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있는 언어

하고 싶은 말

by 에포케

'너는 참 긍정적인 것 같아'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 오랜 시간 친구로서 지내온 사람들.

그들이 종종 나에게 건네던 말이다. 어떤 상황에 어떤 대답을 했기에 '긍정적'이라는 말을 들었을지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긍정적'이라는 말이 썩 달갑게 들리진 않았던 모양인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긍정적이라고..?'

입체적이지 않은 것 어디 있을까. 어떤 상황, 분위기로 연이 닿는지에 따라 내가 갖고 있는 여러 모습 중 단면만 상대방에게 부각되어 전체를 어우르는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 의도적인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지만 상대방 특유의 시각과 경험에 따라 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원하지 않던 캐릭터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전자, 후자 모두 그리 반갑지는 않다. 그렇게 느껴지는 건 어떤 이들은 나를 '버릇없는, 불만 많은' 사람으로만 기억하는 것처럼 존재를 정의하고 판단하는 건 '취향'과 같이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지만 이런 판단을 듣는 사람은 '객관적'인 언어로 받아들여 버거워지기도 하니까. 특히나 동경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들, 가족의 언어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신뢰'의 덫으로 느껴진다. 빛이 어떤 사물을 관통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굴절처럼, 언어도 어떤 존재에게 들어가고 나오는지에 따라 굴곡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좋은' 의도로 상대방에게 말했을지라도 '좋은'의 기준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주관적 만족도이지 상대방에게도 유효한 것이라고 여기는 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좋은'이 상대방에겐 '강요, 압박, 억압'으로 굴절되어 존재의 고유함을 위축, 부정시키는 역할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일상을 둘러싼 '긍정적, 부정적'으로 구분되는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자주 드는 예로 '물이 이것밖에 남지 않았네=:(, 물이 이만큼이나 남았네=:)', 이 상황의 전제는 '목마른 두 사람이 반정도 남아 있는 물컵을 본 반응'이라고 할 때 전자는 입꼬리가 내려가 있을 것 만 같은 '부정적', 후자는 입꼬리가 올라가 있을 것 만 같은 긍정적이라고 해보자. 하지만 전제가 '뙤악볕에서 큰 물탱크의 물을 바가지로 퍼내며 반정도 남은 물을 본 두 사람의 반응'으로 바꾼다면 앞서 본 전자, 후자의 문장은 어떻게 될까?

어떤 '전제'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문장일지라도 정반대의 성향을 품게 된다.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긍정적, 부정적인 말이나 상황으로 인식되는 언어는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상황도 '정답'이라 정해진 사칙연산 같은 답은 없고 저마다의 경험, 시선, 사고에 따라 스스로 어울리는 대답을 찾을 뿐이지 '더 추구해야 할 것'으로 분류되거나 판단될 수 없다.


나는 긍정적인 것이 싫은 게 아니라.

긍정적이라고 판단하고 분류하는 상대방의 시선이 불편하고 그들의 기억 속에 나 다움을 마음대로정의한 다음, 그들이 생각하는 '주관적 긍정적인 기준에 충족'되지 않은 나의 대해 경솔하게 실망하는 태도가 황당하다.

그리고 저마다의 깊이를 어떻게 '긍정적, 부정적' 이분법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 놀랍다.


'생각'이 생각으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분류되어,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옳고, 그름'으로 옮겨 간 건 왜 일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같은 상황에 우린 내가 볼 수 없는 '이면'을 네가 보는 거고, 네가 볼 수 없는 '이면'을 내가 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네가 부정적인 것도 내가 긍정적인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쁜 것, 좋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네 생각이 교정받아야 할 것도 아니고 내게 실망할 것도 아닌, 내 생각을 나눴을 때 부정당할까 고민하다 결국 나를 감추는 것이 아니고 싶다.


입체적이지 않은 것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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