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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Dec 25. 2019

자기다움에서 예수다움으로(12)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si vis vitam, para mortem /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주일 저녁때 일주일 동안 묵상했던 말씀 정리하고 기도하다가 죽고 싶습니다.”

나의 기도이다. 그래서 나는 늘 주일 저녁이 되면 항상 긴장된다.


 만약에 내가 언제 어디서 죽는지 알게 된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1968년10월 28일에 태어났다. 만약에 80세가 되는 2048년 10월 30일에 죽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의 생활은 어떻게 바뀔까? 30년 남은 인생이 길게 느껴지지만, 몸 상태를 생각한다면 15년 정도가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시간일 것 같다. 그래도 30년이나 남아서 조급한 마음은 없다. 그런데 10년 남았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 10년이라는 시간은 무엇을 하고 남겨주기에는 짧게 느껴진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획하지 않고 무엇을 하지 않을까를 점검할 것 같다. 그렇다면 5년 남았다면 무엇을 할까? 아마 6개월 단위별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것 같다.


 이제 5개월 남았다면 무엇을 할까? 5주 남았다면? 아니 5일 남았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아마 5일 남았다면 할 일이 너무 많아지거나 아니면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일단 인터넷 회원 정리, 메일 포맷, 페이스북도 정리할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쓰고 있는 브런치도 정리할 것 같다. 얼마 되는 유산이 있다면 그것도 정리해야 할 것 같고 공인 인증 해제와 본인 확인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다가 꼬박 며칠을 보낼 것 같다. (아마 이런 것을 정리하다가 심장병으로 더 일찍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끝으로 나의 생명이 하루 남았더라면 무엇을 할까?


  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과 인사를 할 것 같다. 마지막 3시간 정도는 아내가 준비한 마지막 만찬을 할 것 같다. 하늘나라에서도 미역 소고깃국을 먹을 수 있을까? (아마도 육식은 없을 듯, 다른 생물의 살(단백질)을 먹지 않을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예전에 있었던 추억을 기억하고 나누거나 아니면 미처 서로 용서하지 못했던 과거의 일들을 용서할 것 같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으고 장차 일어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과 계획을 설명하지 않으셨다. 그저 한 끼의 식사를 하면서 그들과 마음을 나누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다. (눅22:15, 새번역)


나의 부모를 선택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아버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언제 어디서 죽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매일 죽음을 통해서 나는 예수다움이라는 부활을 살 수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따라오라고 하셨다.


24 그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마16:23-24, 새번역)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눅9:23, 새번역)


나는 여기까지 글로 쓸 수 있다. 지금부터 쓰는 글은 경험하지 못한 상상에 불과하다.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진 짐을 자는 자신에게 오라고 하신 다음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오라고 하셨다. 자신의 짐과 자기 십자가를 구분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거운 짐 위에 자기 십자가 얹어 놓고 살게 된다. 내가 들고 있는 무거운 짐은 세상 염려이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더 잘 살고 그리고 내 소망처럼 살 것인가에 관한 염려가 나의 무거운 짐이다. 그 무거운 짐을 버리고 다시 지어야 할 십자가는 가벼운 짐이 아니라 내가 죽어야 하는 사형 틀이다. 그러니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죽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자기 십자가를 이렇게 간증을 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 2:20, 새번역)


바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갔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의 부활로 마지막 삶을 살았다. 바울 사도는 그렇게 했다면 그의 편지를 읽고 있는 나는 어디에 무엇을 들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이 내려놓으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을까? 아니면 십자가와 함께 들고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자기 십자가를 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구레네에서 온 시몬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혔을까? 아니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경하고 있는가. 이처럼 확신이 없는 이유는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부인이며 자기다움이다. 주님의 삶을 내 육체에서 경험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이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어떻게 자기 일을 하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나에게 잘 못 한 사람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신 일을 찾고 기도하고 행동하며 그리고 예배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기 십자가의 삶, 곧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방금 열거했던 모든 일은 내가 싫어하는 일이며 남들도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십자가 그 자체다.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영광스럽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려면 너무나도 많은 경우의 수가 생기고 선택도 복잡해진다. 반면에 ‘어떻게 예수님처럼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면 단순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복잡하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모두 나를 위한 계획이 많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 복잡하고 어렵고 위대한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나도 그 무엇인가를 누려야만 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삶,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의 삶을 살기로 하면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것이 하찮게 여겨질 것이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 삶에서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죽음과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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