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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사교육에 대하여

배움의 지향점을 생각하며

by 유니크

오늘은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스위스 사교육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독일어권 스위스지역에서는 배우는 장소에 모두 Schule(직역하면 학교, 교육기관)라는 이름을 붙인다. 어학원은 Sprachschule(언어학교), 댄스학원은 Tanzschule(댄스학교), 태권도학원은 Taekwondoschule(태권도학교)로 부른다.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처럼 학교와 학원, 공교육과 사교육을 명확히 나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 ‘배운다는 것’ 자체에 좀 더 의미를 두는 것 같다.


교과 관련 과외활동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 혹은 옆 집 사는 친구들이 언어, 수학 등 교과에 관련된 개인 교습을 전혀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분위기는 아니다. 스위스 공교육에서는 담임 선생님의 평가가 매우 중요하기에 학년에 맞는 일정 수준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따라서 일부 교과목에 대해 부족하다면 개인교습을 하거나 집에서 학습을 시키는 경우는 꽤 볼 수 있다. (부모가 교육에 관심이 있는 경우라면...)


인터내셔널 스쿨의 경우는 일반 학교와 달리 자체 기준을 가져가기 때문에 평가나 피드백 방식이 보다 유연한 편이다. 따라서 Primary school의 경우, 아이들이 수학 같은 교과목에 집중하기보다는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 등 언어를 배우는데 과외 활동하는 경우를 꽤 볼 수 있다. (제가 사는 지역은 한국인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 expat이 많은 지역은 상황이 다를 수 있어요.)


교과 이외 과외활동

또래 친구들은 스포츠, 예술, 취미와 관련된 사교육을 적어도 하나 이상씩은 모두 하고 있다. 어떤 친구는 아이스 스케이팅을 전문적으로 배우는가 하면 다른 친구는 축구를, 또 다른 친구는 플라멩코를 방과 후에 배우느라 모두가 바쁘다.


딸아이는 주중에는 태권도, 주말에는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여기에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승급’에 관련된 것이다. 아이는 스위스에 오기 전에도 태권도장을 다녔는데 승급심사를 할 때마다 매번 흰띠, 흰노띠, 노란띠, 노초띠, 초록띠를 받아왔다. 도장에서 친구들과 줄넘기도 하고, 체조도 하고, 가끔 벼룩시장도 하고, 물론 태권도도 배우고 즐기면서 다녔는데 여기에서는 심사할 때 일정 동작이 완벽하게 나오지 않으면 승급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에서 초록띠를 받았던 딸은 아직 흰띠에 머무르고 있다.


수영도 마찬가지인데, 단계별로 명확한 프로토콜이 있어 일정 수준에 해당하는 동작이나 자세를 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예를 들면 가장 초보단계에서는 물에 자유롭게 뛰어들기, 물속에 얼굴 담그기, 물속에서 숨 내쉬기 등을 수행해야 그다음 단계 반으로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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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원을 오래 다녔다고 해서 정(情) 때문에 승급을 해주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좀 놀랐다. 누구든지 일정 기준에 도달해야만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 승급이 안된다면 아이들이 실망은 하지만, 받아들일 줄 알고, 또 엄청나게 좌절하지는 않는 것 같다. 반대로 성취를 하면 그만큼 크게 기뻐하는 부분도 있다.



한국 아이들이 자라나는 교육환경이 치열하다는 것을 이미 전 세계사람들도 아는 것인지 여기에서 만난 일부 유럽인들이 아시아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다소 놀란 적이 있다. 인도,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의 교육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지역의 아이들은 동료 간의 협력, 팀워크와 네트워크보다는 '경쟁'에 집중한다는 것을 내 면전에 대놓고 이야기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경쟁을 운운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편견이 깔려 있다는 것 자체가 씁쓸했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AI가 대부분 인간활동을 대체하는 현시점에서 사람 간의 관계와 에너지를 잘 이끌 줄 아는 역량, 다른 이의 감정과 상태를 잘 아는 리더가 보다 영향력 갖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타인과의 상호작용, 인지적 영역 이외 심동적, 정의적 영역을 배울 수 있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형성해 놓은 에너지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이끌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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