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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Jul 19. 2020

자기다움에서 예수다움(13)

시몬에서 베드로까지

베드로라는 이름을 예수님께 받았던 시몬은 예수님의 제자중에서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주님의 질문에 하나님이 알려주신 대답을 해서 하늘나라 열쇠까지 받은 제자였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16:16-19, 새번역)


하지만 베드로는 그 이후에 예수님을 3번 부인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3번 확인을 하시면서 다시 그를 주님 사역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하늘 열쇠와 버금가는 복을 주셨다. 그 복은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알려 주신 것이다.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18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1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21:17-19, 새번역)


베드로의 십자가는 [주님의 양을 돌보는 것]과 [죽음으로 영광돌리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알게 된 베드로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의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문단에 이렇게 적혀있다.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

(벧후3:8-10, 새번역)


베드로가 그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내가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생각과 믿음이 염세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너무나 할 일이 많고 이루지 못한 그 일로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나는 주일 저녁 기도회때 나의 죽음을 위해 기도한다. 


  감히 인용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생각이지만 나의 주일 저녁 기도회는 겟세마네 기도처럼 진지해진다. 

먼저 일주일 동안 주셨던 말씀을 다시 읽어본다. 주일 설교 말씀을 일주일 동안 묵상했던 큐티와 비교하면서 주님이 중복적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일주일을 돌이켜보면서 주중에는 몰랐지만 주일에 비로서 드러나는 주님의 뜻을 찾아본다. 그리고 기도노트를 꺼내서 기도를 한다. 그리고 깨달음이 있다면 나의 자녀들에게 그 내용을 메일로 보낸다. 이렇게 주일 저녁에 글을 쓰는 것도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기도하다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마지막 기도처럼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주일 저녁 기도회가 끝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일단 아직도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와 아쉬운(?)마음이 마음에 남는다. 나는 주일 저녁에 받은 말씀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고 월요일로 넘어가게 간다. 그렇게 나는 6일동안의 삶을 갖게 된다. 

  이렇게 받은 6일은 월요일부터 카운트 다운이 되면서 하루씩 또 주일 죽음으로 향해간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엄청난 부담감과 거북함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한부 6일이 무뎌진 것은 자기 십자가 훈련은 아니고 만성(매너리즘에 가깝다)이 된 것 같다. 그래도 토요일 저녁부터는 은근히 긴장이 되면서 회개와 용서를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 십자가를 만든 일주일은 바울이 고백했던 ‘날마다 죽노라’를 간접 경험하게 해준다. 그리고 베드로가 알려주었던 주님의 시간(하루가 천년처럼, 천년이 하루처럼)을 나에게 ‘하루간 한시간 처럼 한시간이 하루처럼’으로 만들어 준다. 혹시 모를 거룩한 주일 죽음을 기다리는 삶은 주일 낮 예배를 집중하게 하고 일주일마다 회개할 것을 생각나게 해준다. 나는 그것이 자기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주일 저녁 기도회가 끝나고 죽지 않았지만 나는 주님의 부활생명을 기억하고 의식할 수 있다. 그렇게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주일 시간에서 나는 예수다움으로 자기다움을 이루고 싶다. 


나는 살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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