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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Dec 24. 2020

월터 미티가 딴 생각에 빠지는 이유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돈만 주면 아이도 대신 낳아주고, 또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일이백만 원이면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을 대신 죽여주기도 한다. 나는 꽤 오래 그런 나라들에서 살았다. (라고 하면서 협박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나도 그 사람들이 무섭다.) 


그런 가난함이 싫고 돈에 대한 천박함이 싫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이 나라도 청부살인이 극히 드물다는 안도감 외에는 별반 다를 게 없다. 총, 칼은 없는데 말로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독기가 가득하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저 나라에서도 이 나라에서도, 난 돈이 없다. 사는 곳을 바꾼다고 갑자기 돈이 생기는 건 아닐 테니 하나마나 한 소리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세상에서 돈이 없다니!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돈으로 못할 게 없는 사람들을 위해 월급을 받으며 대신 일해주는 것 밖에 없다. 


그래, 난 월급쟁이다.


월급쟁이가 결코 나쁜 건 아니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비록 남을 위해 일할 지라도 자아를 성취하고 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배웠다).  게다가 (이미  폐기된) 국민교육 헌장의 기치 아래 산업역군으로서 교육을 받아온 우리는, 늘 최선을 다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하면서 우리는 왜 매일 힘든 것일까? 뭔가 잘못되고 있다.




No, I just, like... zoned out for a second.

아니에요. 제가 잠시 딴생각을 했어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 월터는 시도 때도 없이 딴생각에 빠진다. 제목에는 '상상'이라고 고상하게 표현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zone out, 멍 때리기를 했다는 말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월터를 늘 자신감 없고, 공상만 하는 주인공으로 보여준다. 이른바 성장 영화에서 보이는 평범한 주인공, 전형적인 캐릭터다. 그러나 단지 자신감이 결여된 성격 때문에 월터가 무기력증에 빠졌고, 회사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원래 무능력한 사람이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월터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멍 때리며(Zone out) 영혼 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월터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해 온 사람이며, 가족을 사랑하고 동료들(정확히는 동료 한 명과 사진작가 한 명)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다. 게다가 월터는 입사한 지 16년이나 되었지만 라이프 매거진의 모토(Motto)에 여전히 가슴 설레 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LIFE 매거진)의 목적이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이렇게 가슴 벅차오르는 LIFE 매거진 모토의 화려함과는 달리, 월터는 어두운 사무실에서 앉아 사진 인화 작업을 한다. 무려 16년 동안. 비록 잡지의 화려한 결과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일지만, 자신이 제대로 필름을 인화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사진은 결코 잡지에 실릴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회사의 모토를 실현하는 일에 자신도 동참하고 있다는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면서 견뎌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열심히 하려고 하면 할수록 냉혹하게 분업화된 조직의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 그는 소외되고 외로워졌다. 월터뿐만 아니라 LIFE지의 모든 직원들, 그리고 현대의 우리 월급쟁이들 모두 마찬가지다. 


분업화 사회에서, 열심히 사는 우리의 노력에 대한 응답은 무기력증과 멍 때리기로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매우 모욕적인 조롱의 책이다.) 영국의 한 비스킷 회사를 방문한다. 월급쟁이 생활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이 비스킷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어처구니없어 보였던 것 같다. 


"요즘 비스킷은 요리가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라고 말하는 비스킷 회사의 CEO. 


알랭 드 보통이 보기에는 비스킷을 만드는 일은 부엌에서 주부 혼자 잠깐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단순한 일인데, 이 회사는 그 작업 과정을 (쓸데없이) 여러 단계로 나눈 뒤 각 단계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밀가루 반죽으로 만드는 과자도 노련한 브랜딩 전문가들을 거치면 비스킷의 폭, 형태, 코팅, 포장, 이름 등으로 구체화되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에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비아냥거렸다. 그것도 매우 고상하고 감성이 풍부한 문장으로.


사실 작가의 말이 기분 나쁘긴 하지만 딱히 반론을 제기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회사에서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며 내부적으로 격하게 고민했다고 하는 내용들은 내가 보기에도 부끄럽기 그지없었으니까. 


이를테면 이런 거다. 비스킷은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이 되어야 하는데 거의 모든 문화에서 원형은 여성성과 전체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쾌적한 탐닉의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작은 건포도 조각과 초콜릿을 넣기로 한다. 그러나 노골적이며 퇴폐적인 분위기는 만들면 안 되니 크림은 넣지 않기로 한다. 비스킷의 이름의 후보로 Reflection. Retreat, Delight, My Time, Moments 등을 고민하다가 최종 MOMENTS로 결정하게 되는데, 이 단어가 전달하는 느낌과 디자인이 너무 현실도피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걱정한 나머지 M과 S를 좀 더 수직으로 세우는 디자인으로 바꾸게 된다. 나는 '아니 그렇게 하면 오히려 중세의 고딕 양식처럼 보여서 더 현실도피적으로 보이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어쨌든 이 회사의 임직원들은 잘게 나누어진 각 업무 프로세스에 들어가, 누군가는 반죽을 만들고 누군가는 포장지를 결정하며 누군가는 배송을 하는 일에만 매달려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본인들이 소비자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는 제품인 'Moments'를 직접 만들고 있다고 믿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하는 일의 수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흥미롭게도, 이런 믿음은 번듯한 회사의 직원들만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 새롭게 발의된 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면, 일반적인 경우는 자리를 잡기 위해 전날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해당 법안에 대한 로비스트들은 퇴직자나 퀵서비스 배달원을 고용해서 대신 줄을 서도록 한다. 시간은 없고 돈은 있으니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도 여럿 생겼는데,  마이클 샌델 교수는 어느 대리 줄 서기 업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리 줄 서기 기업인 라인스탠딩닷컴은 '의회 대리 줄 서기 사업의 리더'라고 자부한다. 대리 줄 서기를 헨리 포드의 조립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분업에 비유하면서 "줄을 서는 각 일꾼도 자신이 맡은 특정 임무에 책임을 진다. "라고 말했다. 로비스트들이 공청회에 참석해서 '모든 증언을 분석하는 데' 능숙하고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정통하듯, 라인 스탠더들은 기다리는 데 실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회사가 이 정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니, 전문 라인 스탠더로 고용된 노숙자나 퇴직자들도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만하다. 노숙자 보호시설에 살다가 전문 라인 스탠더가 된 한 남자는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회 복도에 앉아 있으면 기분이 조금 좋아져요. 마음이 으쓱해지면서 마치 내가 이곳에 속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사소하더라도 여하튼 무언가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그들도 한 시민으로서, 또 한 명의 전문직으로서 미국 의회 입법에 참여했다는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분업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가 일을 통해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이런 자부심은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다시 더 몰입할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자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에게 할당된 일은 전체 과정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일에 익숙해질수록 금세 일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전체에서 작은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회사가 제시하는 멋진 사명에 부합하지 못하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일에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월터는, 아니 우리는 분업 사회에서 능력 있는 일원이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며 살아왔다. 효율적인 산업 인재를 키우는 표준화된 주입식 교육을 받았고, 짜여진 커리큘럼에 맞춰 공부하고 경쟁하는 법을 배웠다. 시키는 것은 잘하는 인재.


우리가 월터처럼 멍 때리는 일을 멈추고 다시 의욕을 찾으려면 역설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회사가 돈을 주고 우리에게 '부탁'한 일에 대해 시간과 노동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그 작은 일과 나 자신을 동일 시 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일에서 의미를 찾지 말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일은 일 대로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 다만 그 의미를 너무 과대 해석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우리 자신은 그 작은 분업의  일이 가진 가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이니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내면을 들여다보며 이해하고 세상의 큰 그림을 보며 넓은 마음을 갖는 일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분업 사회의 세계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지금의 공간에서, 또 자신의 인간관계 안에서  자아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익숙한 곳에서는 우리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월터의 여행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고단한 현실로 다시 돌아와, 현실을 마주하고 낯설게 볼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니 말이다. 우리도 익숙함을 벗고 낯설게 볼 수 있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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