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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Nov 27. 2020

관계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태국 같은 곳에 명상수련을 하러 가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예전 영화 중 우리의 오래된 기억 속(이젠 그저 기억 속이다.) 귀여운 여인, 줄리아 로버츠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의 내용에 공감이 가서라기 보다, 영화 장면에 나오는 인도 아쉬람 사원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내 주변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생영화라 불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론가들로부터 아주 야박한 평을 받는, 호불호가 상당히 나뉘는 영화다. 특히 남자들은 싫어하는 것 같다. 나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를 그리 인상적으로 보지 않았고,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 각 여정에서 보이는 어색한 장치와 멋 부린 대사들이 거슬렸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쉴드를 치고 얘기를 시작하는 내가 좀 비겁하다)


어쨌든 주말 저녁에 혼자 막걸리와 맥주를 마시며, 비판적이지 않은 '선한 마음'으로 영화를 다시 봤다.  아쉬람 사원의 풍경과 발리의 바닷가 풍경을 보며 적당한 취기를 즐겼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이혼과 실연의 상처를 안고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태리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인도에서의 아쉬람의 사원에서 명상을 배우고, 발리에 가서는 '마침내'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는 이야기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말이다.


그러나 막걸리를 마시며 영화를 보니, 살아있는 효모의 생명력 탓인지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영화가 보였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여행과 명상, 새로운 연애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치유라는 관점으로 따라가 보았다.


이태리에서 리즈는 커피를 주문하다 우연히 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 친구의 남자 친구에게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며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한다. 우연히 만난 낯선 타인들.


음식은 우리의 원초적인 욕망과 즐거움을 타인과 거부감 없이 공유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서, 낯선 이 마저도 순식간에 친구로 만든다. 내 미각의 희열을, 같은 테이블에 앉은 타인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으리라는 기대감. 거기에서 오는 타인과의 일치감. 


'맛있지?' '아, 그러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면서 그 음식은 더 맛있어지고, 우리는 더 행복해진다. 혼술, 혼밥이 대세가 되고, 코로나로 사람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더욱 조심스럽게 선택된 친밀한 관계의 타인과 함께 먹는 음식은 소중하기만 하다. 


리즈는 인도의 명상원에서, 처음에는 자신의 내면만을 들여다보기 위한 명상으로 고군분투하다가 우연히 주변을 둘러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꿈 많은 소녀를 위해,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을 잃은 친구를 위해 자애와 연민의 기도를 하게 되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는 실마리를 찾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는 리즈가 발리에서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치유를 완성하는 것으로 끝을 맺으면서 단순한 로맨틱 멜로물이 되어 버린다.)


그나마 리즈가 이탈리아와 인도에서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이미 자신의 내면을 치유했기 때문에 발리에서의 새로운 사랑도 새 출발로서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고... 그냥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보았다.


나 자신이 힘들면, 그 고통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도 만나기 싫어진다. 식욕도 잃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그것이 타인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니면 음식이든 어느 한 지점에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나도 작년부터 올해 여름까지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상담도, 술도, 운동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는 건 더 싫었다. 하지만 인간관계의 상처는 타인을 연민하고 공감하는 것에서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맛있지?'


무기력함의 심연에서도 이런 말 한마디 던질 수 있는 힘만 남아 있다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아직 사람을 만날 힘이 없더라도, 그런 따뜻한 시간을 자꾸 그리워해 보자. 우연히 만난 친구와의 저녁 식사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 말 한마디에 위로받게 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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