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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Oct 25. 2020

소리

무엇이 더 거슬리는 소리일까


# 1

윗집은 자주 싸운다.

조금 전에도 문 소리가 쿵 하고 나더니 곧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화가 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다시 또 문 소리가 쿵 하고 나고는 복도를 따라 쾅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났다.


지난주 어느 날에는 새벽 두 시에 화가 가득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고요한 새벽이라 그런지 천천히 조곤조곤 대꾸하는 여자 목소리도 들렸다. 다시 잠들었다가 다섯 시에 일어났을 때에도 윗집 남자는 여전히 화를 쏟아내고 있었다.(저들도 잠들었다가 일어나 다시 싸운 걸 수도 있다)


주로   이상을 머무는 숙박객들이 있고, 최소 예약 단위가 보름인 이곳에서 저들은  열심히도 싸운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여행을 왔을 텐데  저렇게들 싸우는 거지. 정확히는, 상대방에게 저렇게까지 자주 화를 분출하는 남자는 대체 뭐지.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다시 또 문 소리가 쿵 하고 나더니 여전히 화가 가득 찬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 베란다로 나가 목을 길게 빼 보지만 세찬 바람 소리에 섞여 잘 들리지 않는다.


둘이 가족이든 혈연이든 연인이든, 그냥 각자 인생을 살면 좋겠다.

각자 행복하게.


#2

요즘 매일 새벽 싱잉볼 영상을 틀어두고 명상을 하고 있다. 정말 명상이 되는 건지 잡념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쓰는 시간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습 중이다.


지난주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숨이 가빠 오고 현기증이 몰려오는 느낌이라 급히 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시작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다행히 증세가 좀 가라앉는 느낌이었는데 싱잉볼 소리만 고요하게 울리는 와중에 느닷없이 비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바퀴벌레일 거라 직감했다.

곧바로 불을 켜고 압살용 무기인 실내용 슬리퍼를 들고 쓰레기봉투를 톡 건드렸더니 까만 녀석이 호다닥 욕실 미닫이문 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압살에 실패한 다음날 인터넷에서 다들 극찬하는 맥스포스를 사다가 촘촘히 트랩을 설치했다.


엊그제 저녁, 조용한 재즈를 틀어두고 책을 읽는데 비닐 소리가 또 났다.

침대에서 튀어 올라 무기를 들고 가보았는데 쓰레기봉투 안에 더듬이를 꾸무럭 꾸무럭 움직이며 죽어가는 바퀴벌레가 있었다.


녀석 참. 죽으면서도 굳이 소리를 내어 알려주다니. 내 방에 먹을 거라고는 독약밖에 없는데 왜 들어왔나.

밖에서 자유롭게 살지.


...


내가 고요하게 시간을 보낼 때면 바퀴벌레 소리든 윗집 남자 소리든 모든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둘 중에 뭐가 더 거슬리는 소리일까.


당연히 윗집 남자 소리.


바퀴벌레는 맥스포스가 해결해 줄 테지만 윗집은 내가 해결할 수가 없다.

혹시나 여자가 맞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해지는 마음도 너무 불편하다.


윗집 남자는 본인이 바퀴벌레보다 더 거슬리는 존재라는 걸 알 턱이 없겠지만

적어도 내게 지금은, 그렇다.


바퀴도 사람도 다들 각자 행복하게, 남에게 거슬리는 소리 내지 않으며 살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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