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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수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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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Nov 23. 2019

자기다움에서 예수다움으로(9)

숨은 그림 찾기/같은 그림 찾기/ 틀린 그림 찾기, 나의 그림 찾기  


이 그림에는 어떤 그림이 숨겨져 있을까요?


숨겨져 있는 물건을 무엇인지 모르고 1분 안에 찾아보자. 시작!!!!


숨은 그림 찾기와 틀린 그림 찾기 


 한때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숨은 그림 찾기와 틀린 그림 찾기로 자신의 IQ 및 각종 두뇌 능력 수준을 확인하는 테스트 게임이 있었다. 짧게는 60초, 길게는 3분 동안에 그림 안에 숨겨진 물건이나 같은 그림 두 개를 보면서 다른 부분을 찾는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이 테스트를 하면 항상 상위 2% 혹은 아이큐 150을 넘겼다.  중년에 발견한 나의 놀라운 잠재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을 열심히 찾아서 풀고 기뻐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었던 이유는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같은 상위 클래스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잠재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와 함께 상위 2%에 해당하는 천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심심풀이 잠재 능력 발견으로 시작했지만 나는 천재가 분명히 아니었다는 헛웃음과 씁쓸함으로 나를 찾게(만나게) 되었다. 3분 숨은 그림 찾기와 틀린 그림 찾기를 통해 ‘내가 천재일 수도 있다’라는 망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천재였다는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자긍심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너는 이것만 풀면 천재처럼 뭐든지 할 수 있어!” 


긴장했던 문제를 쉽게 풀면서 갑자기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서 먹으라는 뱀의 속삭임이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다. 그림 찾기 프로그램이 뱀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처럼’되고 싶은 욕구가 환청으로 들린 것이다. 나는 내 아이큐를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분 만에 아이큐 150 천재가 되었다는 것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기기만의 죄성이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원죄 심리를 이용해서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가방을 들고 있으면 너는 가장 섹시하고 트렌드해 보인다. 이 슈트를 입으면 지적으로 보일 거야. 너의 성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런 럭셔리 자동차가 필요하지.  너의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는 이 정도의 시계를 차고 있어야 해.’  세상은 돈만 주면 매장에서 3분 만에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 먹었던 선악과는 이 땅에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돈으로 환전되었다. 




숨은 그림과 틀린 그림, 숨은 인생과 틀린 인생 

  물건을 그림 안에 숨기는 사람은 그림을 먼저 그린 다음에 숨길 물건을 정한다. 숨길 물건을 별도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그림 위에 그린다. 숨어있는 물건은 원래 그림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림 전체를 보면서 숨은 물건을 찾기 어렵다. 그 때문에 큰 그림을 분할해서 보면 숨어 있는 물건을 빠르게 찾을 수 있다. 틀린 그림 찾는 방법도 비슷하다. 두 개의 그림을 전체를 보면서 찾는 것보다는 분할해서 두 개의 그림을 확인하는 방법이 쉽다. 이 방법을 배우면 기계적으로 3분 안에 모든 그림을 찾을 수 있어서 아이큐 150(?)은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인생은 숨은 그림 찾기와 틀린 그림 찾기와 비슷하다. 자신의 인생에 숨겨진 행복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인생은 보물 탐험이 된다. 물론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신상 득템을 찾는 쇼핑 관광 같은 인생부터 에베레스트 등반까지 다양해진다. 어떤 사람은 일상에서 감사를 통해 숨은 행복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남들이 숨겨놓은 세상의 것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기도 한다.

 자신의 인생을 틀린 그림 찾기처럼 사는 사람은 숨은 그림을 찾는 사람보다 더 힘든 인생을 살 게 된다. 틀린 그림을 찾는 사람은 남과 다르게 살기 위해서 자기를 바꾸는 인생으로 모든 기준은 남보다 틀림(다름, 나음)에 달려있다. 자기 안에 두 개의 다른 그림을 비교하는 사람은 더욱 비참하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꿈의 그림과 현실 그림이 틀린 것을 계속 찾는 비교와 결핍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결국 인생을 어떤 그림을 보느냐에 따라 숨은 인생 살기와, 틀린 인생 살기가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떤 그림 찾기를 선택해야 할까? 이 질문의 대답을 생각하기 전에 중요한 신앙 성찰을 해야 한다. 나의 그림(비전과 소명이라고 부른다)은 내가 그리는 것일까? 주님이 주신 것일까? 기독교인은 내가 그린 그림 안에서 숨은 그림과 틀린 그림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그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그림이다. 따라서 질문을 다시 고쳐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숨은 그림을 찾으라고 하실까? 아니면 틀린 그림을 찾으라고 하실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그림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마 13:44, 새번역)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먼저 주님의 숨은 그림을 가지고 일상의 보물을 찾아보자. 먼저 힌트를 말한다면 그림에서 숨어 있는 보물을 찾는 능력은 아이큐가 아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숨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숨은 뜻을 알아야 한다.

 먼저 ‘밭에 숨겨 놓은 보물’을 생각해보자. 만약에 내가 보물을 숨긴다면 밭에 숨길까? 내가 보물을 숨긴다면 생명을 걸고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나 남들이 절대로 가지 않는 위험한 곳에 숨겼을 것이다.

 주님께서 보물을 숨기기 위해서 선택한 밭은 농부가 항상 땅을 파고 뒤집어엎는 곳이다. 사람들도 식물을 가져오기 위해서 출입이 잦은 곳이다. 만약 주님께서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사람의 심리와 밭에는 보물이 없다는 인식의 허를 찌르기 위해 밭을 숨기는 장소로 택하셨다면 탁월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천국이 왔다’라고 선포하신 주님께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천국을 숨기지 않으셨을 것이다.

 3살 자녀와 숨바꼭질을 해보았는가? 그렇다면 밭에 보물을 숨겨 놓은 하나님 마음을 알 것이다. 아이들과 숨바꼭질은 적이 나를 찾지 못하도록 위장하여 숨는 은폐와 엄폐가 아니다. 그 반대이다. 아빠는 아이들이 찾을 수 있는 곳에 숨는다. 아빠는 아이가 어떤 동선을 가지고 어디부터 아빠를 찾는지를 알고 있다. 만약에 코앞에 숨어 있는 아빠를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아빠는 작은 소리를 내어서 아이가 아빠를 찾게 해 준다.

 이처럼 하늘나라의 숨져진 보물은 일상에서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밭이다. 보물이 있는 밭은 우리의 평범한 일터와 삶터이다. 그 밭은 들판처럼 멀지 않다. 하나님 나라가 밭에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빨리 주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밭에 숨겨진 보물을 ‘어떤 사람’이 발견했다고 하였다. 그 어떤 사람은 누구일까? 밭에 숨겨진 보물을 찾았다면 분명 농부가 땅을 개간했을 것이다. 왜 주님께서는 어떤 농부가라고 말하지 않으시고 ‘어떤 사람’이라고 말했을까? 숨은 그림을 찾은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7 일흔 [두] 사람이 기쁨에 차서, 돌아와 보고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1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19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차서 이렇게 아뢰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

(눅10:17-21, 새번역)


그 어떤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다. 어느 정도로 어린아이일까?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명을 보내면서 늑대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런 양 같은 사람에게 전대, 자루, 신발도 가져가지 말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라고 했다.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은 그렇게 했고 다시 돌아와서 주님 명령에 순종한 결과를 보고했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잠깐, 주님은 분명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시면서 이들을 파송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다. 이리가 양을 두려워했고 복종했다.  왜 주님은 처음부터 이럴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을까? 만약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이름을 가지고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말했다면 사역은 어떻게 흘렀을까?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복음을 전파하는 대신에 서로 강한 귀신을 찾아서 쫓기에 바쁘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양 같은 제자들이 이 사건으로 들떠있을 때, 현상을 기뻐하지 말고 하늘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기뻐하라고 하셨다. 예수다움으로 완성된 자기다움을 기뻐하라고 하셨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똑똑한 사람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 드러내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밭에 숨겨준 보물은 우리가 세상 살면서 즐거워하며 소망하고 상상하는 그런 보물이 아니다. 그 보물은 하늘나라다. 그 보물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복음이다.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하려는 똑똑한 사람’에게는 하늘나라는 숨은 그림이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고 계획과 방법을 세운다. 이런 똑똑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쉬운 은혜는 숨은 은혜이다. 보이지 않고 소유할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다.  우리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런 사람은 하늘나라를 절대로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찾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똑똑한 사람이 보기에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 곧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역지(밭이라고 부르는 일터와 삶터)에서 하나님이 나라가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주라고 하였는데 제자들은 귀신까지도 복종한다고 즐거워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자신이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스스로 드러내신다.  말씀(밭) 안에 보물(복음)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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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 국자, 압정, 가오리연, 도토리를 찾아보자. 

1분안에 ...이렇게 숨겨져 있는 그림을 알면 바로 찾을 수 있다. 





인생에서 보물, 예수님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찾지 않고 다른 것을 찾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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