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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Oct 26. 2020

거지존과 참을성

나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지금 내 머리는 완벽한 거지존.

숏컷도 단발도 아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

앞머리는 귀 뒤로 넘어갈 듯 말 듯 짧은데 뒷머리는 넉넉하게 묶이는 엉망진창 스타일.



서울이었다면 진작에 원장님께 달려갔을 테지만 제주에 있는 지금은 선택권이 없다. 여기서는  챙겨 입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라 매일 교복-레깅스 맨투맨 쪼리 차림이고 화장은커녕 썬블럭마저 자주 잊었더니 피부는 시컴둥둥하게 그을렸다. 거기에 제멋대로 뻗친 거지존 머리까지 더하니 저세상 촌스러움이다.



조만간 병원도 들르고 외투도 챙겨올 겸 서울에 갈 텐데 그때까지는 꽁지머리를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싶은 욕망을 잘 참아봐야겠다.



'그만큼 쉬었으면 이제는 경제활동이든 미래 도모든 뭐든 해야 하지 않겠냐 인간아' 하고 의식이 끈덕지게 던지는 생각도 참아봐야지. 애초에 가지고 태어나지도 않은 끈기와 참을성을 평생 이상한 방향으로 발휘하느라 애썼지만 이제는 진짜 나를 위해 써봐야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아닌 '나를 위해 아무것도 안'하는 상태를 잘 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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