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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Dec 07. 2020

달리기와 신발에 미친 사람들

슈독 Shoe Dog

육상 선수 생활을 했던 필 나이트는 대학을 다니며 일본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 카메라가 독일 카메라를 앞지른 것과 같이 일본의 러닝화가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이것을 '미친 생각'이라 불렀다.


'미친 생각'을 실천하는 첫 단계로  아버지를 설득해 여행자금을 얻어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일본에 들려 오니쓰카라는 업체를 만나 미국 내 신발 판매 계약을 맺게 된다. (출판사에서 '빌린 50달러로 시작했다'라는 말은 오니쓰카에서 처음 샘플을 받기 위해 아버지에게 빌린 50달러를 의미한다)


"나는 백과사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을 싫어했다. 그나마 뮤추얼펀드는 좀 더 많이 팔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일도 싫었다. 그런데 신발을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킬로미터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달리기와 신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필 나이트는 사업을 해 나갔다.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 당시 정말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사후 기억 왜곡(예를 들면 '나도 스티브 잡스' 증후군 같은 것)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훌륭한 기업정신이다. 내가 나이키를 좋아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기업 정신을 갖추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블루리본(나이키의 전신)이 창업 당시부터 매년 두 배 이상씩 매출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두 가지. 하나는 스포츠와 신발에 미친 창업 멤버들이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추구한 운동화의 혁신이었다.


우선, 필 나이트는 육상 선수 시절에 맺은 인적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였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신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에 같은 운동선수 출신들 중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더 쉽게 어필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공동 창업자인 바우어만 코치는 이미 그 당시 미국 내에서 유명했으며 지역 내 다른 운동팀들에도 영향력이 높았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가 선수들의 신발에 관심이 많아 직접 개조하거나 개발하려는 노력을 했다. 본인의 의견을 반영하여 개발한 신발을 주변의 운동선수들이 사용하도록 로비를 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지역 사회에 엄청난 홍보가 되었다.


운동선수 생활을 실패하고 일상적인 Nine to Five의 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존슨은 열정적인 영업력으로 나이키 매장을 키워 나갔다. 그는 책 읽기와 편지 쓰기를 좋아했는데 고객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운동화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그의 매장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다 가는 성지와 같은 곳이 되었다.


 부상으로 휠체어에서 생활해야 했던 우델은 몸은 장애를 가졌지만 정신력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는 회사 내외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결사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게 된다.


필 나이트와 나이키의 기업 정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버트페이스(Buttface)라고 하는 일종의 워크숍이다. 이 자리에서는 누구나 발언할 수 있고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자리인데 격한 논쟁을 하면서도 왁자지껄하게 웃고 즐기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들이 이런 문화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주식 공모를 꺼려했던 사실을 통해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식 공모를 하면, 기업 문화가 바뀌게 되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고, 지배구조가 변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데 모두가 뜻을 같이했다.



나이키의 제품 혁신은 초기에는 바우어만 코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루디라고 하는 발명가가 '에어쿠션'을 들고 찾아와 제품 개발을 제안하게 된다. 나이키가 끊임없이 제품의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이었기 때문에, 루디의 '에어쿠션'이 아니었더라도 분명 또 다른 기회가 있었을 것이지만 우연히 찾아온 발명가 덕분에 나이키는 '에어 조던'이라는 전설적인 제품을 만들게 되고 완전한 혁신 기업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제품은 필 나이트와 관계가 틀어져 회사를 떠나 아디다스로 옮긴 변호사 출신 스트라세가 완성하게 된다) 이런 지속적인 혁신의 모습은 운동선수들과 일반인들로부터 큰 신뢰를 받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즉각 리콜을 선언하고 고객들의 반발에 단단히 대비했다. 그러나 고객들은 반발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히려 고객들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었다. 나이키처럼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은 없었다. 고객들은 우리의 노력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했다.




자서전이 아니라 그냥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스토리가 탄탄하다. 과거의 기억을 모아 열정, 끈기, 우정, 도전과 혁신이라는 키워드들 아래 사건과 인물들을 잘 배치했다. 500페이지가 넘는 긴 내러티브에 긴장감과 일관성을 놓치지 않으며 글을 쓴다는 건 보통의 내공이 아니다. 마지막 감사의 글에 언급된 회고록 작가이자 기자 출신인 J.R. 뫼링거가 이 책의 Ghost Writer라는 소문도 있지만 나의 뇌피셜로는 엄청난 시간 동안 여러 작가들과 에디터들의 공동작업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 나이트 본인 스스로도 은퇴 후 스탠퍼드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하니 높이 살 부분이다. 어쨌든 훌륭한 스토리라는 말이다.


나는 먼저 10킬로미터 달리기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힘차게 질주하기 시작했는지, 나 자신과 내 몸이 따로 놀기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나무를 향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거미줄을 향해 소리 질렀다.


필 나이트는 사업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달리기를 했다. 나도 내 인생의 균형감을 잃지 않기 위해, 행복과 자유를 위해 항상 글을 쓰고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킬로미터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필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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