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장을 발견하는 시장 조사력, 창업력(17)
시장조사는 벤치마킹할 좋은 매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체 게바라 Che Guevara 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남미 게릴라 지도자다. 아마 체 게바라를 사상으로 만나기보다는 길거리에서 라운드티에 프린트된 얼굴로 많이 보았을 것이다. 1951년 23세의 체 게바라는 친구와 오토바이로 남미를 여행하면서 불공정으로 생긴 저소득 국민들의 참담한 생활을 보았고 이후 평범한 의사에서 위대한 혁명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는 여행 중에 《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라는 책을 쓰게 되었고, 그것은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가 쓴 혁명일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본다. 세상과 마주 서는 법을 배우는 자신을.
지극히 작은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눈을 부릅뜨는 자신을.
그렇게 세상과 마주 서서 부릅뜬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자기만의 가슴에 담아내려는 자신을.
중요한 것은 내가 본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는 보통 여행자들이 보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여행 지도에 나와 있는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누구든 한 도시를 그런 식으로는 알 수 없다.”
창업을 위한 본격적인 시장조사에 앞서서 기득권의 불공평하고 부패한 사회에 대항하는 게릴라 지도자를 소개한 이유는 이제부터 당신은 체 게바라 식으로 혁신을 일으키는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시장을 뒤집어엎어 성공하지 못하면 죽는다!). 창업을 준비할 때는 잘 몰랐겠지만, 창업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가 보면 기존의 매장이 얼마나 단단하게 자신들의 영역을 잘 구축하고 유지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물론 이들이 불공정하고 부패한 매장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런 탄탄한 시장 상황에서 당신이 창업해서 기존 매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매장(브랜드)을 오픈한다고 했을 때 고객들은 당신을 해방군처럼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지금 ‘약간’ 불편하지만 만족하고 있고, ‘다소’ 불만족스럽지만 참고 있으며 그리고 신경에 ‘거슬리지만’ 그런대로 인내하면서 기존 브랜드와 다니던 매장들을 별 탈 없이 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당신은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만한 이슈를 찾을 수 있을까?
예비 창업자가 성공적인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더 좋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기업들에 의해 시장에서 강점당하고 있는 고객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지금까지 억눌렸던(?) 자신의 고객을 위해서 말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방법으로 존재하던 기존 브랜드를 공격하고, 반드시 시장을 되돌려 놓아야만 한다는 혁명군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혁신을 일으켜서 기존의 것을 바꾸어야 할 자신만의 창업(원뜻: 나라를 세운다)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우습지도 않은 극단적인 상황 설정 없이 시장조사를 나서면 필자가 예전에 대기업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무심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굳이 내가 스타트업을 해서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시장조사를 하면 할수록 남들이 내가 할 것을 다 하고 있다는 패배의식 때문에 더 비참해진다. 1%의 감정이 99%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처럼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스며드는 부정적 사고를 막기 위한 방법은 대항하는 것이다.
특히 명예퇴직, 정년은퇴, 취업하지 않고 바로 창업을 한 청년 그리고 가정주부 창업자들이 시장조사 이후에 심각한 후유증을 앓는 것을 자주 보았다. 자기가 왜 창업을 해야만 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창업은 사회가 주는 거대한 허탈감이다. 다시 체 게바라의 관점으로 돌아가서 시장조사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는 시장조사를 통해 자신을 본다. 세상과 마주 서는 법을 배우는 자신을.
지극히 작은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눈을 부릅뜨는 자신을.
그렇게 세상과 마주 서서 부릅뜬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자기만의 가슴에 담아 내려는 자신을.
중요한 것은 내가 본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는 보통 역세권 매장들을 찾는 그런 창업자들이 보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상권 지도에 나와 있는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누구든 시장을 그런 식으로는 알 수 없다.”
당신은 차고에서 우주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을 만들자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생각을 해야만 기존의 시장 구조를 다르게 볼 수 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시장조사를 한다면 풀만 보일 것이고,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 손에 잡히는 아이템을 찾는다면 먹는 음식점만 보인다. 하지만 시장에서 자신의 창업으로 혁명을 한다고 결정한 순간 ‘매장’이 보이지 않고 ‘사람’이 보인다. 바로 그 사람(미래 고객)은 자신의 창업으로 인해 함께 혁명 브랜드를 만들어 갈 혁명군인들로서 당신의 브랜드(매장)가 시장에 나왔을 때 기존의 질서를 함께 무너뜨리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매장(브랜드)이 왔음을 알려 주는 나팔수다.
따라서 시장조사는 벤치마킹할 좋은 매장(브랜드)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신기하고 탁월한 매장은 시간이 지나면 노후화되고 누군가에 의해 계속 복사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그런 매장에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와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이유’들이다. 그 이유 속에서 당신은 창업을 통해 혁명적 이슈를 만들어 내야 한다.
혁명가의 정신으로 무장한 창업주들은 시장조사를 할 때 시장에서 투쟁하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거나 삶의 한가운데서 있는 자신을 찾을 수 있다. 그동안은 소비자로서 오직 ‘소비’의 주체가 되었지만 이제 창업자로서 자신이 ‘생산’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삶의 극적 전환이다. ‘내가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다시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그제야 당신은 기존 질서에 억눌려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해방전선 가운데 서면 왜 자신이 거리에 나와 작은 메모장과 사진기를 들고 무엇을 찍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찾아낼 수 있다. 창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일어난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도 이겨 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을 변혁시키는 혁명가가 아닌 시장의 대세를 따르는 무리가 되면 결국 창업은 ‘창조’가 아니라 ‘모방’으로서 도리어 시장만 크게 하는 역할만 충실히 하고는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앞서 보았던 브랜드 월과 브랜드 박스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불만’을 ‘비전’보다 구체화시켜야 한다. ‘왜 금연하는 호프집은 없는 거지?’ ‘왜 샐러드는 꼭 피자와 파스타를 시켜야만 먹을 수 있지?ʼ ‘콩으로 고기 맛을 낼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콩고기를 구워 먹는 집은 없는 거야?’ ‘집에 수십 개의 넥타이가 있지만 정작 매는 것은 5개인데 혹시 넥타이를 빌려주는 곳은 없을까?ʼ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재미있으면 그 책을 중고로 구매할 수 없나?’ 등. 아마 이런 질문을 게릴라가 아닌 기존 시장 체계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면 왜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느냐고 되물어 보거나 아니면 돈이 안 되는 생각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런 요구를 하는 소비자들은 ‘별난 소비자’로 분류된다. 그러나 시장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 브랜드들은 이렇게 이상하고 돈이 안 되는 불만을 혁신으로 재창조했다.
할인마트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K마트와 월마트를 생각하면 알 수 있듯이 할인마트는 원래 외곽에 있는 대형 할인 유통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백화점보다 더 편리한 쇼핑 시스템과 더불어 동네 중심부에 있다. 우리에게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고 몇 시간(어떤 곳은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수 있는 배짱이 생긴 것은 자신을 ‘도심의 오아시스’라고 정의하는 스타벅스가 이미 기존 질서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지금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기존 휴대폰 시장에 반기를 들고나온 인터넷과 컴퓨터 회사들이 혁명으로 얻어 낸 소비자 이익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브랜드는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들고 항거한 브랜드들이다.
창업 전선은 또 다른 취업 전선이 아니다. 여기에는 스펙이 필요없고 오직 스페셜만 필요하다. 그 스페셜은 세상의 기준들이 말하는 경력과 지식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소비자라고 부르며 시장의 기능적 역할로만 치부하던 우리의 이웃을 나의 가족처럼 사랑하겠다는 스페셜한 태도가 내가 만들 매장, 메뉴, 브랜드를 스페셜하게 만든다. 기존 세력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무 엇인가를 한다면 주식시장에서 (시쳇말로) ‘개미’처럼 창업 이후 의 삶을 살게 된다.
체 게베라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 투쟁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암살당했지만 그는 가난한 남미의 빈민들과 생활하면서 자신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를 알았고 그 모습이 선명했기에 자신의 인생도 선명했다.
체 게베라식, 그러니까 게릴라식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찾아보자. 돈 잘 버는 매장만 들러서 그들의 치장을 베끼기에 급급하지 말고 오히려 그런 매장에 없는 사람들이 시장의 어디에서 불편함을 참으며 살고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이런 것을 경영에서는 경영의 궁극적 목표라 하는 ‘고객 가치 창조’라고 한다. 또 다른 말로는 혁명이라는 단어와 가장 유사한 단어인 ‘혁신’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창업은 기존 시장의 브랜드들이 마땅히 다루어야 할 부분을 간과하던 것에서 의미를 발견해 가치를 투입하고, 그동안 자신을 억누르던 모든 시스템에 투쟁하여 기존 질서에 억눌려 있는 나의 미래 고객들을 해방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열광의 조건이다.
창업에서 중요한 것은 난관을 예견하고 피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승리는 준비된 자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행운이라고 말한다.
브랜드를 런칭하거나 창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이고 그 힘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 (창업)이라는 단어의 자리에는 원래 (탐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남극점을 최초로 정복한 ‘아문센’이며, 이 문장 역시 아문센이 탐험 성공 이후에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필자가 단어만 바꾸어 옮겨 놓았다. ‘창업’과 극지의 ‘탐험’이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영역에 있는 것처럼 단어를 바꾸어도 어울려 보이는 것은, 둘 다 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의 치열한 사투이기 때문이다.
탐험급 시장조사는 지역별로 국내 시장조사와 해외 시장조사로 구분된다. 대기업에서 준비하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해외 시장조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에게도 해외 시장조사는 사치가 아니다. 필자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잠은 비행기 기내와 민박을 이용하면서 런던, 파리, 뉴욕 그리고 도쿄까지 8일 동안 시장조사를 한 적이 있다.
해외 시장조사는 배낭 여행과 같은 방법이라도 상관없으며 중요한 것은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외국 시장과 국내 시장과의 편차를 분명히 느낄 수 있으며 두 나라 사이에 없는 것을 찾으면서 숨어 있는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 이다. 해외 시장조사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아직 없는 것, 우리 나라에 있고 해외에도 있지만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것, 우리나라에 있고 다른 나라에도 있지만 여기에 없는 것, 우리나라 과거(현재)에는 있지만 여기에는 없는 것, 우리나라의 미래에 있을 것, 오직 여기에만 있는 것을 분별해야 한다. 이런 분별력은 상당한 숙련과 경험이 필요한 것으로서 본능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은 아니다.
창업을 위한 시장조사는 기본적으로 2년은 해야 한다. 계절 변화, 트렌드의 변화, 시장 전체의 변화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시장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지가 아니라 극빈에 가까운 배낭 탐험 시장조사도 2년 동안 최소 4번은 다녀와야 한다.
해외 시장조사는 특정 국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경우와 아이템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필자처럼 런던만 5년 동안 100여 차례 다닌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독특한 퓨전 라면 집을 런칭하기 위해서 라면이라는 창업 주제를 가지고 일본, 뉴욕, 런던, 파리를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세상을 바꾼 지식, 예술, 기술, 정신, 혁신 그리고 혁명은 모두 극단에서 시작되어 극단으로 넘어갔다. 자신을 극단으로 몰고 가야만 다른 극단을 볼 수 있다. 물론 해외 시장조사를 극지로 가라는 뜻은 아니다. 극지 탐험을 한다는 마음으로 시장조사를 계획해야 한다는 뜻이다. 극단적(?)인 시장조사의 방법을 소 개하겠다.
아이템이 결정된 예비 창업자라면,
(A안) 국내 시장조사 → 해외 시장조사 → 국내 시장조사 → 해외 시장조사
아이템이 결정되지 않은 예비 창업자라면,
(B안) 해외 시장조사 → 국내 시장조사 → 해외 시장조사 → 국내 시장조사.
A안과 B안이 모든 산업과 사람에게 맞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순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효과적인 시장조사를 위해 고민하면서 터득한 개인적 노하우에 근거한다.
한국에 처음 온 북유럽의 핀란드 사람이 한국을 알기 위해 서울에서는 어디를 가야 하냐고 물어 본다면 어디로 안내해야 할까? 인사동과 용인민속박물관, 한강 유람선, 홍대 앞, 남산타워, 남대문, 그리고 뜬금없이 나오는 이태원. 보통 이 정도의 관광 코스를 얘기할 것 같다.
그런데 여기가 과연 한국과 서울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곳인가? 많은 독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다. 나는 먼저 핀란드 사람에게 서울의 무엇을, 또 한국인의 어떤 계층을 알고 싶은지 물어보겠다. 핀란드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장면을 보고 싶다거나 한국 사람들을 제대로 알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코스를 만들 것 같다.
먼저 할인점에 입장하기 위해서 평일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하는 양재동 코스트코를 시작으로 신사동 가로수길의 카페, 도산공원 근처에 있는 커피빈과 스타벅스, 아침 출근 시간의 전쟁을 볼 수 있는 2호선 투어, 낮 12시의 명동과 저녁 7시의 명동, 성형외과 특구라고 할 수 있는 압구정동과 신사동을 소개하겠다. 강남 신세계와 명동 신세계의 미묘한 차이점도 설명하겠다. 아마 이 정도면 한국에 꽤 강한 인상을 받을 것 같다.
뭔가 찾을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에 이끌려 해외 시장조사를 가면 한국을 처음 찾은 핀란드 사람이 겪을지도 모를 실수처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릴 수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떠나는 관광지 여행, 유럽 알기 여행, 일본 알기 여행은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적인 지식을 정리하거나 확인 혹은 첨가하는 효과만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므로 창업을 위한 외국 여행이라면 사전에 자신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만 괜찮다면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C안이다.
(C안) 해외 시장조사 → 국내 시장조사 → 해외 시장조사 → 국내 시장조사 → 해외 시장조사
자신이 만든 브랜드 월과 브랜드 박스에 기초해 직관력(다음장에 자세히 나온다)을 검증해 보는 것이다. 말 그대로 검증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해외 시장조사에서 뭔가를 얻어 오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에 심한 괴리감 혹은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국내 시장조사와 해외 시장조사를 반복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을 소개하겠다.
Step 1. 한국에서 해외 시장조사 ‘연습’을 하라
무작정 해외로 떠나서 시장조사를 하면 안 된다. 일단 해외로 나가면 시차와 낯선 환경, 들뜬 마음 때문에 한 이틀(사람에 따라서 4일까지) 정도는 흥분 상태가 지속된다. 그래서 제대로 시장조사를 할 수가 없다. 또한 무작정 떠난 사람들은 무엇을 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사진만 찍어댄다. 이런 사람은 떠날 때쯤 되어서야 생각 없이 보낸 시간이 잘못됐음을 알아 차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에서 먼저 해외 시장조사(?)를 연습하면 좋다. 예비 창업자가 서울 사람이라면 시장조사 목적으로 전혀 가보지 않던 도시(대구 동성로나 부산 서면 등)를 정하고 거기서 해외 시장조사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비록 해외와 다르지만 두 차례 정도의 연습을 하면 해외 시장조사를 나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장조사를 시작할 수 있다. 또한, 뉴욕으로 시장조사를 간다면 뉴욕 컨셉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찾아서 한국에 있는 뉴욕 스타일을 연구해야 한다.
Step 2. 한국에서 먼저 시장‘조사’를 하라
Step 1이 ‘찾는 연습’이라면 Step 2는 실제로 ‘조사’하는 것이다. 사실 해외에서 유행하는 것들은 대부분 한국에 다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해외로 시장조사를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있더라도 대부분 전체보다 부분적인 것이 많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해외에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려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한국에 도입 적용된 것들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장조사나 해외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구석구석 파악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해외 시장조사를 떠나기 한 달 전 부터 계획을 세워 한국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완전히 숙지해야만 한국에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이 해외에서 무엇을 벤치마킹해서 자신의 것에 적용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국내 것을 완전히 알아야만 해외의 것을 온전히 볼 수 있다.
Step 3. 관련 책을 모두 보거나 모두 보지 않거나
여행 정보서를 한 권만 읽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전부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감정과 느낌이 배어 있기 때문에 읽다 보면 저자의 관점을 흡수하게 된다. 일종의 선입견이다. 이것은 날것 그대로를 느끼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런 때는 아예 읽지 않는 게 낫다. 특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생생한 첫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정보를 얻는 시장조사라면 관련된 책은 모두 읽고 가야 할 것이다. 그때는 정보에 대해 느낌보다는 해석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같은 지역에 2회 이상 시장조사 계획이 잡혀 있다면, 첫 번째 시장조사 때는 아무 정보 없이 가기를 권한다. 시장 조사에는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 모두가 필요하고 그 융합이 필요하다.
Step 4. 3번 이상 가야 할 곳도 있다
대부분의 관광은 한 번이면 족하다. 다시 찾았을 때는 처음에 받은 감동만 못 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도 가급적 많이 보기 위해 모든 코스는 한 번으로 끝낸다. 그렇지만 반드시 세 번 이상 가야만 보이는 곳이 있다. 그때는 그들의 부족한 부분까지 보인다. 처음 볼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신선해 보인다. 두 번째 보면 정말 신선한 것만 신선해 보인다. 세 번째 보면 그들의 단점과 보완할 약점도 보인다. 시장조사를 통해 남의 것을 얻거나 배우는 것도 가능하지만, 자신의 것 가운데 무엇이 좋은지도 찾아낼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하는 시장조사는 무리가 있다. 일단 시차 적응도 하지 못한 상태이고 대부분 빡빡한 일정이기 때문에 사진기 부터 들고 나가서 아무 개념 없이 무조건 찍어대기 쉽다. 보통 한번 찍으면 또다시 보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친다. 따라서 첫날은 사진을 찍지 않고 보는 데 집중한다. 필요하다면 메모지는 들고 나간다. 사진은 둘째 날 같은 장소에 가서 찍는다. 그리고 셋째 날 갔을 때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살펴본다.
Step 5. 먼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아야 한다
해외 시장조사를 하면 이국적인 건축에 매혹당하게 마련이다. 건축과 도시를 집중적으로 보려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일단은 도시의 풍경보다는 세세한 컨텐츠부터 보아야 한다. 사람만 보기, 신발만 보기, 윈도만 보기, 심벌만 보기, 컬러만 보기 등 자신이 온 특정 목적에 부합하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공통 패턴이나 규칙, 특성을 발견 할 수 있다. 즉 현지의 트렌드나 스타일, 생활방식을 읽을 수 있다. 이틀 정도는 이렇게 하나만 보다가 3일째부터는 전체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들의 문화와 그들을 감싸고 있는 생각이 보인다.
Step 6. 시장조사는 기록이다
카메라는 DSLR 카메라를 사용하고 렌즈는 광각에서 망원렌즈까지 다양한 화각으로 찍을 수 있으면 좋다. 우천 시나 긴급 촬영을 위해 휴대하기 좋은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챙기고, 촬영이 제한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 휴대폰 카메라도 챙기면 좋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고 그림을 잘 그려도 흐릿한 사진 한 장보다 정확할 순 없다. 예전에는 14시간 동안 녹음이 가능한 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거리의 소리까지도 녹음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사 진과 함께 소리까지 들으면서 그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Step 7. 쌍끌이 방식의 탁월함
테마별로 시작해서 거리별로 중복으로 조사한다. 일단 백화점별, 명품 브랜드별, 박물관별로 따로 본다. 그다음에 거리에 나와 있는 매장별로 모두 훑어본다. 종횡을 가로지르는 시장조사는 대단한 중노동이다. 하지만 일단 테마별로 보아야 관점과 패턴을 읽을 수 있고, 거리에 있는 매장을 모두 보아야만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업계나 종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 衣 ·식 食 ·주 住 ·휴 休 ·미 美 ·락 樂 에 해당하는 산업군은 이렇게 해야 큰 그림과 그 안에 숨어 있는 그림을 모두 찾을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더욱 절실히 이 방식이 요구된다. 예술, 디자인, 아이디어, 상품들이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에 무조건 길바닥만을 훑고 다녀서는 뷔페식당 가서 배불리 먹었지만 뭘 먹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부닥치고 만다.
Step 8. 해외 시장조사에서도 항상 ‘왜’와 ‘어떻게’에 집중하라
현상은 복잡하다. 그러나 법칙은 단순하다. 시장은 복잡하다. 하지만 욕구는 단순하다. 해외 시장에서 신기한 상품은 우리 눈에는 특허품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일상품이다. 그저 그들의 욕구와 욕망, 필요를 반영하고 있는 상품이다.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은 뭐지?’라는 관점보다는 ‘이것이 왜 여기 있지?’ 라는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필요하면 학생이나 관광객으로 가장해 그 상품의 기원과 출처를 물어 보는 것도 좋다. 같은 질문을 한 가게에서 한 명에게만 물어서는 안 되고 여러 곳에서 5명 이상에게 충분히 질문해 보는 것이 좋다. 시장조사의 궁극적 목적은 ‘그들은 이런 욕망과 욕구를 이런 상품으로 대치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까?’라 할 수 있다.
Step 9. 진짜 짜릿한 맛을 주는 의외성
하루 정도는 스케줄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지도를 잠시 배낭에 집어넣고 그냥 걷는 것이다. 크고 깊은 산에서도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에는 야생 동물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관광객과 시장이 몰려 있는 거리에는 ‘팔릴 물건’만 있다.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누구도 가지 않은 낯선 길에 들어섰을 때 백과사전에서도 보지 못하던 괴상한 동물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진정 새롭고 특별한 것과 조우할 수 있다. 그것을 만나야 한 다. 우연은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단, 이 방법은 치안과 교통 이 확실한 곳에서만 사용하길.
Step 10.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정보를 조심하라
현지에 사는 한국인의 정보를 지나치게 믿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거부할 필요도 없다. 첫 여행이거나 시장조사를 하는 경우에는 그들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지 안내에 숙달된 가이드라면 핵심 상권(관광 코스와 구분이 안 되는 지역) 코스만을 간결하게 알려 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초보라면 자신이 아는 곳만 가르쳐 줄 것이다. 진정 보고 싶은 것은 보지 못하고, 결국 수많은 한국인들이 거쳐 간 코스만 보거나 아예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시장조사의 기본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 현지인이 알려 준 코스는 참고와 확인용으로 삼는 게 좋다.
북극에서는 어떻게 길을 찾을까. 나침반과 지도는 어떻게 써야 할까. 눈으로 덮인 대지를 방향을 잃고 빙빙 도는 나침반을 가지고 헤쳐갈 수 있을까. 지구 자전축 위에 있는 북극성은 도움이 될까. 예전에는 늘 진북만을 가리키는 자이로컴퍼스를 사용했는데 요즘은 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을 사용한다고 한다.
GPS는 위성을 통해 위치를 파악하는 장치다.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 세 대의 위성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대개 다섯 대의 위성에서 알려 주는 고도, 경도, 위도로 위치를 파악한다. 시장조사를 위해 런던 한 곳만 가는 것은, 위성 한 대만을 사용하는 GPS로 북극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과 같다. 북극 여행은 목숨을 담보로 한 모험이지만, 시장조사는 결코 무모한 모험이나 막연한 행운에 맡겨서는 안 된다.
북극 여행을 한다면 주변이 온통 얼음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아야 할까? 무턱대고 떠나는 해외 시장조사는 얼음들만 보는 북극 여행과 똑같다. 수많은 브랜드로 둘러싸여서 모두 비슷비슷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해 입국 심사관 앞에 줄을 서서 시장조사 기간을 돌이켜 본다면 비슷비슷한 얼음 모양처럼 브랜드들도 그렇게 떠오를 것이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해외 시장조사가 목숨을 건 북극 모험(창업 실패)이 되지 않도록 필자의 시장조사 노하우를 소개하겠다.
하라주쿠에서 시작해서 뉴욕, 그리고 런던으로 이어진다. 혹은 런던에서 시작해서 뉴욕을 거쳐 하라주쿠에서 끝이 난다. 비용과 시간이 허락된다면 파리와 밀라노, 상해, 홍콩도 거친다. 브랜드 하나를 런칭하기 위해 이런 코스로 시장조사 여행을 두 차례 정도 마치고, 최종 점검을 위해 런던에 다시 방문한다. 이렇게 약 3개월을 투자한다. 꼭 들러야 하는 매장만도 1,300여 곳. 이곳을 모두 보아야만 만들려는 브랜드의 컨셉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조사를 잘못하면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자초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장에 쏟아져 나온 비슷한 것들은 어딘가에 진짜가 있거나, 진짜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베낀 것들이다. 창업하게 될 매장(브랜드)은 차별성이 생명이지만 잘못된 조사로 인해 오히려 실패를 기획하는 시장조사로 전락할 수 있다. 시장조사에서 만난 성공 브랜드의 성공 패턴을 알아내 새로운 매장(브랜드)을 창조하는 것이 창업주에게는 성스러운 잉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개의 성공 브랜드만 보고 와서 그 성공 포인트들을 제각각 가위질한 후 브랜드를 만들면 프랑켄슈타인 브랜드가 탄생한다. 프랑켄슈타인 브랜드는 컨셉도 없고, 테마도 없고, 메시지도 없고, 가치도 없고, 출신도 모르고 그저 소리만 질러대는 괴물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것만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필자에게는 해외 시장조사를 할 때 특별한 영감을 주는 GPS 급 매장이 몇 개 있다. 그 매장은 관광객과 기업 마케터가 볼 수 없는 외진 곳에 있다. 그러니까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성배(아이디어)가 숨겨진 장소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가 영감을 받는 이 매장은 나의 외장하드(?)로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시장조사 마지막 날에 동료들은 긴장을 풀 겸 회식 내지는 연극을 보러 가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혼자서 그 매장을 방문하여 부족한 영감을 채워 넣는다. 해외 시장조사가 얼음만 보고 돌아오는 북극 여행이 되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모델이 될만한 GPS Global Positioning Store 를 찾아야 한다. (계속)
창업력 연재 순서
1 창업이란 무엇인가
2 창업과 동시에 가져야 될 명성, 브랜드
3 아버지학교, 창업자 학교
4 창업의 시작과 완성은 휴먼브랜드
2 창업의 창創
찾고, 구하고 그리고 두드리면 열린다
1 창업을 여는 시장조사
2 나를 찾는 시장조사
3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에서 익숙한 것을 찾는다
4 시장조사 순례기 : 여기를 읽고 있습니다.
5 매장 탐험기
6 보이는 것 과보이지 않는 것
3 창업의 업業
먹고사는 생계가 아니라 살고 먹는 삶을 위한 프로젝트다
1 찾는 지식과 쌓는 지혜
2 브랜드보다 더 큰 인물 되기
3 친구와 동업하기, 동업해서 친구 되기
4 정신을 소유한 아이디어, 전략
5 창업의 힘
위의 내용은 [아내가 창업을 한다]에서 발췌 및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