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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영수증 챙겼어?

달라 달라 1

  눈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가공품 진열대와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아이스크림 진열대를 처음 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휘향 찬란한 색감의 제품들은 진열대에 가지런히도 놓여있으면서 소리 없이 절대 힘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도 대형 마트가 있지만 이 정도로 제품 종류가 다양하다고?

  가공제품 코너뿐만 아니라 유제품과 육류, 가공육류 온갖 것들이 내 키보다 높은 진열대를 빼곡하게 채우려면 직원들이 꽤나 힘들겠다는 생각도 잠시 어떤 과자가 맛있을지 빠르게 눈을 움직여 본다.


  '뭐라고?? 마늘이 1.3kg에 12달러 밖에 안 한다고?!'

  우리는 보통 타겟, 월마트, 홀푸트, H마트 이렇게 장 보러 다녔지만 얼마 전 코스트코 마늘 가격이 H마트보다 2배 가깝게 저렴하다는 걸 발견하고 회원카드를 발급받았다.

  코스트코는 연 회원비가 있기 때문에 R이 코스트코 회원카드를 발급받자고 했을 때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몇 달간 지낸 후 가계부를 보니 외식도 거의 하지 않는 두 사람의 생활비가 한 달에 700달러 정도 나오지 않겠는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하와이 물가가 미국에서도 비싼 편에 속한다는 걸 알았지만 두 사람의 한 달 생활비가 500달러면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했던 생각을 비웃는 것 같았고, 계산기를 뚜드리며 한숨 쉬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생활비를 조금 더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R이 제안했던 코스트코에 관심이 갔고 우리가 자주 사는 식료품들의 가격을 따져봤을 때 연 회비를 내더라도 훨씬 절약된다는 걸 알아낸 후 그 길로 코스트코를 방문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부분이지만 하와이에서는 꽤나 특이한 방식이 있는데, 미국 모든 주가 이런 방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기야, 영수증 챙겼어?'

  마트에서 장보고 결제한 후에 '꼭' 영수증을 챙겨야 한다.

  타겟, 월마트, 홀푸드 같이 대형 기업 마트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한인마트나 돈키호테 같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마트의 출입구에 절도범의 인상착의가 담긴 CCTV화면을 캡처해 붙여 둔 걸 매번 본다. 마트에서 물건을 도둑질하는 사람이 흔하다는 거다.

  그래서 구매 영수증은 당신이 물건을 정당하게 산 소비자라는 걸 증명해 주는 티켓처럼 사용된다. 당신의 영수증을 확인했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마트 출구에는 직원 1~2명이 형광펜을 들고 서있다. 그들이 구매목록과 제품들의 개수가 일치한 지 일일이 확인하진 않지만, 그 순간 '정당한 소비자'임을 그들에게 확인받고 통과되어 출구를 나갈 때 이상한 희열감이 든다.

  어쨌든 캐셔가 있는 계산대는 영수증을 무조건 주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했을 때는 영수증을 잊지 말고 챙겨야 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영수증을 버려달라고 했는데 이런 사소한 차이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해 준다.


  재밌는 건 이런 방식이 잦은 절도범들을 잡기에 유용한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몇몇 마트들은 입출구가 따로 나뉘어 있어서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그마저도 되어있지 않은 곳은 절도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몇 개월 R과 함께 살면서 식구가 고작 한 사람 늘어난 것뿐인데 신경 써야 할 게 배로 많아졌다. 당연한 건가. 이 집에 옵션으로 원룸 냉장고처럼 작은 용량도 아닌 큼직한 냉장고가 있다. 넉넉하게 신선품들 보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R과 나는 냉장고를 보자마자 기뻐했는데 웬걸,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우스갯소리로 작은 냉동고가 추가로 필요하지 않겠냐는 말을 한다.

  물론 냉동고를 둘 자리도 없기 때문에 사지 않겠지만 잠시라도 이런 발상을 한 다는 게 무서웠다.


  우리의 욕구와 만족은 이미 몇 개월 전의 기준과 달라진 느낌이라서.

  꼭 필요한 소비만 해서 돈을 도구의 이상으로 사용하진 말아야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면서도 무언가를 구매할 때 환기시키지 않으면 깜빡 넘어가니 정신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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