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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Feb 14. 2022

새벽나라에 사는 거인(개정판)

휴먼브랜드 글쓰기

초판 발행일 : 2001년 3월 15일



| 프롤로그 |

새벽은 미래다



나는 7년 동안 광고 기획자로 일했다. 설문 조사를 통해서 시장을 분석하고 소비 요인의 핵심을 찾아내 마케팅함으로써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나는 책을 읽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역사상 많은 위인들, 자신을 변화시킨 사람들, 기업의 사장들, 종교 지도자들이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흥미로운 가설을 세워보았다.

‘위인들은 새벽에 깨어 있는가? 새벽이라는 시간이 위인을 만들어내는가?’ 

가설을 직접 검증하기 위해 나는 새벽 여행을 시작했다. 5년간 계속된 그 여행을 통해 나는 새벽나라에 가게 되었고 새벽거인을 만났다. 새벽거인은 우리의 미래를 바꾼다. 그는 지니처럼 ‘요술’을 부리지는 못하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거인들이 알고 있는 새벽은 누구나가 맞이하는 시간으로서의 새벽이 아니다. 그들은 먼저 누구나 알고 있는 ‘시간의 새벽나라’의 넓은 문을 지나, 결국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 ‘개개인의 새벽나라’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나에게 새벽을 정의 내리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새벽은 미래다’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현재가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는 지금보다 발전되고 나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공상과학영화의 허무맹랑한 장면을 보더라도 미래에는 가능할 거라고 은근히 기대한다. 

미래를 창조하는 상상은 새벽이라는 시간 속에서 현실로 일어날 수 있다. 하루의 새벽은 하루의 미래이며, 한 달의 새벽은 1년의 미래이고, 1년의 새벽은 10년의 미래이다. 10년의 새벽은 ‘나’를 만들고 평생의 일들을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새벽이라는 시간 자체가 그런 에너지를 보유한 것은 아니다. 새벽에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새벽엔 무슨 일을 하는가? 흔히 말하는,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예를 들어 하루의 목표와 결과를 상상하는 일, 관심 분야의 책을 읽고 명상하는 일, 그리고 새벽거인을 만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의 나, 새벽나라의 사람들과 함께한 나, 그리고 새벽나라를 통해 성장해가는 나 자신에 대해서 새벽이라는 거울을 보고 쓴 것이다. 그래서 자칫 미화된 그림이 나올 것 같아 걱정스럽다. 1996년 시작된 새벽 여행, 나는 2000년에 잠시 멈춰서 《새벽나라에 사는 거인》이라는 새벽 예찬 책을 썼다. 요즘도 그 책을 읽었던 독자들을 만나면 “아직도 새벽에 일어납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다행히 아직까지 새벽을 즐기고 있다.

7년이 흐르고 이제 나는 개정판을 쓰고 있다. 처음 썼던 책은 마치 대학생의 첫 배낭여행 일기처럼 투박하고 글쓴이만 이해하는 문장이 많았다. 낡고 판독하기 어려운 새벽나라의 지도를 다시 만들어준 새벽 동지 박요철 님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0년간의 새벽나라 여행. 

길었지만 그 여행은 새벽처럼 짧았다.





| 차례 |


  추천사

  프롤로그



1장   새로운 세계, 새벽나라

  어느 특별한 아침    15

  새벽나라로 가는 초대장    23

  나의 일과표    31

  새벽나라의 안내자    39

  가치의 가격    48



2장   첫 번째 거인을 만나다

  빨간 풍차가 있는 정원    57

  어긋남의 징후    68

  두 종류의 시간    79

  과거로 떠나는 여행    87

   거인의 편지1    



3장   두 번째 거인을 만나다

  아내의 블로그    101

  비전의 재발견    109

  그림처럼 펼쳐지는 꿈    121

   거인의 편지2    




4장   세 번째 거인을 만나다

  문제를 푸는 열쇠    139

  스프링복의 질주    146

  아버지의 꽃밭    156

   거인의 편지   



5장   또 다른 새벽거인

  코엘의 숲    171

  현재라는 허상    181

  진짜 나의 모습    187

  믿기지 않는 일    197

   마지막 편지   



6장   6년 후의 이야기

  찢겨져 버린 가치    207

  또 다른 이름    218



  에필로그 

  부록




어느 특별한 아침 



월요일 아침부터 비가 왔다. 이런 날은 출근이 몇 배로 힘이 든다. 비가 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고, 사람들이 자가용을 끌고 나와 교통이 혼잡한 탓이다. 평소보다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하는데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평일보다 더 피곤하게 주말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피곤하기만 했지 딱히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주말이었다. 겨우 평소 출근 시간에 맞춰서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마다 아우성이었다.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겨우 회사 방향의 버스를 발견하고 오르려던 찰나였다. 

‘이런!’ 


뒷주머니에 늘 있던 지갑이 없었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집에 두고 온 것 같다. 허탈한 기분으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7시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지금 이 버스를 타지 못한다면 지각이다. 전처럼 버스 기사에게 부탁해볼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오늘은 용기가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다른 승객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더 못할 일이었다. 경험상 그것은 기사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성공할 확률이 더 낮았다. 민망하기는 몇 배가 더할 터였다. 버스는 떠나보내면 금방 또 오는데, 버스비 융통을 거절한 사람과는 버스에 오를 때까지 어색하게 같이 서 있어야만 하니까. 다시 집까지 다녀오려면 20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애꿎게 가방만 이리저리 뒤져보지만 예상대로 동전 한 닢 나오지 않았다.

‘휴….’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부쩍 지각을 많이 했다. 한없이 늘어지는 프로젝트 때문에 회사 일로부터 오는 압박감이 적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어느새 나 스스로를 관리하고 조절하는 일을 버거워하고 있었다. 출근이 부담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이런 고민보다 출근 후 부장을 만날 일이 문제였다. 신규 브랜드 런칭 일정이 계속 연기되고 있어 부장 역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월요일 아침부터 지각이라니….

왜 나는 항상 이 모양일까? 왜 나는 매일 아침 10분의 여유를 찾지 못해 출근길을 망치는 것일까? 제시간에 출근하는 것은 직장과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고 또 책임이다. 하지만 지각하는 것 자체보다 나 스스로가 점점 더 실망스러워지고 있다는 데에 더 화가 났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문득 오래전 특별했던 어느 하루가 떠올랐다. 


3년 전 내가 예전 직장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든 것도 아니고, 그즈음 유행하던 《아침형 인간》과 같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냥 거짓말처럼 눈이 떠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이전 같으면 웬 횡재인가 싶어 다시 잠을 청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더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신과 눈이 모두 초롱초롱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할 정도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들었다. 우유를 배달하는 할머니 한 분이 바쁜 듯 내 앞을 지나갔고, 등산복 차림의 부부가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었다. 초여름이라 해가 길기는 하지만 아직은 어두운 새벽이었다. 나는 신문의 헤드라인 몇 개를 읽은 후 작은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불을 켰다. 그러고는 서재로 꾸민 작은 방의 전등을 켰다. 아내가 종종 듣는 재즈 음악 CD를 틀었다. 

갑자기 받은 선물과도 같은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하는 고민이 밀려들었다. 신기할 정도로 몸도 마음도 개운한 새벽이었다.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빼어 들었다. 제목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 귀퉁이가 접힌 부분을 찾아 펴 들고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미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느냐고 물었지. 하지만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줄까?”

“뭐죠?”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가슴 한쪽이 후끈해져 왔다. 모리 교수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기억 속에서 다시금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잠깐이긴 해도 깊이 감동했었다. 그땐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했었는데…. 마치 10년 전의 기억을 새삼 떠올리듯이 그 구절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커피 한 잔을 탔다. 주방과 거실이 커피 향으로 채워졌다. 그 향기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읽던 책의 나머지 밑줄 부분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밑줄 그은 부분만을 찾아 읽는데, 그 간격을 어렴풋한 기억들이 메워주었다.

커피를 거의 다 마신 후 욕실로 갔다. 거칠게 쏟아지던 물줄기가 욕조에 잠겨 조용해질 때까지 나는 손에 든 샤워기를 바라보았다. 책의 구절구절이 내 영혼을 채우듯이 이번에는 뜨거운 물줄기들이 욕조를 채우고 있었다. 그 안에 몸을 깊숙이 맡겼다. 

‘이 시간에 목욕이라니….’

세수할 시간도 겨우 내던 평소와 달라 뭔가 낯선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욕조 물이 미지근해지자 가볍게 양치를 하고 면도를 했다. 거울 속에서 한결 밝아진 내 모습을 보자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정말이지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달콤하게 자는 새벽보다 더 행복한 새벽이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새벽이라는 시간은 내게 좋지 않은 기억들로 채워져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벼락치기 공부로 밤을 새우려다 실패하고 깨어난 시간이었고, 대학 다닐 때에는 놀면서 밤을 새우다가 맞이한 시간이었다. 군대에서는 불침번과 새벽 교대 근무, 아침 조회로 철저히 증오했던 시간이었다. 고참이 되고 열외자가 되자 새벽에 방해받지 않고 맘껏 잘 수 있다는 한 가지 특권 때문에 천국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새벽은 그런 나쁜 기억들과 연결되지 않았다. 좋지 않은 기억들이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가슴 뿌듯한 여유로움이 충만했다. 샤워를 마치고 기분 좋게 스킨로션을 바른 후 내친김에 셔츠와 바지를 꺼내 다림질을 하기 시작했다. 다리미 옆으로 새어 나오는 스팀의 열기가, 약간 싸늘한 새벽 공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집 안 곳곳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시간을 보니 5시 반이 조금 넘어 있었다. 휴대폰을 챙겨 들고 다이어리를 잠시 정리한 후 구두를 닦았다. 구두약을 가볍게 먹이고 솔질을 하자 현관 불빛을 받아 구두코가 반짝거렸다. 가볍고 빠른 솔질로 구두를 닦자 어설프지만 광이 났다. 빠트린 것이 없나 확인한 후 집을 나섰다. 


동이 튼 새벽은 부지런한 사람들로 벌써 분주했다. 이들 틈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단지 조금 일찍 일어났을 뿐인데 세상이 이렇게 달라 보이다니…. 내가 어쩌다 한 번 맞은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겠구나.’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김밥을 사려고 하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조태현 팀장.”

뒤돌아보니 배 본부장이었다. 그는 사내에서 신입 사원들에게 신화 같은 인물이었다. 빳빳하게 깃이 선 줄무늬 와이셔츠와 밝은 황토색 양복이 기막히게 어울려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건 밝은 표정이었다. 그냥 밝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해맑은 웃음이 상대방을 종종 무장해제시키곤 했다. 

일이 정말 안 될 때에도 이분이 주재하는 회의를 마치고 나면 모두가 잔뜩 상기된 채 의자에서 일어날 정도였다. 사람을 흥분케 하는 에너지. 나는 언제나 그 에너지의 출처가 궁금했었다. 타고난 기질이라고밖에 달리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런데 나 역시 상기된 아침을 맞고 보니 조금은 그와 맞상대할 자신감이 생겼다. 웃으며 본부장이 내미는 손을 잡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도 이 시간에 출근하나?”

“아뇨. 오늘 일이 좀 있어서요. 본부장님은요?”

“난 오늘 좀 늦었어. 평소에는 5시 쯤….”

“예?” 

“간단하게 아침이나 할까? 샌드위치 어때?”

나는 김밥집 아주머니께 멋쩍은 눈인사를 남기고 그를 따라나섰다. 

새벽나라로 가는 초대장








샌드위치 가게는 작았지만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빨강과 노랑의 컬러가 다소 어색하긴 해도 푹신한 소파와 날렵한 의자가 조화롭게 놓여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됐지?”

주문이 끝나고 자리에 앉자 본부장이 물었다.

“1년 조금 못 되었습니다.”

“그렇군. 한창 열심히 할 때지. 오늘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실은 그냥 일찍 눈이 떠져서요’라고 말하기엔 너무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일찍 일어나려고 애는 씁니다. 오늘은 몸이 따라줬어요. 일찍 일어나니 기분도 좋고 뭔지 모를 의욕도 생기네요. 이제 계속 해보려고요.”

그는 솔직한 내 대답이 흥미로운 듯했다. 

“새벽에 일어나니 좋다… 단지 그것뿐인가?”

나는 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뭔가 들을 말을 놓친 것 같은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순간 일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저 기분만 좋아서는 힘들지. 만일 매일 새벽을 깨우고 싶다면 꼭 필요한 게 있어.”

“그게 뭔데요?”

“그건… 간절함이야. 자네가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게 없다면 조금 더 부지런하고 조금 더 일 잘하는 그런 아침형 인간 한 사람이 더 늘어나는 것일 뿐이지.”

“저라면 부지런하고 유능한 것만으로도 족할 것 같은데요. 직장 생활 하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없죠.”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본부장은 내 대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내가 만난 분은 새벽 4시면 회사에 출근해서 1시간 동안 기도한 후 신문과 잡지를 스크랩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셨지. 참 대단해 보였어. 그래서 나도 그분을 닮고 싶어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기 시작했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가장 먼저 들어서는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 난 컴퓨터를 켜서 메일함을 확인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전날 못한 업무들을 마무리했어.”

그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나를 부르더군.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해주셨어.”

유능한 본부장이 평생 잊을 수 없는 한마디라…. 나도 모르게 꼴깍하고 침을 삼켰다.

“‘새벽에 일찍 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새벽에 오는 목적이 중요합니다. 새벽에는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자네는 이 말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한 가지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어학 공부나 운동은 아닌 것 같았다. 뭐랄까, 그런 것은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기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질문이라는 생각만 들 뿐 대체 뭘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내가 얼른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예상한 듯 계속했다.

“어느 날 아침 우연히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새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어.”

그는 조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 열 명 중 아홉 명은 새벽에 일어났다는 거야. 이 사실에서 두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지. 첫째, ‘모든 위인들은 새벽에 일어난다’. 둘째, ‘새벽에 위인들이 만들어진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훌륭한 사람들은 부지런했겠지만 그게 꼭 새벽과 연관이 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아서요. 그렇다고 새벽에 일어난 사람들이 다 위인이 된다는 것도 좀….”

“이런 경우는 직접 실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자기가 직접 해본 것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을 테니까!”

그는 마치 함께 일하기를 제안하는 면접관처럼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전에 확인해볼 것이 있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시는 본부장님은 지금 성공적인 삶을 살고 계신가요?”

“하하하. 성공이라… 성공이 무엇인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겠지. 나는 새벽을 깨운 위인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했지 ‘성공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네. 자네는 성공하고 싶나?”

내 질문에 본부장이 화라도 내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터라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뜻밖에 돌아온 질문은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나?’

너무 당연한 질문이라 그렇게 묻는 의도가 궁금해졌다.

“성공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매일 새벽을 깨우도록 하게. 무조건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다 새벽거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새벽거인요?”

“새벽거인은 진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 새벽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야. 새벽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볼 수 없지. 당연한 거지만….”

그의 얼굴에 장난기는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진지해 보였다. 본부장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새벽거인이라니. 혹시 신흥 종교 단체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새벽을 신성시하는 어떤 종교. 낯선 단어가 주는 상상력이란 끝이 없는 법이다. 

“그럼 그 새벽거인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거죠?”

어느새 나는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매일 새벽을 깨우게.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를 기다리면 돼. 독서나 명상할 때 같은 조용한 시간이 필요할 거야. 참고로 나는 기도를 했다네.”

혼자 새벽에 일어나서 그를 기다려? 점점 모를 소리다. 

“그라는 건… 누구를 말하는 거죠? 거인이 찾아온다는 건가요?”

거인이라면 덩치가 엄청 클 텐데, 아니 어떻게 내가 있는 곳에 온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글쎄, 그건 나도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군. 사람마다 다를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거인을 만나는 거야. 이걸 받게.”

그는 지갑에서 명함처럼 보이는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시계를 보더니 일어나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즐거웠네.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고.”


그것이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갑작스럽게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자 본부장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인사하고 싶어 연락했지만 때마침 본부장은 장기 출장 중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때 일을 회상하고 지갑 깊숙이 안쪽을 들추어 당시에 받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다행히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때는 본부장 자신의 명함이려니 생각하고 대충 훑어본 후 바로 지갑에 넣어두었었다. 그런데 지금 자세히 보니 이름이나 직위가 쓰인 명함이 아니었다. 






내용이 낯설었다. 새벽나라공화국은 무엇이며, 새벽안내자는 또 뭔가? 나는 사실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새벽을 깨워본 적이 없었다. 정리된 몸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하루를 맞고 싶다는 간절할 열망, 새벽 시간에 대한 동경은 언제나 가슴속 한곳에 품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번은 ‘새벽’이라는 말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넣고 엔터를 눌러보았다. 새벽을 제목으로 하여 만든 책이 244권 나왔다. 이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는 종교, 문학, 그리고 사회 운동이다. 

종교 부문에서는 기독교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문학 부문에서는 시에서 가장 많다. 사회 운동 부문에서는 단연코 ‘노래’에서 가장 많았다. 이로 유추해보면 새벽은 신께 나아가는 제사의 시간이었으며, 시인에게는 내면의 노래를 외부의 호흡으로 표현하는 창조의 시간이었고, 사회 정의를 위해서 투쟁하는 운동가에게는 의를 위해서 하나가 되는 단합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노래한 그리고 찬미한 새벽은 그들에게는 시간 이상의 존재였다. 이처럼 새벽은 영적이며 시적이며 그리고 감성적이다. 그들은 새벽의 양육을 통하여 종교인으로, 시인으로, 그리고 혁명가로 성장해갔던 것이다. 

부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도 부지런함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더 일찍 움직인다. 그래서 자연히 새벽을 깨우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저마다 피곤한 일상에 쫓겨 밤의 쾌락과 새벽잠의 달콤함에 빠지고, 지치고 헝클어진 채로 힘겹게 출근 시간을 지키며 살아갈 때 그들은 시간과 돈과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기만 하면 된단 말이지.’ 

작은 초대장 한 장이 내 삶을 바꿔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3년 전 본부장과의 아침 식사를 떠올리며 결의를 다졌다. 단지 일찍 일어나기만 해도 발견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 따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설사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해도 손해 볼 장사는 아니었다.

나의 일과표








다시 아침이 왔다. 그날도 역시 새벽을 깨우지 못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인 신문을 보았다. ‘정국 혼란’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국회의원들이 멱살을 잡고 있는 사진이 1면에 실렸다. 예닐곱 명 되는 사람들이 서로 엉켜서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다. 몇 사람은 말리고 있고, 몇 사람은 상대방의 얼굴을 때리는 것인지 아니면 밀치고 있는 것인지 오른손이 상대방의 얼굴에 닿아 있다. 입 모양으로 보아 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웃고 있고 그 옆에서는 누군가 귓속말을 하고 있다. 

내가 사는 이 땅의 하루는 이렇게 볼썽사나운 패싸움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었다. 다른 신문들을 보아도, 팔린 개가 일주일 만에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외에는 마음 훈훈한 이야기가 없었다. 유전자 복제의 성공에 대해서는 웃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그리고 누가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대해서는 부러워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현관 불을 끄고 회사로 향했다. 

또 막힌다. 이번에는 도로 공사가 아니라 추돌 사고 때문이었다. 승용차 두 대가 길 한복판에 서 있고 운전자들이 서로 핏대를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다른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양보를 하지 않아서 서로 충돌한 것 같았다. 지나는 사람마다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3차선 도로는 1차선이 되었고 그 사이로 차들이 빠져나갔다. 예상하지 못했던 정체로 나의 모닝커피 타임은 사라질 위기였다. 


8시 30분. 다행히 회사까지 7분을 초과하지 않았다. 버스는 쾌속 질주 해서 목적지까지 제시간에 무사히 도착했다. 

업무 시작은 9시부터지만 30분 정도는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다.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켠다. 메일을 확인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아침마다 평균 오십 통의 메일이 오는데 그중 3분의 2는 읽지도 않고 버리는 메일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나는 새벽거인들의 정보를 수집했다. 

나는 사람들의 욕구를 수집해서 그것을 돈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 내가 하는 광고 기획과 마케팅은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을 마술에 걸리게 하는 것’이다. 먼저 소비자 조사를 통해 수백 명의 정보를 모은다. 그 다음은 어떤 사람들이 귀찮아서 그냥 말해버린 거짓 정보를 추려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나는 이때 마치 셜록 홈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사람의 취향은 어떤 것일까? 이 사람은 어떤 구매 방식을 택할까? 설문에 답한 내용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거짓과 진실을 분별한다. 그런 다음 그것을 통계 프로그램에 집어넣어 항목별로 그들의 관심과 욕구를 찾아 들어간다. 

무슨 색깔을 좋아하고, 양치질은 몇 번 하고, 잠은 몇 시에 자고, 안주는 어떤 것을 먹고, 남자 친구는 몇 명이고, 머리 염색은 언제 하고,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나는가라는 별 시답지 않은 것들을 물어본다.

사람들의 태도와 습관은 마케팅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이런 모든 자료를 분석하면 그들에게 현재 어떤 욕구가 있으며, 그것이 왜 채워지지 않고 있는가를 찾아낼 수 있다. 그들의 습관을 보면 향후의 소비에 대한 태도까지 읽을 수 있다. 이쯤 되면 약 사십 페이지 분량의 소비자 보고서가 만들어진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해독과 조합 그리고 설계의 과정에 들어간다. 내가 하는 일은 소비자 보고서를 읽고 소비자가 우리의 충성 고객이 되어 경쟁사를 떨쳐버릴 수 있게 하는 비밀 문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 보고서의 이름은 ‘광고 기획 및 마케팅 보고서’. 광고 기획에서는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 즉 이미지로 소비자에게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라는 전략을 수립한다. 

그리고 마케팅 보고서에서는 그 이미지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강력한 구매 효과를 이끌어내는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는 과정을 수립하고, 각 부서별로 행동 지침을 만든다. 그 다음에는 문화 마케팅, 스타 마케팅, 통합적 마케팅, 포지셔닝 마케팅 등 각종 도구와 프로세스를 통해 소비자, 아니 내 이웃들의 마음에 마술을 건다. 

나는 이 일을 지난 7년 동안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생각하면서 일어났고 저녁에 잘 때 내일은 이렇게 돈을 벌어야지 하면서 잠을 잤다. 신문을 보아도, 책을 보아도,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아도 항상 마케팅에 관해 생각했다. 나의 모든 결론은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돈을 버는 데 모아졌다. 

친구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음주 태도를 보면서 광고 안을 생각하고, 아내와 쇼핑을 하면서도 그녀의 구매 형태를 파악했다. 나에게 사람들은 소비의 주체로서 우선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보다는 좋아하는 디자인, 좋아하는 브랜드 등 그들의 취향에 대한 연구가 중요했다. 그래서 취향을 가치화하고 이념화했다. 새로운 세대들이 좋아하는 단어를 알기 위해서 수천만 원을 쏟아 부어 그들의 욕구들을 개념화하고 컨셉화했다. 

마케터들은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트렌드’라는 선입견을 이용해 소비를 조장한다. 더 소비하게 하기 위해 아직 쓸 만한 것을 구닥다리로 만들어서 빨리 버리게 한다. 이것이 마케팅의 얼굴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보고서만 해도 오백 개가 넘는다. 고용주에게는 수억 원에 달하는 돈을 안겨줬지만 정작 내 월급은 그 자리에서 맴돌았다. 


“조 팀장 잘돼가나?” 

누군가 어깨를 치면서 나의 조용한 시간을 방해했다.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오늘 스케줄이 어때?”

“잠깐만요. 아침에 회의가 있는데. 아, 10시에 부서장 회의, 1시에 브랜드 광고 기획 회의, 3시에 경쟁사 분석 발표, 그리고 6시에 대행사와 미팅이 있습니다.”

“항상 바쁘군. 9시 반에 회장님께 보고할 사항이 있는데 자료 좀 만들어줘.”

“저… 10시에 부서장 회의 자료를 만들어야 되는데요.”

“아… 미안해, 일단 세 페이지 정도면 돼. 로열티 경영에 관한 아이디어만 뽑아서 만드는 거니까 금방 할 수 있잖아? 회장님 보실 거니까 부탁해.”

“저… 안 되는데….”

“부서장 회의는 기본으로 하면 되잖아. 빨리 좀 부탁해.”

부장은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자기가 마시던 커피를 내 앞에 두고 떠났다. 

“또 하루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부장에게 회장님 보고용 리포트를 뚝딱뚝딱 작성해서 넘겼다. 완전히 장난 같은 보고서다. 나는 오늘도 부장의 목숨을 하루 연장해준 것이다. 

곧바로 부서장 회의에 들어갔지만 내 윗사람으로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상관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회의 참여를 독촉했다. 


1시 30분에 브랜드 광고 기획 회의가 시작됐다. 나의 완전한 독무대로, 내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이다. 사흘 내내 준비한 자료를 보여주면서 회의장을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유치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어떤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반론을 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쾌감인가? 


오후 3시 정각. 회사 사장단 앞에서의 경쟁사 분석 발표 시간. 이 대리가 무참히 깨져 나갔다. 경쟁사의 제품 가격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세 번째다. 십중팔구 그의 회사 수명도 이제 끝이다. 하이에나 상무에게 걸린 것이다. 

회장님 앞에서 묵사발 되면 그것으로 마케터의 인생은 끝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이에나 상무의 공격을 단 한 번에 초토화하는 것뿐이다. 나는 몇 번 그를 보기 좋게 넘어뜨린 적이 있기에 그는 좀처럼 나를 공격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나의 목을 노리고 있다. 갑자기 정글에 들어온 기분이다. 

이 대리의 수모로 인해 회의는 다음으로 연기. 불쌍한 이 대리. 저녁 6시 대행사 미팅은 20분 만에 끝났다. 갑자기 내일 아침에 판매 촉진 전략을 가지고 회장실로 출두하라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은 밤을 홀딱 새워야 할 것 같다. 


밤 11시 정각.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 열 장짜리 보고서를 다섯 개나 썼다. 이제 집에 가서 좀 쉬면서 내 두뇌를 조각 모음 해야 될 것 같다. 며칠 동안 나는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내 책상 앞에는 어제 서점에 들렀다가 산 《하프타임》이라는 책과 《권력 없는 리더십은 가능한가》라는 책이 놓여 있다. ‘하프타임’,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은 하프타임이다. 지금까지 아무런 작전 없이 보이는 대로 싸우면서 그리고 경쟁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조금씩 권력의 리더십을 탐닉하면서 그렇게 인생을 보내왔다. 그 책들을 언제 볼까? 


12시 36분. 두 정거장을 지나쳤다. 좀처럼 없는 일인데 깜빡 졸았던 것이다. 거리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거의 눈이 감긴 상태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새벽나라의 안내자








겨울 새벽은 어둡고 추웠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도 이렇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스스로 신기했다. 아직 자고 있는 것인지 깬 것이지 모호한 상태에서 나는 서재로 향했다. 

그때였다. 서재 안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나오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가 처음 뱉은 한마디에 나는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수가… 본부장의 말이 사실이었다니…. 내가 어떤 확신을 가지고 그 약속에 응했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티끌만큼의 믿음도 없는 상태였다면 그 놀람의 정도나 모양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그를 만났기 때문에 당황스럽다기보다 차라리 혼란스러웠다. 

똑같은 실수로 버스를 놓치던 바로 요 며칠 전 나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었던 그 명함, 아니 초대장을 다시 기억해냈다. 기대감보다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 초대장을 한참 바라보았었다. 

본부장의 제안이 기억 속에서 하나씩 되살아나자 오기 아닌 오기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며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속는 셈치고 새벽을 깨워보자. 이젠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데 무슨 말을 못 믿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최근 한 달간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게 아니었고 나름대로 절박했다. 내가 만들어놓은 일상의 덫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더 이상 출근 시간에 쫓겨 허둥대는 그런 모습의 나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변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만 있을 뿐 방법을 몰랐다. 그러다가 선택한 방법이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기대하지 않았었다. 

반쯤 얼이 빠진 내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였는지 그는 웃으며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사실은 오늘도 그냥 가려던 중이었어요.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깔끔해 보이는 체크무늬 니트에 실크 빛이 감도는 감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유행이 다소 지나 보이긴 했어도 여유로운 중년의 분위기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돋보이게 만든 것은 밝은 표정이었다. 그 웃음이 기억 속의 누군가를 떠오르게 했다. 배 본부장이었다. 자신감과 여유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의 표정은 전체적으로 그를 ‘생기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숨은 쉬고 있으나 죽은 표정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마치 거울 속의 그 자신들처럼. 눈앞의 이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친근해 보였다. 하지만 일단 경계해야 했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니까. 

“아… 그렇군요. 사실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그런데 당신이 새벽거인인가요?”

“아니요. 저는 새벽거인은 아닙니다. 새벽나라의 안내자입니다.”

“네…. 죄송합니다, 번번이 약속을 어겼습니다.” 

나는 숨을 가다듬으면서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어려운 약속이죠. 하지만 오늘은 완벽하진 않아도 약속을 지키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완벽하지는 않죠.”

언뜻 시계를 보았다. 5시를 10분 정도 넘기고 있었다. 새벽안내자는 아마도 초대장 속의 시간을 두고 말하는 듯했다. 어제 보고서 두 페이지를 마저 채우기 위해 12시를 넘겨 잠자리에 든 것이 큰 실수였다.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일단 이 사람이 그 초대의 주인공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당신을 전혀 모르겠어요. 당신이 그 초대장 속의 주인공인가요? 그리고 그 새벽거인이란 대체 누구인가요?” 

“하하. 궁금하신 게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오늘 좀 늦게 나오셨네요. 그래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의 힘겨운 퇴근길이 다시 떠올랐다. 

“네… 하지만 정말이지 힘들게 나온 거라….”

내 간절한 표정이 그에게 전해졌는지 그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짧으면서도 단호했고 또 편안했다. 마치 평생을 열심히 살고 여생을 즐기는 어떤 노인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이런 여유로움이 묻어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그 여유를 닮고 싶고 또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솟아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당신께 먼저 한 가지 질문만 드리고 갈까 해요.”

“그게 뭔데요?”

나는 그 말이 반가웠다. 갈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이런 나의 갈급함을 이미 충분히 알아차린 듯했다.

“조태현 씨,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가치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아마 면접관을 앞에 둔 사회 초년생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전적인 의미와 면접관의 의도를 저울질하느라 진땀깨나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내게 그런 상황은 아니라 해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마케팅 관련 책에서 읽은 브랜드 가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떤 대답이든 받아줄 듯한 그의 표정에서도 그런 질문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죄송하지만 조금 더 쉽게 말씀해주실 수 없나요? 질문도 질문이지만 저는 아직 이 상황이 당황스럽습니다.”

“그러실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드릴게요. 조태현 씨가 새벽나라에 들어오시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째서 새벽이라는 말에 관심을 갖게 되신 거죠?”

“뭔가 있을 것 같아서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새벽에 일어난 분들은 대부분 성공한 인생을 사셨기에….”

나도 모르게 말꼬리가 흐려졌다. 솔직한 대답이지만 오늘 같은 대화에서 ‘성공’이라는 단어는 왠지 부자연스럽고 경박하게 들린다. 하지만 달리 떠오르는 적절한 말이 없었다. 가치와 성공…. 본부장도 그때 내게 성공이 무엇인지 물었었다. 

“성공? 어떤 성공을 말씀하시는 거죠?” 

아니나 다를까. 질문하는 안내자의 말하는 호흡이 다소 빨라졌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하는 나의 말은 되레 뒷걸음질 쳤다.

“그러니까… 인생의 성공이랄까… 뭐, 그런….”

“정확하게, 아니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돈을 말하는 건가요?” 

도전적인 안내자의 질문에 순간 나는 흠칫했다.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화가 났다는 표현이 더 알맞은 것 같다. 스스로도 왜 화가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맞는 말이지 않는가.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돈이나 지위 같은 그런 것이지 않는가. 그러나 그 대답이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자 불편하고 불쾌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도 아이로니컬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자연히 대답에도 자신이 없었다.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군요. 오늘은 시간이 다했으니 내일 다시 뵙죠. 하지만 오늘 드린 질문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주십시오. 당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 저는 당신을 새벽나라에 사는 거인들에게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정답이란 건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새벽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지요.” 

안내자는 그렇게 말하고 어디론가 금방 사라질 태세였다. 나는 급하게 다시 물었다. 

“저… 혹시 가치라는 것이 목표인가요?”

웃으며 돌아서는 안내자의 표정을 보고, 내가 아주 어이없는 것을 묻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직감할 수 있었다. 

“올해 당신 회사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순수익 20억 원입니다.” 

“당신 부서의 올해 목표는 무엇입니까?” 

“브랜드 세 개의 런칭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올해 목표는 뭐죠?” 

“….” 

목표라… 물론 막연하지만 몇 가지 그런 게 있긴 했다. 책 오십 권을 읽는 것, 준비 중인 신규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런칭하는 것, 진급하는 것, 그리고 천만 원을 저축하는 것 등등이었다. 하지만 안내자의 진지한 표정을 코앞에 대하고 보니 바로 대답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런 내 심정을 읽었는지 안내자가 말을 이었다. 

“그 목표가 가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생각했던 방식과는 다소 다르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음에는 선생님의 그 답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내자가 남긴 ‘가치’라는 말을 잠깐 곱씹는 짧은 사이 이미 그는 떠나고 없었다.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모든 것이 급작스럽고 낯선 아침이었다. 나의 머릿속은 온통 안내자가 남긴 질문으로 가득 찼다. 

‘가치란 대체 무엇일까? 가치와 새벽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바라는 일련의 바람들과 가치라는 것이 그렇게 어울리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그 가치를 발견하면 내 삶이 어떤 면에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일까?’ 

그는 너무나 풀기 어려운 숙제를 주고 갔다. 나에게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봉사? 기껏 걸인들에게 아주 가끔씩 동전을 주는 것도 봉사일까? 가치는 상대 평가인가, 절대 평가인가? 가치는 남들이 평가하는 항목이 아닌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까지의 교육 과정 동안 ‘가치’에 대해서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본 TV 드라마 중에서 가치에 대해서 다룬 것은 없었다. 갑자기 벌거벗겨진 듯한 수치심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한참을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있었다.

가치의 가격 








“조태현 씨! 이것도 보고서라고 쓴 겁니까?”

박 전무는 보고서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종잇장들이 날려 책상 주위로 흩어졌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하나 그렇다고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는 오늘 그가 이상스럽게 흥분해 있다고 생각했다.

“이걸 가지고 어떻게 회장님께 보고를 드리라는 거야, 도대체!”

그는 곧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사람이 화가 나면 왜 눈빛이 흐려지는 것일까? 나는 그런 박 전무의 눈을 정면으로 맞받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박 전무를 더욱 자극하고 있음을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영문과 출신 맞아요? 어떻게 영어 스펠링이 두 군데나 틀려요? 검토는 하셨습니까?”

이번에는 함께 있던 김 상무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거들고 나섰다. 그는 아마 보고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런 사람을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하는 것일까? 그 와중에도 이런저런 의문이 떠올랐다.

“지난번 보고서도 엉망으로 만들어서 회장님 앞에서 전무님을 어렵게 하더니 이번에는 또 왜 그런 거예요? 집에 무슨 문제 있어요?”

나는 전무의 눈에서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상무의 얼굴에서 오염된 아부의 불결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틀린 스펠링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그들이 나의 가정과 삶에 대해서는 눈곱만큼의 관심이나 애정도 없다는 것을. 단지 그들이 그토록 화를 내는 이유는 보고서가 너무 얇다는 것, 그리고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보고용으로는 더없이 좋은 구체적인 숫자들과 화려한 그래프가 없다는 것 때문이고, 더 나아가 오늘 있을 임원 미팅에서 뭔가 한 건 올리려던 작은 바람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 많은 보고서들이 한 번의 보고를 끝으로 쓸모를 다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었다. 언젠가 밤을 새워서 올린 보고서가 비서 자리 쪽의 파쇄기 옆에 놓여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오늘 바로 그 보고서를 마무리 지으면서 나는 문득 회사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했다. 소비자는 우리의 왕이라는 것이 가치인가? 왕처럼 대우한다면서 결국 그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국내 최고의 기업이 우리 회사의 가치라면 나는 국내 최고의 사원인가? 회사의 가치와 내 가치는 같은 것인가?

“야! 나가, 당장 나가!”

내가 대답이 없자 박 전무는 이성을 잃었다. 보통 이럴 때는 ‘전무님 죄송합니다. 1시간 내로 다시 만들어 오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만들어 오겠습니다.’

‘야, 필요 없어. 지금 몇 시인데 그걸 다시 만들어 오냐? 필요 없어.’

이렇게 나와도 이런 대답을 해야 한다.

‘30분 내로 만들어 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전무님.’

그러나 이것이 가치 있는 행동일까? 보여주기 위한 보고서를 위해서 이런 시간 낭비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알겠습니다.”

나는 흩어진 보고서를 모두 주웠다. 그리고 상무의 손에 있는 보고서도 달라고 했다. 그가 멈칫했다. 나는 그의 손에 있는 보고서를 잡아당겨 빼앗았다. 분위기가 묘해져 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든다며 성질을 부렸어도, 박 전무는 이 보고서를 가지고 회장님 방에 들어가야 하므로. 모두 조용해졌다. 내가 너무나 당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이유가 조금 달랐다. 화가 나서도 아니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배짱 때문도 아니었다. 나의 머릿속에 있던 ‘차장 진급’이라는 ‘가치’가 나의 진정한 ‘가치’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 나를 그토록 당당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 내일 새벽안내자에게 진급이 내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군.”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전무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 보고서를 그 자리에서 반으로 찢어버리고서 생각했다. 왜 화가 나지 않은 것일까? 만약 내가 박 전무가 원하는 대로 보고서를 만들고 회장이 그것을 보고 판단을 한다면 회사가 어떻게 될까? 회사의 본질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외부 환경으로 그 이유를 돌려 박 전무가 편하게 일하도록 만들면 수천 명의 회사원들은 어떻게 될까? 당장 브랜드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것을 단어와 숫자만 바꾸어 마치 아무 문제 없는 듯 의사 결정권자들에게 전달한다면 우리를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매장들은 어떻게 될까?

이것은 내가 ‘정직’이라는 가치를 생각하지 않았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나는 내 속에서 조금씩 살아 꿈틀대는 ‘정직’이라는 가치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용기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가치의 힘인 것일까?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나를 주목했다. 아주 흥미롭다는 표정들이었다. 나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여름날의 잔잔한 호수 위로 작은 나뭇잎 하나가 내려앉는 듯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된 거야?”

박 팀장이었다. 그는 언제 뽑아왔는지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담배 줄까?”

나는 박 팀장의 심각한 표정을 힐끗 보며 웃었다.

“야, 내가 사형수냐. 안 피우던 담배를 피우게.”

“왜 그랬어?”

“가치가 없었어.”

“가치? 무슨 가치?”

“나중에 이야기하자. 보고서 좀 다시 만들고.”

“무슨 보고서? 네가 찢어버렸잖아?”

“진짜 보고서를 만들 거야. 아까는 가짜였거든.”

아마 조금 뒤면 전무의 비서가 올 것이다. 그리고 던져버렸던 보고서를 달라고 할 것이다. 당장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숫자를 기입하고 그에 대해 광고 마케팅 책임자로서 나의 의견을 분명히 적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직은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가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빨간 풍차가 있는 정원








“놀랐습니다, 조태현 씨. 이렇게 일찍 나오시다니,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나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깨가 가볍게 들썩여졌다.

“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가치를 찾으셨나요?”

그는 가볍게 웃었다. 순간 그의 멋진 주름과 넓은 이마가 함께 웃는 것처럼 보였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찾았다고 하기엔 아직… 그저 우연히 만났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군요. 그런데 어떻게 아셨죠?”

“당신의 편안한 웃음과 진지한 표정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나는 안내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치를 찾은 사람은 인생에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미소로 나타나게 마련이죠. 이제 우리는 가치라는 것을 통해 서로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치 같은 주파수로 무전을 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는 진심으로 나를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하면 되나요?”

“무엇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만의 가치를 발견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부터 새벽거인들을 만나는 여행이 시작될 겁니다.”

“새벽거인들이라면….”

“쉽게 말해서 자신만의 가치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죠. 그렇다고 해서 산에 올라가 도를 닦는 그런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이 발견한 놀라운 아이디어와 비전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이죠.”

“그렇다면 새벽나라란 그런 분들이 사는 곳인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새벽 한때이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들은 새벽 시간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단지 평범한 사람들은 버려두었을 시간의 황무지를 개발해 그 속에서 놀라운 지혜들을 퍼 올린다는 게 다르죠.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시간이 있는지, 그런 나라가 있는지도 모른 채 삶을 마치지만 말입니다. 그보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 말끝에 그가 다시 웃었다. 나는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먼저 주변을 둘러보자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 서재 안을 다시금 훑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재가 더 이상 서재가 아니었다.


“이, 이건….”

그와 나는 처음 보는 어떤 집 앞에 서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 옆에 있는 집이었다.

그는 나를 그 집 정원에 있는 하얀 테이블로 안내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녹차 두 잔이 있었다.

“당신 집인가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아니요, 당신 집입니다.”

그는 천천히 녹차를 마시면서 엷은 미소를 입에 머금고 말했다.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 무슨 그런… 나는 이런 집이 없어요. 말도 안 돼요.”

“그래요. 하지만 언젠가 당신이 마음속으로 그려본 집이 아니던가요?”

새벽안내자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은 누구나 노년에 한번 살아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집이었다. 작은 정원 잔디밭 가운데에 하얀 테이블이 놓여 있고 옆에는 언제라도 쓸 수 있는 바비큐 도구들이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우연히 아내와 함께 보았던 모델하우스의 실내장식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아내가 무척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 아내에게 약속했었다. 언젠가 이렇게 꾸며놓고 살아보자고.

“그건 그래요. 이런 집입니다. 내가 항상 꿈꾸던…. 만약 그 집이라면 바로 저 안쪽으로 작은 풍차가 하나 있을 텐데…. 어! 저거 작은 풍차 맞죠?”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40센티미터 정도 되는 빨간 풍차가 보였다. 아주 오래전 내가 만들다가 망친 조립식 풍차였다. 언젠가 내 집을 마련하면 그때 만들었던 작은 풍차를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놓을 참이었다. 마음에 그렸던 정원과 물건들의 위치가 이처럼 똑같이 눈앞에 보이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당신은 앞으로 새벽나라에 사는 동안 여기 머물게 될 것입니다. 이 집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당신을 위해서 지어진 겁니다. 앞으로 많은 새벽거인들이 이 집으로 당신을 만나러 올 것입니다.”

“마술 같군요!”

“마술은 아닙니다. 특별한 초능력도 아닙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의 비밀은 당신이 새벽 여행을 마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작은 편지 한 통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것은 그저 평범한 편지처럼 보였고 겉장에는 주소가 없었다.

“언젠가 새벽나라에서 리더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 이 편지를 열어 보도록 하십시오.”

“리더는 또 누구죠?”

“당신이 만나게 될지도 모를 새벽거인의 이름입니다.”

나는 편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어색한 침묵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그가 편하고 친근하게 여겨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조태현 씨, 이곳은 나라입니다. 공화국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속지주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아침이 되면 새벽 사람들을 현실로 내보내 일하게 하죠. 그들은 다시 새벽이 되면 이곳에 모이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파견되는 스파이와 같습니다.”

“스파이라뇨?”

“이해를 돕기 위한 단어입니다. 새벽 사람들은 세상을 가치 있는 세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정직의 가치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회사에 알려서 다가올 막대한 피해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그 회사는 천천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당신은 새벽나라에서 가치를 배우게 될 것이고 그것을 세상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글쎄요… 제가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을지.”

“잘하실 겁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뭔지 모르게 자신감과 믿음을 주는 한마디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나요?”

“당신은 새벽나라의 거인들이 가진 비밀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겁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이지요. 그리고 이 정원을 잘 가꾸세요. 이 정원은 당신이 하루만 가꾸지 않아도 벌레와 잡초가 무성해질 테니까요.”

나는 그가 권하는 녹차를 음미하며 묵묵히 마셨다. 그와 나는 다시 말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이 상황을 다시 한 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얻게 된 집 한 채 때문에 얼떨떨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처음 그를 만났을 때보다는 훨씬 더 이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고, 또 그에 대해서도 익숙해져 있었다. 

비로소 나 자신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언제나 꿈꾸던 그런 여유였다. 세상이 멈춘 듯했다. 시간도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듯했다. 굳이 한 단어로 옮기자면 ‘쉼’이나 ‘평안’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것은 일반적인 휴식과는 다른 개념의 쉼이었다. 잘 정돈된 정원에서 이렇게 차를 마시면서 쉰다는 것은 단순히 쉬는 것 이상의 깊은 무엇인가를 안겨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정원에서 차를 마시면서 새벽 시간을 보냈다.

나는 침묵을 느꼈다. 움직이는 것은 찻잔에서 나오는 수증기, 들리는 것은 차를 마실 때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뿐이었다. 내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점이다. 외부의 지식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데도 외부와의 단절 속에서 내 안에 흩어져 있었던 지식들이 한둘씩 모여져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새벽안내자가 말했다.

“당신은 일상에서는 전혀 침묵할 수 없는 직업을 가졌을 겁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죠. 그들의 귀는 소음에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더 그렇죠. 그래서 더욱 새벽에 일어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집이나 텅 빈 사무실에 먼저 나와서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처음에는 견디기 어렵겠지만 점점 그런 시간을 늘려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면의 심연까지 내려갔을 때 당신은 비로소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게 뭐죠?”

“바로 ‘영혼’입니다. 분주한 일상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존재죠. 그건 당신 자신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일 수도 있어요. 새벽 3시마다 일어나는 새벽거인인 마더 테레사는 침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그분은 우리 내면이 시끄럽고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만나지지 않는다. 자연, 곧 나무와 꽃과 풀들이 고요함 속에서 어떻게 자라나는지 보라. 해와 달과 별들이 고요 속에서 어떻게 운행하는지 보라.’ 

그녀에게는 바로 하나님이 그런 영혼이었던 셈이죠.

새벽 침묵은 거인들의 힘이에요. 모든 거인들은 침묵을 통해 성장했죠. 처음에는 침묵을 이기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다음은 침묵과 함께하는 명상으로, 마침내 침묵을 즐기는 창조의 힘을 배워가게 됩니다. 

침묵에 대한 학습과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밀려오는, 풀지 못할 문제에 직면한 듯 답답한 감정,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 견디기 힘든 지루함이 중압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침묵을 포기하는 이유죠. 훗날 비슷한 내면의 질문과 욕구에 직면할 때 새벽 침묵에 대한 두려움이 평생 진지한 침묵을 경험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어요. 

침묵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나’를 또다시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는 기적의 시간이 바로 새벽 침묵의 시간이니까요. 어때요, 당신에게는 혹 이런 경험이 없었나요?”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언젠가 호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새벽에 잠이 깨 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벌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절대 침묵, 그것은 우주의 고요함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은하수가 펼쳐진 검푸른 하늘이 그렇게 웅장하고 고요할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살아 있다는 아름다움이었다. 이것에 맞는 단어를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가장 가까운 단어가 있다면 ‘회복’일 것이다. 침묵은 고요함을 주었고, 고요함을 통해서 나는 안식을 얻었고, 그리고 그 안식 속에서 회복되었다. 새벽 침묵은 마치 다시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평안을 주었다. 


나는 다시 그가 말하는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단지 새벽에 일어나 이곳에 나왔다는 결심 하나만으로 생겨난 일들이었다. 새벽안내자와의 대화,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상상 속 휴식의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풀지 못한 어려운 수학 문제에서 한 가닥 단서를 발견한 기분으로 새벽을 마주했다.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의구심이 솟아났다.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품었던 그 많은 꿈과 바람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바쁜 출근길이나 한가한 주말 저녁에도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스스로에게 면박을 주는 것으로 끝낸 고민이었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어떤 확신이나 기쁨, 보람에 찬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렇게 새벽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런 의문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질문들이 분명해졌다. 

새벽안내자란 내 안의 이런 간절함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문득 새벽안내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 앞을 바라봤을 때, 나는 다시 홀로 서재에 남겨진 채였다. 마치 짧은 낮잠을 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정신은 맑고 생각은 분명해져 있었다. 진짜 새벽안내자를 만난 것이 분명했다.

어긋남의 징후 








오늘의 주요 일정은 오전에 신규 아동 브랜드 광고 발표, 오후에 성인 캐주얼 브랜드 런칭 보고서 발표다. 나는 새벽부터 보고서를 썼고 오전 9시가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했다.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하루가 될 것 같다. 

창문 너머 눈이 내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눈이 내리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팍팍한 인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눈이 내리는 것이 싫은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이 와도 빨리 녹으면 기분이 좋다. 이제 자동차가 내 감정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어두운 하늘에서 터져 나오는 하얀 눈송이가 너무도 아름답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갑자기 오늘따라 낭만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 자리에서 커피 한 잔과 흐드러지게 내리는 눈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오늘 아침에 의미 있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아침,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고 살면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고 현실을 직시하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분명해진다. 그리고 내 목표가 눈앞에서 하나의 점으로 보인다. 나는 이제 겸손해져 간다. 내가 겸손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반성하게 된다. 그러면 갑자기 마음이 넓어진다. 그 느낌을 대표할 만한 정확한 단어는, 굳이 표현한다면 ‘정리’되어진다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사람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발표할 때 몇 명의 디자이너들이 광고 시안을 가지고 설명할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의 기본 원칙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다. 이 기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다. 만약 발표자가 오직 자기가 말할 것에만 신경을 쓴다면 발표 시간 내내 그 누구도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준비한 보고서를 나누어 주고 한 장씩 설명했다. 삼십여 페이지의 두꺼운 보고서이기 때문에 각 장마다 다르게 이해의 포인트를 마련해야 한다. 정보를 많이 주는 것보다는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를 장마다 집어넣고 부연 설명은 말로 해야 한다. 

“조 팀장, 이번 신규 브랜드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해 내가 실수한 것 같다. 보통 이런 질문 뒤에는 공격적인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주로 질문하는 사람이 결정권자이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발표를 망치면 내 뒤에 발표할 디자이너들은 광고 시안도 보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 

대처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중하게 상대방이 생각한 핵심을 물어본 다음 다시 그 사람의 기준으로 그가 말한 생각을 존중하면서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문 지식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즉, 상대방이 전혀 생각하지 않은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나의 요점을 풀어가는 것이다. 이 경우에, 성공하면 인정받고 실패하면 찍힌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아동복 성공의 핵심 요인은 예쁜 아기입니다. 궁극적으로 부모는 브랜드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예뻐지는 것을 원합니다. 따라서 우리 브랜드의 솔루션은 저렴한 가격의 옷으로 아기를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까?”

신규 브랜드 기획 차장이었다.

“설문 조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설문 조사를 백 퍼센트 믿습니까?”

이쯤 되면 상대가 몰아붙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직장이 이런 전쟁터는 아니겠지만 광고를 따 오는 내게 이런 질문은 일반적인 것이다. 백 퍼센트 믿는다고 대답하면 아마 그는 아무렇게나 답하는 설문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고, 믿지 않는다고 하면 왜 그런 보고서를 냈느냐고 따질 것이다. 나는 눈치 채지 못하게 심호흡을 하고 주위 사람들을 보았다. 십여 명 정도가 있는데 일곱 명 정도는 나의 광고 방향에 동의하고 있었고, 세 명 정도는 부정적이었다. 나는 웃음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95퍼센트 믿습니다.”

“5퍼센트는 무엇입니까?”

“저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직관입니다.”

“좋습니다. 다시 한 번 내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주십시오.”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적중했다.

“예, 다시 하겠습니다. 소비자 분석을 해보면 아동복 구매는 엄마의 감각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디자인적 요소가 구매 선택에 있어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아동복 구매의 본질은 부모의 데커레이션 욕구입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른 구매 행위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낍니다. 특히 남자 아이보다 여자 아이의 경우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여자 아이의 경우 유니섹스 브랜드보다는 옷의 성별이 확실히 구분되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아마도 타인으로부터 남자 아이 같다는 말을 들을까 봐 확실하게 여자 아이로 보이기를 원합니다. 

소비자는 보통 두세 개의 특정 브랜드만을 계속적으로 이용합니다. 이처럼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유는 자신의 아이를 선호 브랜드와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몇 가지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브랜드를 평상복보다는 외출복으로 포지셔닝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광고 비주얼의 모습은 외출복의 느낌이 나야 합니다.”

“외출복이 이 브랜드의 컨셉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광고 시안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내가 이겼다. 


세 시간에 걸쳐 광고 발표를 마치고 나는 다음 회의장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이번에 나오게 될 브랜드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캐주얼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강력한 경쟁 브랜드의 규칙을 바꾸게 하는 전략으로 만들어지게 됐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유니섹스 캐주얼의 대표 브랜드인 G사 브랜드와 경쟁하려고 진출했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흉내만 내다가 결국 G사 브랜드의 시장만 확대시키는 희생양 역할을 하고 말았다. 마케팅 차원에서 강력한 적을 만나면 그의 규칙을 바꾸게 하면 된다. 그러면 변화의 과정 속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혁신 가운데 경쟁 브랜드를 함몰시킬 수 있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은 전략에 살고 전략에 죽는다. 솔직히 이름을 ‘전략’이라고 바꾸고 싶을 정도로 ‘전략’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전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소비자가 요구하는 바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하거나 2000년의 트렌드를 들먹이는 게 대부분이다. ‘전략’은 군대 용어다. 군대는 전쟁을 하는 조직이다. 전쟁에는 적군과 아군이 있다. 소비자가 적인가? 절대 아니다. 

프러시아의 장군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는 1832년에 쓴 《전쟁론On War》에서 “전쟁은 사업 경쟁의 영역에 속하며, 사업경쟁은 인간의 이해관계와 갈등 활동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다.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마케팅이란 다수의 경쟁자가 무한 경쟁으로 시장 안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케팅의 본질은 소비자에게 봉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경쟁 업체의 허虛를 찌르고 측면 공격을 통해 승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케팅은 전쟁이고, 경쟁 업체는 적이며, 소비자는 쟁취해야 할 전리품戰利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한다. 모든 프로젝트가 이러한 절박함을 필요로 하긴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나는 명치끝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간절하게 쉬고 싶어 할수록 상황은 점점 반대로 가고 있었다. 

나는 아주 잠시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었다. 문득 며칠 전 새벽안내자와 함께했던 쉼의 시간들이 그리워졌다. 요 며칠간은 프로젝트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장기 레이스의 회의가 끝나고 커피 한 잔을 뽑아 들어 회사 옥상으로 향했다.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을 때면 으레 습관처럼 찾는 곳이다. 겨울 날씨치고는 제법 따스했다. 

박 팀장이 용케 내가 있는 곳을 알고 찾아왔다. 박 팀장은 입사 동기였다. 그는 마케팅 1팀을 맡고 있었고 줄곧 나와는 경쟁 아닌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에 최우수 직원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미 시장에 안착한 브랜드를 홍보하는 것은 쉽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처럼 신규 브랜드를 개척하는 일은 훨씬 더 힘들고 험난하다. 그러나 경영진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몇몇 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업무 조율 능력을 높이 샀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항상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와 일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업무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는 사교 그룹이나 자선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신규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키고 싶었다. 그렇다면 회사도 사람들도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일은 잘돼?”

박 팀장은 이런 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말로 걱정하는 어투로 말을 건네 왔다. 하지만 나에게는 역시 가식적으로 들렸고 마음은 더 닫힐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좋아하지만 그래서 나는 이 친구가 더 불편했다.

“그럭저럭…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알았어?”

“아까 회의 마치고 바로 뛰어나오는 걸 보고 따라와 봤지. 왜? 그냥 갈까?”

그가 물러서는 눈치를 보이자 나는 황급히 그를 잡았다.

“그냥 좀 쉬고 싶어서…. 1팀은 어때?”

“나야말로 그렇지, 뭐. 시장이 좋지 않아. G사 매출이 지난달부터 뛰기 시작했거든. 그래도 2팀에서 한 건 해줄 테니까, 안 그래?”

“죽겠어…. 팀원들은 지쳐 나가떨어지고, 나도 커피로 연명하고 있어. 카페인이 없으면 진작 쓰러졌을 거야.”

“그래도 이제 마무리 단계잖아.”

“예정대로라면…. 그런데 쉽지 않을 거 같아.”

“팀원들은 왜?”

“처음 같지가 않아. 일정 관리도 예전 같지 않고. 내가 일일이 챙겨주지 않으면 곳곳에서 샌다니까. 왜 다들 자기 일처럼 하지 않는 걸까? 그 모든 걸 내가 다 챙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안 그래?”

이럴 경우 박 팀장은 말을 아꼈다. 같은 기획자끼리 한 번쯤은 맞장구 쳐줄 법도 한데. 다시금 얄미운 생각에 입을 닫았다. 어색한 침묵을 그도 느꼈는지 박 팀장이 입을 열었다.

“저… 은정 씨 말이야….”

은정 씨라면 이번 프로젝트에서 디자인을 맡고 있는 친구였다. 회사에서 가장 오래된 디자이너였고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제는 갑자기 연차를 냈고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퇴사하겠다는군….”

충격이었다. 그녀가 퇴사한다는 말보다 박 팀장이 그 사실을 먼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아니, 기분 나빴다.

“그걸 어떻게….”

“별건 아니고 조금 친분이 있었거든. 한 번씩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밥도 먹고.”

나는 은정 씨와 프로젝트 시작할 때 빼고는 단둘이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업무 외의 자세한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다. 나는 애써 냉정을 찾았다. 그리고 정말로 걱정된다는 투로 그에게 물었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대?”

“일이 힘든가 봐. 일하는 게 재미없다는군….”

재미라니… 일을 재미로만 생각하다니.

“알았어. 내가 한번 얘기해볼게.”

“벌써 사직서를 낸 모양이야.”

갑자기 내가 서 있는 옥상 바닥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빠진다면 이 프로젝트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많이 얘기를 했는데도 마음을 돌리지 않는군. 그래서 얘긴데 자네하고는 별일 없었나?”

그제야 얼마 전 박 전무에게 은정 씨의 일을 얘기한 기억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프로젝트의 컨셉과 은정 씨의 디자인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고 얘기했었다. 박 전무는 알았다고 얘기했고 나는 팀장의 권한을 내세우며 새로운 디자이너의 투입을 강하게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다른 급한 일들로 그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은정 씨와도 따로 얘기한다고 생각만 해놓고 아무런 언질도 주지 못한 상태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박 팀장을 남겨두고 급하게 사무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전무실을 나오는 은정 씨를 만났다. 그녀는 나를 보자 급하게 눈물을 닦았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두 종류의 시간








새벽의 정원은 조용했다. 새벽거인이 내 앞에 나타나고 내가 그를 알아보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나만의 정원에서 뜨거운 녹차와 더불어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새벽거인은 마치 오랫동안 기다리다 지친 사람처럼 헛기침을 했다. 비로소 내가 그를 알아봤다. 하지만 생각만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동안 기다리고 꿈꿔왔던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나는 새벽나라에 사는 ‘가치의 거인’이라고 합니다.”

나는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혹은 선후배 사이인 것처럼.

“기다리고 있었어요. 조태현이라고 합니다.”

“안내자로부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거인을 만나게 되었네요.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러자 그가 해처럼 웃었다. 새벽안내자와 비슷한 연배처럼 보였지만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안내자가 캐주얼한 차림이었다면 가치의 거인은 보다 무게 있는 정장 차림이었다. 검은 양복에 빨간 넥타이가 그토록 잘 어울리는 중년은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잠깐 산책하는 게 어떨까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괜찮겠지요?”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그와 나란히 나만의 집을 떠나, 언덕을 따라 난 작은 길을 걸었다.

나는 그를 따라가며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저… 새벽거인들은 새벽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어떤 특정한 일을 한다기보다는 대개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책을 보거나 생각에 잠겨 있죠. 그 생각들을 담아 글을 쓰는 사람도 많고요. 하지만 단순히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게 당신과 다릅니다. 그들은 ‘기도와 명상’으로 내면의 깊이를 조절할 줄 알지요. 그리고 부정적인 문화가 만들어낸 온갖 잡음을 떨쳐내고 내면의 세계에서 소리치는 자아의 소리를 들을 줄 압니다. 가치의 소리, 즉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죠.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키르케고르처럼 직접 신에게 아뢰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독서를 하고, 또 그것을 마음에 담기 위해서 묵상합니다.”

신기했다. 내가 요즘 새벽에 느끼는 침묵의 시간이 주는 유익함이 무엇인지 조금은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새벽 시간은 거인들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죠. 작가들의 책을 읽거나 다른 거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그에 따르는 고통도 함께 배우죠. 낮 시간에 배우는 것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새벽에 배우는 것은 영혼을 위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쓸데없이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새벽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조금 전이 생각나 몹시 부끄러웠다. 새벽 시간이 준 신선한 기억이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변질되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새벽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늘어나자 다른 욕심들이 파고들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어제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한 욕심, 쓸데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막 배달되어 온 따뜻한 신문을 펼쳐 보고 싶은 욕구,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도 무익하다 싶을 정도의 괜한 걱정과 공상들이 나를 괴롭혔다. 이런 나의 생각을 그가 훤히 읽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나는 조바심이 나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빠릅니다. 요구되는 것보다 더 빨리,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살아요. 그러나 그것이 항상 유익한 것만은 아니죠. 당신과 또 많은 사람들은 속도에 중독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요. 그래서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을 힘들어하지요. 아니, 생각하기를 싫어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속도에 중독되었다는 표현이 마음을 움직였다. 새벽의 그 많은 시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던 그 무엇이 혹 그런 조바심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시간이라는 빈 도화지를 채워야만 하는데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 아무것이나 그려대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나의 새벽은 새벽거인들처럼 깊이 있는 생각들로 채워지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새벽 산책길의 한쪽을 채우고 있는 넓은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조태현 씨, 이 세상의 시간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어요. 하나는 흘러가는 시간이고 또 하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말해요. 흘러가는 시간을 헬라어로 ‘크로노스’라 부르고,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부르죠. 그중에서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 또는 정해진 시간을 말합니다. 시간은 비록 흘러가는 것이지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에는 이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부른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직장에 일찍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는 사람들, 스포츠 신문부터 시작해서 4대 일간지를 모두 읽어버리는 사람들, 어제 점심에 미루다가 저녁에 끝내지 못한 일을 새벽부터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새벽 시간은, 추가된 냉면 사리처럼 덤으로 쓰는 시간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거인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 있어요. 거인들은 하루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새벽 시간을 바로 ‘카이로스’로 만들어 사용한답니다.”

이보다 더 가슴이 뜨끔해진 적도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듯 내 고민의 깊은 곳까지 들어와 내 생각들을 하나씩 들춰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를 놀리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치 교과서에 나온 역사적 사실이나 수학 공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그는 듣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만 고민하지 말고 그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겠어요? 똑같은 시간이라도 사용자에 따라 시간이 길거나 짧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당신도 경험해보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한 젊은이가 어떤 여자를 소개받았다고 생각해봅시다.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면 1분 1초가 소중하고 아쉽겠지만 그 반대라면….”

그는 무언의 동의를 구하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미소 지었다. 순간 나도 함께 웃었다.

그때 잔디로 둘러싸인 작은 산책길이 끝나고 비탈진 언덕길이 나타났다. 군데군데 큰 바위가 드러나고 제법 키가 큰 나무들이 그 빈틈을 메우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가에 있는 편편한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왜 이렇게 시간에 대해 얘기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비켜나 길 혹은 바위나 나무를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쉽게 대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시간과 가치가 연관이 있기 때문인가요?”

“의미 있는 시간만이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벽거인들은 누구나 1분 1초의 시간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치열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무의미한 시간이란 없었으므로 그들이 가진 모든 시간은 가치 있는 일에 쓰일 수 있었죠. 여기서 중요한 건 그들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맞닿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결코 자신의 욕구에만 머무르지 않았죠. 그랬다면 그들은 조금 더 부지런하거나 조금 더 부유한 삶을 사는 데 그쳤을지 모릅니다. 의미 있는 시간이란 이렇게 세상의 간절한 필요와 개인의 신념과 열정이 어우러질 때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내가 시간에 대해서 당신에게 이토록 오래 설명한 이유입니다.”

그의 말은 앞의 설명과는 사뭇 다르게 진지했고 단호했다. 그는 다시 바위에서 털고 일어나 나를 앞서 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멈춰 서서 비탈길의 끝에 서 있는 나무로 된 작은 문 하나를 가리켰다. 아무리 봐도 문이 필요한 장소가 아닌데도 오랫동안 그곳에 세워져 있었던 듯 바람과 먼지에 다소 낡아 보였다. 거인은 그 문 앞에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당신은 당신의 기억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어떤 시간과 장소로 향하게 될 겁니다. 내가 동행할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마음의 준비는 조금 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슬퍼할 필요도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들이니까요. 그 과거 속에서 어떤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몫입니다. 그저 마음을 열고 진실하게 그 사람들과 상황들을 만나보세요. 분명히 아주 소중한 여행이 될 테니까요.”

그는 말을 마치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나 역시 무엇에 홀린 듯 그 뒤를 따랐다.

과거로 떠나는 여행








갑자기 눈앞에서 하얀색 티코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가만히 서 있는 트럭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그리고 윗부분이 찌그러지며 트럭 밑으로 반쯤 들어가 버린 후에야 흰 연기와 함께 멈춰 섰다. 앞에 서 있던 트럭에서 노인 한 분이 뛰어나오더니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차 속에 있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친구였다. 이름도 생각났다. 순태였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하면서 나는 그 사고에 대해서 행여 새로 알게 될 사실이 있나 해서 트럭의 번호판이며 망가진 티코 옆을 살피고 다녔다. 하지만 안타까워할 수만 있을 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이 모든 상황이 내 과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쯤 나는 병원의 병실 앞에 서 있었다. 언제 따라왔는지 거인이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비교적 담담히 그에게 말했다.

“저 친구 이름이 순태예요. 아주 똑똑하지만 약간은 시니컬한 친구였어요. 내가 취직해서 서울로 올라오기 전이었으니까 벌써 8, 9년은 되었네요. 그런데 정말로 내가 지금 그때 그곳으로 온 건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당신은 저 사람을 좋은 친구로 생각했습니다. 함께 얘기도 많이 나눴고요. 아마 그 전날에도 당신은 저 친구의 차를 타고 얘기를 많이 나눴을 겁니다. 결혼과 앞으로의 일들, 그리고 우정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사고가 났고 친구 분의 회복 가능성은 아주 미미한 상태였습니다.”

“그랬죠. 친구들이랑 달려갔을 때 그의 이마에 선명한 상처 자국이 그대로 보였어요. 트럭 뒷부분을 들이받으면서 그의 머리가 정면으로 부딪혔으니까요. 의사는 깨어나기 힘들다고 했어요.”

“그래도 당신은 교회 친구들과 함께 한 달여 동안 저 친구를 간호했어요. 친구들과 밤샘 당번을 정하고 교대로 친구를 돌봤죠. 그리고 알다시피 저 친구는 기적적으로 깨어났어요. 온 가족과 교회 사람들이 함께 기뻐했었죠. 물론 사고 전과는 전혀 달라져서 돌아왔지만 말입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다. 불의의 사고였고 친구의 모습은 처참할 지경이었다. 다리에 깊이 파인 상처와 그 상처로부터 흘러나오던 몇 갈래 피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고 전날 나와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가 그렇게 온전하지 못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내가 힘들게 울음을 삼키는 동안 가치의 거인은 말없이 내 옆에 서 있어 주었다. 이윽고 거인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당신이 그 친구를 도왔던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나요?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었나요? 아니면 동기 모임의 리더로서 가진 책임감 때문이었나요? 그것도 아니면 으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주위의 무언의 압박 때문이었나요?”

책임감이라니… 당치 않았다. 나는 친구를 돕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친구들이 다 따라주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함께하며 행복했었다. 힘들었지만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다. 간호사였던 한 친구는 그 일이 있은 후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당신은 의식하지 않고 한 일이겠지만 그건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보상이나 다른 의도 없이 친구를 돕는 일 말입니다. 당신은 그런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났죠.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돕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안은 채 태어난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마음속 메시지를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이해한 친구들은 당신을 따라 친구를 함께 도왔죠. 당신에게 강력한 리더십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진심을 전할 수는 있었죠. 친구들은 그 때문에 당신을 따라주었던 겁니다.”

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가 새벽녘 친구를 지키고 있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는 간이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인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그 가치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있나요?”

순태에게 의식이 돌아왔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부터 내가 알고 있던 친구가 아니었다. 그 날카롭던 생각의 칼날은 무뎌지고 말도 어눌해졌으며 기억도 현재와 과거를 쉼 없이 넘나들었다. 그의 초점 잃은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그렇게 삶을 마치는 편이 그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생명이란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우리는 곧 지쳤고 그나마 서울로 취직되어 올라온 후로는 한 번도 그 친구를 만나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시간을 쓰고 있는지.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상의 속도에 압도되어 당신이 왜 살고 있는지 잊어버린 채 그냥 달리기만 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당신이 그 소중한 친구를 까맣게 잊고 살아왔듯이 말입니다.”

나는 친구의 이마에 가볍게 손을 얹고 기도했다. 차 안에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순태는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준비했었다. 그의 건강을 위해,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가치의 거인과 함께 다시 언덕 위 나무 문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놀랐나요?”

정말 그랬다. 과거의 사고 현장에서 순태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는 말이다. 치료받는 순태 옆에 서서 그의 다리 깊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주는 내 모습을 보았을 때는 가슴이 터질듯이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편안한 느낌이었다. 왜일까?

“당신은 지금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과 가치의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다시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새벽거인들은 막연해 보이는 가치들을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지요.”

“진심이었고 할 수 있는 온갖 정성을 다한 일이긴 하지만 그때뿐이었어요.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 옛날 일을 이제 와서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당신이 이미 답을 했습니다. ‘한때의 감상적인 추억’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가치란 그런 겁니다. 누구나 멋진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요. 사랑, 헌신, 희생, 봉사, 혁신, 구제 같은 것들…. 그러나 그것들을 평생의 가치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그 가치들을 다시 발견하고 되새기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 역시 필요한 법이죠.”

“글쎄요. 친구를 돕는 일이 바람직한 일이긴 하겠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전 평범하고 행복하게 하루를 살고 싶을 뿐이에요. 당신이 말하는 가치라는 것이 과연 내게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안내자로부터 초대장을 받았지요?”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새벽거인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초대장을 받았고 실제로 그 초대에 응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새벽안내자를 거쳐서 나를 만나는 곳까지 왔습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그렇지. 나는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일까? 무엇을 바라고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나는 당신이 마더 테레사처럼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마틴 루터 킹처럼 사회 변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일상으로부터 당신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 가치라는 것이 들어왔을 때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열정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이 새벽 시간입니다. 그 이후에 어떠한 삶을 살지는 당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 말 이해할 수 있나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굳이 그것이 새벽이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가장 오염되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던지는 온갖 소음으로부터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걱정과 근심, 염려와 혼란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새벽에 일어나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결코 오늘 경험한 것과 같은 가치 있는 과거의 모습을 만날 수 없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새벽을 대하는 자세를 바꿀 때 일상의 큰 변화가 시작될 겁니다. 만일 이 소중한 새벽 시간을 사용하고 싶다면 오늘부터라도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하세요. 늦은 밤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TV 프로그램들과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우리를 멍하게 만드는 텔레비전을 끄고 과감히 잠자리에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간단한 변화이지만 새벽 시간을 기준으로 맞춰진 저녁 시간은 남들보다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게 인도해줄 겁니다. 새벽을 소중히 여기세요. 새벽도 당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겁니다.”

그는 일어나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의 여행은 이걸로 끝이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뭔가 그를 붙잡고 더 물어봐야만 할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런 나의 심정을 읽기라도 한 듯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은 진실한 심장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여행도 잘해낼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으니까요. 당신을 지켜보며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게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새벽안내자에게 받은 것과 비슷해 보였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보낸 이와 받는 이가 분명하게 씌어 있다는 점이었다. 보낸 이는 가치의 거인이었고 받는 이는 나였다. 

나는 편지를 읽는 동안 그가 아직도 내 앞에 앉아 그 편지를 읽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떠났고 밖은 가벼운 아침의 소음들로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거인의 편지쪾1




평생 섬김의 삶을 살았던 마더 테레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넓은 바다의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바닷물은 그 한 방울만큼 모자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작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좌절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한때에 한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위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나요? 우리는 그것을 가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마더 테레사도 처음부터 어떤 거대한 가치들을 품고 섬김의 실천을 시작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녀가 가진 가치는 단 한 사람을 위한 작은 헌신, 바로 그 소박하지만 진실한 작은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그 가치를 발견하게 했고 그녀는 평생에 걸쳐 그 가치를 실현해갔습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던 가치에 합당한 것인지 매일 새벽 다시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 내면의 가치가 주는 메시지에 따라 일상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당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모한다스 간디라는 새벽거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부유한데도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가치를 누군가가 대신 실현해주기를 기대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죠. 마더 테레사는 가난이라는 희생을 택했고 마틴 루터 킹은 아시다시피 죽음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가치가 지닌 달콤함에만 매료되지 마세요. 당신이 정직이라는 가치를 가슴에 품었을 때 날아든 주위의 빈정거림과 회의, 그리고 차장으로의 승진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새벽거인들은 그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이 작아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만 그 희생보다 그것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지요. 우리는 그래서 그들을 비로소 거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대화들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매일 새벽 이 편지를 통해 다시 떠올리기 바랍니다. 당신의 삶이 새벽거인들과의 얘기로 가득 찰 때 우리는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심으로 행운을 빕니다.



아내의 블로그 








“여보, 나랑 잠깐 얘기 좀 해.”

출근하러 나서는 길을 아내가 막았다. 멈칫하고 뒤돌아보니 아내의 굳은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늘 퇴근하고 와서 하면 안 될까?”

“잠깐이면 돼. 나, 애들 데리고 친정에 다녀올까 해. 한두 달 정도 쉬었다 오고 싶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아이들의 외갓집은 부산이었다. 결코 매 주말마다 왕복하며 다녀올 수 있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텅 빈 집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나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내의 일방적인 통보가 거슬렸다.

“알았어. 회사 갔다 와서 얘기하자고. 지금 출근해야 되니까.”

이유를 묻기도 전에 나는 우선 시간을 벌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단호했다.

“기다리다 못해서 이렇게 새벽부터 당신을 붙잡고 얘기하는 거야.”

아내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지자 나는 순간 화가 났다. 아내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나 출근해. 그 얘기는 갔다 와서 하자고.”

왠지 모르게 불쾌한 출근길이었다. 아니, 화나는 출근이었다. 근래 들어 아내가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다리나 어깨를 주물러달라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새벽을 깨우기 위해 일찍 자야 했다. 간혹 아내가 두 아이들과 취침 전쟁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늦는 날 애들을 재우는 몫은 당연히 아내의 차지였다. 아내는 어제오늘 생각한 게 아닌 듯했다. 나는 일하는 내내 몇 번이나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퇴근하고 나서의 썰렁한 집을 상상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일단 아내의 기분부터 이해하고 싶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신규 브랜드 런칭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퇴근 후에도 내 삶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달려들거나 아내가 뭔가 얘기하려 운을 떠볼 때 그 간절한 눈빛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 다른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답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회사 일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게 현명한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는 회사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싫어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교육이며 육아, 이사 따위에 모든 관심이 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인 줄은 알지만 나는 저마다의 몫이겠지 하며 생각해왔었다. 그런 것들은 내가 어느 정도 직장과 일에서 안정을 찾은 후에 고민해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다만 아내도 나와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그때 문득 아내가 종종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던 블로그가 생각났다. 내가 그 블로그에 방문해서 유심히 읽어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느닷없이 친정에 가서 쉬고 싶다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소가 생각나지 않아 한참 애를 먹다가, 첫째 아이가 딸기를 먹어 입이 터질 듯한 사진이 올라와 있는 아내의 블로그를 겨우 찾았다.

언제였을까… 매일 보는 아이의 얼굴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이들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 지도 꽤 되었던 것이다.

불면증, 잠이 안 온다.

몸은 피곤해서 소금에 푸욱 절인 배추 같은데,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의식이 꼭 바늘 끝에 서 있는 것 같다. 

잠들면 안 돼, 잠들면 안 돼. 

누군가 잠이 들려는 신경 끄트머리를 움켜쥐고서, 잠이 들려는 찰나에 확 잡아당기는 것 같다. 

뒤척거리다가 간신히 무의식 속으로 가물가물 빠져 들려는 순간, 큰애가 깨든지 작은애가 깨서 칭얼거린다.

칭얼거리는 녀석을 다시 재우고 나면 잠이 싸악 달아나 버린다. 잠 끄트머리를 움켜잡고서 못 자게 하던 누군가가 하하 웃는 것 같다. 거봐, 못 잔다니까. 

찬송가도 웅얼거려보고, 기도도 하고, 별짓 다 하다가 결국 클릭질이다. 

내일 아침에 몸 피곤하다고 아이들에게 화내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나는 한 번도 아이들 때문에 잠에서 깨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날마다 잠을 설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뼈 마디마디가 쑤시는 관절통, 주부습진, 치통,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의욕을 상실케 하는 극도의 소심함, 

끝도 없고 감당도 안 되는 식욕, 불면증, 미간 사이 주름, 

내 명의로는 카드 한 장 만들지 못하는 존재의 상실감, 

대판 싸우고 뛰쳐나왔으나 갈 데가 없는 어이없음, 

집 안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기억상실, 

잠든 아이 머리맡에서 매번 느끼는 죄책감,

자기 커리어, 회사를 자랑하는 남편에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입을 옷이 없는 난감함.

일전에 아내와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대차게 집을 나서기에 조마조마했었는데 아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타났다. 

“갈 데도 없으면서.”

장난스럽게 면박을 주긴 했으나 그날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미안했지만 다음 날 바로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다음 글의 제목은 <행복>이었다.


작금의 화두는 ‘행복’인가 보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네, 아니네, 돈으로도 행복은 못 사네, 마음을 달리 먹어야 되네, 말도 많다. 

오늘 아침 신문 섹션에는 행복을 수치로 환산하는 공식이 나왔다. 

질문에 답을 하고 합산하면, 자기가 얼만큼 행복한가를 점수로 알 수 있단다. 내 행복 상태를 한번 수치화해보려다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부분을 다른 이가 만들어놓은 잣대로 재본다는 게 웃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봤다. 내가 최근에 행복했던 때가 언제이던가 하고.

엊저녁 아들이 온 동네 골목을 시끄럽게 휘젓고 다니며 신이 나서 뛰어놀 때!(동네 아줌마한테서 항의 들어올까 봐 조마조마.)

현숙 언니가 맛있는 불고기로 저녁 한상 차려줄 때!!

세 겹으로 살이 올라 터질 것처럼 통통한 딸을 안을 때!! 

냉커피 한 잔 타놓고, 이렇게 블로그질 할 때!!

적어놓고 보니, 내가 노력했다거나 뭔가 힘을 기울여서 얻은 행복보다는 이웃을 잘 만나서, 아이가 원체 건강해서, 내 능력 밖의 요소로 인한 행복이 크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 너무 노력을 안 하고 사는 건 아닌가. 

어떻게 내 삶 속에, 내가 노력해서 얻어낸 행복의 흔적이 이렇게도 안 보일 수가 있단 말이냐…. 

너무 게으르게 사는 거 아닌지.

아내의 글에는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육아와 가사에 찌들어 자신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그림자 인형처럼…. 


역시 집은 비어 있었고,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인기척이 없다는 것만 빼면 내가 꿈꾸던 모습이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항상 집은 엉망인 채였다. 그때마다 짜증이 났었다. 아이들을 하루 종일 돌보느라 지친 아내에게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돌려 말하거나 부산을 떨며 직접 치우곤 했었다. 그러나 표정까지 숨길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아내가 한마디 날카롭게 던질라치면 나는 곧장 서재로 숨어 들었다. 거기서 화를 참으며 감정을 조절하곤 했다. 그럴 때쯤이면 아내도 다른 문제로 말을 걸어올 만큼 진정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영역을 지켜내며 위태로운 삶을 끌어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낯선 것이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이 집에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 모든 짜증의 대상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조금만 배려했어도 아내가 왜 집 안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주말 반나절만 아이들과 놀아주어도, 그 종류가 다른 피로감에 도망치듯 아이들을 피했던 나쁜 아빠가 아니었던가. 텅 빈 집 안은 마치 열심히 물을 찾아가 달려간 곳이 신기루인 것처럼 그렇게 휑한 곳으로 남아 있었다.


전화를 하니 장모님이 받으셨다. 아내가 어떻게 얘기했는지 별다른 의심은 없는 눈치였다. 바꿔줄까 하고 아내에게 말하는 듯했으나, 약간의 침묵 뒤에 아이들과 욕실에 있으니 나중에 다시 전화하라는 말로 통화는 끝났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때가 아닌 듯싶었다. 무엇보다 나 역시 쉬고 싶었다. 습관처럼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따 두세 번 연거푸 들이켰다. 예전과 같은 시원함은 간 곳 없고 맥주의 쓴맛만 입속을 맴돌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 곰곰이 오늘 나누었던 박 전무와의 대화, 아니 일방적인 통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오늘 있었던 일인데도 아뜩하게 먼 과거의 일처럼 그 모든 대화가 아스라이 떠올랐다. 그것은 기억은 또렷해도 그 기억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나의 몸부림 때문인지도 몰랐다.

비전의 재발견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지?”

박 전무는 마치 나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새로 써낸 보고서로 인해 박 전무가 몹시 곤란해졌다는 말을 기획실에 있는 동기로부터 전해 들어서 나는 최대한 겸손하게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일 년 정도 되었습니다.”

“얼마나 연기된 거지?”

“한 달 정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정확히 한 달 열흘이었다.

“예상 런칭 시점은?”

“약 한 달 후입니다.”

그러나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이상하리만치 모든 결재들이 늦어지고 있었고, 팀원들의 열정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은정 씨의 퇴사 여파가 이렇게 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은 그 문제에 대해서도 박 전무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참이었다. 그때 그가 갑자기 인터폰을 들고 김 부장을 호출했다. 잠시 후 굳은 표정의 김 부장이 전무실로 들어왔다.

“미리 얘기를 안 한 모양이로군.”

박 전무가 김 부장에게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 김 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박 전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나서 박 전무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없던 일로 하기로 했네. 위험 부담이 너무 커. 그리고 무엇보다 자네에게 이번 일을 맡기는 데 대해 말들이 많다네. G사에서 이 프로젝트 대응 차원의 새로운 브랜드가 곧 나온다는 소문도 있고 말이야.”

어이가 없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G사는 이 프로젝트의 진행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믿을 만한 정보였기 때문에 이미 박 전무한테도 보고한 상태였다. 내가 세운 계획대로만 간다면 이 브랜드는 향후 3년간은 어떤 브랜드도 따라오지 못할 강력한 브랜드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거운 분위기는 토의를 필요로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통보였고 변화의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이런 것이 ‘정직’이라는 가치의 결과로구나 생각하니 허탈했다. 갑자기 아내의 얼굴과 박 전무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게 박 전무가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마케팅 부서가 재편될 걸세. 새로운 프로젝트를 박 팀장이 추진하기로 했네. 그때까지 자네는 발령 대기이니 그렇게 알도록 하고.”

그것이 오늘 박 전무와 나눈 대화, 아니 통보의 전부였다.


나는 마치 가벼운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의식 깊은 곳에서 불을 밝힌 것 같은, 짧지만 강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머리가 지끈거리기는 해도 거짓말처럼 몸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다시금 어제의 그 아뜩한 절망감이 몰려왔다. 그동안 수없이 준비하고 열변을 토했던 프레젠테이션들이 떠올랐다. 밤새 기획안을 고치고 또 고치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때 내 얘기를 듣고 공감하며 감동했던 사람들은 오늘의 이 일을 미리 짐작이나 하고 있었을까? 김 부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어쩌면 회사의 사활을 결정지을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했었다. 박 전무와의 일이 마음에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건 회사 차원의 프로젝트였으므로 크게 상관없을 거라 나름 생각했었다. 그러나 헛된 믿음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일단 시간부터 확인했다. 차가운 물 한 잔을 따라 마시며 거실 벽시계를 확인해보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평소보다도 더 이른 시간이었다. 약간의 갈등이 일었다. 어제 술도 마시고 했으니 한두 시간 더 자야 회사 업무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빈 컵에 다시 물을 가득 채운 후 서재로 향했다. 그곳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두 번째 거인은 서재의 의자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짙은 색 겨울 정장을 입고 약간 어두운 테 안경을 쓴 여자였다. 새벽안내자나 가치의 거인만큼 나이 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젊다고 할 수도 없는 나이었다. 대략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차 두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집이 아담해요. 서재도 아주 깔끔하게 정리를 잘해두셨어요.”

“아내가 꼼꼼한 편이라….”

“혹시 일기를 쓰시나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집 안 정리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갑자기 일기라니…. 

“학창 시절 이후로는 써본 적이 없어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개는 그렇죠. 그러나 일기를 쓰는 건 집 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쓸고 닦고, 가구들을 그 때의 필요에 맞게 다시금 위치를 조정하기도 하고요. 일기를 쓰는 것도 우리의 보이지 않는 내면을 청소하고 비우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일기와 청소가 다른 점이 하나 있어요.”

잠시 말을 끊은 그녀가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계속했을 때 나는 아내가 이 방을 치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내는 곧잘 정리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하곤 했다. 쓰고 그 자리에 다시 갖다 두었을 때의 유익함에 대해서. 

‘내가 겪고 있는 일련의 혼란스러움은 무언가를 가져다 쓰고 제자리에 두지 않아서 생긴 결과일까?’

“부지런한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정리하고, 게으른 사람도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은 청소를 해요. 그러나 일기는 평생 동안 쓰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몇 번인가 새로운 각오로 일기, 혹은 다이어리를 기록하던 때를 떠올려 봤다. 그것은 별로 실용성 있는 습관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록을 필요로 하고 습관을 만드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방법은 많지 않을까요?”

거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맞아요. 제가 오늘 당신께 들려드리고 싶은 게 일기에 관한 것은 아니랍니다. 뭔가를 쓴다는 것, 즉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왜 중요하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싶어서 일기 얘기를 꺼낸 것입니다.”

“그것도 거인들이 가진 습관 중 하나인가요?”

내 말은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마침내 우리의 주파수가 하나로 맞춰진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가치의 거인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을 거예요. 그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적잖이 고민하고 생각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가치는 추상적인 단어입니다. 뚜렷한 실체를 가진 게 아니죠. 당신이 정직이라는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할 때 그 가치를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어려워합니다. 그렇다고 새벽거인들이 철학자는 아닙니다. 그들은 낮이면 남들처럼 치열하게 세상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경영을 하는 CEO도 있고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도 있죠. 자동차를 판매하는 영업 사원도 있고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도 있어요. 그들은 저마다 삶을 지배하는 가치를 삶 속에서 뚜렷하게 실현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혹시 그러한 거인 중에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당신이 출근 때 가끔씩 들르는 토스트 가게를 아실 겁니다.”

“네, 조금 유명하다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분은 지금도 하루에 반나절은 토스트 굽는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요. 위암 수술도 그러한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죠. 특히 아이들을 사랑해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캠프장을 세우는 꿈을 갖고 살아가지요. 그렇게 본다면 그분은 토스트를 팔고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그가 만드는 토스트 한 개가 캠프를 세우는 벽돌일 수 있지요. 그분은 캠프장을 세우고 싶은 부지에 자주 들러서 꿈을 다진답니다. 아직 벽돌 한 장 쌓이지 않았지만 그 꿈은 아주 구체적으로 그분의 삶을 채우고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꿈을 ‘비전’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녀는 비전의 거인이었다. 

“당신은 최근의 경험을 통해 정직과 섬김의 가치를 이미 발견한 바 있어요. 그 가치를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요. 많은 사람들이 가치의 존재조차 모르고 사는 것에 비하면 당신은 분명 행운아예요. 하지만 그 가치가 순간적인 추억으로만 남는다면 그야말로 무가치한 경험이 되고 맙니다. 제가 아는 한 당신은 그러한 삶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제 말이 맞나요?”

이로써 내가 무엇에 목말라하고 혼란스러워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희망이 내 속에 뿌리를 내린 듯한 기분이었다.

“당신이 매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을 종이에 써두는 게 중요해요. 종이에 옮겨 쓰다 보면 혼란스러운 생각의 초점이 확실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새벽거인들은 대부분 생각과 느낌, 감정과 비전을 종이에 구체적으로 써둔답니다. 이건 매우 현실적인 필요 때문이기도 해요. 생각을 종이에 기록해두지 않으면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는지 확실하게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될 수 있으면 아침부터 밤까지 생각한 것 모두를 써보는 게 좋아요. 그러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그 다음에는 그 생각이 과연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렇게 자신의 사고를 통제할 수 있다면 또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어요. 혹시 ‘자기 사명 선언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낯선 단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확한 정의를 말하기는 어려웠다. 

“스티븐 코비란 사람은 이렇게 말했죠. 자기 사명 선언서란 ‘주위의 여건과 사람들의 감정에 좌우되기 쉬운 상황에서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그리고 일상의 결정을 내릴 때 기준이 되는 자기 헌법’이라고 말이에요. 세계관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무엇으로 살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생각을 전환하게 해줍니다.”

“좀 더 철학적이고 종교적으로 표현한다면 자기 사명 선언서는 글로 만들어진 영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로 그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자신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어렵고, 영혼을 표현할 색깔이 없기 때문에요. 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한 시간에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 시간을 투자하면 그 시간을 만회할 만큼 비전이 오래 남습니다. 

유언장이 죽고 난 뒤의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면 자기 사명 선언서는 현재의 남은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서 작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것을 작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빨리빨리’라는 사회적 영향력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나 성공의 기준에도 이 빨리빨리의 조급함이 적용됩니다. 

이것이 기준과 가치가 된 것이죠. 하지만 사소한 것들에 대한 조급함은 인생을 진지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새벽거인들은 마치 무사가 전쟁 직전 새벽같이 일어나 칼을 천으로 닦아내면서 긴 호흡으로 칼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자기 사명 선언서와 자신이 하나 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새벽거인들이 그렇게 자기 사명 선언서를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죠?”

나는 좀 짓궂은 질문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그래요. 이 세상의 위대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자기 사명 선언서를 항상 품에 품고 살았다고 우긴다면 그건 억지겠지요. 하지만 태현 씨, 우리는 대단히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당신은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몇 억의 연봉을 받는 의사 친구를 만났을 때 그 순간 당신의 모든 가치가 허물어졌던 경험이 있을 거예요. 만약 당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어떤 순간에 맞닥뜨린다면 당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불안감으로 분명 크게 낙담하게 될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라…. 사활을 건 프로젝트는 일방적으로 막혀버렸고 아내는 집을 나갔다. 지금처럼 나를 잘 알게 되는 순간이 또 있을까? 나는 무능하고 고집 세고 또 아둔한 존재다. 이 거인은 나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전이니 자기 사명 선언서니 하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물론 그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모두가 사치스러운 단어들이다. 회사 일과 아내 일이 떠오르자 이 모든 대화가 부질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때였다.

“새벽거인들은 누구보다도 더 자주 더 많이 어려움과 역경에 맞닥뜨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따라가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게 뭐였는지 아시나요?”

갑자기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새벽거인들은 내 생각을 읽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그게 비전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전이 구체적일수록 그들은 빨리 자신의 길로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자기 사명 선언서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나 견뎌내기 힘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우선 자신의 나침반을 꺼내 들고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습니다. 요즘 힘든 일이 많으시죠?”

나는 대답을 아꼈다.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당장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저와 함께 그걸 찾으러 가볼까요, 어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찾을 수만 있다면 지구 끝이라도 따라갈 작정이었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꿈








차가운 밤바람이 일었다. 나와 비전의 거인은 아주 낯익은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예전에 살던 집 근처에 있는 독서실 건물이었다. 2층으로 된 벽돌 건물에는 독서실 말고도 가게와 학원들이 몇 개 들어와 있었다. 마칠 시간이 되었는지 아이들이 나와서 독서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2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헤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커피 자판기를 지나 독서실 문 앞에 서니 낯익은 모습의 내가 열심히 독서실을 청소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열심히 하고 있군요. 저 때의 당신 말입니다. 새벽 시간인데 힘들었나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엇이 당신을 제대 후에 다시 독서실로 몰아간 건가요? 몇 년 동안이나 쉰 공부이고 수능 시험까지는 여섯 달도 채 남지 않았었는데요.”

“꿈을 꾸고 있었거든요. 제대 후에 복학해 학교를 다니면서 생각했었죠. 내가 원하는 전공 책을 들고 캠퍼스를 누비고 싶다고. 숫자를 싫어하는 저는 인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수능 문제집을 풀면서도 멋진 글들에 매료되었죠. 언어 영역이든 사회 탐구 영역이든 문제보다 그 글 자체에 푹 빠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책과 원서들을 들고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 꿈을 이루었나요?”

“네. 멋진 두 번째 대학 생활이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발표 수업만은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수백 명이 듣고 있어도 전혀 떨리지 않았어요. 내 생각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교감하는 건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거든요.”

나는 다시금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분명한 그림이 있었으므로 부모님의 반대와 현실적인 어려움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건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생생히 그릴 수 있는 장면들의 모음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옆에 서 있던 거인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들렸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의 그 유명한 연설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를 비전의 거인이 나직이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연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아직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아메리칸드림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꿈입니다. 

그 꿈이란, 언젠가 나의 조국 미국이 

‘진리는 밝혀질 것이다’라는 문구의 참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이와 동시에 모든 인간은 평등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우리의 신념을 알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짧게 암송하고 비전의 거인은 잠깐 숨을 고르는 듯 말없이 서 있었다.

“그 꿈은 이뤄졌어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꿈꾸는 세상은 추상적이지 않았답니다. 그의 비전 속에서는 이미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흑인 아이들과 백인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으니까요. 만약 마틴 루터 킹이 단순히 흑과 백의 평등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들만 나열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을 거예요. 이것이 바로 비전의 힘입니다.

데일 카네기라는 사람은 재산을 기부해서 미국 전역에 3천여 곳이 넘는 도서관을 세웠어요. 자신이 독서의 대가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생생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죠. 그래서 그는 이런 글을 남겼어요.”


  오늘날 소년 소녀들은 좋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학교 또는 일을 마치고서 이용할 수 있는 쾌적한 도서실도 있다. 나는 가끔 오후 5시경 조용히 나의 방에 앉아서 이곳저곳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을 많은 소년 소녀들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곤 한다. 나는 그럴 때가 즐겁다. 때때로 나는 공상 속에서 어린이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저도 그랬어요. 분명히 아주 생생하게 제가 이루고 싶은 일을 꿈꾸었던 것 같아요. 앞의 두 분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사소한 바람이었죠. 비전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기적이기도 했고요.”

“마틴 루터 킹도 간디도 처음부터 엄청난 비전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랍니다. 그러니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너무 함부로 평가하지 마세요. 그 모든 경험들이 앞으로의 당신 삶에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요. 꿈을 꾸어야 해요. 하지만 잊지 마세요. 그 꿈은 눈에 보일 듯이,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모든 꿈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겠죠. 역시 안 되는 거였다고, 그냥 꿈이었을 뿐이라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느라 과거의 내가 자리를 비운 독서실의 사무실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밖에서는 아직도 자기 집 방향으로 가는 봉고차가 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얘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제게는 지금 저 때의 열정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요. 솔직히 그때는 대학 입학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만큼 바쁜 날들이 계속되고 있어요. 무얼 다시 시작하기엔 나이도 적지 않고 딸린 식구들도 많죠. 제 손과 발을 채운 이 족쇄들이 보이시나요?”

내가 웃으며 손과 발을 들어 보이자 진지하게만 보였던 비전의 거인도 웃어주었다.

“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감동이 없는 사람은 열정이 없어요. 열정이 없는 사람은 새벽거인이 될 수 없고요. 이것은 명확한 사실이에요. 내가 만난 모든 거인들 안에는 열정이 있었고, 대부분의 열정들은 감동에서 시작된 것들이었어요. 신에게 감동했거나, 가치를 가진 사람에게 감동했거나, 아니면 가치 자체에 대해서 감동했죠. 그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촌티 나고 유치해서 현대인으로서 놀라지 말아야 것들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을 발견했어요.”

“에너지의 원천이라….”

“당신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 있나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자고 있는 당신을 흔들어 깨울 만한 그 무엇이 있나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우리가 얼마나 감동 없이 가치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죠. 키팅 선생은 영문학 시간에 시를 X, Y축으로 분류하는 교과서의 페이지를 찢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라고 지시합니다. 낯선 상황에 얼떨떨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책을 찢고 책상 위로 올라가죠. 그리고 책상 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봅니다. 감동의 세계인 것이죠. 그들은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심연의 포말을 느끼면서 말할 수 없는 자유를 느낍니다. 그것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경험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가치에 대해서 감동한 겁니다. 처음으로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 것이죠.”

내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런 감동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녀가 대답했다.

“자기 사명 선언서는 자석과도 같은 기능을 갖고 있어요. 자석을 모래에 묻어두었다가 꺼내면 많은 철 조각이 붙어 나오는 것처럼, 당신의 가치와 목표가 분명해지면 당신 주위에 묻혀 있거나 숨겨져 있던 꿈과 비전의 파편들이 당신에게로 쏟아져 들어오게 될 겁니다.”

“좀 더 자세한 방법을 알려주실 순 없나요?”

“우선 자신이 간절히 바라고 있고 되고 싶은 그 무엇, 이루고 싶은 상황들을 생생하게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 경험들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떼어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새벽거인들조차 자신의 그 비전을 다시금 되새겨보기 위해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따로 찾아간답니다.

최소한 다섯 권 이상의 좋은 책을 보면서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해요.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가진 단어만큼 생각할 수 있고, 감동받은 패턴 안에서 살기 때문이에요. 또한 그런 책들은 자기 사명 선언서를 쓰는 방법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알려줄 겁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아무리 익숙한 사람이라 해도 하루보다는 이틀 동안 하는 게 좋아요. 작성한 다음 날이 되면 저녁에 작성한 자기 사명 선언서를 고치거나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아마 자기 사명 선언서를 작성하는 것이 처음에는 머쓱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위기가 닥치거나 무언가를 결정할 순간이 오면 바로 그때 힘이 발휘되죠.”


과거의 내가 청소를 마치고 나와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데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에게 저런 열정이 있었다니… 믿을 수 없군.’ 

그러나 사무실을 정리하는 청년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루고 싶은 어떤 꿈이 있는데 이 정도 힘든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소매를 걷어 흉터를 살펴보았다. 족히 1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상처 자국이다. 저렇게 청소를 하던 어느 날 새벽, 화장실 거울을 닦는데 거울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유리는 다행히 팔뚝에만 깊은 상처를 내고 정확히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으로 떨어져 다시 산산조각 났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병원에 가지 않은 탓에 상처는 흉터로 이렇게 남아 있다. 나는 훈장처럼 그 상처를 바라보았다.

“조태현 씨 자신이 정말 바라고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처음 새벽안내자를 만났을 때 당신은 인생의 몇 가지 목표에 대해서 대답했어요. 승진이나 돈에 관한 것이었죠. 그것은 바람이나 소원일 수는 있어도 비전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 목표들은 철저히 당신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동의하나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는 비전을 다른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또 그것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법을 알았어요. 당신의 가족, 친구, 그리고 설령 부하 직원이라 해도 리더십을 상사에게 발휘할 수 있어요. 비전이 한 사람의 꿈에 머무를 때 그것은 한낱 소원일 뿐이지만 똑같은 비전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하나의 옳은 방향으로 향하게 될 때는 가치라는 돛을 단 거대한 꿈의 비행선이 되죠.”

프로젝트의 수석 디자이너 은정 씨가 문득 생각났다. 사표를 낸 후 얘기를 많이 나누었으나 애써 잡지는 않았다.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인간적인 정보다는 성과가 우선시된다. 이런 과정은 개인에게는 희생이지만, 조직을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팀은 동요되기 시작했고 팀원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나는 그것조차도 일이 되기 위한 어떤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번 프로젝트가 이렇게 끝나게 된 것은 박 전무 때문만은 아니었단 말인가? 

마음 한쪽에 공들여 쌓은 견고한 벽이 허물어지는 듯 했다. 비전의 거인은 먼 곳을 응시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이러한 비전은 세상에 어떤 형태로든 기여하게 돼요. 그것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세상에 남아 다른 이들을 격려하고 돕게 되죠.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남게 되기 바라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꿈을 이루기도 힘들고 왜곡되기도 쉽지요. 그러한 꿈은 유대인 대량 학살 같은 비극적인 역사를 남기게 돼요.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 꿈은 진정한 가치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가치 있는 비전을 가진 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이름과 노력을 희생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어요. 자신의 전 생애를 걸거나 심지어는 생명을 내놓기도 했죠.” 

새벽거인은 그제야 나를 돌아보며 애정과 정성을 담아 물었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눈빛이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예요. 새벽거인들은 누구나 가치와 하나가 된 목적을 목표로 삼았어요. 그래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죠. 지금 당신에게 힘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모두가 함께 슬퍼할 일인가요? 아니면 단지 자신의 욕심이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인가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프로젝트의 실패는 곧 나의 실패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한 번도 우리 팀의 실패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프로젝트의 성공은 곧 나의 성공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이미 알고 있지 않나요?”

새벽거인의 물음은 긴 여운으로 나를 흔들었다.

 거인의 편지쪾2




어느 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제자가 찾아와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데리고 해변에 가서 제자의 목을 바다에 처박아버렸죠. 숨이 막힌 제자가 허우적거리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잠시 숨을 쉬게 한 다음 다시 그의 머리를 바다에 넣었어요. 제자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헉헉거리며 ‘지혜를 구했는데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조용히 그를 지켜보다가 물었지요.

“네가 물속에서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냐?”

“숨을 쉬는 것이었습니다.”

“지혜를 어떻게 구하는지 물었는가? 물속에서 숨을 쉬고자 했던 열정으로 지혜를 구하게.”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열정이에요. 그리고 이런 열정은 새벽 시간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가치와 마주쳤을 때 생겨나는 겁니다. 그 가치를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 그것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렸던 캠퍼스의 모습, 마틴 루터 킹이 꿈꾸었던 흑백의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이 비전의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가치를 비전으로 뚜렷이 그려내고 글로 기록할 수 있다면 목표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음에 필요한 것은 ‘때’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하는 일들은 그러한 ‘때’를 앞당기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새벽에 어떤 일을 준비한다면 그 ‘때’가 ‘자주’, ‘빨리’, 그리고 ‘정확히’ 찾아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의 기쁨이야말로 우리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요. 명심할 것은 이런 비전은 마치 신기루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거인들이 새벽에 일어나야만 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비전을 날마다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의 비전을 글로 적어보세요. 가능하다면 1년 후, 3년 후, 5년 후, 그리고 10년 후에 만날 당신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그리고 그 모습을 위해 실천해야 할 목표 리스트를 만들어보세요. 매일 새벽 그 비전을 곱씹어보며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보세요. 당신의 삶이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진정한 성장과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겁니다.

당신은 이미 그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세요. 수많은 새벽거인들이 당신을 주목하며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요.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요.











문제를 푸는 열쇠








새벽안내자는 내가 터벅거리면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새벽거인과의 만남이 거듭되는 동안에도 그는 나를 만나러 오곤 했다. 어떤 날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가는 날도 있었는데 오늘은 내게 말을 걸었다.

“피곤해 보이는군요.”

“잠을 자지 못했어요.”

“무슨 걱정이 있나요?”

“걱정이라기보다는 풀지 못하는 숙제 때문에.”

“풀지 못하는 건가요? 아니면 알지 못하는 건가요?”

그는 내 문제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제를 정확히 알면 내가 풀 수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있죠.”

“내 문제를 풀어줄 수 있나요?”

“아니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는 땅에다 낙서를 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내 이름을 선명하게 썼다. 

“뛰어넘어 보세요.”

“네?”

“자신에 대해서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보세요.”

“무슨 말이죠?”

“당신이, 당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 때문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방법인가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스스로에 대해서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의 산물입니다. 자본주의도 규칙이고 민주주의도 규칙이죠. 저는 이런 규칙에 따르지 않는 당신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당신 얘기는 늘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쉽게 사는 것에 익숙해져서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을 꺼리고 있을 뿐입니다. 지식보다 지혜를 구하십시오.”

“지혜라뇨?”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는 더 이상 지혜에 관해서 물을 수 없었다. 지혜가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지혜는 단순히 IQ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영리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지혜에 대해서 더 많은 설명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오른편에 있는 큰 은행나무 밑으로 갔다. 

“겸손해지면 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혜를 누가 주나요?”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지혜는 받을 수도 있고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잊지 마세요. 지혜의 열쇠는 겸손입니다.”

“그렇다면 겸손은 어떻게 얻을 수 있죠?”

그는 다시 미소로 말을 대신했다. 그리고 30초 정도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당신의 친구들에게, 당신의 부인에게, 당신의 상관에게 자신에 대해 물어보십시오. 좋은 말을 들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비쳐진 당신의 모습과 당신이 숨기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비교해보십시오. 만약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당신은 겸손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를 교만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교만해질 만큼 상승된 위치에 올라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교만하지 않다는 것이 겸손하다는 것과 같은지는 알 수 없었고, 거인이 말한 겸손이 교만의 반대말은 아닌 것 같았다. 

새벽안내자의 말을 듣고 있자니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정직한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소크라테스보다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나도 나에 대해 아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나의 취향과 스타일’뿐이다.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혹시 ‘나·남 사분면’을 아세요? 사각형을 가로세로로 나누면 네 개의 면이 만들어집니다. 각각의 면에는 이런 영역이 존재합니다. 내가 아는 나와 내가 모르는 나, 남이 아는 나와 남조차도 모르는 나. 당신은 항상 자신이 아는 자신의 모습에만 매몰되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당신에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주변인이거나 경쟁자일 뿐이죠. 불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애초에 혼자 살아가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당신은 성공이나 성장, 승진 따위만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그는 내게 생각의 호흡을 고를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혹시 당신에게 라이벌이 있나요? 그의 성공이 곧 당신의 패배를 뜻하는 그런 사람이 있나요?”

질문과 동시에 박 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나의 문제에만 매몰되어 일을 처리해나가는 유형이라면 박 팀장은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동기로 있다는 것이 왠지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일의 성과로만 보자면 내가 크게 떨어질 이유가 없었지만 회사 사람들은 바람직한 회사 생활의 모델과 준비된 리더로서 박 팀장을 떠올렸다. 

나는 겉으로는 그런 의견에 동조했지만 가끔씩은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이곳은 회사가 아닌가. 철저히 객관적인 성과로써 인정받고 성장하는 그런 냉정한 조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새벽안내자가 ‘겸손’에 대해서 말하자 박 팀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에 귀 기울여 보세요. 믿을 수 없겠지만 사랑과 우정, 감사, 배려와 같은 말들로 가득하답니다. 그들은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랐죠. 상대방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말을 하기 좋아했어요. 그래서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고 그들의 성공은 더욱 날개를 달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내게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있는지 생각하기가 두려웠다. 지금까지 성공이란 주어진 문제들을 열심히 푸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거인은 성공을 가져다주는 지혜는 혼자서 풀 수 없다는 말하고 있었다.

“겸손이란 자신보다 남을 진정으로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에 당신이 있다면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행복해지기는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당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올 테니까요.”

“당신은 제가 요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아시는 것 같군요.”

나는 그제야 새벽안내자에게 내가 기록하고 있는 자기 사명 선언서의 초안을 보여주었다. 

“새벽안내자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새벽을 통해 변화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변화의 패턴은 알고 있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특징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거든요.”

“제가 변화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성장하고 있는 것이죠. 중요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당신의 자기 사명 선언서가 현실 바깥으로 뛰어나오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말이죠.”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내게는 그 가치를 실현해줄 삶의 지혜가 필요했다. 오랫동안 그 존재조차, 필요조차 모르고 살아왔던 그런 지혜들 말이다. 우선은 아내를 만날 것이고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볼 생각을 했다. 존재 자체로도 소중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스프링복의 질주








토요일 아침, 부산행 기차를 예매했다. 아내가 반기지 않더라도 찾아가서 차분히 얘기라도 들어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출근 전 잠든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거나 좀 이른 퇴근 때 달려 나오는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이 그동안 내가 아빠로서 한 모든 일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잠시 떨어져 있는 이 시간이 나와 아이들에게 그렇게 낯설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아이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6시, 퇴근 시간이 무섭게 나는 짐을 챙겨 들고 택시를 탔다. 

간혹 명절 때 기차를 탔지만 오늘처럼 특실을 이용한 적은 없었다. 사실 아이들을 데려갈 때는 일반실이냐 특실이냐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란 3시간 중 고작 30분에 불과했으니까. 나나 아내는 아이들을 달래고 어르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복도에 나가 있기 일쑤였다.

오늘은 혼자서 조용하고 널찍한 특실의 분위기를 즐길 참이었다. 그래서 캔 커피 하나와 영화 잡지 한 권을 사 들고 기차에 올랐다. 출발까지는 아직도 5분이 남아 있었다. 자리는 복도 쪽이었다. 내심 창가 자리를 바라고 있었는데 아쉬웠다. 옆 자리는 비어 있었다. 계속 빈자리로 남아 있을 거면 더없이 좋겠지만 주말 부산행 기차에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좌석 깊숙이 몸을 묻었다. 일주일의 피로가 금세 나를 깊은 잠으로 몰아갔다. 출발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얼마나 잤을까. 누가 나의 발을 건드리는 느낌에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

“어이쿠,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잠이 깼군요.”

한 노신사가 내 옆 창가 좌석에 앉으며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도 얼떨결에 함께 인사를 했지만 잠이 덜 깼는지 상대방 얼굴이 한 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위는 벌써 어둑해지고 간간이 창밖의 불빛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고속 열차는 소음도 적어 늦은 밤 카페 한구석에 앉아 있는 듯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다 선생님 발을 건드린 모양이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괜찮습니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악몽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아이들과 아내가 완전히 떠나버렸다. 그 섬뜩한 느낌에 나는 다시 자리를 고쳐 앉고 영화 잡지를 펴 들고 커피를 마셨다. 

“괜찮습니까?”

옆 자리의 노신사가 말을 걸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 괜찮은가 보군요. 잠들어 있는 동안 몸을 많이 뒤척이면서 잠꼬대까지 해서 좀 놀랐거든요.”

잠꼬대라니! 평소 코를 고는 일은 있었지만 기차 안에서 잠꼬대라니…. 무슨 말을 했을까? 최근 여러 가지 일로 나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돼 있었던 듯했다.

“그랬군요. 죄송하네요, 조용히 여행하시는데 방해가 된 건 아닌지요.”

“괜찮아요. 차 한 잔 어때요? 커피보다 훨씬 정신을 맑게 해줄 거요.”

노신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 평소에 차를 즐기지 않았는데 밤차 안에서의 차 한 잔이 이렇게 마음을 평안하게 해줄 줄은 몰랐다.

“무슨 차인가요?”

“글쎄, 아내가 여행할 때 마시라고 넣어준 거라…. 몸에 좋은 거라니까 들고 다니면서 마시는 거죠.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이경수라고 합니다.”

“조태현이라고 합니다.”

“고향에 가는 길이신가요?”

“네.”

“부모님 뵈러?”

“아뇨, 아내요.”

“주말 부부이신가 보군요. 가족이랑 떨어져 지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아… 예… 그렇죠, 뭐.”

차는 고맙게 마셨지만 사실 혼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하지만 통성명까지 하고 나란히 앉아서는 침묵도 부담스러웠다. 얼마간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노인의 손에 들린 잡지 한 권을 보았다. 사슴 떼들이 한곳을 향해 질주하는 사진이 보였다. 노인이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스프링복이라고 한답니다. 신기한 놈들이에요.”

“네?”

“원래 스프링복은 열 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서 살다가 흩어진 한두 무리가 모여들면서 큰 무리가 된다네요. 그렇게 큰 무리가 되면 스프링복은 갑자기 뛰기 시작하고 어딘가를 향하여 돌진하는데, 목표는 없고요, 앞으로 계속 돌진하다 벼랑을 만나거나 늪을 만나면 상당수의 스프링복들이 죽게 된다니, 정말 신기한 녀석들이죠. 그런데 이놈들이 그렇게 돌진하는 이유가 바로 욕심 때문이라는군요. 한 마리가 다른 놈들보다 먼저 앞에 있는 풀을 먹기 위해 앞서 가면 뒤에 있는 사슴이 보다 멀리 뛰고, 그렇게 모든 사슴들이 더 앞에 있는 풀을 먹기 위해 뛰어가는 겁니다. 죽음의 질주인 거죠.”

나는 질주하는 스프링복의 사진을 슬프게 쳐다보았다. 그 스프링복이 영락없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신사가 말을 이었다.

“나는 질주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병들고 늙은 스프링복 같아요. 나이를 물어봐도 괜찮겠소?”

“서른다섯입니다.”

“그 나이라면 내 말에 공감이 될 법도 한데… 안 그렇소?”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사회인으로서 모든 사회적 결과물을 누리거나 즐기고, 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것에 갇혀 살게 되죠. 학교에 가야 하고, 취직을 해야 하고, 진급을 해야 하고, 그리고 남들처럼 여가 생활도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것이고, 사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철저하게 네트워크화되어 있는 것들뿐입니다. 우리는 생태계를 먹이 사슬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도 ‘생존 사슬’에 얽혀 있는 거나 다름없죠. 스프링복처럼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단지 남보다 앞서기 위한 질주에 목숨을 바치죠.”

“생존 사슬이라….”

“그 대열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실천하기는 참 어렵죠.”

“그게 뭔가요?”

“바로 다른 스프링복들보다 일찍 일어나는 거라오. 그리고 남들이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의 풀을 먹는 것이죠.”

나는 그동안 만난 새벽거인들을 불현듯 떠올렸다.

“난 서른여섯 되던 해부터 새벽을 살기 시작했소.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소.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한발 떨어져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왔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에 가족, 부부, 이웃, 친구, 신앙, 죽음, 인생 따위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신기하게도 내게는 아주 익숙한 단어들이었다. 새벽거인들을 만난 후로 이런 단어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노신사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계속했다.

“무슨 문제가 있다면 일단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게 먼저예요. 생각 없는 질주로부터 벗어나면 진짜 길이 보이지요.”

“선생님은 제가 문제 있어 보이시나요?”

노신사는 허허 웃으며 대답을 한 템포 늦추는 듯했다. 

“그 나이 때는 누구라도 문제가 있지요. 나도 그랬어요. 사업에서 성공하고 게임에서 이기는 법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다지 지혜가 없는 때이기도 하지요. 그때부터 배우는 것은 암기해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배우는 지혜라서 그렇죠. 그리고 대개 그런 지혜는 새벽 시간에 그 길을 터주는 법이라오.”

“새벽이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어준다는 말씀이신가요?”

나는 비로소 이 노인의 존재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요. 왜냐하면 새벽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가장 맑고 건강한 생각을 말이죠. 우리는 쉽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요. 리모컨을 누르면 뉴스가 나오고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나오고 월급도 때가 되면 자동으로 통장에 입금된다면서요? 편해지기는 했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는 생각하는 방법을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좀 더 많은 책을 읽는다면 ‘감상’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감상의 마음’에 ‘가치’를 품게 되면 ‘묵상’을 할 수 있게 될 거고요. 우리는 묵상 가운데 새벽 지혜를 얻습니다. 새벽 지혜는 ‘IQ의 향상’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다 넓고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제3의 눈’을 열어주는 것을 말해요.”

“제3의 눈이라니요?”

이 사람이 대체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생각 없이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TV를 켜거나 신문을 읽죠. TV와 신문을 보지만 그렇게 깊이 있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언론이 우매한 대중을 위해서 언제든지 먹기 쉽게 정보를 가공해서 주거든요. 습관적으로 화장을 하고, 습관적으로 아침 출근을 준비하고, 습관적으로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막히고 있다는 라디오 보도를 따라 긴장하며 출근해서 습관적으로 업무를 처리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창의적 사고보다는 매뉴얼에 따라 그리고 인스턴트화되어 버린 전문 서적에 기초해 판단하는 것일 뿐이죠. 습관적으로 동료들과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습관적으로 잠자리에 들고. 과연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요?”

노신사는 흥분한 자신에게 놀란 눈치였다.

“새벽이 주는 또 다른 유익함이 있나요?”

“생존의 사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이 이루어졌다’ 또는 ‘인생의 기적이 일어났다’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런 것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처럼 일어나는 일입니다. 새벽은 ‘때’라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새벽에 하는 일들은 때를 앞당기거나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란 준비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기적처럼 보이지만 하루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일 뿐이지요.”

“일상이라… 모든 사람들에게요?”

“창조의 새벽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간이에요.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가져보지 못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기다리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어머니로부터 얻게 된 출생과는 전혀 다른 자신에 의한 제2의 출생을 경험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새벽에 생긴다면 그 시간은 제2의 출생을 위한 잉태의 시간이 되는 것이죠.”

그는 내게 동의를 구하는 듯 잠깐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새벽 시간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자신의 삶을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요. 삶에 쫓기거나 세상이 주는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노신사는 화장실에 가려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의자 깊숙이 잡아당겨 길을 내주었다. 그는 통로로 나간 후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게 더 중요합니다. 문제를 정확히 알면 내가 풀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게 되니까요. 당신의 아내가 필요로 하는 건 문제를 풀어줄 사람보다는 들어주고 공감해줄 사람일 겁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

그 말을 마치고 멀어져 가는 노신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새벽안내자의 질문을 알고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그는 새벽거인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내가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꽃밭








부산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노신사와의 대화로 세 시간이 거짓말처럼 훌쩍 지났다. 내가 지혜의 거인을 만난 것이 꿈인지 실제인지조차 헛갈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기차역을 나와 차가운 바닷바람을 쐬고 나니 아내를 만날 일이 무엇보다 걱정되었다. 

문제를 풀기보다 문제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거인의 충고가 떠올랐다. 아내와 내게 과연 어떤 문제가 있을까? 대화의 부족? 그거야 지금이라도 당장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되는 거 아닌가. 회사 일? 그것도 아내가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니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지만 아내가 진정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나, 여기 부산이야.”

나는 감정을 담지 않고 짧게 말했다.

“그날 아침에 말했잖아. 좀 쉬다 갈 거라고. 쪽지 봤어?”

“내려오지 말라는 말은 없었잖아.”

아내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나 말이지… 기차 안에서 이상한 노인을 만났어.”

“그건 또 무슨 얘기야? 뜬금없이.”

“스프링복이란 동물이 있는데 얘들은 남들보다 풀 하나 먼저 먹으려고 앞만 보고 달린다는군. 그러다가 절벽으로 떨어져 모두 죽어버린대.”

“당신 이야기 같네.”

아내가 너무 당당하고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바람에 나는 돌려 얘기하려던 계획을 전부 수정해야 했다. 운전하던 택시 기사가 무슨 말인가 싶어 돌아보았다.

“요즘 당신을 보면서 사실 숨이 막혔어. 하루 종일 회사에 있다가 퇴근해서도 당신 머릿속은 여전히 회사 일로 가득했어. 애들이랑 좀 놀아달라고 하면 몸은 있어도 마음은 어디로 가버리지? 애들이랑 종일 씨름한 나는 팽개치고,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면서 혼자 자러 갈 때는 정말이지 이게 같이 사는 건가 했어. 그래도 이해했어. 나도 짧지만 직장 생활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

‘그날이라니… 아내가 처갓집으로 내려오겠다고 한 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아무것도 짚이는 것이 없었다.

“모르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당신, 정말 모르는 거구나….”

“….”

“아버지 오늘 수술 끝나셨어. 다섯 시간도 넘게 걸렸어. 자세한 경과는 며칠 지나야 알 수 있지만 다행히 수술이 잘됐대. 당신이 걱정한다고 한사코 알리지 말라고 하셔서 어머니는 당신이 모르는 줄 알아. 그러니까 먼저 말씀하시기 전엔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말아 줘.”

나는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그날 아침 아내가 급한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출근을 몇 분 늦추고 차분히 들을 준비만 되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얘길 하지 그랬어?”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어렵게 말을 꺼내자 아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좀 더 생각하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그날 아침 엄마가 울면서 전화를 하셨어.”

아내의 말이 흔들렸다. 서운함과 원망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도저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고. 겁이 난다고. 그리고 그제야 위암 수술이 오늘이라고 하시는 거야. 머리가 멍해지고 다리가 풀리고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어.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경황이 하나도 없었어. 몸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자주 다니시는 건 알았지만 이 지경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 내가 당신의 그 소중한 새벽 시간을 깨우기 위해 서재 문을 열었을 때 당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 자고 있었어. 책상 위에 엎드린 채로. 깨우려고 하니까 손을 내젓더라고. 생각 중이라고. 너무 화가 나서 뭐라 말하려다 그냥 문을 나오고 말았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원래 그런 줄 알았지만 너무 화가 나니까 오히려 담담해지더라. 그래서 그날 당신에게 말하고 곧장 내려온 거야.”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리면서 아내와의 통화도 잠시 끊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처가가 보이는 동네 어귀에 서서 집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나와의 통화로 눈물을 닦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뭘 하고 있을까? 

멍하니 처갓집의 불 켜진 창을 보고 있으려니 10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때 투병 중이시던 아버지가 기다리던 집을 향해 걸어가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처갓집으로 들어갈 용기는 내게 없었다. 아버지가 투병하실 때도 나는 선뜻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리곤 했다.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죽음의 그림자란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과 분위기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예정된 것이라면 그것은 어느 때보다 지혜가 필요한 순간일 것이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질주하는 무리들 사이에서 멈춰 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순간 말이다. 나의 아버지는 그 일을 담담하게 해내신 분이었다. 나는 어느새 10년도 넘은 그 시절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의사는 아버지를 먼저 나가게 하고 가족들만 남게 했다. 그 후의 시나리오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수순 그대로였다. 아버지의 간에는 까만 점들이 박혀 있었다. 의사는 그것이 암세포라고 했다. 어머니는 쓰러졌고 여동생은 오열했다. 나는 그 소란스러운 진료실 문을 열고 나와 병원 뒤뜰에서 혼자 담배를 태우고 계시는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암이지?”

담배 연기를 날리는 아버지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두 배는 쓸쓸해 보였다. 깊은 회한과 더불어 자신의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아버지의 얼굴을 더욱 복잡다단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게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병원에서 마지막 두어 달간의 투병으로 접어들기 전까지 아버지의 일과는 매우 단순해 보였다. 처음에는 하루 종일 집 안에 누워 계셨으므로 나는 일부러 집을 일찍 나왔고 또 일부러 늦게 들어갔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집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아버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여느 때처럼 집을 나오던 나는 아버지가 아파트 앞의 야트막한 동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아버지는 그 잡풀 사이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셨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아버지는 꽃씨를 심는 거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그런 철학자의 삶을 살아오신 분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신 분이셨다.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투였고 작은 전쟁들이 수없이 이어지는 삶이었다. 

어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때문에 남보다 일찍 생활 전선에 뛰어드셔야 했고 투병 직전까지도 노동자로 살아오신 분이었다. 삶의 힘겨움을 술로 푸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삶이 이렇게 처절한 것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꽃씨를 뿌리고 계신 것이다. 3개월 남짓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다음 해에 필 꽃을 위해 투자한다는 게 나에겐 이해되지 않았다. 

꽃씨를 뿌리는 아버지의 얼굴은 나날이 밝아졌다. 어느 날은 더 이상 암의 진행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으로 축제 분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기적은 없었다. 생애 가장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고 초가을의 선선한 공기가 아침저녁을 가로지를 무렵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한 해가 지난 어느 봄날, 나는 집을 나서다가 그저 놀랍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어떤 광경 앞에 멈추었다. 아파트의 회색빛 담장 너머 낮은 동산 위로 온갖 색의 봄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봄볕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꽃들이 삶을 뜨겁게 노래하는 것 같았다. 

저 꽃을 심으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마도 삶의 무상함을 생각했을 것이다. 짧지만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홀로 남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꽃씨를 심으며 나직이 되뇌었을 것이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행복하라고. 꽃들은 그렇게 나를 향해 아버지의 축복의 지혜들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 꽃들은 몇 해가 지나도록 아파트 앞을 지켰다. 그 시절 나는 그 꽃들의 응원을 받으며 매일 아침 집을 나섰다. 아버지의 환호와도 같은 응원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말없이 아내의 흐느끼는 어깨를 잡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옛날 꽃들이 전해준 삶의 응원가를 맘속으로 불러주었다.

‘괜찮아. 사랑해. 다 잘될 거야, 걱정 마.’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진정한 지혜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며, 이것을 넘어서면 진정한 행복의 어느 언저리에 닿게 될 것이다’라고.


회사에 돌아온 후 나는 우선 박 팀장부터 찾았다. 그는 여전히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이 친구의 이런 친밀함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쨌거나 오늘 그와 나눌 내용은 평소보다 무거운 내용이 될 것이었다.

“괜찮아?”

“뭐가?”

“프로젝트 엎어진 거… 이런저런 말이 많이 들렸을 텐데….”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눈빛이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대기 발령이란 사실상 퇴사 압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할 일이 있었다.

“박 팀장, 부탁이 하나 있어. 이건 꼭 들어줘야 해.”

“안 들어주면?”

“그럴 리 없어. 꼭 들어줄 거니까.”

“뭔데 그래?”

“솔직하게 대답해달라는 거야.”

“내가 그동안 솔직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가 장난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어떻게 생각해왔건 그는 언제나 솔직하고 유능한 친구였다. 

“이번 프로젝트 말이야, 나는 이번 일이 순전히 박 전무의 방해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어. 지난번 안 좋은 일도 있었고 해서.”

“알아, 그 일은.”

“그런데 이런 얘기가 들리더군. 이번 프로젝트가 엎어진 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갑자기 그가 말문을 닫았다. 

“사실인 모양이군.”

“아니… 그건 말이야.”

“누군가 박 전무에게 직접 얘기한 모양이야.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 그리고 팀장 교체에 대해서는 다른 팀원들도 반대하지 않았던 것 같고.”

박 팀장의 일그러진 얼굴이 안쓰러웠다. 그는 내가 더 안쓰러워 보였을 것이다.

“팀원들에겐 전혀 섭섭하지 않아. 오해하지 말라고.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 따위는 전혀 궁금하지 않으니까. 다만 앞만 보고 달려온 내가 안타깝다는 생각은 해. 이 일을 팀 전체의 일이라기보다는 나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해왔던 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건데 말이야. 난 최근에 어떤 특별한 일을 겪으면서 깊이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

나는 돌아서서 박 팀장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그래도 자넨 내 곁을 떠나면 안 돼. 지금 당장은 유일한 내 친구니까.”

그가 그제야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거인의 편지쪾3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당신은 부산에 도착해서 아내를 만난 직후일 겁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이 추측한 대로 새벽거인입니다. 왜 새벽거인을 저녁에 만났는지 의아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새벽거인이 새벽에만 사는 신비한 무리는 아니니까요. 새벽을 통해 얻은 지혜를 낮 시간을 통해 치열하게 전달하며 살아가는 이 삶이 나는 만족스럽습니다. 

당신과의 짧은 기차 여행에 어떤 지혜를 들려줄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카네기의 말이 떠올랐지요.


“사람들은 너나없이 보물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어디에서 금광이나 발견하지 않을까 눈을 번뜩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물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시간이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모든 사람들의 미래는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에 얼마나 노력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하루를 허송세월로 보냈다면 하루의 보물을 잃은 것이며 하루를 값지게 보냈다면 하루의 보물을 캐낸 것이다.”


내가 스프링복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지혜는 목표도 목적도 없는 무가치한 질주에서 한발 비켜나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당신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틀렸습니다. 당신이 먼 훗날의 성공을 위해 희생시키고 있는 가족과의 관계는 사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전해준 소중한 지혜를 기억해보세요. 

긴 생애에 비하면 짧은 순간이긴 했지만, 남은 가족을 위해 마지막 꽃의 정원을 꾸미던 그 마음이 바로 지혜입니다. 만일 당신이 생의 모든 순간을 그런 진정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지혜롭게 산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홀로 있는 고요한 시간을 통해 당신 안에 있는 자성이 당신을 어디로 끌어당기는가를 살펴보십시오. 그런 새벽은 당신을 참으로 지혜롭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수많은 새벽거인들과 당신의 아버지도 이 비밀을 알고 실천했기에 의미 있는 가치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과 보낸 시간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마십시오. 당신의 지혜를 위해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코엘의 숲








“몇 년 만이죠?”

나는 새벽나라로 들어가는 언덕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짧은 인사로 그는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되찾고는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3년 만입니다.”

나도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유난히 크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 손을 한 번 꽉 쥐었다가 곧 풀었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살도 많이 쪘어요.”

나는 내 아랫배를 가리키면서 싱겁게 웃었다. 

“당신의 영혼도 많이 성장했고요.”

그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보여주었던 미소를 입에 담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요. 그리고 많은 새벽거인들을 만나기도 했고요.”

“저는 이쪽으로 오면서 종종 담 너머 당신의 정원을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이 있었고 새벽거인들과 당신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들어오시지 않고 그냥 갔나요?”

그는 대답 대신 소리 없이 웃었다. 그와 만나면 나는 항상 긴장되고 이질감을 느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친근감, 그에게서 처음으로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를 만나 이렇게 편하게 웃어본 것은 처음이다. 무엇보다도 그와의 만남 속에서 여유를 느낀다는 것은 참 놀랄 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일어났고 ‘코엘의 숲’으로 향했다. 그 땅은 수천 년 동안 새벽거인들이 직접 일구어놓은 정원으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땅이다. 나는 그 숲에 대해서 말로만 들었을 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 땅에서 느껴지는 영적 권위감과 신비감 때문에 나에게 코엘의 숲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숲으로 가는 길은 나무를 벽돌처럼 사용해 만든 것이었다. 주변에는 알 수 없는 들풀과 들꽃들이 길을 따라 피어 있었다. 이런 풍경은 새벽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새벽나라의 식물들은 매우 잘 정돈된 정원으로 이루어졌지만 이곳은 그 반대였다. 

“글을 쓰고 계시죠?” 

그는 내가 인생의 유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 그가 나를 코엘의 숲으로 데려가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냥 좀 적고 있어요.”

“왜죠?”

“정리도 해야겠고 저 자신에게 가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어서…. 아직 다 정리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요? 단지 그것뿐인가요?”

“사실은 저도 새벽거인이 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새벽과 낮의 일을 일치시켰습니다. 이제 가치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또한 그것을 삶과 연결시킬 수 있는 비전을 그리는 법도 배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킬 수 있는 지혜도 배웠어요.”

“생각과 행동의 일치, 그것은 어려운 일이죠. 이제 당신에게는 과거와 미래를 일치시키는 일만 남았군요.”

그가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우리는 더 이상 내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코엘의 숲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주변의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어제 읽은 책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요즘의 정치적 현황, 부동산 가격에 대한 전망, 아내의 임신과 출산, 다음 주에 사게 될 자동차의 차종 등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것은 뜻밖의 주제들이었지만 그는 그런 생활의 주제에 대해서 계속 진지한 태도로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대안을 이야기하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를 풀지는 않았다.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항상 진지하군요?”

나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그는 웃었다. 

“당신은 새벽나라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가 내게 물었다. 

“여러 모습의 거인들입니다.”

“그들의 무엇이 부러웠나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점이죠. 그들의 삶은 단순해 보였어요.”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그는 나를 보지 않고 물었다.

“새벽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완벽한 새벽 예찬론자가 되었군요?”

“하하. 다음 주에 새벽나라의 시민권이 나옵니다.”

“벌써요? 그러면 시민의 권리와 의무도 배우셨겠군요?”

“네.”

새벽 시민들의 권리와 의무는 간단하다. 권리는 새벽나라에 들어올 때 새벽 지혜를 쓸 수 있다는 것이고, 의무는 새벽 지혜를 통해 배운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짧은 권리와 의무는 이 나라를 지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는 내가 무척이나 대견스러운 듯 시종 나를 보면서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왜 웃죠?”

“비웃음은 절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당신 모습이 생각나서요. 당신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겁니다. 10분 만에 내가 간다고 얼마나 조바심을 내던지…. 그런데 이제 당신이 저를 기다리고 이제는 새벽나라의 시민권도 받게 되었다고 하니….”

“솔직히 저도 저의 모습이 우습긴 했어요.”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놀라운 일이죠.”

우리는 15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코엘의 숲으로 갔다. 길은 점점 좁아졌다. 숲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자 새들이 많았고, 먼 숲 속 너머로 사슴의 뿔이 보이기도 했다. 

“아직 멀었나요?”

“어디가요?”

“코엘의 숲요.”

“바로 여기가 코엘의 숲입니다.”

“그럼 지금은 어디로 가나요?”

“시간의 문으로 갑니다.”

“시간의 문은 뭐죠?”

“시간이 흘러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문입니다. 거기서 당신은 과거를 만나고 현재를 만나고 그리고 미래를 만날 것입니다.”

“약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추측일 뿐이었다. 그는 내게 또 다른 변화와 지혜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나는 코엘의 숲을 걸어가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마술같이 신기한 것을 보게 되었다. 길의 오른편에 있는 꽃들은 전혀 시들지 않고 활짝 피어 있지만 왼편에 있는 꽃들은 피었다가 지는 것을 반복하다 결국 시들어버렸다. 

꽃만이 아니었다. 왼편에 있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빠른 라이프사이클을 보여주고 있었다. 코엘의 숲은 시간이 시작되고 끝나는 숲이다. 나는 이곳에 영원이라는 것이 존재할 줄 알았는데 내가 보는 이 광경은 내가 믿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어떤 상징인가? 이것은 어떤 지혜로 풀어가야 되는가?

“다 왔습니다.”

그는 시간의 문이 보이는 또 다른 문 앞에서 나를 세웠다. 

시간의 문은 유리문이었다. 유리문 저편에 보이던 어둠이 물러가고 환해지더니 이윽고 다시 어두워지고 또다시 환해졌다.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나요?”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무슨 말이죠?”

“아직까지 나오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순간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겨우 그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저것이 죽음인가요?”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죠.”

“그럼 여기서는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시간의 문이라고 부릅니다.”

갑자기 공포가 덮쳐 왔다. 아직까지 나의 죽음이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왜 그는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일까? 

“당신에게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는 나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두렵습니까?”

“놀랐습니다.”

“이제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을요?”

“시간의 정체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끝에 대한 실체를 말입니다.”

“….”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 시간의 문, 아니 죽음 후의 세계를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나는 단지 새벽거인이 되고 싶어서 새벽나라로 들어왔을 뿐이다. 저 시간의 문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시간의 끝은 0이 아닙니다.”

“그럼 1인가요?”

나는 애써 농담을 했다. 긴장을 풀려고 한 말이지만 오히려 더 어색했다. 

“죽음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솔직히 이렇게 가까이서 죽음을 바라보게 되어 너무 놀랐습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단지 이제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고 이리로 왔습니다.”

“무슨 말이죠? 쉽게 얘기해주세요.”

“저기 우리가 왔던 언덕길을 보십시오. 누군가 내려오고 있죠?”

“예, 보입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예?”

“우리는 잠시 빠른 길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저기 보이는 당신은 언젠가 이곳으로 오게 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거죠?”

“당신은 죽습니다.”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미래는 마르지 않는 시간의 샘물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것입니다. 새벽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모든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을 더 하라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무엇을 더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시간에 대해서 경외감을 가지시라는 겁니다.”

“시간에 대한 경외감이란 건 또 뭐죠?”

그는 나를 시간의 문이 잘 보이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언젠가 저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당신 안에서 일어나는 두려움 때문에 사실을 피하지 마십시오. 그 두려움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현재라는 허상








내가 죽는다는 것, 이해는 됐지만 솔직히 동감은 하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사실에 직면했다. 또한 그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도 절감하게 되었다. 절망이 밀려왔다. 그리고 조급함이 앞섰다. 뭔가 빨리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초조함도 있었다. 

나는 왜 이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수많은 시간을 허무하게 보낸 스스로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 감정이 정리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의 문 왼쪽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정원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조금 전에 왼쪽과 오른쪽의 꽃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양쪽 모두 같은 종류의 꽃과 풀이었다. 

“왼편은….”

“그렇습니다. 같은 꽃이지만 왼편은 저렇게 빨리 피고 빨리 시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것들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꽃이 피어 있고 잘 시들지도 않습니다.”

“죽지도 않나요?”

“어쩌면요.”

그는 내가 매우 긴장하고 있음을 아는 듯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처럼 내가 무엇인가를 잡고자 당황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태현 씨! 제가 당신을 여기에 데리고 온 것은 결코 겁을 주려고 한 게 아닙니다. 전 당신에게 인생의 남은 시간에 대해 알려주고 싶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글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당신에게 오래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마 그 책을 통해서 당신은 최소한 10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100년 뒤에도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무엇 때문에, 무엇을 쓰고 있는가가 제일 중요하겠죠.”

나는 그가 답을 말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했다. 

“저는 당신이 글을 쓰고 있기에 이쪽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물론 글이라는 자체 때문에 이리로 온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작업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글로, 어떤 사람은 상품이나 연구 업적, 제자를 키우는 일로 남기기도 하지요. 그럴 때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남은 시간과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나는 두려움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먼저 어떤 말이든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계속 나를 살피다가 땅을 보고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시간의 문과 땅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조태현 씨, 그만 나갈까요?”

그렇게 긴 침묵은 끝났다. 

“어디로 가는 거죠?”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그는 내가 새벽나라에서 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읽고 있었다. 경직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렇게 나약한 나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일까? 그는 우리가 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혜를 배웠습니까?”

그의 입가에는 또다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무슨 지혜요?”

“시간에 관한 지혜.”

“시간에 관한 지혜라뇨?”

그는 다시 한 번 나를 쳐다보았다. 

“죽음은 당신을 지혜롭게 할 것입니다.”

“무슨 말이죠?”

“진리를 보게 되면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진리가 뭐죠?”

“당신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상했다. 너무나 두려운 말 앞에서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기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시간의 문 앞에서 가졌던 공포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빛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빛의 지혜인가? 그동안 내 안에서 무지의 어둠 때문에 가려졌던 부분들이 환하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침묵한 채로 한참을 걸었다. 

“내가 알아야 할 또 다른 진리가 있습니까?”

나는 다소 안정된 마음으로 천천히 그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보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또 있나요?”

“많은 것을 생각했지만 적은 것을 했고, 적은 것을 했지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맞아요.”

“10년 후에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군요.”

“당신은 매우 초조해 보입니다.”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멀리 집이 보였다. 

“차 한 잔 하시죠?”

내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우리는 집 쪽으로 계속 걸었다. 

“현재라는 것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든 상징 언어일 수 있습니다. 오직 과거와 미래만이 있습니다. 현재는 신기루 같은 존재입니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현재라는 시간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과거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시간을 잘 사용하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낄 만한 현재는 존재하지 않아요. 현재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먼저 인식할 때 우리는 좀 더 시간에 대해서 민감해지게 됩니다. 

현재라는 단어 안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대신 ‘지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보세요. 현재는 한 달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한 시간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이거든요. 당신이 시간을 통해서 무엇을 얻는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시간 앞에서 아무런 존재도 아닙니다.”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죠?”

“시간의 흐름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금붕어의 세계가 어항인 것처럼 시간 안에 있는 우리는 이 세계 안에서 시간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과거는 미래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는 과거를 자유롭게 하죠.”

나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많은 새벽거인들이 나를 나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게 했다. 이제야 왜 그런 만남들이 필요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나의 과거와 온전히 맞닥뜨릴 때 비로소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나왔던 것이다. 그렇게 발견한 가장 큰 시간의 진리는 나를 겸손하게 했다. 

그건 바로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진리였다. 피해갈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진리이기도 했다.

진짜 나의 모습 








브랜드 런칭은 성공적이었다. 신문 광고만으로도 입점 상담이 들어왔다. 우리 부서는 대대적인 TV 광고 기획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들이 계속되었다. 

초반 순항을 시작한 브랜드 파워는 대단했다. 물론 최근 몇 년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상대 회사의 반격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신규 브랜드의 성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허둥거렸다. 그들이 급하게 만든 광고들은 오히려 몰락을 부채질하는 꼴이 되었다. 경쟁사 담당자들이 줄줄이 사표를 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분이 어때?”

돌아보니 박 팀장이었다. 그는 장난스럽게 담배를 권했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젓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제야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아직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자판기 커피였다. 

“고생했어, 그리고 축하해.”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음의 인사를 건넸다. 박 팀장은 오늘부로 과장 발령을 받았다. 이번 신규 브랜드 런칭의 성공에 대한 회사 측의 당연한 배려였다. 내가 진심으로 그의 진급을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았다. 경쟁해서 이기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법인 줄 알았던 내가 이런 세상에 발을 들여놓다니…. 

“너야말로 고생했어. 다들 알고 너도 알잖아. 이 일은 네가 한 거나 다름없어.” 

“왜 이래? 벌써부터 과장으로서의 아량이라도 베풀겠다는 거야?”

문득 박 전무를 내가 다시 찾아갔던 그날 밤 기억이 떠올랐다. 박 전무는 나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내가 비서실에서 네 시간을 넘게 기다리자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진심으로 그 5분에 대해 감사했다. 내가 사무실로 들어갔는데도 박 전무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지난번 일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박 전무는 미동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난 일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만나자고 한 용건이 뭔가? 대기 발령 문제라면 잘못 찾아왔네. 그건 내 의지가 아니니까 말이야.”

“그 일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뭐지?”

“프로젝트 건 때문입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가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정보통에 따르면 G사는 아직 새로운 브랜드에 대해 추가적인 움직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취소된 건….”

“박 팀장을 추천합니다. 그라면 잘해낼 것입니다.”

잠시 말이 없던 박 전무가 의자를 돌려 앉았다.

“방금 뭐라고 했나?”

“마케팅 1팀의 박 팀장에게 이 일을 맡겼으면 합니다.”

“이유가 뭐지?”

“이 일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전무님, 저는 이 프로젝트가 진심으로 성공하길 바랍니다. 그동안 제 욕심으로 이 일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때문에 회사를 떠난 직원도 있고요. 전무님께 팀장 교체를 요구한 직원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전무님,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전 어떤 결정이든 따르겠습니다.”

이것이 그날 내가 박 전무와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내가 먼저 과장이 되어서 떠나는 건 아니지?”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박 팀장, 아니 박 과장이 말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그가 맡게 되었다. 나는 편안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새벽거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놀랍게도 내가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었다. 믿은 것이 아니라 알아들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다 듣고 나서 나에게 고백했다. 자신도 그 새벽거인들의 존재를 알고 있노라고. 무엇보다 자신이 매일 새벽을 깨우며 그러한 가치와 비전, 지혜들을 만나고 있노라고 했다. 더할 수 없는 안도감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흘렀다. 

하지만 그는 내가 그런 이유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겠다는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 보였다. 뭔가 불손한 의미들이 숨어 있지 않은지 확인했다. 일과 사람, 그리고 환경으로부터의 도피는 아닌지 말이다. 그것은 새벽나라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연약함이었다. 새벽거인들은 결코 그러한 이유로 삶에서 뒷걸음질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도 알잖아.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는 걸…. 나는 성과보다는 섬김의 삶을 살고 싶어. 속도보다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일 말이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즐기고 있다고는 할 수 없어. 가슴 설레며 다음 날을 맞고 가슴 뛰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그런 날들을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 있다면 당당히 맞서볼 참이야. 그러니까 기도해줘.”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한 번 더 쳐주었다.


항상 이 시간대에 그를 만났는데, 10분이 지났지만 그는 오지 않고 있었다. 새벽나라로 들어와서 집을 얻고 5년 동안 틈틈이 가꾸어놓은 정원은 제법 아름다웠다. 작은 인공 연못을 정원 중앙에 만들고, 그 주위에 꽃을 심고 뒤로는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연못을 따라 네 개의 분재를 만들어 또 다른 소인국의 정원처럼 꾸몄다. 

나의 정원에는 항상 새들이 날아왔다. 왜냐하면 정원 오른편에 새들을 위한 먹이통을 놓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없는 정원 바닥은 나무를 발판으로 만들어 마치 마루 같다. 내가 즐겨 앉는 곳은 정원을 마주 보고 있는 흰색 탁자다. 거기에 앉아서 나는 하루의 일과를 준비하고, 때때로 거인들의 이야기를 상기하거나 음악을 듣기도 했다.

이렇게 내가 만든 정원에서의 안식은 내게 또 다른 의미를 주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단순히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느끼는 내 존재에 대한 기쁨 말이다. 이런 감정은 고요와 침묵이 유지되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무 소리도 없는 곳에서는 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처럼 이곳에서는 아주 작은 나의 모습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자신을 직시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비굴하고, 연약하고, 주관이 없는 나를 처음 직면했을 때 나는 상처받고 두려웠다. 그러나 그럴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는다. 예상외의 답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새벽나라에 있는 이 집으로 들어와 주변 사람들이 말했던 나 자신의 퍼즐들을 탁자 위에 풀어놓고 하나씩 맞추어 가야 한다. 

물론 친한 친구들이 준 퍼즐은 맨 마지막에 검토하기 위해 잠시 보류하거나 처음부터 버린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말한 나 자신을 떠올리고, 그 모습에 대해 반응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본다. 

반성은 변화의 시작이며 가장 겸손한 자세다. 반성은 자기를 혁신으로 이끄는 능력이며 선택이다. 그 선택은 변화를 가져온다. 철저한 반성을 통해서만이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람들 앞에서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한두 시간 동안 혼자 침묵하는 가운데, 동굴 밖으로 나오는 진정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 얼굴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나는 간절히 나 자신을 찾고 싶었다.

나는 일단 그를 찾기로 결심했다. 무작정 떠난 나는 코엘의 숲으로 가고 있었다. 솔직히 두려웠던 예전의 기억이 조금 남아 있긴 했지만 오늘은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편안했다. 

코엘의 숲에는 시간의 문만 있는 게 아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서 있다는 문들만 해도 스무 개가 넘었다. 그중에서 내게 가장 큰 호기심을 주었던 것은 바로 ‘생명의 문’이었다. 그 문은 도대체 어떤 문인가? 어떤 비밀이 있는가? 그 문 뒤에는 어떤 생명이 존재하고 있는가? 

사실 그 길을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다. 다만 제일 작고 위험한 길을 통해야만 갈 수 있다는 정보 외에는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는 언젠가 내게 도저히 풍성한 생명이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길이라고만 말했다. 만약 오늘 그 길을 보게 된다면 반드시 가볼 작정이었다. 

“안녕하세요?”

누가 내 뒤에서 인사를 했다.

“예… 안녕하세요.”

두 명의 여자였다. 한 명은 안내자처럼 보였고 다른 한 명은 새벽나라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방문객인 것 같았다. 

“좋은 새벽입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정중히 인사했다.

“네.”

안내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방문객처럼 보이는 여자는 계속 걸었다. 나는 혼자만의 산책을 위해 걸음을 빨리 해서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자 그들도 빨리 걷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천천히 걸었다. 그들도 다시 천천히 걸었다. 원래 새벽나라에서 이렇게 같이 산책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저는 뒤따라서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새벽거인이 아니신가요?”

안내자가 내게 물었다. 

“거인요? 저는 거인이 아닙니다.”

나는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 죄송합니다. 저는 우리와 만날 거인인 줄 알았습니다.”

안내자는 내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때서야 옆에 있던 방문객처럼 보이는 여자가 웃어 보였다. 

“아직 안내자가 오지 않아서 혼자 산책 중입니다.”

“여기는 혼자서는 못 오는 곳인데 이상하군요….”

“안내자와 함께 온 적이 있습니다.”

“한 번 오셨는데 어떻게 이 길을 아시죠?”

안내자는 매우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처음에 올 때 저는 여기저기 살펴보아서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러시군요.”

“오늘은 어떤 거인을 만나시나요?”

“성찰의 거인입니다.”

지금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요? 아! 저는 조태현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민은영입니다.”

“성찰의 거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민은영 씨는 계속 성찰의 거인들만 만났나요?”

“오늘이 처음이에요.”

“아, 그렇군요. 흠….”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그런데 코엘의 숲에서 만나나요?”

내가 물었다. 보통 거인들은 새벽나라로 이주한 사람들의 정원에서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코엘의 숲은 함부로 올 수 없고 안내자를 따라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오는 곳이었다. 

“성찰의 거인이 코엘의 숲에 있다고 했습니다.”

안내자가 말했다.

“그래요? 그러면 아마 시간의 문 앞에 있겠군요.”

“어느 쪽인가요?”

나는 그녀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가볍게 인사한 뒤 헤어졌다. 

믿기지 않는 일








“조태현 씨?”

굵은 목소리. 새벽안내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뒤에서 굵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 사람은 새벽거인 중 한 명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이 새벽거인은 다른 거인들과 달리 매우 연약해 보였지만 그의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분위기는 여느 새벽거인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다. 

“누구십니까?”

“리더입니다.”

“리더라뇨?”

“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나는 그가 내 옆 자리에 앉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차를 대접했다. 그는 찻잔에서 나오는 향기를 코로 음미한 다음 입술을 대고 한 모금 정도 마셨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셨습니까?”

이번엔 그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 거인은 왜 갑자기 나타나서 리더라고 말했을까?

“나를 찾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찾는다… 성찰을 말하는 것이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번뜩 아까 두 새벽나라 방문자들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누구의 리더인가요?”

“새벽나라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의 리더죠.”

이제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역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다는 듯 입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 대답해주었다.

“오늘은 깊은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당신 집에 와보니 당신이 없더군요.”

“안내자를 찾으러 갔었습니다.”

그는 내게 다시 한 번 큰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섰다. 

“이제 더 이상 새벽안내자는 만날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이 그동안 배운 새벽거인들의 말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말입니다. 대신 약속대로 당신이 배운 새벽의 지식들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이 만났던 사람들은 바로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성찰의 거인을 만나러 왔고 그 거인은 다름 아닌 당신이었습니다. 다음번에 그들을 만난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지혜들을 숨김없이 전해주고 도와주세요. 그것이 우리 거인들이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나는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깨달았다. 놀란 나를 버려두고 그는 벌써 대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 조태현 씨,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활짝 웃으면서 집을 나섰다. 

내가 새벽거인이 되었다니…. 비로소 아까 성찰의 거인을 찾으러 왔던 이들의 간절한 눈빛을 기억해냈다. 성찰이라면 내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내 고민이자 배움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내가 그들에게 말해줄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들을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이 이미 가슴속에서 조용히 샘솟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힘껏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마지막 차 한 잔을 마시고 일어서려다가 언젠가 새벽안내자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는 작은 편지 한 통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것은 그저 평범한 편지처럼 보였고 겉장에는 주소가 없었다.

“언젠가 새벽나라에서 리더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 이 편지를 열어 보도록 하십시오.”

“리더는 또 누구죠?”

“당신이 만나게 될지도 모를 새벽거인의 이름입니다.”

나는 그 편지를 찾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서재로 들어가서 책상 위를 덮고 있는 유리판을 들어 그 밑에 깔려 있던 봉투를 꺼냈다. 3년 전 새벽안내자가 주었던 바로 그 편지다. 몇 번 그것을 열어 보려고 그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항상 나중에 열어 보라고 했다. 내가 그 나중이 언제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지금은 아니라고 하면서 개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새벽나라에서 이렇게 혼자 있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좀 어색하지만 그가 옆에 없는 것이 내게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마지막 편지




당신이 이 편지를 보게 되니 무척이나 기쁩니다. 혹시라도 당신이 영원히 이 편지를 열지 못할까 봐 편지를 쓰는 동안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처음 당신을 만나고 새벽나라로 돌아가서 이 편지를 쓸 때는 솔직히, 당신이 이 편지를 볼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그런 저의 불안한 마음이 얼마나 헛된 조바심이었는지 저 자신이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사실에 대해서 인정해야 합니다. 먼저 오늘 당신은 나를 찾으려고 여러 곳을 헤맸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이었다는 것을 지금 발견했거나 아니면 이 편지를 뜯으면서 깨달았을 겁니다. 우리는 그동안 아주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상과 현실, 가치와 돈, 꿈과 직장, 비전과 진급 등 당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목표를 향해서 살았습니다.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당신의 목적과 목표 그리고 가치가 이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분리된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새벽나라에 들어와서 당신의 마음속에 집을 만들고 정원을 가꾸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매일 새벽마다 우리가 만든 정원에 나와서 차 한 잔과 함께 깊은 묵상을 했을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의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정된 그리고 절제된 정원 속에서 당신은 수많은 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성장했을 겁니다.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당신도 당신 안에 있는 거인을 만난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거인입니다. 잠자고 있는 거인이었죠. 당신은 저를 단지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 정도로 생각했을 겁니다. 사실 당신이 제 의견을 무시하거나 공격해도 저는 아무 반응 하지 못했을 테지요. 그러나 당신이 점점 제가 되고 제가 당신이 되면서 우리의 모든 것들이 일치되어가는 것을 그리고 거인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거인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거인은 계속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인들은 나올 시간을 놓쳐서, 혹은 나올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아서 죽고 맙니다. 사실 저도 당신에게 수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새벽 시간을 통해서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를 사랑했는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당신 옆에 없다는 것이 당신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당신 안에는 이제 거인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와서 지혜를 물어보고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일하십시오. 

진정한 거인이 되기 위해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스물네 시간이 모두 새벽이 되어야 합니다. 새벽에 받은 감정이 휘발성 감격이 되지 않기 위해 배운 것을 행하고, 느낀 것을 전하고, 낮과 밤 동안 목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당신은 거인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거인이 되려고 일부러 노력하지는 마십시오. 다만 당신을 움직이는 그 가치를 따라 살기 바랍니다. 당신은 아직 거인은 아니지만 오늘 당신 안에 있는 거인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것은 아픔입니다. 언젠가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부끄러워하지는 마십시오. 모든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면 당신은 교만해진 것입니다.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교만은 시력을 잃게 된 것을 말합니다. 

새벽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겸손입니다. 반성하는 마음, 배우려는 마음, 만나고 싶은 마음, 듣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느껴서 새벽에 채우려는 그 마음이 바로 겸손입니다. 새벽의 2시간을 통해서 당신이 배운 것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부디 시간 앞에서 겸손하며 가치 앞에서 용기 있는 거인이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P.S. : 겸손의 눈을 가지면 신을 볼 수 있습니다. 











찢겨져 버린 가치








오늘은 직장인들을 위해 준비한 ‘가치 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이런 날은 다소 흥분이 되었다. 강의나 세미나가 항상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똑같은 고민과 의문을 가지고 찾아오는 이들에게서 묘한 동질감과 약간의 동정심, 그리고 돕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함께 느끼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앉아 있다. 나는 서서히 오늘 강의의 마지막 카드를 꺼낼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여러분, 오늘 강의 시작 전에 나눠드린 A4 종이를 꺼내주세요.”

난데없는 요청에 다들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장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둘러 종이를 찾았다.

“자, 이번에는 그 종이를 세 등분 해주세요. 그리고 각 장에 여러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하나씩 적는 겁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단, 솔직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치여서는 안 됩니다.”

나는 문득 가치의 거인과 처음 만나던 날의 대화를 생각하고, 그 가치를 찾느라 몰두해 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경험해보지 않은 가치들을 글로 옮겨 적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이들은 믿음이나 신뢰, 섬김, 건강, 혹은 재능이나 가족 따위의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을 적어낼 것이다. 이윽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이제 왜 그 가치가 여러분에게 중요한지를 주위 분들과 얘기해보세요. 그리고 10분 뒤에 그 세 장 중 하나를 찢으세요.”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무엇을 찢어야 할지 몰라 갈등한다. 그러나 결국 시간 관계상 세 개 중 하나를 찢어버린다. 나는 왜 그것을 찢었는지 서로 생각을 나누라고 한다. 이때 우리는 그 사람의 우선순위와 삶의 기준을 알 수 있다. 똑같은 방법으로 10분 후 또 한 장을 찢으라고 한다. 이번에는 소란이 일어난다. 하지만 강의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명령에 순종해서 두 개 중에 하나를 찢는다. 

나는 다시 그 한 장을 왜 찢었는지를 서로 말해보라고 한다. 이때 우리는 마지막 남은 하나의 가치와 의외로 찢어버린 가치에 관한 변명을 들으면서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진짜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가치가 있다. 나는 그들에게 질문한다. 하나 남은 가치를 위해서 일주일 동안 자신은 어떤 일을 했는가를 나누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는 끝날 시간을 확인한다. 아주 멋지게 강좌를 끝낼 수 있는 분위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강의실은 당황한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마치 벌거벗긴 것처럼 자신의 손에 남아 있는 쪽지로 얼굴을 가릴지 아니면 중요한 부분을 가릴지 고민하고 있다. 나는 마지막 그 가치를 위해서 살라고 간단히 마무리 말을 하고 강좌를 마친다. 물론 그 누구도 질문이 없다. 이런 상황을 극적 분위기의 연출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진짜 멋진 장면은 좀 다르다.

‘저, 강사님. 저는 이 세 개의 가치가 모두 중요해서 하나도 버릴 수 없습니다.’

나는 강의 시간 내내 이런 질문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 명도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강사의 지시에 따라 자신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너무나 쉽게 찢어버리는 것을 보고 놀랄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최후까지 남겨둔 가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생존 모드인가? 완성 모드인가? 세 개의 가치 중에서 그렇게 쉽게 찢긴 두 개의 가치는 무엇일까? 세 개의 가치 중에 두 개를 쉽게 찢어버린 사람은 찢어버린 가치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지 않았기에 아주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세 개의 가치와 모두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 쉽게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치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그중 하나라도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토록 쉽게 찢겨진 이유는 어쩌면 찢겨도 무방하거나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갑자기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잠깐 생각해서 적은 일회용 느낌일 수도 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워크숍을 다시 해도 찢겨진 가치들이 재생돼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 남은 가치도 방금 전에 남긴 가치와 같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쩌면 문자 그대로 가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백 채의 집이 있는 사람은 죽을 때 어떤 기분일까? 전부는 아니어도 그의 재산을 상속받거나 기부받는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그저 감사할 따름일 수도 있다. 반면에 죽었지만 다시 부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모으다가 죽은 사람은 돈을 남기고 죽는다. 그 돈을 다 쓰게 되면 그 사람도 영원히 사라진다. 그러나 가치를 추구하다가 죽은 사람은 사람들의 기억과 가치에 존재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며,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부활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살면서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새벽나라에서 배운 가장 값진 지혜는 바로, 죽음 뒤에 또 다른 나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인들은, 몸은 죽었지만 죽기 전까지 추구했던 가치를 몸으로 다시 만들어 이 땅에 부활한 사람들이다. ‘평화’하면 떠오는 사람? ‘공의’하면 떠오는 사람? ‘섬김과 희생’하면 떠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죽지 않고 계속 가치를 통해서 부활해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나는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첫 번째 작업은, 나의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편지를 썼다. 편지의 내용은 나에 관한 것이고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다. 나에 관해서는 주로 나의 단점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아주 솔직하게 반성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젊기에 그들과 더 친해지고 싶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주로 용서에 관한 것이다. 딸에게는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남자 문제 그리고 혹시 이혼을 할 경우에, 혼외정사를 할 때 등등 차마 딸 가진 아빠로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주제를 이야기했다. 물론 목적은 용서다. 혹시 나의 딸이 내가 죽었을 때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딸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와 사랑이기에 딸아이가 아내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글을 썼다. 

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사기를 당하거나 본의 아니게 사기를 쳤을 때, 도둑질을 하거나 사람을 괴롭혔을 때, 여자를 울렸거나 이혼을 하고 싶을 때 등등 이런 일과 관련될 경우를 대비해 용서의 교훈을 남겨주었다. 아마 나의 아이들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내가 그들에게 전해준 이야기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무거운 주제를 정리하면서 내가 그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아주 소극적인 부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의 의도는 그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가급적 줄여서 그들이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려움은 잠깐이지만 후회와 좌절은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히기에, 그들이 이런 좌절과 후회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최소한 막아보려는 것이다. 

이런 편지는 지금의 삶도 자식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열정이 다시 한 번 솟아나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나의 죽음을 위해서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경영 일기’라는 제목으로 나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내가 경영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자세히 적어둔다. 이것 또한 아이들이 아버지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고 내가 먼저 배운 지혜를 나눠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루지 못한 가치에 대해서 그들을 초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책을 통해 나의 생각을 남기는 것이다. 지금은 그 많은 책들 중 하나로 서점 창고나 출판사 창고에 있는데 불과하지만 나는 이 땅에 처음 있는 개념과 지혜를 소개했다. 실험적인 책이어도 ‘최고 가치’를 위한 ‘최초의 용기’와 ‘최선의 도전’이라는 나의 삶의 목적에는 적합하기에, 나는 죽을 때까지 무리한 도전을 할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내가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방법이다. 

나의 세 개의 가치 중 하나는 ‘섬김’이다. 그 섬김은 값싼 봉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것은 최고의 섬김을 행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 지구 상에 오직 하나만 존재하거나 최고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나와 함께하는 사람을 섬기려고 한다. 그 섬김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섬기고 그 사람은 다시 또 다른 사람을 섬기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내가 죽음 뒤의 삶을 준비하면서 자식에게 나의 가치를 전달하고 책을 쓰는 것도 이 섬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나의 죽음이 나의 끝이 아니라 나의 완성이며 또 다른 시작이 되도록 지금 나는 살아가고 있다. 


가치 세미나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이십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인사를 했다. 양복을 입은 차림새가 아닌 걸로 보아 중소기업이나 IT업체의 직원처럼 보였다. 그는 질문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지금 행복하신가요?”

순간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우리가 그렇게 가치를 찾아 헤매는 것도 결국은 행복이나 성공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함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 방법을 알려주시는 선생님은 적어도 저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 아닌가 해서요.”

나는 대답하려고 하는 나의 욕망을 억누르고 그 친구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가 있었다. 바로 ‘간절함’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단어이기도 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그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잠깐이지만 당황한 빛을 숨기지 못하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돌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스물일곱입니다.”

“군대는 다녀왔겠네요. 혹시 만나는 사람은 있나요?”

“그건 왜….”

“그 사람을 사랑하나요?”

그는 스스로의 많은 생각 때문에 여느 사람보다 두어 배는 더 혼란스러워 보였다. 생각이 많으면 행동은 느리게 마련이다. 그는 내 질문을 아직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없는 의도를 유추해내려니 힘들 수밖에.

“그 사람을 반드시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보세요.”

“그건….”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한다고 볼 수가 없겠지요.”

“….”

“가치란 그런 것입니다. 가치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죠.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성공과 행복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과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얘기한 건 아닙니다. 가장 당신다운 삶을 살아가세요. 당신답다는 건 당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치 없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금세 균형을 잃어버립니다.

당신은 성공과 행복이라는 멋진 말로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그건 돈이나 지위, 명예, 혹은 욕망이나 사치의 다른 말일 수도 있어요. 좀 더 솔직해보세요. 당신은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가치만 얻을 수 있다면 가난해져도 좋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소중히 여기는 것을 위해 불이익을 당해도 괜찮나요? 당신의 그 가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당장 떠난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내가 그 친구에게 한 말은 바로 나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나는 아직도 나의 가치를 찾고 있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찾았다 싶으면 사라지는 것이 바로 ‘삶의 가치’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쩌면 평생에 걸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 가치란 그런 것일까? 존재만으로도 내 삶의 이유가 되고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지킬 수 있는 그것, 내게도 확실히 그런 의미였을까? 나는 지금 그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성공과 행복…. 그 친구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대신 자신다운 삶을 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한 삶은 필경 그에게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과 행복의 모양은 그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오랜 시간 새벽 여행을 통해 배운 지혜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이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의 작가 로버트 스티븐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소설에서 인간의 참모습을 말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는 하이드가 놀라는 것을 수없이 느끼고 보았다. 

나의 이름은 조태현이었다. 그러나 6년 전 새벽나라에서 나오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서 무슨 일을 하다가 죽을 것인가를 고민했고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권민權뗍이라는 이름은 한자어로 ‘권세가 흐른다’라는 뜻으로 ‘영향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스스로를 ‘권민’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이렇다. 내가 10년 동안 비즈니스계에서 공부하며 기업을 세우고 성장시킨 두 개의 축이 있는데, 하나는 리더십이고 또 하나는 전략이었다. 리더는 명령하기보다는 그 영향력으로 조직을 움직이고, 기업은 전략을 통해서 자신의 시장과 경쟁 브랜드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영감에서 시작된 나의 새 이름 ‘권민’을 통해서 나는 권민처럼 살았다. 

그리고 거의 죽어가던 지킬 박사를 지난 5년간 새벽 시간에 살려냈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 하이드가 아니라 또 다른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바로 새벽으로 나를 안내했던 사람이다. 

나는 5년 동안 하이드와 지킬 박사 그리고 새벽안내자 사이에서 방황했다. 도대체 누가 나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자아의 붕괴 현장에서 그동안 내가 부셔놓았던 시간의 잔해와 잘못의 파편을 뒤지면서 나를 찾아다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세 명 모두가 나였다. 


나는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싶었다.

나는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싶었다.

나는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나는 현대의 ‘문명’을 떠나 내 안에 있는 ‘깊음’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실용적으로 살고 싶었다.

나는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일상의 일들을 조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가치를 찾았고, 무형의 가치를 위해서 유형의 노력을 했다. 목표를 향해서 책을 읽고, 묵상하고, 상상하고, 확신하고, 기도하고, 정리하고, 계획하고, 글을 쓰고, 몰입하고, 반성하고, 그리고 꿈꾸어왔다.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

새벽에 나는 내 안에서 울리는 이 질문에 대해 항상 진지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리고 실행하려고 한다. 새벽의 결심이 하루의 시간을 지배하고 나를 그렇게 만들어간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영업부 직원이었지만 광고 기획자가, 또 패션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1년 동안 영업부에서 근무하는 것이 회사의 규정이었기에 옮길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광고에 대해서 전혀 경험이 없었던 내가 그런 부서로 보직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래도 광고 기획을 하기 위해서 새벽마다 회사에 일찍 출근해 광고 시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회사 선배가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브랜드 본부장에게 제안했고, 나는 4개월 만에 브랜드 광고 기획자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9개월 만에 그룹 광고 기획자가 되었다. 

나는 또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영문학과 출신이었던 나는 통계를 비롯해 대학 시절 하찮게 여겼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2년 동안 새벽에 마케팅을 공부했다. 광고 회의 때, 브랜드 매장 업무 보고 때, 마케팅 용어를 사용했고 광고 기획자가 마케터 흉내를 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룹 마케터로 뽑혔다. 

이후에 나는 마케팅 전문 기자가 되고 싶었다. 새벽마다 잡지를 뒤적거리면서 기사 작성의 요령, 좀 더 쉽게 말한다면 신문이 좋아할 만한 자료 생산과 자료 제공에 몰두하게 되었다. 기자는 아니지만 기사화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았고, 드디어 직접 취재를 하지 않아도 홍보를 통해서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광고 마케터인 내가 갑자기 홍보 일까지 도맡아서 챙기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틈을 내어 만든 홍보 기사가 신문에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홍보 기사로 글을 쓰다가 이제는 패션 마케팅 전문 기자가 되어서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나의 관심 분야였던 ‘행사 기획’이라는 영역에 책을 내고 싶어서 새벽마다 쓴 원고를 친구에게 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출판사 편집장의 눈에 띄어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내가 배운 대로, 새벽은 언젠가 올지 모르는 기회를 준비하도록 하며 우리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갖도록 도와주는 마술의 시간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일상의 기적이 아닌가? 하늘이 준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때’들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것이 노력 때문인가? 아니면 기적인가? 여하튼 새벽에 그 일을 준비하면 그 때가 ‘자주’, ‘빨리’, 그리고 ‘정확히’ 찾아오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새벽의 비밀을 배운 후 변화를 주도했다. 가치의 목적에 따라 비영리단체에서 문화 사역을 하면서 《큐CUE》라는 전문지의 편집장을 맡게 된 것이다. 아마 권민이 아니었다면, 나는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잡지를 만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최고의 가치를 찾아서 컨설팅 회사를 만들었고, 나의 클라이언트들을 최고로 섬기고자 광고 대행사, 홍보 대행사, 그리고 드라마 제작사까지 만들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새벽나라에서 새벽거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만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치는 날마다 새벽을 통해 손에 잡힐 듯한 ‘비전’으로 내 속에 각인되었고, 나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새벽거인들로부터 배운 ‘지혜’를 사용했다. 

그 가치의 이름은 ‘성찰’이었고, ‘나눔’이었고, ‘도전’이었다. 그것이 내 삶을 이끄는 견인차였고 나침반이었고 에너지원이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했고 새벽거인의 열심으로 낮의 삶들을 살아왔다. 

화학 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원자의 위치와 양에 따라서 물 분자는 이산화탄소도 되고 수소도 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변한다. 구조와 배치가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가치를 찾아 재배치해야 한다. 그 가치가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을 멈추어야 한다. 

지금까지 의식 속에 버려져 왔던 새벽을 찾아야 한다. 

| 에필로그 |

두 개의 시간






아침 9시. 일과의 시작은 회의의 시작이다. 그 시간부터 나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서 어쩌면 무엇인가의 틈에 끼여서 살게 된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가면 아내와 딸과 아들이 나를 반겨준다. 딸아이는 내일은 하루 종일 자기랑 놀자고 한다. 나는 회사에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는 무조건 우긴다. 아이들이 잠들면 나는 서둘러 정리하고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잠이 든다. 

5시. 이불 속에 누워서 잠깐 무엇인가를 생각하려고 하지만 1분 단위로 네 번 맞추어진 휴대폰 알람이 나를 깨운다. 집이 있는 수원에서 서울 회사에 도착하면 6시 20분이다. 9시까지 최소한 2시간에서 2시간 30분의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의 반성으로 시작하는 2시간을, 힘들지만 거르지 않는다. 

그 시간이 끝나면 최근에 내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과 생각에 몰입한다. 관련된 책을 읽고 기도를 한 뒤 깊은 묵상을 한다. 그리고 일과가 시작되기 30분 전부터는 오늘 새벽에 깨달은 것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돈을 벌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생존이 아닌 완성을 위해 일하는 것임을 직원들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직원 중에 가장 연약한 사람은 누구이고 그 사람의 가치는 무엇일까? 

이처럼 나의 업무에 새벽 시간을 끌어들인다. 그래서 내 하루에는 새벽 시간과 새벽에 배운 것을 적용하는 시간, 이렇게 두 개의 시간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약 삼십여 권의 책을 썼고 앞으로 칠십여 권의 책을 더 쓸 계획이다. 그중에서도 꼭 쓰고 싶은 책은 세 권이다. 하나는 ‘인내’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나의 100년’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100세가 되면 쓰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한 권은 바로 10년 후 2017년에 다시 쓰고 싶은 이 책이다.

나와 함께 새벽 반려자가 되어온 나의 아내, 임성화에게 감사를 전한다. 새벽에 곤히 잠든 아이들을 보며 그들도 이 새벽의 귀함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름에 새벽의 의미를 넣어두었다. 아들에게는 나의 새벽 이름인 ‘권민’을 붙여주었다. 딸은 다소 유화된 뜻으로 ‘민’만 차용했다. 이렇게 탄생된 조유민과 조권민에게 감사와 기쁨을 전한다. 끝으로 새벽마다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주님께 가장 큰 감사를 올리고 싶다.  My utmost for His highest! 



2007년 늦여름 

권민이 된 조태현


| 부록 |

나 홀로 떠나는 새벽 여행

쪾새벽 여행 하루 | 가치의 거인과의 만남




1.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라! 긴 시간 버스를 타는 것도 괜찮다. 일단 떠나서 자신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세 가지를 써보자.

(                             ), (                             ), (                             )



2. 새벽을 소중하게 대하기 위해 매일 밤 당신이 해야 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자. (예 :  TV끄기, 컴퓨터 끄기, 11시 전에 잠들기, 기도하기) 




3. 새벽 시간에 할 한 가지 일을 정하라.




4. 한 달 동안 새벽거인 세 명을 만나보라. 그리고 삶을 가치 있게 살았던 위인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                             ), (                             ), (                             )

쪾새벽 여행 이틀 | 비전의 거인과의 만남




1. 일기를 써보자. 처음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생각한 것 모두를 써보는 게 좋다. 그러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 생각이 과연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해보자.




2. 자신이 간절히 바라고 있고 되고 싶은 그 무엇이나 상황을 생생하게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겨보자.




3. 가치에 따른 자기 사명 선언서를 작성하자.  

1년 후의 나는 ( )

3년 후의 나는 ( )

5년 후의 나는 ( )

10년 후의 나는 ( )


4. 자기 사명 선언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실천해야 할 목표 리스트를

   적어보자.

쪾새벽 여행 사흘 | 지혜의 거인과의 만남




1.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물어보자.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선후배):



2. 당신에게 지혜를 전해준 사람이 있는가? 그는 어떤 식으로 당신에게 지혜를 보여주었는가? 




3.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은 사랑과 우정, 감사, 배려와 같은 말들로 가득하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말, 상대방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말들을 써보자. 




4. 지금 나의 제 2상한(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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