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터내셔널데이와 일상

현실과 이상, 그 사이에서

by 유니크

아이의 앞 윗니가 흔들리더니 이내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지켜볼 수만 없어 남편에게 아이의 이를 좀 빼 달라고 했건만 당기려고 시늉만 해도 아프다는 딸내미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와 도저히 못하겠단다. 결국 아이에게 이를 잠깐 확인하겠다고 얘기하고 내가 쏙 빼주었다.

KakaoTalk_20250228_093244682_02.jpg 앞니 빠지면 말 안 듣는 다던데...

치위생사 친구가 알려준 방법인데 아이 유치가 흔들릴 때는 심하게 덜렁거릴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1. 거즈로 이의 뿌리 부분을 바짝 잡고,

2. 이를 바깥 방향으로

3. 스티커를 떼어내듯이 강하게 뜯어 내준다.

그렇게 아이는 앞니가 빠진 채로 학교에서 일 년에 한 번하는 행사, 인터내셔널데이에 참석했다.




행사일 한 달 전부터 자원봉사를 요청한다는 알림이 계속 왔다. 각 나라의 음식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학부모들의 지원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는 학교에 단 한 명뿐인 한국 학생인데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남편과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김밥은 도저히 자신 없어서 한국식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그렇게 아침 8시 30분까지 음식을 학교로 가져다주었다.

KakaoTalk_20250228_093401916.jpg 유부초밥과 함께 준비한 한국 전통 약과

살림을 보다 잘하는 엄마였다면 더 다양한 음식을 소개해줄 수 있었을 텐데 이럴 때면 내 요리실력이 너무나 아쉽다. 한국에 있었다면 새벽배송으로 태극기가 달려있는 이쑤시개와 데코레이션 소품을 주문했을 텐데 기껏 해야 A4용지에 컬러 출력으로 잘라 붙인 태극기가 내심 아쉬웠다. 학생수가 많은 미국, 독일, 스위스 부스는 화려한 데코레이션과 함께 풍성한 음식을 자랑했다. 이럴 때면 한국인이 없는 현실이 조금 서럽기도 하지만, 최근 독일에 이민 중인 한국인의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몇 년 뒤에는 스위스 다수 지역에도 한국인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길 바란다. 그동안 나는 요리실력을 좀 더 키워 내년에는 한국 부스를 보다 멋지게 준비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KakaoTalk_20250228_093459895.jpg 한복 입고 등교한 딸아이




최근 소일거리로 아침마다 옆 동 사는 아이를 딸과 함께 등교시켜 주고 있다. 아빠는 인도 사람, 엄마는 알바니아 사람인데 아이는 내 딸보다 한 살 어리고, 같은 학교 유치원에 재학 중이다. 그 가정도 타지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이의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의 삶이 그립지 않냐고….’

의외로 나는 그립지 않다고 대답했다. 누구보다 한국의 삶을 포기하고 스위스에서 사는 것을 걱정하고 꺼려했던 나인데 그 대답에 나도 놀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디에 살든 지금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미련도 그리움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만일 내가 여기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스위스 생활에 대한 어떠한 미련도 아쉬움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유튜브나 여행방송을 보면 외국에서의 삶이 무언가 새롭고 즐겁고 설렘이 있을 것만 같은 판타지가 많이 담겨있다. 주재원 와이프들의 삶은 여유롭고, 스위스라는 곳은 밖에 앉아 공기만 마셔도 행복할 것 같은 동화 같은 영상들이 기대를 증폭시킨다.


내가 느끼는 실상은 한국의 삶보다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다양한 일을 해내야 하며, 주저함보다는 도전에 많이 열려있어야 된다. 사람마다 국가마다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의 좋았던 삶, 편리했던 삶, 나에게 모두가 친절했던 삶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다만 나는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지금의 이 소중한 시간과 나에게 전혀 관심 없는 타인들의 무심함이 좀 더 편한 상태이다.


하루종일 강도 높은 업무에 치여 매일매일 고군분투하는 남편의 몫까지 대신해 새로운 것을 가능한 많이 시도해 보고, 호기심을 가져보고, 지속적으로 배우려는 의지가 내게는 스위스에서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자존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자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겨울방학 이야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