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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Dec 05. 2020

괴테는 몰랐던 글쓰기 전략

일간 이슬아

세바시에 나온 이슬아 작가의 오래된 강연을 보았다.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섬세하고 따뜻했다. '일간 이슬아'라고 하는 이메일링 구독 서비스가 성공을 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한 부업으로 한 달 구독료 만 원을 내면, 매일 이메일로 글을 직접 보내주는 프로젝트였다. 50명 정도나 될까 기대했다고 하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구독을 했다고 한다. 작가의 글도 신선했고 출판업계와 언론은 어린 작가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도 주목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2년 전에 끝이 났기 때문에 대신 단행본으로 출간된 '일간 이슬아'를 읽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이야기를 받는 소소한 즐거움은 느낄 수 없었지만 주말에 드라마를 몰아보는 느낌으로 순식간에 한 달 치 이야기를 읽어 버렸다. 작가 자신과 가족, 남자 친구의 이야기가 읽기 편한 일상의 언어로 따뜻하게 담겨있다. 


지나치게 꾸미는 말을 쓰지 않아서 좋았다. 평범한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또렷하게 읽혔다. 그 힘은 솔직함에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숨김없이 모든 것을 말한다'는 의미의 솔직함이라기보다 내 주변과 타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두고 있는 솔직함이다.


하지만 그렇게 편안하게만 읽을 수만은 없다. 멋 부리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언어와 솔직함에 무장해제하고 책을 보다가 날 것의 생경한 느낌이 갑자기 훅 들어온다. 90년대 감성으로 읽고 있다가는, 추운 겨울 차가워진 다른 사람의 손바닥이 맨 살 등에 무방비 상태로 불쑥 들어와 닿은 것처럼 정신이 번뜩 들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예전에 술 먹고 슬픈 김에 키스를 해본 적이 있었다. (중략) 친구는 내가 우는 걸 자주 봤으니까 어둠 속에서도 내 표정을 선명하게 그렸을 것이다. 숨이 찰 만큼 심하게 울자 옆에 누워 있던 친구가 내 몸통 위로 올라와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서러운 일들을 순간 죄다 까먹고 말았다. 내 얼굴에 입술이란 게 있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좋았다. 키스도 키스지만 그 애 가슴이 너무 부드러워서 깜짝 놀랐다. 너무 예쁘고 몰캉몰캉해서 아슬아슬한 촉감이었다. 난 이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왜 남자랑만 잔 거냐. 좀 억울한 심정이 되었다."

<일간 이슬아 / 놀래키는 위로>


몰캉몰캉하고 아슬아슬한 촉감이라니... 대한민국 남성의 가부장적 자존심을 일순간 무너지게 하는 도발이다.


이처럼 너무 넋 놓고 있다간 심장마비까지는 아니겠으나 이게 세대차이야 아니면 내 감성이 올드한 거야 하며 심한 멀미를 느낄 수도 있다. 좋은 의미로서의 멀미 말이다. 멀미를 감내했기 때문에 그 넓은 차이의 바다를 건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내 칼이 무디거나 아니면 그마저 칼도 없을 때는 상대(독자)를 무장해제시키고 공격해야 한다. 당연하면서도 무서운 전술이다.


"연초의 어느 날에도 커피 약속을 향해 빠르게 걷고 있었다. 걔를 만나러 가는 길에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새삼 너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전철역에 다다르자 저 멀리 그 애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윽...' 하며 걔를 향해 걸었다. 가까워질수록 내 불안의 근거가 선명해졌다. 그 애를 보자마자 엄청 자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 욕망은 나를 신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더없이 쓸쓸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엄청 자주 라는 건 도대체 얼만큼인가."

<일간 이슬아 / 점잖은 사이>


남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먼발치에서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 짧은 순간 흘러가는 생각들에 나도 더불어 휩쓸려 함께 그 전철역 한쪽 편에 서서 바라보는 듯했다. 


그 어떤 문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장보다 '윽...'이라는 한 마디가 가진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효율성에 놀랐다. 좋아하는 사람을 먼발치에서 보자마자 상상 속에서는 이미 데이트를 마치고 다음 번 데이트까지 기대하고 있는 자신을, 그 사이 그 애를 더 좋아하게 되어버릴 것 같은 불안한 설렘을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그 섬광의 감정을 이 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1771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우리의 젊은 베르테르는 무도회로 가는 마차에서 로테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름다운 아가씨를 곧 만나게 되실 거에요." 

"반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내 파트너의 사촌 동생이 그렇게 덧붙였지. 

"왜요?" 내가 의아해하면서 물었지. 

"벌써 약혼한 아가씨거든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中>


마차는 로테를 태우기 위해 한 저택에 멈추어 섰다. 청초하고 단정한 흰옷을 입은 로테가 저택을 나서면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모습을(요약하면, 그냥 엄청 예쁜 여자를) 본 베르테르는 이미 '반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라고 하는 마법에 걸린 자신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집 앞쪽의 계단을 올라가서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네!(중략) 그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키에 팔과 가슴에는 분홍 리본이 달린 청초하고 단정한 흰옷을 입고 있었네. 


"실례했습니다. 선생님을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요. 게다가 여자분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군요. 죄송합니다. (중략) 아이들은 제가 빵을 나눠 주지 않으면 잘 먹지 않거든요."


그녀가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네. 나는 그녀에게 그저 덤덤하게 인사를 했을 뿐이었지만, 난 벌써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태도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만 뒤였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中>


순간에 보여지는 장면과 찰나의 감정이 잘 드러난다. 그 순간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도 든다.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말하고, '청초하고 단정한 흰옷'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이슬아 작가는 5G급 속도의 직진이다. '윽...' 한 마디에 상상은 벌써 내일에 가 있다. 그 사이에 벌써 사랑해를 천 만번쯤 말한 것 같은 느낌이다. 


괴테가 21세기의 작가였다면 이슬아의 책을 보고 나서 이 장면에 '윽...'이라는 표현을 가져다 썼을까? 장난 삼아 위 첫 문장 뒤에 "윽..."을 넣어서 읽어보니, 갑자기 삼류 소설이 되어 버렸다. 그래, 이런 짓은 장난으로라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괴테는 괴테의 칼을, 이슬아는 이슬아의 칼을 써야 한다. 어설프게 남의 무기를 함부로 쓰면 본전도 못 찾게 된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칼은 무엇인가!



먼 차이의 바다를 건너 글을 읽다 보니 낯설지만 그래도 조금은 친해지고 익숙해진 느낌이다. 무수히 많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얼굴들 속에서 동네 이웃, 친한 동생 몇 명을 더 알게 된 것 같다. 일상에서 자신과 타인의 아름다움을 알아채는 연습에 나도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유치한 고민도 생겼다. 90년대의 올드한 감성을 버리고 가랑이 찢어질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이 시대의 흐름을 뒤쫓아 가야 하나, 아니면 꼰대의 감성이 다시 각광받는 르네상스를 기다려야 하나 하고 말이다.



우리는 각자 고유하고 무수히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같은 얼굴을 발견하기란 오히려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얼굴이든 그래서 조금 생소할 것이다. 그 얼굴들이 가진 생소한 아름다움을 늦지 않게 알아채는 연습을 지치지 않고 계속하고 싶다.
<생소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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