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있는 언어

감정

by 에포케

'너 그거 기억나?'


'우리 초등학교 같은 반일 때 어떤 남자애가 네 물감통 쏟았다고 울었던 거'

내 기억 속에 없는 나의 순간을 누군가로부터 듣는 건 신기하고도 흥미롭다.

기억 속 상황의 당사자도 아닌데 타자의 순간이 기억으로 남는 건 왜일까. 유대감 때문일까. 꼭 그런 것 같진 않다. 난생처음 본 사람의 순간이 내 기억 속에 담겨 있기도 한 걸 보면. 그럼 동질감 때문일까. 그냥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감정'이 기억을 새기는데 큰 공을 드리고 있는 것 같다.


물감통 때문에 울었다는 상황이 기억 나진 않지만.. 이 말을 해준 친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으니 초등학교 고학년인 나는 그때도 여전했구나 싶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 캠프를 갔는데, 여름방학 중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3박 4일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외삼촌이 인솔 교사로 참여하는 캠프라 안심하고 친오빠와 나를 캠프로 보냈지만 오빠와는 다른 조가 되어 이내 떨어져야 했고 낯선 사람, 환경의 경험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던 것 같다. 캠프 첫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주 서럽게 울었으니까. 그때의 불안한 마음이 정확히 느껴지진 않지만 우리 조를 담당하던 선생님이 외삼촌을 불러왔고 외삼촌을 보고 더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캠프에서 울었던 것 말고 크게 기억에 남는 상황은 없으니 어찌어찌 3박 4일을 힘겹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겠지. 지금 생각하고 보면 학기 중에 떠나는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는 낯선 장소의 방문일지라도 익숙하게 어울려 노는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 느낌이라 즐겁고 들뜨는데, 여름 캠프는.. 정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구석 요만큼도 나에겐 없었나 보다.


시간이 흘러오면서 누가 봐도 어른이라고 부를 만한 연령대가 된 나를 관찰한다. 나는 자주 코끝이 찡해지고 여전히 잘 운다. 눈물의 의미가 많을 테지만 왜곡된 이미지가 많은 언어라고 생각한다. '절제'하는 것이 미덕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타자의 기준에 맞추려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과 헷갈린다면 나를 몰아세우는데 정당함을 갖게 할 명분만 키워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독 '눈물'은 나이, 성별로 연결 지어 억지로 참는 것이 성숙한 것으로 주입받았는데 '네가 애야? 뭐 이런 것 갖고 울어', '남자답지 못하게 울고 그러냐',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같은 얼토당토않은 엉터리 막말에 화내며 반박하거나 콧방귀 뀌고 넘길 수 없던 건 '상대적으로 많은 연령, 특정 직책을 갖은 권위자, 분리될 수 없는 절대적 유대감의 관계'처럼 어른, 선생님, 부모님의 언어라,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들의 기준에 맞춰 '너 참 어른스럽구나.'라는 말이 칭찬인 줄 알고 '감정'의 많은 부분을 잘라내려 한 건 아닐까.


'그럼 성숙하고 어른스럽다는 말은 뭐지?'

어른이라고 부를 만한 연령대가 되어가는 만큼 '성숙', '어른스럽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매일 같이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의 두 언어는 '감정에 무뎌지고 부당한 일도 참을 줄 알며 나를 숨기는 것'이라고 학습된 기억으로 남아,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고뇌하는 나에게 '어차피 그런 환경에서 자란 너라 별 수 없어. 너도 결국 네가 그토록 되고 싶지 않던 어른이 될 거야.'라고 끊임없이 조롱하는 것 같아 괴로웠지만 생각을 멈추진 않았다.

어떤 분야의 앞선 가설을 뒤집고 새로운 가설이 생기는 건 수많은 물음표와 시간, 마음이 얽히고 쌓이면서 나타나는 '멋진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늘 흥미롭지만은 않고 정체기도 있으며 의심되는 나를 버텨내기도, 무너지기도 하는 나날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결과를 있게 한 건 과정인데 그에 비해 과정은 늘 과소평가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과정뿐인 나는 이 부분에 불만이 많은가 보다. 과정보단 결과가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건 사실이니까. 시각적인 부분이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여러 방면만 보더라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하면서도 이 부분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가만 보면 '감정'만큼 대하기 어려운 게 없다.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도 내 감정과 긴밀히 연결되어있으니까. 상대방을 대하기 전, 내 '감정'을 먼저 대해야 표현이라는 것도 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좋지 않은 감정들을 꼭 기억해 뒀다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노력하게 되는 이유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라 잘 모르겠다. 나한테 정말 이타적인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건지 겁이 많아서 그런 건지 그냥 복합적인 건지.. 이 부분은 생각 정리되면 나중에 이어서 글 써야겠다.


어휴 본론, 결론은 없고 서론만 있는 것 같은 글이라니:) 나다워서 기분 좋아지는 걸로 위안 삼고, 이번 글은 이렇게 끊어야지. 정리되긴 이른 생각들이라 다음으로 이어 붙이기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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