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제자의 대사
마을에 착한 [증삼]이와 나쁜 [증삼]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나쁜 증삼이가 사람이 살인을 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착한 증삼이 살인한 걸로 오해를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증삼의 어머니에게 뛰어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고 했다.
그러자 증삼의 어머니는 "내 아들은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야" 하고는 태연히 배틀에서 계속 배를 짜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또 한 사람이 달려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고 해도 아들을 믿는 증삼의 어머니는 여전히 베를 짜는 것이었다.
또 얼마 있다가 어떤 사람이 와서 같은 소식을 전했다.
너무나 놀란 증삼의 어머니는 베틀에서 황급히 내려와 담을 넘어 도망갔다는 것이다. 착한
어머니라 할지라도 세 사람이 같은 말을 되풀이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 고사성어 풀이 중이에서 발췌
결국,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예수님이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인지 아니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묻게 했다.
왜 세례 요한은 자신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했던 예수님을 의심했을까?
그는 감옥에서 자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행적을 자세히 들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하셨던 기적을 설명하면서 메시아라고 말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안식일도 지키지 지도 않고, 자신들처럼 금식도 하지 않고 그리고 자신의 스승 세례 요한이 경고했던 죄인들과 먹고 마신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정황상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에 관한 부정적 의견(주로 율법학자와 바리 세파 사람들의 판단)을 귀담아 들었고 그것을 자신의 생각을 보태어 세례 요한에게 전했을 것 같다.
이처럼,
세례 요한도 아담과 하와 그리고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무너진 것처럼 [의심]으로 인해서 무너지게 되었다.
세례 요한이 그렇게 무너진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는 하나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기도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예전에는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게 하신 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내려와서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알아라' 하셨습니다. (요 1:33, 새번역)
왜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고 했던 하나님에게 질문하지 않았을까?
왜 굳이 예수님께 제자를 보내어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었을까?
우리가 주님에게 묻지 않고 우리의 초조한 감정으로 인해서 큰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다윗은 항상 싸우기 전에 하나님에게 여쭈어 보고 싸움에 임하는 왕이다.
그는 왕국을 통일하고 블레셋과 전투에 이겼다. 그는 드디어 법궤를 자신의 왕국으로 가져오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윗은 웃사를 보냈고, 웃사는 소들이 움직이자 떨어지는 법궤를 잡다가 죽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다윗이 법궤를 가져오기 전에 기도를 했다는 것을 기록하지 않았다. 다윗은 그냥 자신의 기쁨과 소망(비전)에 흥분하여 법궤를 짐승에 싣고 빨리 자신의 왕국으로 가지고 오려고 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은 너무나 초조해서 실수를 범합니다
다윗은 너무나 기뻐서 실수를 범합니다.
사탄은 인간이 이런 양극단에 서 있을 때가 가장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연민에 빠져서 하나님을 의심할 때,
자기 기쁨에 도취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을 때,
바로 이때가 넘어지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