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수님에게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나의 오늘입니다.
마을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죄인 여인이 나병환자 시몬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습니다.
잠깐, 이 난처한 상황을 상상해보죠.
예수님이 계신 곳은 나병환자의 집입니다.
그 집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예수님을 포함해서 12명의 제자들이 모두 들어갈 만큼 집이 클까요?
그런데 나병 환자가 만든 그 음식은 어떤 맛일까요?
나병환자가 만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의 기분은 어떨까요?
예수님에게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제자들은 매우 불편했겠죠.
예수님이 음식을 드시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제자들도 억지로 먹었을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의 얼굴을 보면서 먹는 제자들에게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겠죠.
그때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그 여자는 그 악취 나는 방에 계신 예수님에게 자신이 가져온 향유를 주님의 머리와 발에 붓습니다. 그 순간 방안에는 향기가 가득해졌습니다.
방금 전에 음식 냄새와 방 냄새가 섞여 나는 이상한 냄새들을 모두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때 가룟 유다는 참으로 생뚱맞은 말을 합니다.
“아깝게 뭐하는 짓이냐? 이런 향유라면 300 데나리온(노동자 1년 연봉 / 3000천만 원)이나 될 텐데 이것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지!"
그런데 어떻게 가룟 유다는 어떻게 이 향유 가격을 잘 알았을까요?
가룟 유다는 향유 냄새와 그 쏟아지는 양을 보면서 가격을 어림잡았던 것 같습니다. 가룟 유다가 이렇게 향유에 깊은 조예가 깊은 까닭은 무엇일까? 혹시 가룟 유다도 이런 향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방금 나병환자 집에서 부어졌던 향유는 가룟 유다가 가장 좋아했던 향유였을까요?
가룟 유다가 이 향유의 가격을 정확히 300 데나리온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분명 가룟 유다는 향유 쪽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 사건 이후에 대제사장과 만나서 예수님을 팔려고 협상을 합니다.
대제사장과 가룟 유다가 흥정했던 예수님의 몸값은 은 30 세겔, 그 가격은 60 데나리온입니다.
60 데나리온... 여인이 부었던 200 데나리온 향유 가격에 1/5 가격에 불과하죠.
예수님 몸에 이미 300 데나리온 향수가 부어졌는데, 가룟 유다는 그런 예수님을 60 데나리온에 팔았습니다.
'몸 값으로 60 데나리온이 되는 예수를 2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수로 붓다니!'
가룟 유다가 그 여자에게 말한 ‘낭비하다’라고 말했던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에 팔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팔고 있냐는 질문이 황당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팔려고 한 적도 없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우리에게 살려고 하는 사람도 없죠.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날마다 팔고 다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파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죠.
앞차가 갑자기 끼어드려고 할 때, 저는 앞 차에 분개하면서 예수님을 헐값에 팝니다.(잊어버립니다)
교회 성도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 있을 때, 그를 험담함으로 예수님을 팝니다(버립니다)
하루에 기도와 묵상을 하지 않음으로 나는 예수님을 일상에서 팔아버렸습니다.(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을 생각해보세요.
십일조를 하지만 하루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시나요?
하루 중에 가장 편안하고 보장 받은 안식의 시간에 주님과 함께 있나요?
주일 예배를 위해서 토요일 저녁부터 예배를 향한 예배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나요?
헌금을 드리는 것이 어려울까요? 시간과 마음을 드리는 것이 어려울까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전부를 드려서 주님의 전부를 원하는 것이 바로 향유 옥합을 깨트리는 믿음이 아닐까요?
오늘 내가 예수님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향유옥합은 나의 오늘입니다.
오늘 예수님에게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나의 오늘입니다.
오늘 예수님에게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나의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