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난다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2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오로지 한아를 만나기 위해 지구에 온 외계인과 초록색 돌덩어리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한아의 사랑 이야기.
알싸하게 통증이 남아있는 배에는 찜질팩을 올리고 유독 덥게 느껴지는 다리에는 선풍기 바람을 고정시켜 둔 채 한 번에 읽어 내렸다. 징검다리 휴일에 써야만 했던 아주 찜찜한 보건휴가이지만, 이 책이 남았으니 그걸로 되었다.
"강한 집단 무의식 때문에 경민이 한아를 사랑하면, 그 별 전체가 한아를 사랑한다고 했다. 한아 역시 어째선지 우주를 건너오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표면적이고 의식적인 것은 각자의 것이었지만, 더 깊은 곳은 강하게 묶여 있는 별이었다"
달달한 듯 담담한 사랑이야기도, 스토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환경이야기도 재밌지만 '무의식'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자꾸 눈길이 갔다.
무의식의 세계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심지어 나와 동갑인 작가가 스물여섯 살 일 때 이미 집단 무의식, 꿈, 선험적 경험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니. 놀랍다. 나는 지금에야 이런 세계에 대해 겨우 알아가고 있는데! 몇 년만 먼저 알았어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너비와 깊이가 지금과는 차원이 달랐을 텐데.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이제라도 알았으니 예전 같으면 그저 읽고 지나갔을 문장에도 눈길이 한 번 더 머물고 생각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한아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특히 자주 그곳을 바라봤는데, 놀랍게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광합성인들이 보내주는 것은 아닐까, 한아는 다정한 생각을 했다"
잠이 들 때마다 제발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주는 글이다.
지구에서 유일한 존재, 지구에서 한아뿐이라고.
"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랑은 항상성을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랄라하고 계속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