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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Jun 03. 2020

그런 밤이 있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문학동네

"신의 현존에는 분명 그가 말한 위안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책을 읽기 전 에필로그나 해설집이 있다면 먼저 훑는다. 내 나름의 간을 보는 것이다. 간을 보고 덮었어야 하는데. 집에서 읽었어야 하는데. 카페에서 책장을 넘길 때 마다 눈물을 참아내느라 애를 썼다. 그만 덮고 집에서 마음껏 울며 읽어도 되는데 덮을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눈물을 참아내 먹먹해진 코와 욱씬거리는 입술을 마스크로 가린채 오도카니 앉아서 다 읽어냈다.



내게 직접적으로 일어난 일들은 아니지만 실은 다 겪었고 느꼈던 것들이 장 마다 켜켜이 쌓여 있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작가가 풀어내는 풍경들에 마음이 아리다.


"나는 내가 효진이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오래도록 생각해왔다. 그애가 처한 상황을 보며 그런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고, 그애가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애보다 나은 처지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하기를 원했다"



폭력을 당연시 여기는 어른들, 너는 나서지 말라는 어른들, 부당한 줄 알지만 애써서 눈 감아야 했던 아이들이 나온다.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닌 인간들이 어른이라는 이유로 나이 어린 이에게 행하는 폭력에 화가 난다. 말로 하는 폭력, 표정으로 하는 폭력, 제스처로 하는 폭력, 기억 속 어딘가에 뿌리 깊게 새겨져 있는 폭력들.



문득 문득 그 시간들이 떠오를 때면 나는 아 미친인간들 이었어. 하며 아 그 때 왜 따지지 못했을까- 하고 결국 나를 찌른다. 상처인 줄도 모르고, 내가 나에게 행하는 폭력인 줄도 모르고 평생을 그렇게 찔러왔다.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고등학생 공무는 천리안 동호회에 그렇게 썼었다. 그 문장은 며칠이고 내 안에서 구르면서 마음에 상처를 냈다. 나는 늘 이해하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 정도 일에 연연하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겪는 일들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들은 다 이러고 살아, 너만 겪는 일인 것처럼 유난 부리지 마, 스스로를 다그쳤다"



콘크리트로 단단히 싸매놓은 것 같은 과거의 여러 시점들과 마주한다. 내가 이제야 마주한 그 때의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그저 울기만 하는 지금의 나도, 다 괜찮다고 보듬어 안아주고 싶다.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자.



"무슨 기분이냐고? 그게 뭐가 중요하지. 그렇게 대답하고는 사실 자신이 자기 감정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은에게서 문자가 왔다.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 언니. 울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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