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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Nov 30. 2019

자기다움에서 예수다움으로(10)

숨기시고 숨어계신 하나님을 찾다

이 세상은 하늘나라가 숨겨진 그림 찾기 그림판이다. 

예수님께서 살짝 보여주신 하늘나라 숨은 그림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마13:24, 새번역)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마13:31, 새번역)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마13:45, 새번역)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마13:47, 새번역)

"또 하늘나라는 이런 사정과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마 25:14, 새번역)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셨던 비유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다. 비유와 적용이 너무나 평범해서 하늘나라를 상상하는 것이 힘들다. 무엇보다도 하늘나라가 세상의 법칙과 문법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좋은 씨를 뿌리고, 겨자씨처럼,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 그리고 어부들과 종들의 일 가운데서 [하늘나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늘나라에서 오신 예수님은 하늘과 이 땅을 살면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지만, 하늘나라는 주로 인간이 만든 판타지 영화로 보았던 나는 적용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세상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창조 작품이다. 때문에 세상과 하늘나라가 같은 법칙에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 하늘나라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하늘나라가 밭에 숨겨진 보물이라면 왜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그렇게 숨기셨을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그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적혀있다.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진실로 주님께서는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 45:15, 새번역)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일을 밝히 드러내는 것은 왕의 영광이다. (잠 25:2, 새번역)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자칫 인간의 실수를 체크하는 잠복근무 경찰로 오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빌립의 대화를 들어보자.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요 14:7-9, 새번역)


예수님께서는 숨어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온 땅에 충만하시고 우리 눈앞에서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눅12:24, 새번역)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 10:29, 새번역)

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마 6:28-30, 새번역)


예수님은 까마귀를 먹이시는 하나님, 땅에 떨어져서 시장에 팔려 가는 참새, 들에 핀 백합화 그리고 아궁이에 불쏘시개 사용될 들풀을 가르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하신다.  그렇다. 우리가 숨어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이 없기 때문에 우리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숨어서 일하지 않고 우리의 모든 일상을 주관하신다.


예수님은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숨바꼭질에서는 숨어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것은 반칙이지만 성경에서는 은혜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알려주셨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숨어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 6:6, 새번역)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종교생활은 사회지위를 알려주는 특권 문화였다. 시장 앞에서 기도하고, 누구나 알아보는 금식하고 있는 얼굴로 다니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을 주변 사람에게 알려주었으며 그리고 길게 기도했다. 예수님은 이런 종교적 행위는 하나님과 상관없다고 하셨다. 우리가 숨어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방법은 요란한 종교행위가 아니라 혼자서 기도하는 것뿐이다.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면서 하나님에게 집중할 때 숨어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하여 보신다. 그리고 우리 입술에 나오는 기도를 들으신다.


 ‘밭에 숨겨 둔 보물’, 하나님은 우리가 찾기 쉬운 곳에 자신의 보물을 숨겨 두셨다. 하나님께서 밭에 숨겨둔 보물을 얻고 싶은가? 먼저 밭이라고 할 수 있는 골방에 들어가자. 그리고 하나님이 이미 묻어 두신 기도 응답을 찾아보자. 내가 어디에 있든 상관이 없다. 그곳이 직장이든 집이든 상관없다. 아무도 없다면 땅을 파라(기도하라)


하나님은 숨어계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가 되는 시간을 기다리신다. 그리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시며 자신이 숨어있는 곳을 알려주신다. 그곳은 골방이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하늘나라는 숨은 그림 찾기 그리고 다른 그림 찾기가 아니다. ‘같은 그림 찾기’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늘나라의 그림을 먼저 보자.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물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2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곁으로 불러서,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18:1-3, 새번역)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작은 자를 섬겨야 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그리는 그림과 다르다. 어쩌면 지금 이 세상에서 그려지는 모든 그림은 하늘나라의 그림과 다른 그림, 아니 틀린 그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과 같은 관점으로 세상에서 하늘나라를 본 사람이 있다. 이 분은 내가 쓰려고 하는 자기다움 우리다움 그리고 예수다움의 롤모델이고 또한 앞으로 내가 남은 인생의 기준을 이분으로 정했다. 참고로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믿음 이스라엘에서 최고라고 하셨다. 바로 자신의 하인을 위해서 주님께 말씀으로 치료를 요청한 백부장.


 백부장은 숨어계신 메시아, 하나님 아들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 위에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예수님과 같은 그림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이 세상은 하늘나라가 숨겨져 있고, 믿음의 눈으로 숨겨진 하늘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그가 본 하나님 나라를 말하기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들어 보자.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마 7:11, 새번역)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한다면, ‘악한 부모일지라도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준다. 하물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앞에 구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시겠는가?’ 세상의 그림과 하늘나라의 그림이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지는 말씀이다. 백부장도 이런 믿음으로 하늘나라를 보았다. 그는 예수님과 같은 그림을 보았다.


또 '보아라.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눅17:21, 쉬운성경)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찾지 못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말씀에 대해서 런던에서 몸으로 깨달은 적이 있다. 런던과 한국의 교통 방향은 완전히 반대다. 우리가 우측 보행과 운전이라고 한다면 영국은 좌측 보행과 운전이다. 그래서 영국 건널목에 가면 항상 우측을 보고 건너라는 표시가 있다. 몸은 런던에 있지만, 생각과 근육은 서울에 있다.

 비록 몸은 땅에 있지만, 하늘의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고, 나에게 죄를 범한 사람을 용서하고, 나의 강점으로 타인의 약점을 섬기고, 의를 위해서 살며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돕는 것이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셨다.

목숨을 위해서 빵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셨다. 세상이 주는 명예보다는 하나님만을 섬기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시험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 내셨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안에 사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마 13:24, 새번역)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마 13:31, 새번역)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마 13:45, 새번역)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마 13:47, 새번역)

"또 하늘나라는 이런 사정과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마 25:14, 새번역)


씨를 뿌리는 사람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나 일까? 아니면 예수님일까?

그 씨는 나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천국의 은혜일까?

겨자씨는 나일까? 아니면 천국의 은혜일까? 겨자씨를 뿌리는 사람은 나 일까? 주님일까?

좋은 진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은?

바다에서 잡혀서 올라오는 고기는? 그 고기를 건져 올리는 사람은?

주인과 종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 겨자씨를 뿌리는 사람, 진주를 구하는 상인, 고기를 건져올리는 사람 그리고 자기의 종을 불러서 재산을 맡기는 어떤 사람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땅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예수님의 다른 비유를 생각해보자. 밀을 뿌렸는데 가라지가 자라난 밭의 비유, 농장 주인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그것은 모두 인간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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