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cm PT&LUCY서비스 기획 프로젝트 / 편집후기(1)
이창우 29cm 대표 : 슈퍼잼이라는 브랜드 아시나요? 아이가 만든 독특한 잼입니다. 그런데 이 브랜드 스토리가 고객들한테 전달이 안 되면 슈퍼 잼은 수많은 수입 잼들이랑 똑같이 판매될 수밖에 없죠. 저는 이런 브랜드들을 조금 더 특별하게 다뤄줄 수 있는 유통채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 작지만 독특한 브랜드를 보존하기 위해서 29cm를 론칭한 것은 일종의 사명감이네요. 큰 시장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을 것 같은데. 사명감뿐만 아니라 니치 시장도 간파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시장을 보셨나요?
이창우 29cm 대표 : 시장을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모여있을 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가 만들면 몰랐던 사람은 알게 되고 좋아하는 사람도 더 많아질 수 있죠. 좋은 브랜드를 제대로 소개하는 채널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지금 쇼핑몰에 상품은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은 이야기죠.
슈퍼잼을 개발한 영국의 `프레이저 도허티`는 1988년생으로 14세 소년이었을 때, 우연히 할머니의 잼 만드는 비법을 배우게 됩니다. 프레이저는 기존 잼의 설탕 함유량이 높아 몸에 좋지 않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몸에 좋은 잼`이라면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에 기초해 설탕을 전혀 넣지 않고 과일로만 잼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여 브랜드로 론칭 - 29cm 발췌
탁월한 브랜딩은 마케팅(상술)보다 판타지 소설(마술)에 더 가깝다. 그래서 마케터가 소설(마술)을 제대로 쓰면(걸면) 소비자는 쇼를 넋 놓고 보다가 집단 최면에 걸린 관객이 된다.
이제 곧 다가올 2017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전 세계 연인들은 선물교환과 초콜릿을 먹으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집단최면에 빠진다. 연애 소설 속에 주인공이 되는 자기 유도 최면에 스스로 걸린다.
밸런타인데이의 유래에 대해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 밸런타인 주교가 결혼을 금지한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고 결혼식을 진행했다가 순교한 날인 2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라는 주장과 유럽의 새들이 교미하는 날짜에서 가져왔다는 주장이 있다. 무엇이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연인들이 서로 초콜릿 나누게 된 기원은 1936년 고베에 있는 제과점에서 초콜릿을 연인에게 주는 날이라는 마케팅을 했고, 1950년대에 또다시 다른 제과점에서 밸런타인데이 때 연인들을 위한 초콜릿 리마케팅을 활용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들이 새롭게 정의한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다.
그렇다면 화이트데이는 무슨 날일까? 화이트는 성인의 이름도 아니고 봄에 내리는 눈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다. 제과업체에서 초콜릿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자 이번에는 일본의 전국 사탕 과자 공업 협동조합에서 흰색 사탕의 재고 처분 및 시장 확대를 위해서 1980년에서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나섰다. 바로 그 판촉이 화이트데이다.
우리나라도 밸런타인과 화이트데이보다 더 대중적이고 화끈한 토종 밸런타인데이가 있다. (이름이 좀 거시기 하지만) 빼빼로데이다. 내 기억으로 2011년 11월 11일은 유난히 심했다. 왜냐하면, 롯데 빼빼로가 이날을 숫자 1이 6개가 겹친다는 이유로 성일 聖日(?)로 선포하고 ‘밀레니엄 빼빼로데이’라 명명하며 대대적인 광고를 했기 때문이다.
2011년 11월 11일 11시 11분 11초에 사랑을 고백받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이룬다는 소문도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11월 11일에 빼빼로를 마트에서 왕창 사서 주변에 나눠 주는 것이 이벤트였지만 11시 11분 11초에 빼빼로를 받는다면 그것은 오직 한 명에게 고백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이날은 성인成人들의 성일聖日이 되었다고 한다
집단 최면의 의도를 알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어쨌든 바로 이것이 마케터가 쓰는 대중 연애 소설이다. 혹자들은 이런 마케팅을 장사치들의 상술이라고 비난하지만 대세에 큰 영향은 없다. 마케터들은 대놓고 거짓말을 해도 그 누구도 신고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마케팅 축제는 몇만 원으로 일상의 긴장감을 풀고 조직의 화합과 용서 그리고 여인들에게는 고백할 거리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밸런타인에 이어 화이트데이가 나온 것처럼, 빼빼로데이 이후에 짜장면데이, 삼겹살데이, 사과데이와 같은 무슨 무슨 날 마케팅이 나오지만, 빼빼로데이만큼 위력적이지는 않다. 그야말로 빼빼로데이는 특정 집단의 특별한 취향을 따르는 현상인 트렌드를 넘어서 조직의 생체 리듬처럼 사회 리듬이 되어 버린 트랜스 현상이 되었다.
우리가 이런 현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브랜딩 법칙은 상품(초콜릿, 사탕, 과자)에 의미(사랑 고백)를 부여하면 아이덴티티가(사랑) 생기고, 그 아이덴티티에 문화(사람들의 약속)를 투영하면 가치(사랑 고백)가 만들어져서 결국 상징(사랑)이 된다는 것이다.
브랜드의 상징화를 보여 주는 장치는 심벌(Symbol, 이미지화된 상징)과 로고(Logo, 기호의 상징)가 있다. 먼저 빼빼로를 보면서 어떻게 심벌이 되었는지를 살펴보겠다. 11월 11일이 빼빼로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은 아니다. 성인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고 아니고 새들이 교미하는 날도 아니다. 사실 아무 날도 아니다. 평균 온도 8~10°C를넘나드는, 늦가을과 초겨울로서 큰 변화가 없는 그저 평범한 날이다. 하지만 빼빼로를 전달하고 싶은 소비자 한 명이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추가하면서 주변에서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1월 11일은 성聖빼빼로데이가 되었다. 이 과정이 상징화다. 한자어로 상징象徵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추상적인 사물을 구체화하는 것, 또는 그와 같이 나타내는 것’이다. llll 혹은 1111. 숫자 건 막대기 4개 건 간에 이것은 빼빼로데이라는 상징이 되었고 우리는 그날 무엇을 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문화로 ‘약속’해 버렸다.
브랜드에서는 한자보다 영어식 해석을 더 많이 사용하는데 심벌 Symbol의 어원은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이미지와 도형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원래가 단어는 고대에 두 가지의 미로 사용되었다. 첫 번째는 어려서 정혼하는 경우 거울을 깨뜨려 조각내고 미래에 다시 조각들을 맞춰 혼인을 완성하겠다는 의미로 사용된 Symbalein(혹은 Symbolon)이다. 두 번째는 부서진 진흙 명판 조각을 지칭하는 뜻으로 이 조각을 그룹의 구성원들이 나눠서 회의 때마다 그 조각을 다시 맞추며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그래서 심벌의 어원은 ‘모으다, 조립하다, 혹은 짜 맞추다 ’이다.
티파니는 일생의 하루인 청혼 일을 ‘연인’의 날로 정했지만, 빼빼로는 1년에 한 번씩 빼빼로를 통해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날을 정했다. 브랜드가 심벌의 첫 번째의 미인 ‘사랑의 확인’으로 사용되며 심벌이 되었다. 이런 면에서 빼빼로가 티파니보다 더 강한 마케팅으로 소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가벼운 사랑 혹은 관심을 나누고 싶다.’ 이런 마음은 누구나 가진 마음이다. 아직 빼빼로를 공동체에서 나눌 때 행복 절정의 호르몬이라는 옥시토신이 분비되는지 확인된 바 없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전 국민이 11월 11일을 절기처럼 지키고 있다면 뭔가 분비되는 게 있지 않았을까. 최고의 마케터는 인지도 상승과 판매 달성을 위해 광고 홍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설을 써서 소비자가 주인공이 되게 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마케터가 소설을 만들었다면, 지금부터는 소설이 브랜드를 만든 사례를 살펴보겠다. 먼저 소설에서 브랜드 네이밍 콘셉트를 잡아서 브랜드를 론칭해 글로벌 시장에서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가 이 글의 주인공이다. 먼저 600페이지가 넘는 이 장편소설 중에 한 부분을 보도록 하자. 그리고 어떤 브랜드일까를 생각해보자.
피쿼드 호의 일등 항해사인 그는 낸터킷 출신이고 대대로 내려온 퀘이커 교도였다. 키가 큰 열성 있는 인물로 한랭한 해안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살은 두 번 구운 비스킷처럼 단단하고 열대에도 적합한 사람으로 보였다. 인도제국에 보내더라도 그 발랄한 피는 병에 담긴 맥주같이 썩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큰 가뭄이나 큰 기근이 있었을 때나 그렇지 않으면 그 고향의 명물인 단식제가 있을 때 태어난 게 틀림없다.
무미건조한 3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육체의 군살은 말라빠져 버렸다. 그러나 이 말라빠진 몸은 결코 병마 때문도, 근심 걱정 때문도 아닌 것 같았다. 긴축이라고 해야 가장 적절할 표현일 것이다. 절대 추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맑고 탄탄한 피부는 훌륭한 옷이었고 더구나 몸에 꼭 맞게 싸여서 내적인 건강과 힘이 되살아난 이집트 사람처럼 향기를 피우며 그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금과 조금도 변함없이 극지의 눈에도 열대의 태양에도 특허 측시기처럼 견디며, 그 내부의 활력은 어떤 기후에도 훌륭한 보증부로서 일을 할 것이다.
그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본 사람은 그가 여태까지 태연히 상대해 온 헤아릴 수 없는 위난의 그림자가 아직도 그곳에 어리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침착하고 확실한 이 사람의 대부분의 생애는 웅변적으로 말하는 행동의 팬터마임이지 소리로만 단조로이 이루어진 막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토록 끈기 있게 참고 굳세면서도 때로는 그 속에 다감한 자질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다른 모든 성질을 다 흘려버리고 말 것처럼 되기도 했다. 선원으로서는 드물게 볼 정도로 양심적이고 자연에 대한 깊은 외경감을 품고 있는 그는 황량하고 고독한 해상 생활 때문에 몹시 미신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미신은 어떤 특수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지한 데서 생긴 다기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지혜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보인다. 외계의 징조와 내부의 예감을 그는 지니고 있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소설가의 묘사만으로 본다면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장면에 나온 사람은 주인공은 아니다. 만약 이 사람이 브랜드를 만든다면 어떤 브랜드가 될까? 이 브랜드의 상품 품질은 어느 정도일까? 이 사람이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는 무엇일까? 당장 이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면 어디로 장소를 옮겨야 할까? 그곳에서 어떤 음식을 주문할 수 있을까?
제리 볼드윈과 고든 보커, 제브 시글이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일등 항해사의 이름에 착안해 만든 브랜드가 바로 ‘스타벅스’다. (당시 하워드 슐츠는 아르바이트 직원이었다) 대부분 사람이 일등 항해사 스타벅이 커피를 무척 좋아한 점에서 힌트를 얻어 브랜드명을 스타벅스로 지었다고 생각하겠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이 장편 소설에서는 그 누구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창업자들은 스타벅을 좋아했을까? 먼저 창업자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제리 볼드윈은 영어교사이고 고든 보커는 작가, 제브 시글은 역사교사다. 아마 스티브 잡스가 즐겨 먹던 사과가 회사의 이름이 되었듯이 스타벅스를 창업한 세 명이 재미있게 보았던 책이《모비딕》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모비딕》의 주인공 이름으로 브랜드명을 정하지 않고 왜 일등 항해사의 이름으로 정했을까? 먼저 위에 작가가 묘사한 스타벅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놈은 내 배에 태우지 않는다.”
고래잡이를 위한 포경선임에도 스타벅은 용감보다는 겸손을 선원들에게 요구했다. 결정적으로 스타벅이 고래를 찾기 위해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에이허브와 충돌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스타벅은 배 밑창에 기름이 새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을 선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선장은 이것을 무시하고 계속 전진해 목표 지점으로 향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선주와 선원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스타벅은 갈등하고 있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은 갈등 의상 황에서 아주 명확하게 스타벅을 묘사했고, 이것은 121년 후에 브랜드의 정신이 되었다. 스타벅과 선장의 대화를 들어 보자.
“에이허브 선장.” 스타벅은 얼굴을 붉히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대담함은 이상할 만큼 외경과 사려에 싸여 있었고, 있는 힘을 다하여 그 대담함이 바깥에 조금이라도 나타나는 것을 피하려고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 있어서는 거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좀 더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젊은, 좀 더 행복한 에이허브 선장에 대해서라면, 내가 화를 냈다 하더라도 지금의 당신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악마! 그럼 자네는 감히 나를 비난할 생각을 갖고 있단 말이지, 나가라!”
“아니오, 선장, 잠깐 기다리십시오. 부탁입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선장, 참기로 합니다. 에이허브 선장, 우리는 여태까지 보다도 좀 더 서로를 잘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에이허브는 총, 즉 대부분의 남양 항해선 선실의 가구의 일부를 이루는 것에서 총알을 잰 머스킷 총을 꺼내서 스타벅을 향해 겨누면서 외쳤다.
“단 한 분의 신만이 지상을 주재하신다. 단 한 사람의 선장이 피쿼드를 주재한다. 갑판으로 나가!”
순간 스타벅의 눈은 번쩍 섬광을 발하고, 뺨은 불처럼 타올랐다. 그것을 본 사람은 정말로 그가 겨누어진 충구로부터 불꽃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격정을 누르고 조용히 일어서서 방을 나서려고 하다가 순간적으로 멈추고는 말했다.
“선장, 당신은 나에게 화를 냈지만 나를 모욕한 것은 아니오. 그러니 이런 일로 스타벅을 경계할 필요는 없소. 그저 웃고 계시면 됩니다. 그러나 에이허브 씨는 에이허브 씨를 경계하시오. 선장, 자신을 두려워하시오.”
“용감하군 그래, 그래도 복종했어. 흥, 몹시 신중한 용감이야!” 스타벅이 사라지자 에이허브는 중얼거렸다.
[모비딕]을 읽은 사람이라면 길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했을 때 고래와 선장의 싸움에서 균형점 역할을 하며 멋지게 소설을 끌고 가는 조연 스타벅을 상상할 수 있다. 스타벅이 죽지 않고 살아서 커피점을 차린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면서 아마 소설을 보며 상상한 이미지와 느낌들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릴지도 모른다. 문을 여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상징화(끌어모으기) 단계가 시작된다.
게다가 각종 매체를 통해서 들었던 ‘우리는 커피 비즈니스가 아니라 피플 비즈니스를 합니다’라는 스타벅스의 슬로건을 기억해 낸다면 과연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계승답다고 생각할 것이다. 스타벅이 항상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왜 스타벅스가 임시 고용직도 의료보험을 들어주었는지를 이해하고 이 브랜드에 대한 믿음도 갖게 된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점원들이 갑자기 항해사처럼 보이고 카페가 조타실 앞에 있는 베란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넣고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이를 위해 한 분의 고객, 한 잔의 음료, 하나의 이웃에 정성을 다한다.” -스타벅의 인간성을 닮은 스타벅스의 사명선언서
스타벅스의 창업자 세명과 지금의 스타벅스의 회장인 하워드 슐츠가 과연 소설 속 스타벅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존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비딕》을 읽고 스타벅스에 앉으면 왠지 스타벅이 만든 커피 전문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1851년에 발표된 《모비딕》 속 조연인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160년 전에는 바다에서 고래를 쫓는 에이허브 선장의 충실한 안내자였지만, 지금은 도시에서 ‘성공’이라는 고래를 쫓는 우리를 빌딩 안에 있는 자신의 응접실로 불러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고 있다.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모비딕》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만약 소비자를 소비자가 아니라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브랜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기업에서 소설가를 취업시켰다면 어떤 임무를 줄 것인가?
아마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브랜드에 없는 이야기를 사실처럼 소설로 쓰면 그것은 최악의 브랜딩이다. 그야말로 막장 브랜드의 막장 드라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브랜더가 아니라 소비자인 우리 이웃이어야 한다. 마케팅에서 우리의 이웃을 소비자 혹은 타깃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용어 자체가 우리의 이웃을 단지 소비만 하는 박테리아 정도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웃들은 우리가 만든 브랜드를 통해 단순히 소비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의 경험은 문법이고 브랜드는 단어일 뿐이다.
한때 스토리텔링을 통한 마케팅이 지금의 인문학처럼 붐인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그때보다 조용한 이유는 브랜더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웃들에게 너무나 강요해서 그야말로 물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브랜딩에 있어 스토리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그러면 브랜드의 풍부한 스토리를 만들려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 이야기들은 주로 주인공의 미션이 넘어설 수 없는 운명과 정면 대치된다. 적들이 강력하다. 위기는 심화할수록 흥미진진하다.
이는 모든 상황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투철한 가치관 때문이다. 그래야만 갈등이 증폭되면서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독자는 몰입도가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감정이입이 되어 소설 속 주인공과 하나가 된다. 기꺼이 이런 환경과 역경을 이겨낸 소설 속의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경쟁상대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면 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 세상은 더 행복해져야 하다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면 된다. 돈은 결과이고 사람이 목적이라고 인문학적 결론을 마음에 품으면 된다. 더는 ‘무슨 데이’를 만들어 소비만 조장하고 값싼 상징물을 팔지 말고 브랜드 안에 궁극의 가치를 구축하려고 하면 소비자들도 기꺼이 당신 브랜드의 소설에 동조하고, 출연을 뿌리치지 않을 것이다
29cm는 쇼핑몰이기 보다는 브랜드를 소재로 난 픽션 소설을 쓰는 작가에 가깝다.
그들의 독특한 서비스인 PT(프레젠테이션)는 브랜드 동화구연이고,
[앱 알림 서비스] 루시(Lucy)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기묘한 시간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소설의 도입부처럼 만든다.
이번 29cm의 프로젝트 다큐멘터리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작가적 관점을 가진- 착하고, 멋지고 그리고 엉뚱한 쇼핑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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