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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Dec 30. 2020

사랑은 변한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로널드 B. 토비아스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20가지 플롯>에서 사랑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사랑 이야기를 쓰기로 작정했다면 5천 년 동안 늘어진, 긴 줄의 뒷자리에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수많은 작가들이 사랑에 대해 썼는데 또 무엇을 쓰겠다는 것인가? 경쟁은 이미 누구에게나 치열하다. 지금까지 아무도 얘기한 적 없는 이야기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세상에는 이미 아름답거나 슬픈 수없이 많은 사랑 이야기들이 있다. 심지어 우리가 스스로 체험한 모든 연애의 기억도 사랑 이야기다. 우리는 이미 사랑에 있어서는 전문가만큼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어서, 이야기를 창조해야 하는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미 다 알려진 별 볼 일 없는 사랑 이야기 안에서 어떤 생각과 정서(Sentiment)를 전달하려고 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원제: Take This Watlz)>도 줄거리만 보자면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랑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감독은 사랑이라는 주제 안에서 인생의 공허함과 오래된 관계에서 오는 권태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각 인물들과 정서를 대비시키며 사랑과 욕망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결혼 5년 차인 마고는 닭 요리 책을 쓰는 요리연구가인 남편 루와 큰 불화 없이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권태를 느낀다. 늘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로 장난을 치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서로 모든 것을 안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대화 조차 하지 못하는 권태로운 부부이다. 


마고는 우연히 만난 이웃집 남자 대니얼에게 끌린다. 하지만 남편 루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며 괴로워한다. 그래서 30년쯤 남편과 충실하게 살고 나면 이혼은 하지 않더라도 대니얼을 만나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며, 대니얼에게 30년 후 어느 등대가 있는 곳에서 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마주친다. 


어느 날, 루는 집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이웃 남자인 대니얼을 보고 집으로 초대한다. 대니얼은 파티에서 마고와 루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일상에 끼어 어정쩡하게 있는 상황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사를 가기로 결심한다. 대니얼이 이사 가는 날, 마고는 밖으로 뛰어나가 멍하니 트럭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루 역시 침실 창문을 통해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마고는 루에게 본심을 이야기하고 루와 헤어진다.


마고는 대니얼과 동거를 시작한다. 억눌렀던 욕망을 모두 풀어헤치고 매일 사랑을 나눈다. 영화는 원을 그리며 도는 카메라 앵글에 다양한(?) 섹스를 나누는 대니얼과 마고를 보여주는데, 카메라의 회전이 거듭될수록 대니얼과 마고는 조금씩 평범한 부부의 일상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또다시 자신의 텅 빈 허전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줄거리는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마고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그녀의 욕망과 대립하는 남편 루, 새 애인 대니얼의 각기 다른 사랑에 대한 태도를 비교해 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대립의 지점마다 감독이 펼쳐 놓은 신선한 장면과 중의적인 대사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정말 섬세하고 놀라웠다. 


주인공 마고에게 사랑은, 언제나 새롭고 자극을 주는 무엇인가여야 한다. 그 사랑이 반복되는 일상의 허전함과 인생의 틈을 메워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고는 대니얼에게 묻는다.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요." 


그렇게 사랑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외부에서 확인하려고 하는 마고는 늘 불행하다.


영화 초반, 마고는 비행기 안에서 대니얼을 만나 자신의 공항 공포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행기를 놓치는 건 두렵지 않아요. 비행기를 놓칠까 봐 걱정하는 걸 두려워하는 거죠. 사이에 끼어서 붕 떠 있는 게 싫어요."


루와 대니얼 사이에서 마고의 마음은 이미 기울었지만 도덕적 부담감 때문에 결정을 하지 못하는 '붕 떠 있는 상황' 또한 괴로워한다. 어정쩡한 상황에서 불안해지는 게 싫어, 자신의 빈틈을 채워줄 '확실한 어느 한 사람'이 빨리 결정을 내려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비행기 환승 시간의 불안감을 잊으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 쉽게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가끔, 있잖아요. 가끔 길을 걸을 때 보도 위로 한 줄기 햇살이 떨어지면 그럼 그냥 울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순간은 금방 지나가고 어른이니까 순간적인 감상에 빠져서 울면 안 된다고 마음을 먹어요. 왜 그렇게 되는지 영문도 모르고, 누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그런 상태요... 살아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상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부의 사랑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상대방의 영혼마저도 힘들게 한다. 믿음과 상호보완의 관계가 아니라 언제나 상대방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하는 사랑의 열정이 일으킨 기대감, 이제는 나를 100% 채워줄 사람을 만난 것 같은 행복감이 결국은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관계는 파국이 된다. 


사랑의 감정을 통해 인생의 허전함을 채우려고 하는 한 마고는 행복할 수 없다.


남편 루는 늘 주방에서 요리하고 아내에게 장난치며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사실 루의 사랑에 대한 시각도 그리 온전하지는 않다. 


그는 전형적인 착한 남자 스타일이다. 자신이 외도하지 않고 집에서 충실하기만 하다면 부부 사이에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는 1차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결혼기념일에 외식을 하면서 마고가 대화를 하자고 하자, 루는 서로 다 아는데 무슨 대화를 할 게 있냐고 반문한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싫어."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잃고 침묵에 익숙해져 할 말이 없어진 것인데, 루는 서로 잘 알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 서로의 모든 걸 다 알 수 있다는 착각.  그는 의미 없는 장난들로 어색한 침묵을 지우면 관계의 틈이 메워질 것이라 믿었다. 마고의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고 방치한 남편 루도 이혼의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마고가 떠난 이후에, 아내의 마음을 잡으려 하기보다는 쉽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포기한다.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줄 알았는데..."

"나 같은 놈에게는 너무 과분했지."

"가지 말라고 사정하면 내가 더 비참해질 것 같아."


하지만 이혼 후 마고를 다시 만났을 때, 루의 착한 남자 콤플렉스 이면의 본심이 드러난다.


"살면서 당하는 것 중에 어떤 일은 절대로 안 잊혀져."


결국 루는 자신은 부부관계에서 도덕적인 규범을 잘 지켰으며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했다는 우월감으로 가득 찬 나머지, 아내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해 주지도 못했으며 이혼의 책임마저 마고에게 모두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마고의 새 애인 대니얼도 영화의 표면적 이미지는 매력적이고 로맨틱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도 관계에서 도덕적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 넘기려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대니얼은 마고가 유부녀임을 알고 나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하지만 계속 그녀 주변을 맴돈다. 마고에게 그녀와의 섹스를 상상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의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고, 수영장에 따라가 지켜보기도 한다. 이렇게 마고의 일상의 경계 밖에 서서 선은 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마고를 유혹한다.


수동적인 자세를 상대방에 대한 배려인 것처럼 포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결혼이라고 하는 사회의 도덕적 경계에서 선을 넘은 것은 마고이며 자신이 먼저 선을 넘은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결국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사랑의 관계에 대해 왜곡된 환상을 가진 이기적이며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화 속 루의 누나인 알코올 중독자 제랄딘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란 게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메울 순 없어."


삶의 틈은 사랑으로 모두 메울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빈틈을 안고 살아간다.


열정적인 사랑의 열병은 시간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일상의 평범함 속으로 잦아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퇴색이 아니라 좀 더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단지 화려하지 않고 가려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사랑의 겉모습은 끊임없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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