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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Nov 20. 2020

월급쟁이의 죄의식을 자극하지 마세요.

노력과 정신무장에 관하여, 우리는 밥을 먹을 자격이 없는가!

[1]

두 명의 열쇠 수리공이 있다. 한 명은 2분 만에 빨리 문을 열고 100달러를 받고, 다른 한 사람은 한 시간이 걸리며 가격은 같은 100달러를 청구한다.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에서는, 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2분 만에 쉽게 여는 열쇠공에게 100달러나 지불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부당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문을 잘 여는 능력보다는 100달러에 상응하는 '노력'에 더 큰 돈의 지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성격 급한 대한민국 사람들이 동일한 상황에 한 시간이나 걸리는 열쇠 수리공을 선택할지는 모르겠다. 빨리 여는 능력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관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노력에 대한 기복신앙적 믿음만큼은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그것은 노력(정신력)이 다른 모든 요소들을 제치고 성공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모두가 가난했고, 가족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미덕이라 믿고 가르쳤던 이 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노력보다 더 큰 성공 요인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다. 이런 대한민국 사람의 정서에서 생각해 보면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이 들인 노력의 양을 기준으로 성공을 평가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게 지나치다 보니 정작 본인이 가지고 있던 자원(인맥, 자본금, 타이밍, 주변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은 무엇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말하기를 꺼린다.


김영준 작가의 책 '멀티팩터'에서는 노력 외에도 성공에 다다르기까지 많은 요소 즉, 노력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것들은 그다지 감동적인 부분이 아니라 성공 신화의 서사에서 외면당한다고 했다.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신생업체들 중 공차, 월향, 마켓컬리 등의 사례를 들어 그들의 사업적 성공에 치열한 노력 외에 얼마나 다양한 요소(멀티팩터)가 작용을 했는지 분석했다.  


책에서 언급한 공차의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공차는 '평범한 30대 주부의 성공 신화'였다. 신문에는 '茶에 꽂힌 26세 주부, 7년 만에 340억 M&A의 주인공으로', '30살 주부 천억 대 버블티 사업을 일구다' 등의 헤드라인으로 소개가 되곤 했다.


공차의 김여진 전 대표는 본인 혼자였다면 평범한 주부가 맞겠지만 그녀의 남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인 마틴 베리는 시티은행의 아시아-태평양 디렉터로 싱가포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런 남편의 배경이 없었다면 공차가 한 국가 전체의 판권을 주는 마스트 프랜차이즈 계약을 사업적 경험이나 인지도가 없는 김여진 대표에게 주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 소유지분도 남편과 공동 소유로 되어 있었던 점이 그런 개연성을 더해준다. 대부분의 평범한 가정주부에게 이런 능력 있는 남편은 없다.

(내 와이프도 평범한 가정주부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새삼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공차의 성공과 김여진 대표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력과 추진력만으로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아무것도 없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성공을 이루었다는 사람이 있다면 유심히 살펴보자. 대부분 자신이 가진 자원의 우위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거나 숨기는 경우이다.
<멀티팩터>



[2]

회사에서 가끔 보면, 태도라는 말 보다 애티튜드(Attitude)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발음도 잘하지 못하는 아저씨들이 왜 이렇게 어려운 영어단어를 가져다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태도'라는 의미에 더하여 '노력, 끈기, 긍정적 마인드'를 포함한 확장된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다.


다 합치면 그 의미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긍정적인 태도!


그러나 그 말의 속내는, '자기가 시킨 일에 토 달지 않고 끝끝내 결과물을 가져오는 자세'일 것으로 의심이 된다. 어쨌든 애티튜드라는 말은 이처럼 여러 가지 경우에 편리하게 사용되는 구석이 있는데, 특히 사업이 궁지에 몰리면 마지막에 꺼내는 비장의 카드로 '사람 탓'을 할 때 쓸 수 있기도 하다.


최첨단의 마케팅 기법과 전략을 통해, 현대의 경영인들은 어떤 상황이라도 매 순간 그에 맞는 전략과 대응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는 신앙과도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극심한 경쟁상황에서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할 만큼의 제품 경쟁력은 없더라도 조직원들에게 '지혜와 기지'를 발휘하여 상황을 반전시킬 전략을 요구한다. 게릴라 식 전략이라든지 다윗과 골리앗 따위의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가격은 올리고 마케팅 비용은 줄이되, 매출은 개선할 수 있는 전략을 짜 오세요!"


모든 상황에 전략과 대응 방안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조직원들은 애티튜드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사람 탓인 것이다. 애티튜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바꾸고 나면, 조직체계를 정비했으니 이제는 잘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인적 자원이니까 필요에 맞춰 사용한 것이다.


어떤 경영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사업에 임하라는 주문을 한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이순신, 다윗, 그리고 체 게바라가 되어 임전무퇴의 불굴의 의지를 시험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에도 정신줄을 놓지 말고, 제시된 목표 자체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어렵지만 실현 가능한' 목표가 주어졌을 때 조직원들의 노력을 투입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실현 가능한 목표는 자연스럽게 '한 번 해보자'는 동기를 부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건강을 해치고 쓰러져 죽을지도 모를 만큼 노력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은, 매우 예외적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경영인 스스로 죽도록 노력하는 애티튜드 외에는 다른 전략이 없음을 시인하는 꼴이다.


앞서 멀티팩터에서 언급한 공차의 사례에서 본 것과 같이, 사업의 성공은 노력과 정신무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경영진이 구성원에게 노력과 애티튜드만을 강조하는 상황은 아닌지 잘 보아야 한다. 그 회사에 더 이상의 전략도, 사업에 투입할 자원도 모두 고갈되었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그 자리에 올라 다 바꿔버리겠다는 야망을 품거나 아니면 소박하게 이직을 고민할 때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티튜드를 강조하는 것은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우리에게는 아주 강렬한 메시지인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나 조차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더 열심히 하지 못한 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이 셀 수도 없이 많았으니 말이다.


"매출을 그 따위로 하고 밥이 넘어가냐!"


그들은 끝없이 월급쟁이의 죄의식을 자극한다.


기본적인 성실함이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훌륭한 애티튜드를 가지고 있다. 전략의 부재를 감추려는 이기적인 경영자들의 말에 흔들리고 자책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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