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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Mar 18. 2018

부활을 위한 죽음

2018년 4월 1일 부활절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열방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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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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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비전을 받고 그 비전을 이루며 살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에서 엄청난 뭔가를 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체험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내게 주신 달란트와 보여주신 비전을 따라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기왕이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섞어서 하나님 사역을 하기 원합니다.
[이왕이면] 돈도 벌고 사람도 많이 모아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구해야 하는 예수다움은 이런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승리하고 누리는 삶에 대해서 하늘 삶으로 설명했습니다.  

예수다움으로 자기다움을 찾는다면,
먼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응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다워집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0_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능력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 그분과 같이 죽는 것입니다. 11_그분을 따를 수만 있다면, 나도 마지막 날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빌3:10-11, 쉬운성경)


바울의 목표는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 [그분과 같이 죽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땅의 삶에서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제목과 얼마나 일치할까요?
바울이 원했던 것은 예수님과 부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이 일을 위해서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살게 할 것인가를 응답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면, 주님의 부활을 체험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알아가면서 부활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고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대부분의 고난은 [돈]의 결핍에서 옵니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는 우리의 신념과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성경의 진리가 내 마음에서 충돌합니다. 이것이 불쾌한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은 내 안에서 일어나기에 아주 은밀하게 나를 핍박합니다.
문제는 내가 [돈]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좋아한다는 것이죠. 
이 세상은 돈을 쓰도록 만들어졌기에... 돈의 결핍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자신의 결핍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바울은 죽는 날까지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싶었습니다.
자신에게 예수님이 부족하다고 느꼈죠.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기도제목으로 넣어 보세요.

막연하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알고 부활을 체험하면 고난도 우리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다움]에서 죽고 [예수 다움]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능력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
그분과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분을 따를 수만 있다면,
나도 마지막 날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빌3:10-11, 쉬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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