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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Nov 22. 2020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SF적 단상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책 얘기를 하기 전에 잠깐 썰을 좀 풀어야겠다.


SF라는 장르는 시간적으로 미래라는 배경을 가지고는 있지만, 사실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이야기이며 특히나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철학적인 내용인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SF는 과학의 모습을 한 인문학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런 건 철학이 아니라고, 그저 장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많긴 하더라.)


벌써 고전이 되어버린 매트릭스는 화려한 액션씬 뒤에 인간이 가진 '생각'의 허구성과 한계를 보여주며 마음으로 진실을 보고 생각의 한계를 넘으라고 말했다. 인터스텔라는 많은 사람들을 멘붕에 빠지게 했던 빛의 성질, 시공간의 상대성, 블랙홀, 웜홀 등과 같은 복잡하고 묵직한 내용을 잔뜩 소개해 놓은 뒤, 시공간을 넘는 힘은 결국 아빠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나를 비롯한 꼰대들은 영화를 보고 그 허무한(?) 결론에 약간의 빡침을 느끼기도 했었다.)  인셉션은 꿈과 현실조차 구분 못하는 우리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물론 SF가 담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가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멜로드라마가 우리의 연애와 사랑의 기술을 높이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 듯, SF도 철학적 질문에 답을 제시하거나 우리에게 답을 찾으라고 강요하는 목적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인간은 그 답을 찾지 못할 만큼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이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우리가 빛이 속도로 갈 수 없다'도 사실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 단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유전자 복제를 하는 바이오 해커라는 설정을 통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상의 모든 일(좋은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을 '함께' 맞서는 일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괴로움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편 '스펙트럼'은 문자가 아닌 색깔로 정보를 기록하는 외계 생명을 만나고 온 여인의 이야기다. 


지구인 희진은 이들 외계 생명체들은 종이에 그린(아니 쓴) 색깔들의 차이를 통해서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 의미는 해독해내지 못한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 문자적 의미는 어렵지 않게 해석을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이 말하는 언어의 진심, 뉘앙스 또는 미묘한 색깔의 차이는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각자가 가진 언어의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일은 오랜 시간 서로를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관계의 형성이 필요하다. 조용히 바라보는 것에 익숙지 않은 오늘날의 우리가 더욱 소외되고 외로운 이유인 것이다.


지구로 돌아온 희진은 외계 생명체의 색채 언어 해석에 여생을 바치다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번역한 외계 언어의 일부는 이렇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우리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로를 '관찰'하게 되면 우리의 일기장에 이처럼 기록하게 될 많은 친구들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주제로 한 글이다. 

웜홀을 통한 이동 방식이 발달하면서 기존에 워프 항법을 통해 이동하던 항로들은 비용 문제로 일방적으로 사라지게 되고, 수 만 광년 떨어진 슬렌포니아에 가족을 보낸 여인은 자신의 몸을 백 번도 넘게 냉동하면서 슬렌포니아행 우주선이 다시 운행하는 때를 기다리게 된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먼 곳의 별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작고 오래된 셔틀 하나만이 멈춘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우리의 그리움이 닿는 곳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인터스텔라에서 아빠의 사랑으로 머나먼 시공간을 뛰어넘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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