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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Dec 12. 2020

올해의 책?!

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사이트에서 한 해를 마감하는 이벤트들 알림이 많이 온다. 올 한 해 인터넷 쇼핑 덕질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며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인 것 같다.  온라인 서점들에서는 올 해의 책에 투표하면 추첨을 통해 선물을 주겠다고 유혹을 한다. 현금이나 할인쿠폰을 주겠다고 하는 곳도 있다.


'올해의 책 투표하면 경품이 와르르!' 


전생에 당첨 운을 모두 소진하고 태어난 때문인지, 복권이든 경품이든 나와는 거리가 멀다. 인터넷에 뜨는 대부분의 광고와 이벤트들은 단  1초도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올해의 책' 이벤트 광고에는 항상 시선이 멈추게 된다. 결과는 굳이 보지 않아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책들에 대한 재탕 투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지 모를 마음속 궁금증에 이벤트 메시지를 자꾸 클릭하게 된다. 


사람들이 다 아는 걸 나만 모르건 아닐까? 내 책 읽는 취향이 너무 구시대적인 건 아닌가? (꼰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제일 두렵다)


이따위 쓸모없는 생각에서부터, 혹시라도 내가 '모르고 지나치는 좋은 책'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거들떠보게 되는 것이다. 


모르고 지나치는 좋은 책이라...


없는 시간을 쪼개 아등바등 책을 읽어야 하는 슬픈 월급쟁이 신세에 혹시라도 어이없는 책을 읽게 될 때의 억울함, 시간적 경제적 박탈감. 그리고 이따위로 책을 쓰고도 팔리는 거냐!라고 하는 빡침, 사실은 속 쓰린 부러움.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회피해보고자 좋은 책을 찾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작년 한 해 국내 새로 발간된 책만 6만 권이 넘는다고 한다. 올해는 더 많이 늘었을 것 같다. 어쨌든 70%에 달하는 수험서와 아동서적을 빼면 일반서적은 2만 권 정도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일단 지난 20세기까지의 책들은 무시하고 21 세기에 들어와 20년간 국내에 나온 일반서적만 고려해도 40만 권은 되겠다.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에 한 권씩 읽는다고 하면 1,096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그때까지 살아남아 그 책을 다 읽어도, 1,096년간 새로 출간되었을 21,920,000권의 새로운 책은 손도 대지 못했을 것이다.


난 세상의 모든 책들 중 거의 대부분을 읽지 못했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숫자 놀음이 아니라고 해도 수없이 많은 책들 중에 좋은 책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얼마 되지 않은 읽은 책과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와, 수많은 미디어에서 섬광처럼 흘러가는 정보들을 얼기설기 버무려 세상을 이해했네, 잘난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거의 대부분의 책을 거들떠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어느 날 갑자기 無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며, 그 시대의 보편적 지식을 바탕으로 공감과 해석이 가능한 수준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고작 한 권의 책을 읽고도 꽤나 많은 다른 분야의 것들을 미루어 짐작하며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해의 깊이는 문제 삼지 말기로 하자.)


그러니, 모르고 지나치는 좋은 책보다는 어떻게 하면 책을 고를 때 실패의 확률을 낮출 것인가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좋은 책을 고르는 법, 실패하지 않는 책 선택 법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책 제목에 끌려 책을 펼치든, 남들의 서평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되든지 간에, 막상 책을 펴고 읽으면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한 줄로 어필해야 하는 책 제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업적 의도를 배제한 순수한 서평일지라도 수많은 관점과 생각의 차이로 인해, 내가 실제 책을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재현해 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수많은 유명인과 작가들이 추천한 책을 읽고 (실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기대와 달랐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책의 페이지를 실제로 넘기며 읽기 전에는 그 책의 실체를 알 수 없고 책을 읽는 동안 무엇을 느낄지 알 수 없으며, 책을 읽고 난 뒤 나 자신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 책을 고르기 전까지의 과정과 실제 책을 읽는 과정에서 오는 괴리감에 자아분열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 경우는 실패의 사례보다, 책을 읽으면서 기대하지 못한 감동과 지식을 얻게 되는 긍정적인 경우가 더 많았다. 요즘의 작가들과 출판사 편집인들의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실패의 가능성을 염려하기보다, 그 정해지지 않은 열린 가능성에 더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수많은 우연성을 내포한 여행과 같은 것이니까.


그래, 굳이 올해의 책 목록을 무시할 필요가 없다. 모르고 지나치는 좋은 책을 만나지 못해도 괜찮다. 자본주의의 상술이든, 사람들의 허영 때문이든 중요한 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느냐일 테니까. 


이렇게 올해의 책 투표를 해야 하는 구실을 생각하며, 이번 생에 혹시 한 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경품 당첨의 운에 기대어, 읽지도 않은 책들에 슬쩍 투표를 하고 창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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