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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Feb 04. 2018

기도하지 않는 죄

백부장이 창업을 한다(9)

‘기도하지 않는 죄’ 

낚시성 후킹 제목은 아닙니다.


제가 시선을 낚기 위해서 이렇게 자극적인 제목을 지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항상 기도하지 않음의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도하지 않은 저의 악함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성도인 우리가 염려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처럼,

가장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열매를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막11:24, 새번역)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마21:22, 새번역)


[받은 줄로 믿고 구하는 기도] 그리고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기도] … 기도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응답받지 못했을 때’ 우리는 예수님에게 실망할 것 같아서 처음부터 이런 담대한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주님에게 상처받기 쉽지 않아서 우리는 이런 기도를 스스로 절제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그리고 예수님에게 낚이기(?)싶지 않아서 이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게 자기 신앙에 대해서 돌아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기도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매우 소극적이지만 적극적인 방법으로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더 심하게 말한다면 예수님을 허풍쟁이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이 [무엇이든지 기도하라]라고 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먼저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그 무엇에 넣었을까요?

카니발을 타고 있는데 벤츠를 타고 싶은 것도 그 무엇일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에 대해서 명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 15:16, 새번역)


우리는 포도나무가 아니라 가지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의 꿈은 포도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갈망하는 그 무엇 …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그 무엇이든지에 관한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교회 사람을 중보 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알기 원하며, 부르심과 하늘의 상속을 깨닫고 그리고 일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신앙인이 예수님 안에서 [무엇이든지] 구하고 싶은 그 무엇이 분명히 나와있습니다.

우리의 그 무엇과 예수님의 그 무엇에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면 …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14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이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들은 우리가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요일 5:14-15, 새번역)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을까? 무슨 기도를 하였을까? 제자들은 기도했던 그 무엇은 무엇일까? 사도바울이 기도제목에 있던 그 무엇은 나의 그 무엇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의 기도제목을 정리해서 사도 바울이라면 이 기도제목을 주님께 기도했을까를 점검하면 나의 기도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안에서 주님을 위해서 그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응답받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할 때, 예수님의 이름의 권위로 기도하는 것입니다.만약에 하나님께 이런 담대한 기도를 하지 않은 체 죽어서 하늘에 올라간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달란트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22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24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25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26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마 25:22-26, 새번역)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를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이 땅에서 생산성을 높이자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보면 천국에 가는 사람은 모두 이 땅에서 자신의 달란트로 일을 잘해서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죽을 때 [누가]만 남았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는 모두 분열되고 사라지기 일보직전이었죠. 베드로는 어떤가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열매를 맺지도 못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말세에 주님은 우리를 평가하실 때 은행 잔고와 신용평가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믿음의 생활이라고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일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 있으므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저는 달란트의 비유를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열매 맺지 않았을 때,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변명할 수 있습니다.

주님에게 기도응답받지 못한 자신의 가난한 삶에 대해서 주님을 원망하고, 주님은 기도응답에 좀처럼 들어주지 않는 분이라고 주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의 모든 과일을 먹을 수 있지만,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제약 조건이 없습니다.


물과 성력으로 거듭난 우리에게 이 땅에서 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성령님도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육체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몸을 하나님의 성전답게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몸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라 우리의 몸의 건물주일 뿐입니다.

우리는 월세와 같은 십일조를 내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이루어질 줄 알고 기도하는 기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감히(?)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다고 무엇이든지의 기도의 샘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할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에게 임하기를 기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잘났기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주기도문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참으로-감히-놀랍게도’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자기가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싶다고 한다면 … 얼마나 뻔뻔스럽고 대담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 나라 그리고 뜻을 이루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이런 우리는 육체면에서는 기껏해야 [하루의 양식]만을 구하는 존재입니다. 시험과 유혹에 건져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 무엇이든지 기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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