤 유명한 관광지이고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곳이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위험한 곳도 종종 있었는데 어떤 안전장치도, 길 안내도 없었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로서는 생각보다 오래 트레킹을 할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지만, 어린아이들도 편한 복장으로 방문하는 곳이니 꼭 가보길 추천한다. 퀴랑까지 가는 도로도 매우 좁고 가파르고 정말 모든 길들이 최소한의 인간의 흔적만 남기려고 최선을 다한 것 같았다. 지구에 정말 이렇게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 있을지, 또 이렇게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자연의 모습을 한 공간이 있을까 싶어서 계속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블로그나, 구글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광경과는 전혀 감동의 정도가 다르다. 좁은 길, 절벽, 발아래 펼쳐지는 이질적 장관, 햇빛이 드리우는 퀴랑의 모습은 다시 도전하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