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창업을 이끄는 힘, 창업력(9)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아내(비평가)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 다수의 마스터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내 꿈은 일류 야구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365일 중 360일 정도 아주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 스즈키 이치로 6학년 일기
이치로는 초3 때부터 중3 때까지 매년 363일을 훈련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보다 많이 연습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김연아, 강수진, 조수미, 박지성, 유재석...
야구선수, 무용가, 가수, 개그맨, 배우... 이런 직업은 모두 연습/훈련을 한다.
그런데 왜 직장인들은 훈련하지 않을까?
예비 창업가들은 왜 창업 훈련을 하지 않을까(못할까)?
예를 들어, 100명의 창업자에게 [시장조사력]의 정의를 물어보면, 100명 모두가 다르게 정의한다.
그 이유는 아이템과 시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과 아이템이 같더라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정의한다. 마치 운동선수가 모두 운동선수다운 몸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들의 운동 종목에 맞게 근육이 다르게 발달되어 있는 것처럼, 창업자의 13개의 창업력은 뼈대에 해당하는 원칙은 갖지만 창업자마다 근육(창업력)이 다르다.
창업가들이 경험한 창업력을 비교해서 들어보자
창업에는 연습이 없다
물론 한번 실패한 것을 연습 삼아 또 도전을 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연습치고는 대가가 혹독하다.
창업 연습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창업자의 경험과 지식을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창업 훈련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1990년 중반 당시 패션의 사관학교라는 곳에 근무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성공한 선배의 출근 시간이었다. 동료들은 9시에 출근했지만, 선배는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사이에 출근했다.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일을 시작하려면 4시간 정도를 혼자 보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뭘 할까?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분명 책이나 신문, 아니면 관심 분야의 일을 정리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을 지켜보다가 선배의 그 기분을 알고 싶어서 나도 새벽에 출근해 봤다. 어제 밀린 일을 정리하고 관심 분야의 책을 읽었다.
가장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10시간의 업무를 준비하기 위해서 1시간을 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잡생각을 하거나 10분 동안 잠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면서 골치 아픈 문제를 풀기 위한 나만의 솔루션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하는 습관이 들자 습관대로 일 하기보다 먼저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과 또 다른 면을 살피면서 일하게 되었다.
일종에 스포츠 선수들이 훈련하는 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ing)과 비슷한 훈련이다. 이런 훈련을 통해
1997년 9월 10일에 나는 나의 철학을 세우게 됐는데 그것은 ‘남을 돕기 위해서 전문가가 되자’였다. 그때부터 창업할 의도는 없었지만 그런 시간과 고민이 있었기에 컨설팅, 출판사, 잡지사, 교육회사를 차례대로 창업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 훈련[ 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ing)]은 내가 새로운 역할극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게 했다.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이슈는 ‘오너처럼 일하자’였다. 지금은 오너가 아니면 절대로 오너처럼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간혹 오너보다 더 오너 같은 직원들도 있기에 이 판단은 보류 중에 있다. 여하튼 당시에는 오너처럼 일하고 싶어도 오너가 아니어서 도대체 오너처럼 일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1991년 3월에 직장인으로서 첫 월급을 받던 내가 2001년 5월 25일에는 월급을 주는 창업주가 되었다. 10년은 직원으로서 10년은 사장으로 일했기에 나는 열심히 일하는 직원과 오너처럼 일하는 직원을 구분할 수 있다. 오너처럼 일하는 직원은 오너밖에 없다. 열심히 일하면 좋은 오너가 될 수는 있지만 오히려 직원들의 성장을 뺏는 오너일 수도 있다. 따라서 ‘오너처럼 일하라’는 ‘열심히 일하라’와는 다른 말이다.
대체로 직원들은 월급보다 많이 일하면 화를 내고 적게 일하면 기뻐한다. 그래서 신의 직장은 월급은 많이 받고 일은 적게 하는 회사다. 하지만 많은 인생 선배들의 조언에 의하면 가장 위험한 인생은 모험을 하지 않는 인생이다. 대기업이 주는 가장 안전한 시스템에서 살던 사람이 가장 불안한 인생을 맞이하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보았다. 따라서 직장인으로서 창업주처럼 일하려면 모험을 해야 한다. 물론 오너처럼 일하면 안 된다. 바로 ‘위장 취업자’처럼 일해야 한다.
위장 취업자는 직원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핵심 정보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혹시 오해할까 봐 첨언하자면 위장 취업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단순히 자기의 경력 관리용으로 다니면 나중에 자신의 이력서가 걸레처럼 너덜거리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 가장 힘든 일은 창업자가 모두 도맡아 한다. 창업자는 그 일이 힘들기 때문에 사람을 고용하고 일을 분배한다. 따라서 창업자가 홀로 겪은 위험하며 바닥 같은 일은 웬만한 직원의 정서로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위장 취업자라면 기꺼이 창업자의 지혜를 얻고 싶어서 가장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위장 취업자의 목적은 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창업자만이 발견한 ‘핵심가치’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장 취업자처럼 일한 다음에 핵심을 알았다면 사장처럼 일해야 한다. 당시 영업부였던 내가 맡은 매장은 미금, 구리 그리고 마석에 있었다. 서울에서 떨어진 상권이었고 그리 큰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매장이었다. 이 세 개의 매장주들은 신입사원인 내가 자신의 매장을 맡게 되자 영업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담당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브랜드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영업팀장은 나에게 이참에 악성 매장주를 다른 매장주를 찾아보자고 했다.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6개월 후에 내가 맡은 매장은 성장률 5위 안에 드는 매장이 되었다. 내가 한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출퇴근을 매장으로 했고 판매사가 되어 그들의 매출을 올려 주었다. 결국, 매출은 안정권에 올랐고 매장주로부터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태도는 돌변(?)했다. 당시 영업부는 소사장제도라고 해서 자신이 3~5개의 매장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나는 세 분의 매장주를 모시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장님, 우리 회사가 소사장제도를 도입했으니 이제부터 저를 사장님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럼 우리는 뭐지?” 매장주가 물었다.
“미금 이사님, 마석 이사님 그리고 구리 이사님이 되는 거죠. 제가 소사장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사장처럼 대우해 주세요.”
그렇게 내가 사장이 된 후부터 매장주들의 전화가 두렵지 않았다. 그들의 불편은 보고였고 그것은 내가 해결해야 할 프로젝트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로 사장이 되어서 월 매출 3,000만 원짜리 매장 3개를 경영하게 된 것이다. 물론, 매출도 올랐고 그 해 나는 신입사원으로서 영업부 교육을 맡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컨설팅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동일했다. 먼저, 나는 그룹의 회장이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나에게 오더를 주는 클라이언트는 갑이 아니라 나의 계열사라고 생각했다. 계약이 끝난 뒤에도 나는 클라이언트의 회사를 방 문해 돈을 받지 않고 전략서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계약 종료 이후에도 클라이언트사가 성장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익혔다. 만약 내가 을이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계약 종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했을까? 그렇게 얻어진 결과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극단적인 사례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창업주의 롤 모델을 설정하고 이름까지 바꾸는 예도 있다. 바로 내가 그랬다. 본래 나의 이름은 조태현이고 창업과 동시에 바꾼 이름은 권민이다. 2000년에 나는 패션회사를 퇴사하고 문화 사역 및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패션인사이트라는 패션 전문지로부터 패션 마케팅에 관한 원고를 청탁받았다. 마감 전날까지 원고를 써 보냈지만 편집부장이 전화를 걸어서 매우 난처한 입장을 설명했다. 패션 전문지 기사를 패션과 관계없는 출판사 편집장이 쓰는 것은 모양새가 우습다는 것이다. 나는 원고를 고치지 않는 대신 패션인사이트의 객원기자로 설정하고 이름을 ‘권민’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2년 동안 연재를 했다. 그 연재를 보고 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컨설팅 의뢰가 있었고 모라비안바젤 컨설팅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일종에 나를 휴먼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창업을 하면서 나에게 스스로 붙여 주었던 ‘권민’이라는 이름이 좋아서 나의 아들 이름을 조권민이라고 지었다. 32세에 창업한 이 브랜드 컨설팅회사를 글로벌 회사로 만들고 싶었지만 문제는 나의 학력, 경력 그리고 능력이었다. 기존에 조태현으로는 도저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브랜드에 관해서 매우 통찰력이 있으며 다방면의 브랜드 케이스 지식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의 목표는 브랜드로서 ‘권민’이 되는 것이다.
창업을 했다고 창업주의 정신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또한, 창업주의 창업일이 무조건 원년 元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창업주라고 해도 창업 자체로는 존경받지 못한다. 사람들이 창업주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배울 만한 가치가 있을 때만이다. 아버지라고 모두 아버지가 아니며 창업주라고 모두 창업주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당신의 창업 스토리 자체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창업주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한 줄로 정리한다면,
창업을 하기 전에 창업주의 태도, 위치, 고민, 갈등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은 훈련과 연습일 수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창업주 백신을 맞는 것과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KX1YtvFZOj0
기자가 95세인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하루에 6시간씩 연습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파블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내 연주 실력이 지금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1 창업이란 무엇인가
2 창업과 동시에 가져야 될 명성, 브랜드
3 아버지학교, 창업자 학교 : 여기를 읽고 있습니다.
4 창업의 시작과 완성은 휴먼브랜드
1 창업을 여는 시장조사
2 나를 찾는 시장조사
3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에서 익숙한 것을 찾는다
4 시장조사 순례기
5 매장 탐험기
6 보이는 것 과보이지 않는 것
1 찾는 지식과 쌓는 지혜
2 브랜드보다 더 큰 인물 되기
3 친구와 동업하기, 동업해서 친구 되기
4 정신을 소유한 아이디어, 전략
5 창업의 힘
[아내가 창업을 한다]에서 발췌 및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