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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Aug 25. 2022

휴먼브랜드 회고록(11)/웍샵

자기다움(2) -활용 편

지극히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다. 태양 흑점을 확인하고, 북극 해수면의 상승 수치를 기록하고, 모기의 개체수 확인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 소비자에게 사과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 죽은 사람의 디지털 기록을 정리하는 사람, 고독사와 자살로 인해서 죽음의 현장을 청소하는 사람 등.  


태양 흑점을 계산하는 사람에게 흑점 관찰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를 물어보면, 근심스러운 얼굴로 최근에 태양의 특이사항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아마도 50억 년 정도가 지나면 태양이 꺼질 수도 있다고 암울하게 이야기한다.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50억 년 이후의 지구를 걱정해야 할까? 


 BBC 다큐멘터리에서 본 어떤 학자는 혹등고래를 쫓아 남극에서 북극으로 배 여행을 하고 있다. 고래가 떠 올를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주변 사람에게 너무나 아름답다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에 나보고 흑점 개수를 세고 혹등고래를 추적하는 일을 평생 하라고 한다면 할까?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산에 올라가 250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 근처에 수 억 개의 별들을 보는 직업을 가지라고 한다면 할까? 나는 못한다. 나에게는 그 일의 의미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는 못할까? 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는데 왜 나에게는 그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휴먼브랜드 회고록에서 글을 쓰는 방법은 내가 반응하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회고록 작업(글쓰기가 아니다)에서 최소의 결과물은 글이 아니라 의미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내가 태양의 흑점을 세지 못한다고 한 이유는 비천한 직업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큰 것을 가늠할 수 없고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크기를 처음으로 측정했다. 굳이 지구 크기를? 왜? 그래서 무엇을 얻으려고? 그게 어떤 의미이지? 지금도 수많은 천재들이 리만 가설을 비롯하여 수학 난제를 풀기 위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사회적 가치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브랜드를 연구하라고 한다면 좋아할까? 내가 흑점과 북극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그들도 나의 하는 일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수학자들에게 수학난제가 영적인 고민이듯이 나의 고민은 왜 비영리단체들이 왜 이렇게 힘없이 사라지는 것일까? 사회변혁과 개혁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과 역경을 택한 사람들이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였다.


의미를 부여하고 발견하고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이 질문의 대답을 하면 된다.

“나만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나만 분노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만 상상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는가?”

“만약에 생존을 위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100년 동안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휴먼브랜드 회고록의 결과는 이 질문의 대답을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의 대답으로 브랜드를 만든다.




  나는 낮은 울타리에서 그동안 생각만 했던 것을 실행하기로 했다. 

“왜 목적 지향적인 비영리 단체는 지속 가능하지 못하는 것일까?”

“비영리 단체의 생존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영리 단체 운영이 가능할까?”

“가치 지향적인 비영리 단체와 브랜드가 구조가 같지만 결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영리단체에서 영리 경영을 하면 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영리 단체의 조직 문화와 리더십은 영리 조직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비영리단체라는 개념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비영리단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비영리단체의 운영을 위한 브랜드는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가?”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분이 대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런 질문은 계속 나를 끌고 다녔다. 마치 산삼을 찾는 심마니처럼, 냇가에서 사금을 캐는 사람처럼 나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다녔다. 


행하면 알게 되고 배운다는 신념 하에 첫 번째로 했던 것은 [비영리단체 세미나]를 개최였다. 두 번째는 [간사를 강사화]라는 비영리단체의 운영이다. 세 번째는 행사 기획 전문 잡지인 [월간 큐]를 창간이다. 나는 감긴 태엽이 풀리면서 시침과 분침이 움직이는 것처럼 계획을 실행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나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그래서 비영리단체를 위한 mission for business를 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강사 라인업을 만들었고 많은 비영리 단체들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했다. 주변에 성공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개념과 해외 사례를 설명하였다. 나는 비영리단체 세미나를 2차례 진행하였다. 


미국 선교단체의 열방대학(Youth With A mission)이 하와이 코나에서 주최했던 business as mission 세미나에도 참여했다. 비로소 세계에 많은 곳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찾는 것을 많은 사람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배우고 믿는 것을 지금 속해 있는 비영리단체에 적용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두란노에서 아쉬웠던 것은 간사는 간사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설명하기가 어렵고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자신의 섬김이 자신의 성장이 아니라 희생으로 끝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간사(幹事 : 일을 맡아 주선하고 관리하는 사람)가 급사(給仕: 심부름하는 사람)가 되는 경우다. 나의 팀원으로 속해있는 7명의 간사들에게 자신이 강의할 수 있는 강좌를 기획하라고 했다. 그리고 간사들로만 구성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특히 강사 중심의 수련회 같은 대형 행사에도 모든 간사들이 자신이 맡은 강의를 하였다.


  간사들이 성장하며 전문화될 수 있도록 간사 중심의 잡지를 창간했다. 월간) 큐라는 잡지는 [행사 기획 잡지]이다. 간사들은 에디터가 되었다. 자료를 찾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자신이 일하고 싶었던 분야에서 발전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변화는 성과급이다. 간사들은 적은 월급으로 생활했지만 외부 강의를 하면서 월급보다 많은 강의료를 받았다. 이 부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강사비가 월급을 초과하는 간사도 생기면서 조직 내에서 배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비영리단체에서 보기 드물게 초과이익을 어떻게 나눌까라는 문제가 나왔지만 이것도 비영리 단체의 경영이 가지고 갈 문제였다. 


   낮은 울타리에 다니면서 틈틈이 쓴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이 탈고가 되었다. 패션인사이트의 황상윤 대표는 원고를 읽어보고 출판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나는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무엇에 영향을 받았는지에 관한 기억이 없다. 이 소설은 내가 이랜드에서 고민했던 부분을 팩트와 픽션을 섞어서 쓴 자전적 소설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그때 내가 경영했던 [문화사역 본부]에 대한 리더십을 의식했다. 그러니깐 나에게 이 소설은 [문화사역 본부장]의 대본에 가까웠다. 소설에서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고 나는 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나의 이런 역할극에 더 큰 불을 댕긴 것은 [패션인사이트]의 에디터 권민이었다. 약속된 8회 원고 중에서 3번째 원고를 마감했다. 그런데 나의 메일함에 기사를 잘 보고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1년 뒤에  EXR 브랜드 론칭 프로젝트를 나에게 의뢰하게 될 민복기 대표였다.  


  나의 원고를 잘 보고 있다는 독자를 알게 되어서 ‘갑자기’ 원고 작성에 에너지를 쏟았다. 그래서 4회 원고는 4-1, 4-2, 4-3으로 연장되기 시작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조태현이 아니라 권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나는 시점에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 원고를 읽는 황상윤 대표는 내가 쓴 패션 인사이트 기사도 모아서 책으로 출판하자고 했다. 몇 가지 사례를 넣으면 패션 마케팅 책으로서는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나는 서범석의 광고기획론 책을 모델로 내가 이랜드에서 연습 삼아서 만들었던 기획안을 추가해서 원고를 탈고했다. 그러나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책들 이랜드와 나와의 관계를 끊게 된 사건을 만들었다. 


 이랜드에서는 원고에 회사에서 발표했던 내용이 들어갔다고 법무팀에서 연락이 왔다. 요청 사항은 전량 폐기 처분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드라마틱한 내용이 많다. 결국 [패션인사이트 마케팅]이라는 책을 전량 소각이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보아도 너무나 주작 같은 이야기이다. 아침 막장 드라마에서 나오는 비운의 주인공의 복수 선방과 같은 스토리가 내 인생에서 나온다. 


나는 더 열심히 패션인사이트 원고를 썼다. 책 출간과 함께 마무리할 나의 패션인사이트 원고는 그때부터 수년을 더 쓰게 되었다. (2022년 8월 25일,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물론 그때부터 지금까지 쓴 것은 아니다. 중간에 유니타스브랜드 잡지를 발행하는 기간과 교육사업 합병 때까지 약 17년 정도는 쓰지 않다가 2021년부터 다시 쓰게 되었다. 


 내가 2007년에 유니타스브랜드라는 잡지를 론칭하기 위해서 패션인사이트와 월간) 큐라는 잡지를 2000년에 했을까? 전혀 아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유니타스브랜드라는 잡지를 발행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처음에 만든 것은 브로셔였다. 그러나 유니타스브랜드라는 잡지를 생각한다면 7년 전에 이렇게 패션 전문지 에디터와 월간) 큐의 편집장의 경험은 너무나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런 생각은 언제나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내가 2007년에 유니타스브랜드 잡지를 창간할 것을 알았다면 2000년도에 나는 어떻게 했을까? 답은 하나다. 그때보다 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회고록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오늘 지금 현재 이곳의 삶을 진지하게 살게 한다. 비밀스러운 또 하나가 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회고록은 과거를 바꿔서 현재와 미래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이 부분을 자세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이것을 [정신승리]로 폄하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회고록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람의 뇌의 순기능인지 역기능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힘들었던 시절이 그 당시에 느끼는 고통을 다소 낭만적으로 만든다. 군대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다. 

  내가 낮은 울타리에서 후회하고 있는 것은 그때 진행했던 것들은 2~3년만 더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이다. 나는 2000년 이후로는 이 분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태양의 흑점을 발견한 것은 2000년 전 중국이 시초라고 한다. 그렇게 발견한 흑점은 서양에서는 1600년도에 망원경으로 여러 명이 확인을 했다. 흑점이 태양의 주기이며 사람의 생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20세기에 밝혀졌다. 아무튼 태양의 흑점이 나의 생명에게도 영향을 미치 것이 사실인데 체감이 안된다. 


  망원경으로 태양 흑점을 발견했던 비슷한 시기에 자본주의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되면서 자유방임주의가 흑점처럼 나타났고, 자본주의 사상을 확고히 할 산업혁명이 도래하였다.  이렇게 산업 자본주의가 발전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자본주의/자유경쟁/글로벌 네트워크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인간 경제의 바탕이 되었다. 이런 결과로 지구는 쓰레기 행성이 되고, 지구 온도 변화는 상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쓰레기를 계속 만들다가 인류를 종말 되어야 하는가? 예를 들어서 인간이 옷을 만들지만 그중에서 70%는 입지도 않고 쓰레기가 된다. 


  나만 분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익만 추구하는 영리 기업으로 성장과 증가로 인해서 지구 종말은 눈앞에 보이고 있다. 이때 우리가 필요한 것은 [목적 지향의 브랜드]이다. 뜬금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산업 혁명이 합쳐진 것처럼, 소셜 미디어 세상과 맞는 브랜드가 필요하다. 


옆으로 세었다. 아래에 링크를 참고하시길 

https://brunch.co.kr/@unitasbrand/330


회고록을 쓰면서 발견된 또 다른 생명인 운명을 알 수 있다. 나의 경우를 본다면 생존으로서 조태현과 존재로서 권민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조태현은 8회 연재로 끝날 권민이라는 존재로 2022년까지 살고 있다. 패션인사이트 글을 썼다고 조태현에서 권민이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질문이라는 씨앗을 품고 있었다. 씨앗이 땅에 심겨서 어떻게 자라는지 인간은 모른다. 그냥 싹이 돋아서 나무가 된다. 내가 가진 질문이 어떻게 권민을 만들었는지를 모르겠지만, 회고하면서 변화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 지인들이 달라졌다. (바뀌었다)

 읽는 책이 달라졌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르게 보였다.

 시간에 변화가 생겼다.

 알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힘이 생겼다.  




https://brunch.co.kr/@unitasbrand/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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