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지 않았지만 얻을 수 있었던...
한국에서는 미처 예상치 못했으나, 아이와 함께 스위스에 와서 발견한 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눈에 띄게 달라진 체력과 몸을 쓸 줄 아는 능력
한국에서 키즈카페(indoor playground)를 매우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그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노는 모습을 보며 나름 체력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기 와서 보니 이곳의 아이들은 한국 친구들과는 차원이 다른 거친(rough) 모습이 있다.
스위스 뿐 아니라 대부분 주변 유럽 국가의 놀이터에는 클라이밍과 정글짐, 집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몸을 사용할 줄 아는 이 지역 아이들은 자유자재로 매달리기와 짐내스틱(Gymnastics)을 통해 힘을 다룰 줄 안다.
딸아이도 처음에는 못하다가 지속적인 시도 끝에 이제는 여기 아이들처럼 정글짐에 기어올라가 3미터 바를 잡고 본인의 몸무게를 힘으로 지탱하며 내려온다. 난이도를 높여가며 자신의 몸을 다룰 줄 알게 되면서 아이들의 자신감과 도전의식이 커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몸과 마음, 정신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현실에서 다소 자유로워진 장래희망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닐 때 딸아이의 장래희망은 의사, 약사, 수의사였다. 주변 환경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미디어 혹은 부모님들, 가족분들의 직업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딸아이의 장래희망은 무엇일까?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는 ‘도그 워커(dog walker)’가 가장하고 싶단다. 동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아주아주 편하고 좋은 직업이라고 설명한다. 마음속으로는 ‘우리가 지금 이 어마어마한 학비를 내면서 바라는 바는 아니다.’라고 수십 번 외치지만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이가 독일어로 'Trog'라는 단어를 배워왔는데 동물 먹이를 담는 여물통(feeder)이라고 알려주었다. 1차 산업(농업, 축산업 등)의 비중이 높은 이곳 특성상 배우는 단어도 3차, 4차 산업이 발달된 지역에서는 들어보기 어려운 생경한 단어를 학교에서 배워온다.
미래에 사라지는 직업과 각광받는 직업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트렌드를 쫒기 위해 노력하다가 이러한 모습을 보면 시대에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래, 한 치 앞을 알기 어려운 시대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정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과정을 해결해 나가는 힘이 길러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저 아이가 겪어가는 과정을 혼자 해결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길러주고, 지지해 주고 같이 고민하고자 노력한다.
한국만큼 안전한 나라
내 고려사항에는 없었지만 운 좋게 얻을 수 있던 것은 바로 ‘안전’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한국만큼 안전한 나라가 없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
스위스는 한국만큼이나 안전한 나라이다. 아이들끼리 놀이터에서 놀아도 폭력이나 총기로부터 위협을 받는 일이 거의 없고, 차를 훔쳐가는 경우도 많지 않다. (얼마 전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차를 두 번이나 도난당했다고 한다. 육로를 통해 어디든 갈 수 있는 유럽, 중동국가의 특성상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여느 유럽국가에 비해 소매치기도 매우 적은 편이다. 한국만큼의 안전함을 보장받고 산다는 것은 해외 살이에서 많은 정서적 안정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다.
반면, 우리는 너무나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한국’이 다른 국가 사람들의 시선에는 또 그렇지만은 않다. 예전에 다녔던 독일계 회사는 CEO가 항상 독일인이었는데 한국에 발령되면 여행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상당한 금액의 위험수당을 별도로 받았다. 막상 한국에 발령받은 독일인들은 우리나라를 꽤나 좋아했고, 깨끗하고 편리하고 안전해서 나중에는 다른 나라로 가기 싫어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지금 같은 반 아이들 중에 시카고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한국은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여서 위험하다고 딸아이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총기의 위험과 휴전의 위험 중에 어떤 것이 더 삶에 가까이 있을까? 참 이럴 때는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해외 이주를 결심하는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전쟁으로부터 가족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는 생계유지를 위해, 또 누군가는 불안한 정치와 사회적 불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자녀의 교육과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맞물렸기에 선택했던 경우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학업적 요인(높은 질의 교육, 언어능력 향상 등)보다는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삶의 질 측면에서 어느 정도 충족해 주는 면이 있다. 반면, 남편이 감당해야 하는 일에서의 업무강도와 스트레스, 낯선 나라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생계 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내 역할이 결코 가볍고 쉽지는 않다.
우리 역시도 자녀 교육을 바라본다면 아이가 아직은 저학년이고 학업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시기여서 아직은 괜찮다고 느끼는 것이라 본다. 어디까지나 사람마다 느끼는 삶과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기에 본인의 삶에서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와 만족도 역시 다르다. 우리는 다양한 삶의 과정과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이 먼 곳까지 와서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