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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Nov 02. 2020

제 이름에서 별을 떼어내 주세요.

[1]

건강검진을 받았다.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니 오전에 잠시 병원에 다녀오면 오후 반차를 낸 것과 같다. 보통은 8시 이전에 가서 빨리 끝내곤 했는데 이번엔 예약이 많았는지 9시에 오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역시 사람이 많다. 코로나 때문에 검진을 미루던 사람들이 몰려 검진 센터의 내시경 검사하는 곳은 흡사 응급실인 것처럼 간호사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물론 생명을 다투는 순간이라서가 아니라 기다림에 지쳐 짜증이 가득 차 있는 검진자들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급할 것 없는 나는 어느 때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검진을 시작했다. 처음에 간단한 채혈, 시력검사, 몸무게 측정 따위를 기다림 없이 순조롭게 마치고 나니 복부 초음파와 엑스레이 촬영부터는 제법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팔목에 찬 락커 열쇠를 진료실 입구 단말기에 갖다 대면, 


"000 님이 도착하셨습니다."


화면에 큼직하게 메시지가 뜨고 몇 초 후 이름이 사라지면 대기자들 명단이 보인다. 


김영*

이대*

조명*


리스트에 보이는 이름은 앞 두 글자. 몇 초 전에 대문짝만 하게 도착을 환영해 놓고 선 내 익명성을 보장이라도 해주려는 듯 이름 한 글자만 별표로 가려 놓았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어떻게든 바꾸어서 부르며 서로를 놀렸다. 세 글자 모두 거꾸로 부르기, 이름만 뒤집어 부르기, 앞 두 글자만 부르기, 아니면 한 글자만 아무렇게나 바꿔서 부르기.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나는 별표 자리에 이런 글자, 저런 글자를 넣어가며 속으로 이름을 바꿔 불러 보았다.


친하지 않다면 그렇게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 것이 모욕이나 괴롭힘이 되겠지만, 친한 친구 사이라면 그것은 서로 간의 우정을 확인하는 악의 없는 십 대의 허세와 같은 것이었다. 친할수록 서로에게 아무렇게나 말하고 더 거친 말을 쓰고 이름을 망가뜨려서 부르곤 했다. 그렇게라도 관계에서 인정이 필요한 불안한 나이였기 때문이다. 


[2]

한자 문화권에서는 임금이나 높은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거나 쓰는 것을 피하는 피휘(避諱) 문화가 있었다. 군주에 대해서 뿐 아니라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 자체도 예의에 벗어난다고 생각하여 '자', '호'와 같은 별명을 붙여 부르곤 했다. 


과거 중국에서는 문자의 옥이라고 부르는 숙청 사건도 있었다. 명 태조나 청의 옹정제 등이 정치적으로 정적을 제거하거나 본인의 화풀이를 위해 사용한 방법인데, 특정 글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해 놓고 이와 비슷한 글자, 비슷한 발음이 있는 글자를 사용한 사람을 잡아서 죽이곤 했다. 중국만큼의 대규모 숙청은 아니었지만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피휘의 문화는 지금까지도 남아, 우리는 상대방의 이름을 부를 때 김 부장, 이 박사, 서 변호사 하면서 직급이나 호칭을 붙여서 말한다. 이름은 알지만 호칭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호칭은 빼고 "저기요"라고 얼버무리는 때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직장동료가 지금은 내 직급이 뭔지를 몰라, "서 과장, 이제는 직급이 뭐지? 부장인가?"하고 먼저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불편하고 불합리한 관습이 따로 없다 싶으면서도, 이른바 동년배 문화 속에서 언제 졸업을 했는지를 중요시하고, 반말 존댓말로 서열을 정하는 언어 관습에 얽매여 있는 우리는 앞으로도 피휘의 잔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회사들은 권위주의와 서열문화를 없애겠다며 회사 내 호칭을 없애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과장, 차장, 부장을 모두 '프로'라고 부른다거나 '님'이나 '씨'로 호칭을 통일하는 것이다. 그런 회사의 홍보팀에서 뿌리는 기사를 읽어보면 호칭을 바꾸고 나서 조직문화가 부드러워졌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호칭을 불편하게 만드는 피휘의 관습은 권위주의 문화의 본질이 아니다. 호칭을 바꾸어도 이미 정해져 있는 상하 관계와 권력의 헤게모니는 바뀌지 않는다. 본질의 변화 없이 호칭만 바꾸는 것은 지금까지 직위의 호칭이 갖고 있는 공인된(?) 관계의 폭력성을 은밀하게 작동하도록 만들 뿐이다. 모든 행동과 물건에까지 존칭을 붙여서 쓰고 있는 애처로운 알바생들의 과장된 극존칭을 생각해 보면 우리 언어의 폭력적 관계 설정을 눈치챌 수 있다. 


"고객님, 그 제품은 할인이 안 되시구요, 이쪽 제품은 적용되는 부분이 있으세요. 계산 도와드릴까요?"


[3]

이제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름 없이 지낸다. 성 뒤에 호칭을 붙여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부장이나 차장, 과장이라는 덧옷을 입고 산다. 그러나 그것은 예의를 가장한 무기력한 이름들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 예의는 순식간에 부장 따위, 차장 따위, 그리고 과장 나부랭이가 되어 버린다. 


건강검진 센터 질료실의 대기자 명단 화면에 별표로 가려진 내 이름이 측은해 보였다. 굳이 배려받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보호받는 것 같았고, 사물 극존칭 존댓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어색했다. 내 이름 마지막 한 글자 위에 올려진 별표를 떼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내 이름으로 검진을 기다리고 싶었다. 함께 기다리는 낯선 사람들의 이름 세 글자를 안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나 그 이름을 덧입고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분은 김영철로 살아왔구나. 저분은 임희영으로 살아왔구나. 전 이 이름으로 살아왔어요!"


내 이름을 바꿔 부르며 놀리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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