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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Oct 15. 2020

고기 덜 먹기

적어도 내가 알아주니까 그걸로 되었다

회 3점 정도는 한 번에 집어 들고 맛을 음미하던 근 20년간의 나라면 최소 3일에 한 번은 신선한 회를 찾아다녔을 테고,

냉장고 한가득 갖가지 고기를 채워두던 2년 전의 나였으면 제주에 오자마자 근고기 쯤은 혼자 가볍게 해치웠을 테지만


작년 초부터인가는 대놓고 고기고기한 음식도, 대놓고 살아있는 음식도 입에 대고 싶지가 않다.


육고기 들어간 것 절대 안 먹어!는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 찾아서 먹지는 않고 있다.

(여전히 가끔은 길티플레저 순대와 만두와 해장국과 버거를 먹는다. 길티플레저 참 많기도 하다. 그래도 점점 줄이는 중)


선홍빛의 육고기 덩어리들이 조명을 받으며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게 힘이 들고

팔딱거리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물고기에 아무렇지 않게 칼을 대고 살을 설컹 설컹 썰어내는 것이 끔찍하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갖고 있는 탐욕의 생생한 민낯을 보는 기분.



언젠가 육고기로 냉장고를 채우고, 생각날 때마다 회를 찾는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일단 지금은, 기왕이면 채식지향의 삶을 유지하고 싶다.


나 하나 고기 좀 적게 먹었다고 세상이 뭐 그리 변할까 싶지만,

적어도 '내'가 알아주니까, '내 마음'이 조금은 덜 불편하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

내 식성 변화를 보며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자신하며 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 지금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물론 전에는 저랬고 지금은 이렇다고 해서 전에 저랬던 사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이런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고, 어쩌면 지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는 것 이니

'나 지금은 이런 사람이야!' 와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결국 같은 말인가?

@_@


시간이 많아지니 공상이 늘어간다.


...

그나저나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학교, 기관, 기업 식단에서 비건 옵션을 당연하게 제공하게 될까.

10년 전에는 당연하지 않았던 일들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많은 것 처럼 언젠가 오겠지 그런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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