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2)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다.”
혹시 당신은 지금 상상하고 있는 시장이 곧 나타날 수 있다고 믿는가? 믿는다면 곧 보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시장의 상품들은 불과 2, 3년 전만 해도 상상의 시장에 있었던 상품이다. 어떻게 미래의 시장을 볼 수 있을까?
필립 코틀러는 “모든 비즈니스 전략은 마케팅에서 출발하고, 또한 모든 마케팅은 시장조사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케팅의 바이블처럼 읽히고 있는 《미래형 마케팅》에서도 마케팅 경영관리 과정의 첫번째 단계를 ‘조사 research’로 꼽고 있다. 이렇듯 조사가 마케팅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에 대해 그 누구도 반론하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브랜드가 나름대로 체계적이고 심층인 마케팅 조사를 거쳐 브랜드를 만들어 내지만 모든 브랜드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여러 이유 중에 하나를 소개하겠다.
사전적 의미로 ‘발견’이란 남이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먼저 찾아내는 것을 의미하고 ‘발명’이란 그때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 따위를 새로 생각해 내거나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매일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경우 그 결과를 ‘발명’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발견’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인간은 인간의 능력으로 볼 수 없는 범위에 있는 물체를 보기 위해 현미경과 망원경 같은, 작은 것을 크게 볼 수 있는 장치와 멀리 있는 것을 가깝게 보기 위한 장치를 발명하였다. 분명한 것은 렌즈를 통해서 보이는 것은 그것이 아주 작거나 멀리 있어서 단지 인간의 능력으로 잘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지 사실은 원래부터 존재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는 이상 세상의 모든 발명과 발견은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발명자의 재능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발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듯 발명과 발견은 종이의 앞 뒷면과 같은 밀접한 사이다. 마케팅 처지에서 보면 발견자는 ‘Researcher’이고 발명자는 ‘Marketer’라고 말할 수 있다. 훌륭한 탐색자가 되지 않고는 훌륭한 마케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위의 이론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내가 정의하는 시장조사의 정의는‘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에 관한 시중에 나온 책이나 자료를 살펴보면 대부분 ‘조사를 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정성적, 정량적 조사의 방법론이 나오고 문항지를 작성하는 요령이 나온다. 하지만 조사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내용은 조사하는 방법이 아니라 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 무엇’ 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고, ‘그 무엇’을 통해 소비자와 시장의 욕구가 발견되어 진다. 마케팅 전문지의 특성상 1차적인 시장조사 (거리 조사, 매 장 조사)를 자주 하는 편이다. 전문적인 시장조사 경험이 없는 두 신입 에디터에게 다음과 같은 모의시험을 해보았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 명동, 이대 앞, 이렇게 세 군데의 주요 상권을 지정해 주고, 갑작스러운 추위가 찾아온 늦가을 어느 날 시장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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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행인을 대상으로 평일 하루, 주말 하루씩 해서 이틀 동안 두루 살펴보고 유행 경향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중 한 명에게만 몰래 반년 이전에 발표되었던 이번 겨울 시즌의 유행 경향 자료(아이템, 컬러, 소재 등)를 숙지하게 하였다. 자료를 보지 않은 신입 에디터가 가져온 결과는 단순히 나열에 불과했고, 반면에 유행 경향을 미리 알려준 연구원이 가져온 결과는 조사 대상자의 어느 정도 체계적인 분류와 올 시즌의 예측까지 언급이 된 자료였다. 두 신입 에디터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후자 에디터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렌즈를 빌려준 것이었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에는 여러 개의 렌즈가 들어가게 되는데 많게는 수십 개의 렌즈가 있는 것도 있다.
여기 세 개의 렌즈가 있다.
첫 번째 렌즈는 시야를 넓게 보여주는 렌즈다. 흔히들 ‘오목 렌즈는 사물을 작게 보여준다’라고 착각을 한다. 오목렌즈는 사물을 작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넓게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정해진 시각 안에 사물을 넓게 보기 때문에 작게 보일 뿐이다. 망원경으로 사물을 보면 멀리 있는 것을 가깝게 볼 수 있지만 거꾸로 보면 보다 넓은 범위를 볼 수 있다. 오목렌즈는 조사 대상을 넓게 보고 탐색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자료조사, 정량적 조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만일 정량적 조사 기법으로 의류브랜드를 예를 들어 조사한다면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이 브랜드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얼마나 많이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얼마나 많이 이 브랜드를 갖고 있는가?
-얼마나 자주 이 브랜드를 사용 하는가?
두 번째 렌즈는 보고자 하는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볼 수 있게 하는 렌즈다. 볼록렌즈는 사물을 크고 자세하게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볼록렌즈를 사용하면 햇빛을 이용하여 종이를 태울 수도 있다. 볼록렌즈를 조사기법에 비유한다면 ‘정성적 조사 기법’을 들 수가 있다. 정성적 조사란 ‘무엇을, 왜, 어떻게’에 답하는 조사다. 의류브랜드를 예를 들어 조사한다면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브랜드를 왜 좋아하는가?
-이 브랜드를 어떻게 좋아하는가?
-어떻게 하면 이 브랜드가 좋아질 수 있겠는가?
세 번째 렌즈는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렌즈이다. 단순히 측정으로 얻을 수 없으며 오랜 경험을 통한 학습된 직관에 의해 가능하다. 브랜드가 성공하느냐 성공하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바로 이 세 번째 렌즈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기인한다.
만일 사람에게 제3의 눈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제3의 눈’의 존재를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태아가 2개월 정도 되었을 때 형성되는데 그것은 형성되자마자 바로 퇴화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두뇌 안의 완두콩 크기의 송과체로 되어 소위 ‘퇴화한 눈’ 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밖에 송과체의 전면에 눈의 구조가 있으며 빛의 명암과 색깔을 분별하는 단백질이 있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실제로 우리의 눈은 밖으로 나온 뇌라고 한다.
제3의 눈이 있다고 해도 이미 ‘보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또 하나가 더 있다고 해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기존의 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역을 볼 수 있는 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파충류에게도 ‘제3의 눈’이 있고 빛과 자기장에 모두 아주 민감하고 초음파와 저주파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태양 빛은 신경 계통을 통하여 송과체로 전송되어 오고 초음파와 저음 파도 감지하므로 파충류는 지진과 화산의 폭발 등 자연재해에 아주 민감하다.
이렇듯 제3의 눈은 단순히 보는 기능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보는 능력을 말한다. 절의 벽화와 불상의 앞이마에는 모두 ‘제3의 눈’ 나타내는 표시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눈에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타심 telepathy 과 먼 곳을 보는 요시 clairvoyance 등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은 정신적 수련을 통하여 이러한 신기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마케터들에게 제3의 눈은 무엇일까. 바로 제3의 렌즈를 통해 볼 수 있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그것이 바로 인사이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학습된 직관이다.
손자는 그의 병법에서 ‘정찰에 투자한 시간은 거의 낭비가 없다.’
라도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보았을 때 브랜드 런칭 성공에 있어서 시장조사와 설문조사는 90% 이상의 중요도를 차지한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10%는 무엇인가?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는 고전적인 방법인 설문조사와 F.G.I, 경쟁분석, 샘플분석, 일대일 면접 등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다. 더욱 확실하고 입체적인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동시 다발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 보조 인지율부터 시작해서 객단가 구매 선호도까지 무조건 조사한다고 브랜드 런칭의 성공 요소가 드러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개괄적인 정보들은 학습된 직관과 관찰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다양한 조사와 데이터는 ‘정답’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정답에 가까운 방향은 제시할 수 있다.
그 정답에 가까운 조사가 바로 경쟁 브랜드 조사이다. 대부분 자신이 런칭할 브랜드를 조사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같은 가격과 같은 시간이라면 경쟁 브랜드를 조사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 왜냐하면 시장의 흐름은 선두 브랜드와 경쟁 브랜드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신규 브랜드 런칭에 있어서 자신이 타깃으로 정한 소비자를 조사하는 것보다는 경쟁 브랜드의 약점과 소비자의 불만을 조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시장 성숙기에 있는 브랜드들은 자신의 고객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확인 조사를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의 잦은 마케팅 공격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어떤 마케터는 조사를 통해서 브랜드의 상황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얻는 것에 그치지만 어떤 마케터는 조사를 통해서 시장 주도권을 얻는다. 왜냐하면 시장조사는 경쟁 브랜드의 약점을 계속 자극하면서 경쟁 브랜드의 기존 방향을 흔들어 버릴 수 있는 마케팅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조사의 본질은 ‘조사’가 아니라 ‘주도권 쟁탈’이라고 할 수 있다.
300페이지가 넘는 시장조사를 했다는 이유로 브랜드 런칭을 허가받은 것은 아니다. 마케터들은 수많은 채널을 통해서 얻게 된 조사 자료를 상황에 맞게 재창조(마케팅)해야 한다. 상황에 맞게,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케팅의 지혜는 소비자 니즈의 해독과 적용에 있다.
소비자 보고서에서는 수많은 욕구가 어지러운 숫자나 정렬된 순위로 나와 있다. 이것을 해석할 때 비로소 마케팅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상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브랜드를 런칭하는 마케터들에게 필요한 10%의 능력은 바로 예지력(미래를 보는 예언의 능력)이다. 이 예지력을 높이기 위해서 마케터들은 조사를 통한 학습된 과거의 지식을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직관력으로 런칭 전략을 기획해야 한다. 학습된 직관력, 바로 조사의 누적에 의한 검증 그리고 훈련만으로 쌓을 수 있는 비즈니스 강자들의 성공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