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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Nov 22. 2020

변하지 않을 인간 본성에 남기는 통한의 회고

징비록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겪었던 유성룡이 전쟁의 참사를 기록하며 후일에 닥칠지도 모를 또 다른 우환을 경계하기 위해 쓴 글이다.


최고위 관료였던 유성룡 본인도 결국은 무능한 조정의 일원이었으니 그 책임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정치인으로서의 양심은 느낄 수 있었다. 한문으로 써진 것을 번역한 것이라 그의 글이 얼마나 명문인지, 어떤 뉘앙스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400여 년 전의 기록이 이렇게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었다.


임진왜란의 패배는 조총이라는 신식 무기를 들고 온 일본의 압도적인 군사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조선의 부패한 정치와 기강이 무너진 군대, 이른바 인재(人災)라고 평가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았다.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황윤길은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보고한 반면 함께 동행한 김성일은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윤길이 공연히 인심을 현혹시키고 있사옵니다."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정말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했냐고 묻자


"저 역시 일본이 절대 쳐들어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윤길의 말이 너무도 강경해 잘못하면 나라 안 인심이 동요될까 봐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조선의 최고 인재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김성일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정말 모르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임진왜란이 있기 오래전부터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높았고, 우리가 잘 아는 율곡 이이 또한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서인들이 세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민심을 교란시키려는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배척당했던 때이니 김성일도 영남의 사대부들을 염두에 두고 발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엄중한 시국에 한 나라의 대표로 일본을 방문했던 자가 전쟁의 위험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고 본인의 정치적인 이유로 고작 민심의 동요를 핑계로 들먹였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다.


또 유성룡이 군 체제를 정비하자고 제안을 했을 때에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의견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제승방략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기존이 가지고 있는 체제와 프로세스에 따라 권력이 분배되었을 것이니, 군을 정비하자는 유성룡의 제안은 군 지도부의 밥줄에 위협을 가하는 제안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유성룡과 신립의 대화는 그 당시 군이 얼마나 해이한 정신상태였는지 잘 보여준다.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소. 그렇게 되면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그래 적을 충분히 막아 낼 자신이 있소?"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이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제대로 된 전략이 있었을 리 없고 장수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는 것에만 연연하여 도망치기 일쑤였다.


 적이 상륙해 왔을 때 좌병사 이각과 우병사 조대곤은 도망치거나 교체되고 말았으니 그들이 마음대로 활개 치면서 100리 길을 달려온 것이다. 북쪽을 향해 밤낮으로 진군하는 그들을 맞아 제대로 싸워 본 장수는 하나도 없었다. 이러니 상륙한 지 불과 10일 만에 상주까지 닿은 것이 아닌가.


후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을 쫓아 조령을 지나다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이런 천혜의 요새지를 두고도 지킬 줄을 몰랐으니 신총병(신립)도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로구나."


조정의 관료들도 무능하고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양을 버리고 선조를 피신시키려고 하는데 적이 어디에 있는지 전쟁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


이 무렵 조정에서는 이미 성을 나가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었다. 다만 함경북도가 험하고 구석진 곳에 있는 까닭에 좋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뿐이었다. 당시 함경도는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간 상태였으나 누구도 보고하지 않아 이런 논의가 가능했다.


임진왜란을 포함한 모든 전쟁은 지배자의 눈으로 보면 뼈아픈 패배 혹은 감격적인 승리로 기록될 수 있겠으나, 그 안의 수많은 백성들 하나하나의 고통과 사연은 어떤 역사가도 다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성안의 백성들은 백에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조차 모두 굶주리고 병들어 있어 얼굴빛이 귀신같았다. 날씨마저 더워서 성안이 죽은 사람과 죽은 말 썩은 냄새로 가득했는데 코를 막지 않고는 한 걸음도 떼기가 힘들었다. 건물은 관청과 개인 집을 막론하고 모두 없어져 버렸고, 왜적들이 거처하던 숭례문에서 남산 밑에 이르는 지역만 조금 남아있었다.


나는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끝까지 읽지 못했다. 문장마다 느껴지는 절망과 고뇌가 너무 절절해서 마지막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징비록은 소설이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쓰여 있어 읽는 것이 많이 괴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의 비극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다.


유성룡은 유배지에서 후대에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진심을 담아 이 책을 썼으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은 또다시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조선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자그마치 2,500년 전 소름 끼치는 예언을 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전쟁과 내란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라고.


그리스 도시들에 큰 고통을 안겨 준 내란은 잔혹한 정도가 다르고, 여건에 따라 양상이 달라져도 사람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키디데스>


나 역시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또 다른 비극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역사적 낙관론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같은 실수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인류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한
헤겔은 옳았다
<조지 버나드 쇼>


결국 우리는 인간 본성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알고 겸허하게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 일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우리가 잘하는 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땜질식 처방이지만 그렇게라도 잘 버텨보는 수밖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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