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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집밥과 외식

하루종일 먹는 것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by 유니크

2023년 11월, 스위스라는 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 그때만 해도 삶에서 먹는 것이 이렇게 많은 부분을 차지할 줄 미처 몰랐다. 나는 원래 아침을 잘 안 먹는 사람이었고, 회사에 출근하면 공용공간에 쌓여 있는 샌드위치 중 하나를 집어와 내 자리에 가져다 놓고도 퇴근할 때까지 먹지 못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남편의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그때 버렸던 샌드위치들이 이제야 나에게 복수하는구나 싶다. 그만큼 이곳은 남이 해준 음식이 귀하다.


한국에서 요식업을 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음식에 대한 R&D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특제소스가 있거나, 나만의 특별한 조리방법이 있거나, 나만의 식재료 공급망이 있거나… 우리 집 주변에 몇 없는 음식점들은 일인당 기본 25-30Fr. (한화로 대략 4만 원-4만 5천 원)은 예상하고 방문해야 하는데, 그것까진 수용할 수 있다 쳐도 막상 한입 먹어보면 연구가 전혀 안된 음식이 나온다. 요리를 배워본 적이 있는 분이 만드신 건가 의구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유튜브를 보고 만든 요리보다 연구가 안된 음식이라면 외식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 말은 즉, 집에서 누군가는 하루종일 삼시 세끼를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좋은 점은 한국에서 전혀 사용해보지 않았던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는 재미가 있다. 아보카도, 라임, 썬드라이 토마토, 바질페스토, 프레시갈릭(생마늘), 월계수잎, 타임, 파슬리, 생바질, 생로즈메리 등 온갖 허브들… 한국에서 샀다면 한번 쓰고 다 버릴 재료들인데 유튜브에서는 꼭 몇 개씩 필요하단다. 이러한 이국적인 재료들이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어 요리할 맛이 난다.

살다 보니 우리 가족에게도 ‘전략적 외식’이라는 게 생겼는데 평소에 그저 그런 식당에서 외식하는 일을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최소화하고, 그 돈을 아껴 정말 특별한 날에는 매우 괜찮은 식당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방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괜찮은 식당이란, 요리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하신 분들이 해 주신 음식들, 예를 들어, 미슐랭 스타 혹은 빕구르망 레스토랑이나 파인 다이닝만큼 자부심을 가진 음식점들을 방문한다. 가격은 한국 유명 다이닝만큼 비싸지만, 요리에 정성이 느껴질 때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위스에 살면서 이곳의 음식과 문화를 제대로 경험할 기회도 여유도 얻기 힘들다.

특별한 날 방문했던 파인 다이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컨디션이 매우 안 좋거나 부득이하게 외식을 해야 할 상황에는 맥도날드를 가는 편이다. 가격은 그리 착하지 않지만, 표준화된 음식이 예상되는 시간 내에 제공되는 곳이어서 실패 확률이 가장 낮다. 또한 가격이 비싼 만큼 청결, 서비스 등 매장관리가 한국보다 잘되어 있고, 테이블마다 생화 꽃병을 놓아둔 곳도 볼 수 있다.

튤립 생화를 놓아둔 맥도날드 매장

오늘도 없는 실력으로 열심히 만든 나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또다시 요리 유튜브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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