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녀를 위해 해외이주를 고려하는 당신이라면

내가 스위스에 오기 전 미리 생각해 봤다면...

by 유니크

한국에서 맞벌이였던 우리 부부에게 내 소득과 커리어를 모두 포기하고 선택한 스위스 이주는 삶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여기 생활에 적응하면서 한국에서 기대했던 바와 차이가 있는 점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자녀가 스위스에 살면서 영어와 독일어만 잘해도 충분히 이득이지 않을까?


한국의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초등학교 단계에서 부모들은 자녀를 위한 각자의 선택을 한다. 누군가는 학군지로 이사를 가고, 누군가는 사립초등학교의 선택을 받고, 또 다른 누군가는 국제학교를 보내기도 한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우관계에도 신경을 쓰고, 학원을 세팅하고, 어느 부모 건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스위스에 살게 되면 학원과 숙제에 치이지 않으면서 영어와 독일어를 모두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 그리고 이 언어만 잘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국제학교를 내 아이가 다닐 수 있다면, 그러한 경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혹시나 학비가 너무 비싸 퍼블릭 스쿨을 보내게 된다면 새로운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겠지…’


스위스는 유럽권 중에서도 비영어권 국가다.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대다수의 스위스인들은 영어가 아닌 독일어, 그중에서도 스위스 독일어를 사용한다. (일부 칸톤에서는 프랑스어, 이태리어, 로망슈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한다.) 한국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한국어가 자연스레 먼저 나오는 것처럼 스위스인들도 자연스럽게 독일어가 먼저 나오는 것은 매한가지다. 예를 들어, 당신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엘리베이터 점검에 관한 공지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연히 한글로 게시할 것이고, 그 밑에 영어를 같이 써주는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곳 역시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독일어로 진행되고 영어는 고려사항에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만일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 영어를 써주면 정말 감사한 일인 것뿐이다.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내 아이가 퍼블릭 스쿨을 진학했을 때, 영어를 자연스럽게 엄청 잘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집에서 부모가 영어를 지속적으로 써주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배워왔던 영어도 까먹기 십상이다. 딸아이와 동일한 연령대로 비교한다면, 장담 건데 한국교육시스템에서 영어유치원을 나온 친구들이 이곳의 아이들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반면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는 딸아이의 경우, 압도적으로 독일어 구사하는 비율이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영어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 기대하는 것도 조금은 어렵다. 그렇다면 독일어를 잘하게 되느냐? 일례로 부모가 모두 영국인인 친구가 있는데, 한 살 때부터 국제학교 Daycare center, Kindergarten, 그리고 현재는 아이와 같은 반에 재학 중이다. 6년 넘게 학교를 다닌 그는 독일어를 겨우 알아듣는 정도이다. 독일어로 소통하는 친구들과 친해지기 어려우니 현재는 따로 과외를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 국제학교 학비보다 비싼 스위스 학비에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의 질을 너무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수 있다. 학교의 진도는 다소 많이 느리고, 1학년 친구들 중 영어를 제대로 읽고 쓸 줄 아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그만큼 스위스에 산다고 해서 단기간에 한국어, 영어, 독일어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완벽하게 잡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닌 듯하다. 자녀의 교육, 특히 영어 등 언어를 위해 이주를 고민하는 것이라면 스위스(유럽의 비영어국가)라는 곳은 덜 매력적인 선택지 일 수 있다.


한국의 7세 고시를 겪지 않은 아이, 그러나 다른 고시를 앞둔 아이


어느 나라던 할 수만 있다면 자녀가 사회 안에서 존경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회층으로 자라게 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스위스 안에서도 분명 암묵적인 지도층이 존재하고,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칸톤은 그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장벽이 한국만큼이나 높다고 느낀다. (본인의 노력과 의지대로 주어지는 기회의 빈도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외국에서 온 특히 외모가 아시안인 사람이 언어조차 완벽히 하지 못하다면 타인을 리드할 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그에 앞서 과연 여기에 살고 있는 다른 이들을 리드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언어습득이 빠르다고 하지만 3-4개 언어를 완벽하게 해낸다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이다. 이 시점에서 고민하는 것은 아이가 앞으로 공부해 나갈 주 언어(main language)가 영어인지, 독일어인지, 한국어인지에 따라 로드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미처 아이에게는 솔직히 말하지 못했지만 세상에는 노력으로 되지 않는 부분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It’s not fair.’를 매일 외치는 아이에게 마음 아프지만...)


아이는 한국나이로 6세에 이곳에 왔기에 친한 친구들이 모두 겪었다는 7세 고시를 의지와 관계없이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이것이 운이 좋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삶에는 항상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제가 언젠가는 있으므로…) 최근 국제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학원 테스트를 봤었는데 원장선생님은 아이의 부족한 면을 가감 없이 코멘트했고, 1 대 1 수업을 진행하고자 한다면 빨리 등록하란 말을 남긴 채 상담을 마무리했다. 상담종료 후, 알 수 없는 불안함, 씁쓸한 마음과 함께 ‘아… 이런 비슷한 것이 7세 고시였겠구나’ 싶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한국의 7세 고시와 학원 뺑뺑이는 외국에 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세대마다 트렌드와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속도가 지속적으로 빨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 세대에는 외국에 살았던 경험,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의사소통이 되는 언어 수준만으로도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책임질 수 있었다면 지금은 또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한다. 다음 글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내가 이곳으로 와서 얻을 수 있었던 점들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터내셔널데이와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