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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Oct 18. 2017

휴먼브랜드 회고록(10-1)/웍샵

자기다움(2) -활용 편

객원[客員] 에디터로

시작해서 편집장까지


나에게 글 쓰기는 인생을 건 모험이었다.



글쓰기로 자기다움 


'행동하는 자만이 배우기 마련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객원 [客손 객 員인원 원 ]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서 손님 대우를 받으며 일을 도와주는 사람



객원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객원 교수, 객원 보컬 그리고 객원 에디터가 있다. [객원]의 사전적 정의는 외부인으로서 자신의 전문 지식과 능력을 내부 조직원과 협력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었던 [객원]은 조직 내부 구성원이 풀 수 없는 어떤 문제가 있을때 치고 빠지는 일종에 해결사와 같은 개념이었다. 내공 [內工]과 포스[force]에 따라 [객원]은 천재적인 아웃사이더 Outsider에서 비정규직 사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런 [객원]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 것은 2000년도였다. 

[객원]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작위(?)를 받고 난 후에 나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모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6년 동안 패션 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했다. 내가 퇴사를 한 후에 나와 알고 지내던 패션 업계 전문지 [패션인사이트] 황상윤 발행인은 나의 패션 업계 경력을 재료 삼아 [패션 브랜드의 한계]라는 특집 연재를 써보라고 제안했다. 나는 평소부터 패션 브랜딩에 관해서 관심이 많았기에 만나는 그 자리에서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황상윤 편집장은 특집 연재 기사에 내 이름 [조태현]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당시에 나는 패션 브랜드에서 퇴사하고 비영리 봉사 단체 간사로 일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쟈칼의 이빨]라는 익명으로 패션업계의 비리에 관한 양심 투고 형식으로 특집을 쓰자고 했다.  

  우리는 특집 주제가 아니라 어떤 이름으로 나갈 것인가를 2시간 넘게 회의를 했다. 결국, [쟈칼의 이빨] 대신에 8회 연재를 할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패션 인사이트 기자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권민]. 나는 [조태현]이 아닌 [권민]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객원 에디터]로 인해서 '조태현'이 아니라 [권민]이라는 사람이 되었다. 




원래 계획은 자칼의 이빨을 가진 객원 에디터 [권민]으로 8번의 특집 기사를 쓰고 조용히 업계에서 사라지는 것이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8번의 연재는 2년 동안 90회 연재하게 되었다. 17년 동안 [권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대신에 원래 나였던 [조태현]은 사라졌다


패션 인사이트에서 90번 연재한 글을 모아서 첫 번째 책이 나왔다


  이렇게 시작한 나는 [객원 에디터 /권민]으로 살면서 <자기다움><아내가 창업을 한다><거리에서 브랜드를 배운다><블랙홀 시장창조 전략>을 포함한 15권의 책을 썼고,  [유니타스브랜드] 편집장으로서 42권의 브랜드 전문 메가북을 발행하게 되었다. 또한, 30여 개의 컨설팅과 500여 회의 강의를 하게 되었다.  


이름만 바꾸었는데 ... 이름이 바뀌었는데 ...


만약에 내가 지금까지 조태현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2개월 시한부 객원 에디터인 [권민]은 어떻게 [조태현]의 삶을 이렇게 바꾸었을까?

조태현으로 살아갈 인생이 진짜 나의 인생인가? 

아니면 권민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진짜 인생일까?


나는 [권민]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아서 나의 아들 이름을 [조권민]이라고 지었다.

권민은 인생의 손님으로서 객원이었지만, 

[권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본 17년은 가장 나답게 살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권민이 아닌 조태현으로 살았던 32년은 나의 삶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생존 법칙에 순응하고 적응되어 진화된 그렇고 그런 직장인이었다 

권민은 내 심장의 북소리를 듣고 모험을 떠난 진짜 나였다.

             

자기다움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이만큼 잘 보여주는 게임이 또 있을까?





객원 인생으로 살았던 조태현.

자기다움으로 살아온 권민. 


황상윤 발행인에게 받은 [객원 에디터 / 권민]이라는 직함을 받고 크게 감응은 없었다. 어차피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쓰고 싶었던 몇 개의 꼭지를 써서 마감시키면 권민은 사라질 것이니깐 … 

나는 [권민]은 아침에 사라지는 유령작가ghost writer라고 생각했다. 


[권민] 역할을 연극 배역으로 정한다면 내 인생에 [지나가는 행인 1] 정도였다. [권민]은 조태현의 80년 인생중에 8주 분량 밖에 안 되는 가공인물로 생각했다. [권민]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 내가 본격적으로 권민에 관해 메소드 연기(영어: Method acting)를 시작한 것은 연재 글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난 후부터였다  


 번째 연재 글에 대해 독자의 응원과 감사의 메일을 받았다. 

나의 연재글을 재미있게 보고 있고 프린트해서 직원들과 함께 보고 있다는 메일을 받으면서 5번째 연재는 6번째 연재로 넘어가지 못했다. 나는 5-1,5-2,5-3 … 보충과 추가 연재를 하기 시작했다.


패션인사이트 신문사 연재 글은 목요일에 글을 써서 금요일 마감했다. 하지만 피드백 받은 이후에 글의 완성도를 높히기 위해 더 많은 보충 자료를 추가했고  매일 저녁과 새벽까지 글을 썼다. 내가 브랜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브랜드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지만, 브랜드에 관한 전문 서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0년도 당시에는 브랜드에 관한 책이 불과 3권 정도가 나왔기에 브랜드라는 분야는 그저 심벌과 네이밍 정도였다. 외국 자료를 찾아가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브랜드 지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브랜드 전문 잡지에 관한 생각은 이때부터 하게 된 것 같다. 

객원 에디터, 그저 나는 패션인사이트 잡지에 자유기고로서 내가 아는 경험과 지식을 연재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었는데, [권민]은 나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내 안에서 일으켰다.  



돌이켜보니 원래 나는 조태현이 아니라 권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명함에는 아직 조태현이라는 옛 모습의  퇴화 흔적이 남아 있다.

       





조태현으로 태어나서 권민으로 살다

정규직 [正規職] ;정식으로 맡은 직위나 직책 


대부분 사람이 원하는 직장과 직업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든 자리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직업을 찾지만 좀처럼 그런 경우는 드물다.

넓고 길게 보면 정규직 직장인도 주인 정신(?)을 가진 객원(손님)일 뿐이다.

대기업 정규직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판단하여 갈망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착각일 뿐이다.

 

나는 8주짜리 객원 에디터를 하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나는 [권민]으로 살아 보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직관적으로 원하고 추구하는 것을 끝까지 따라간다면 어떤 인생을 살까?” 

“지금까지 나와 비슷한 사람은 많았는데, 이렇게 살아가면 이 세상에 단 한 명으로 존재하는 나를 만날까?”

"연재가 끝난 8주 이후에도 권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조태현으로서 나는 지금까지 남이 만든 삶에서 객원으로 살았다면, 

권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추구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를 찾는 모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모험 [冒무릅쓸 모 險험할 험 ]


나는 수십 년 동안 읽은 수백 권의 책은 거의 디자인, 마케팅, 경영과 관련된 번역서이다.

그래서 나의 글은 수동태와 애매한 동사 그리고 주어가 없는 번역체이다.

광고 문구와 발표 보고서는 그나마 읽을 수 있도록 썼지만, 

주어와 동사를 제대로 갖춘 문장으로 기승전결로 풀어가면 꼭 길을 잃었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만든 오타, 비문 그리고 오문의 미로 정원에서 갇혀 버린다.

글을 잘 쓰려고 글쓰기 관련한 책을 읽고 글쓰기 공식으로 글을 써보았다.

적,의, 것, 들 그리고 부사와 형용사 및 전문용어를 자제하면서 글을 써보았다.

그렇게 쓴 글은 마치 장기판에 마와 차를 버리고 게임을 하는 것처럼 어떻게 쓸지 몰라 글 속에서 방황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내가 쓴 모든 글은 초등학교 3학년이 리코더 불 때 구멍을 찾지 못해서 나오는 소음처럼 눈과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나에게 글쓰기는 모험이다. 

17년이 지나서야 내가 진짜 글을 못 쓰는 줄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편집장이 되어서 그렇게 떠난 모험을 마치지도 돌아가지도 못한다. 



지금도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17년 전 권민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쓰는 연재 글에 대해서 10번 넘게 퇴짜를 맞았다. 황상윤 발행인은 나에게 특집 꼭지를 준 것에 대해 후회하는 얼굴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나의 원고를 통째로 다른 에디터에게 넘겨주었다. 그렇게 황상윤 편집장은 내 원고를 볼 때마다 수십 번을 얼굴을 붉혔지만, 화를 내지 않고 끝까지 나의 외계어를 번역해주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패션인사이트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가 원하고 재미있어하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조태현으로서 살아갈 때는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지만, 

객원 에디터 권민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나의 길을 보았다.


2년 동안 객원 에디터로 살았던 나는 [권민] 역활을 통해 알게 된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결단을 해야만 했다. 나는 [권민]이라는 이름으로 2002년 5월 14일에 나는 [모라비안 바젤]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이 창업의 결정적인 동기가 된 것은 [권민]의 기사를 읽고 만나자고 이 메일을 보낸  민복기 대표(현재 카파 코리아 사장)와 신명은 감사 (당시 써어드데이 아일랜드 감사)가 컨설팅 오더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통해서 30여 개의 브랜드 론칭과 리뉴얼을 했다.

나는 2007년에 브랜드 컨설팅을 통해서 배웠던 지식으로 [유니타스브랜드]를 창간해서 브랜드에 관련된 약 1만 페이지에 넘는 브랜드 지식을 배우게 되었다. 



주인 [권민] 손님 [조태현]에게 알려준 이야기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때는 [조태현]으로 살면서 모험을 피했던 때였다." 


[권민]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해서, 관심 분야 찾기, 업계의 구루와 만나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기, 관련 분야의 책을 모두 읽기 그리고 전문 분야에서 전문가를 앞에 두고 강의하기 그리고 창업하기 등등.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이 많았고 낙심하고 좌절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권민]으로 살아 낸 나의 인생이었다. 

인생을 자기다움으로 살기 위해서는 신념이 필요하고 그 신념은 내가 어떤 지식을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답게 만드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일상의 중력을 벗어날 강력한 욕망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본능의 욕망이다.


하지만 일상의 습관과 생존을 염려하는 힘은 본능보다 더 강력해서 좀처럼 자신을 찾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을 사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다움]을 찾는 사람에게 지금의 인생을 버리고 

[객원]으로 모험의 인생을 살아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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