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창업 입문자를 위한 선행 학습
1%의 소수가 누리는 브랜드 비즈니스의 기회를
소외된 99%의 기업도 함께 누릴 수 있을까?
[프로그램 설명]
아래 글은 소설이 아니라 브랜드 창업 수강생의 웍샵용으로 구성된 유니타스브랜드 자기다움 교재입니다.
자기다움에서 브랜드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브랜드 론칭의 이해를 돕기 위한 마케팅 웍샵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브랜드 론칭하는 [비스그램] 프로그램에서는 브랜드 및 휴먼브랜드를 론칭을 할 때 [자기다움]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브랜드 소설 기법을 활용합니다.
브랜드 론칭 수강생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자기다움의 가치를
어떻게 브랜드 가치와 연결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안에서 밖으로“2주일 간 새이름 짓느라 골치가 다 아파!” 유진은 두꺼운 고대 라틴어 사전을 소파에 던지면서 말했다. 의외로 상철은 진지한 얼굴로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보고 있었다.
“재밌어?” 유진이 물었지만, 상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철아, 다했어? 내일 한 선생님 만나러 가야 하는데… 새이름 찾았어?”
“…….” 상철은 묵묵부답이었다.
“박. 상. 철!”
“듣고 있어, 지금 찾는 중이야.”
“박상철, 이제 가게 문 닫고 집에 가야 해. 11시 30분이야.” “먼저 집에 가, 나는 이름 짓고 바로 갈게.”
상철은 진지했다.
“지금 네 상황을 설명해봐. 오늘은 네가 어떤 말에 이렇게 취했는지 궁금하네. 또 어떤 구절을 발견한 거야?”
“헤밍웨이는 ‘재능이라고 불리는 것은 올바르게 계속되는 지독한 노동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고, 미켈란젤로는 ‘천재란 영원한 인내심이다’라고 했어. 괴테는 ‘재능은 고요함 속에서 만들어지고, 개성은 언제나 사람들이 우습게 여기는 것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했어. 나아가 니체는 ‘지상과 천상을 통틀어 절대적 사실은 한 방향의 오랜 순종이 있을 때에만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결과를 볼 수 있게 마련이고, 또 언제나 그래 왔다’라고 피력했어. 나는 지금 내면의 고요함을 느끼는 중이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셔터만 내리고 제발 가줘!” 상철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유진은 상철의 예전과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잠깐 물을 마시면서 조용히 상철이에게 말했다.
“오늘 매출이 120만 원이야. 9개월 전과 비교해 10배 올랐어. 이번 주 평균 매출이 87만원이야. 알고 있지?”
상철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 후 힘없이 입을 열었다. “호크마.”
유진이 되물었다. “호크마?”
“탈무드에 자주 나오는 단어인데 지혜라는 뜻이야. 내게 제일 필요한 것이 지혜라는 것을 알았어. 내 새이름을 알게 됐으니 이제 됐지? 그럼 이제 셔터 내리고 먼저 집에 가봐.” 유진은 그런 모습이 걱정돼 다시 상철의 앞에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다 말을 꺼냈다.
“엄마 뱃속에서 10개월 동안 이렇게 쳐다보고 있었어. 널 보고 있으면 지금 어떤 마음인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고. 무슨 일이야?”
상철은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위암이 재발했대.”
유진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다시 방사선 치료 해야 한대… 아버지가 엄마하고 너에게 아직 말하지 말랬어.”
“심각해?”
“모르겠어, 일단 방사선 치료를 다시 받아야 한대. 4년 동안 별 탈 없었는데… 다시 진행되고 있었나 봐.”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숨을 고르며 벽 쪽을 응시했다. 깊은 호흡이었다.
“그래, 정신 차리자. 우리는 잘할 수 있어. 이젠 예전 같지 않아!” 유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사선 치료와 요양원에 들어가려면 이 가게를 팔아야 해? 알지?” 상철이 나지막이 말했다. 유진은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감정을 추슬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 북받쳤다. 작은 가게지만, 상철이 군대에 가고 유진이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며 얻은 매장이었다. 아버지의 위암 재발 소식과 가게를 팔아야 하는 현실에 가슴이 먹먹했다. 머리에는 아무 생각도 들어오지 않았다. 유진은 옷 행거를 붙잡고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며 고개만 미세하게 끄덕이다 입을 열었다.
“상철아, 무슨 생각해?” 상철은 물끄러미 보고 있던 사전을 내려놓고 포스트잇을 끼워 둔 자신의 노트를 열어 뭔가를 찾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노력과 인내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실패는 없다.”
“누가 한 말이야?” 유진이 애써 웃으면서 상철이를 쳐다보았다.
“내 말이야.”
바젤하우스 최태선 회장은 아들 최세준과 딸 최세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바젤하우스는 패션 브랜드 네 개와 잡화 브랜드 세 개를 가진 중견 패션 그룹이다. 업계에서 한창 잘나갈 때는 매출이 5,000억 원을 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해 50%도 채 되지 않는 1,700억 원정도로 매출이 줄어들었다. 운영하기에도 빠듯한 실정이어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최세준은 아버지 최태선 회장에게 현금 100억 원에 바젤하우스를 모라비 그룹에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수익 모델을 찾자고 제안했다.
반면 최세린은 끝까지 브랜드를 살려 보자고 아버지를 설득하는 중이었다.
“우리 브랜드의 정상 판매율이 15%도 안 돼. 이제는 걸레가 됐다고!” 세준은 세린이 다시 리뉴얼 할 수 있다는 주장에 화가 나 소리를 버럭 질렀다.
“리뉴얼하면 돼. 정상 판매율이 높지 않은 건 단기 매출을 올리려고 나오자마자 할인해서 팔았기 때문이잖아. 왜 우리는 만들면 바로 염가로 판매해서 판 거야? 내가 근무했던 매장에서는 정상 판매율이 80%가 넘었어. 브랜드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야!”
“최세린! 3개월 판매했다고 바젤하우스를 다 아는 건 아니야. 너 패션 공부했다고 패션이 무슨 연금술이나 되는 줄 아나 본데 우리는 애들 패션쇼하는 곳이 아니라고!”
최태선 회장은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세준과 세린은 그런 아버지를 인식하고는 말수를 줄였다.
“다 끝났느냐?” 최태선 회장은 세준과 세린을 번갈아 보고 말을 이었다.
“마치 왕자와 공주의 난을 보는 것 같구나. 보기 안 좋다.” 최태선 회장은 심기가 불편한 듯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모라비 그룹과 MOU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판을 뒤집는 이야기를 해서 잠시 흥분했어요. 이 작업을 거의 1년 동안 했잖아요. 지금이 적기인데…” 세준이 세린을 쏘아보았다.
“아버지, 한승희 교수를 한번 만나 보세요. 미국에서 리뉴얼 작업만으로 수많은 브랜드를 다시 살린 분이에요. 1년… 아니, 6개월만 시간을 주세요.”
“최세린! 내년에는 경기가 더 어려워질 거야. 애처럼 굴지 좀 마!” 세준은 한심하다는 듯 세린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모라비 그룹 계약서에는 고용승계도 없잖아요. 그럼 600명 직원은 한 순간에 직장을 잃게 돼요. 우리 회사 사훈이 ‘조화를 통한 가치 창출’ 아니었나요? 이 철학 아래 30년 동안 일했던 사람들이에요.”
세린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야! 회사가 쓰러져 가고 있어. 직장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야. 오히려 빨리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오빠, 우리는 현금으로 100억 원을 받을 수 있다면서? 떠나는 사람들한테는 무엇을 줄 수 있는데? 직원들도 우리 식구잖아!”
“그만들 해라!”
최태선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린을 보았으나 입이 안 떨어지는 듯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생각에 잠긴 채 방안을 몇 번 돌았다. 그리고는 말 문을 열었다. “한 교수라는 분… 한번 보자!”
“아빠! 그건 MOU 계약 위반이에요!” 세준이 벌떡 자리에 일어섰다.
“세준아, 너는 내가 평생에 걸쳐 일군 기업을 돈으로 쉽게 환산할 수 있다고 보는 구나.”
“아빠, 모라비 그룹 접촉은 아빠가 시킨 거잖아요?” 세준은 짜증 섞인 말투로 세린을 보며 말했다.
“세준아. 나는 투자와 합병을 알아보라고 이야기했다. 매각하라고 하지 않았어. 매각은 온전히 네 생각이었다.”
“아빠!” 세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최태선 회장과 세린을 보았다.
“세준이 마음은 다 알아. 현재로서는 매각이 최선일 수도 있어. 하지만 또 다른 기회가 생겼으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니. 세린이를 한번 믿어보자!” 최태선 회장이 방을 나가고 둘은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서 있었다. “오빠…”
“부르지 마.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세준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권정헌이 시온의 춤을 보고 있다. 시온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 몸을 흔들면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었다. 어두운 동작과 환한 동작이 번갈아 나왔다. 어두운 동작은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굴에서 오로지 손의 감각으로 벽을 만지면서 밖으로 나오려는 행동 같았고, 밝은 동작은 빛에 대한 반응과 기쁨으로 보였다. 시온은 두 가지 동작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었다.
“극과 극을 표현하는 것 같은데?” 권정헌이 춤을 추고 바닥에 누워있는 시온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을 표현했어요. 흑백 필름 세상을 대할 때 일어나는 내 몸의 반응, 그리고 잃었던 색깔을 찾으려는 동작들이에요. 정말 이렇게 춤을 추니까 마음이 시원하네요.” 시온은 권정헌이 주는 물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지속적이지만 무의식적인 감각의 흐름이 우리 몸의 동작 부위에서 나온다고 주장했어. 그것이 비밀의 감각이라고 말하는 6감이야. 모차르트는 곡을 쓸 때 입과 손을 움직이면서 마치 그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썼다고 해. 바로 몸이 하는 상상력이지. 천재 이론의 대가인 하워드 가드너도 ‘몸은 자신의 지성을 품고 있다’고 주장했어.”
“대단하네요!” 시온이 놀란 듯 권정헌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몸은 정말이지 제2의 두뇌야!”
“아니, 제 말은 정헌이 형이 대단하다고요. 춤을 추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감정과 기분을 느꼈어요. 완전히 새로운 뇌의 자극이었어요. 이런 건 언제 공부한 거예요?”
“스타니슬랍스키라는 연극 연출가는 ‘배우란 모름지기 날카로운 관찰력과 발달한 근육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안에 저장된 자세와 몸짓을 항상 재생해낼 수 있어야 함은 물론, 사고와 몸을 조화롭게 연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어. 영화에서 보면 군대 가보지 않은 사람이 군인 역할을 하거나 칼을 만져보지 않은 사람이 장군 흉내 내면 어색하잖아. 총 잡는 것도 어색하고 칼을 드는 것도 어색하고. 그건 근육에 기억이 없기 때문이야. 그런 것을 포스라고 퉁쳐서 말하지만, 사실은 원본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야. 업무에 따라 발달하는 근육은 달라지게 마련이지. 경찰의 근육이 다르고, 무용수의 근육이 다르듯이. 사람들은 일상을 보내는 거지만 근육은 그것을 기억하고 자연스럽게 행동에 반영해. 경찰이었던 사람이 배우가 되어 경찰 역을 한다면 매우 자연스럽겠지 않겠어?”
“이해돼요.”
“내가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춤을 가르칠 때, 살펴보는 것은 그들의 동작이 아니라 근육이 기억하는 바야. 두려운 아이들의 근육, 행복한 아이들의 근육, 억압받는 아이들의 근육… 근육은 1차원적인 느낌과 감각을 가지고 있어.”
“그러면 제 춤에서는 어떤 근육을 보셨어요?”
“시온아, 잘 들어. 생각하는 것은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생각하는 거야. 예술, 수학, 물리학, 기술 분야의 구루들은 문제를 이성으로 풀기 전에 몸으로 느낀다고 해. 스타니슬라브 울람이라는 수학자는 숫자와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추론과 결합한 촉감으로 처리한다고 했어. 아직 넌 바뀐 네 세상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누가 봐도 너는 어둠과 밝음에 관한 것만 동작으로 보여주고 있지. 네가 하는 것은 춤이 아니라 뭔가를 흉내 내는 마임이야. 넌 마음의 느낌을 몸으로 흉내 내고 있어. 새로운 네 세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권정헌은 시온을 향해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춤의 근본은 기쁨이야. 춤은 기쁨을 발산하는 거지. 자신을 기뻐해야 해. 너만의 춤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어. 아직도 네 춤은 글루미(Gloomy)야. 흑과 백의 세상이 컬러풀한 세상의 반대에 존재하는 지옥이 아니란 말이야.” 권정헌은 자신이 한 말에 잠시 놀란 듯 시온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흑백 세상은 지옥이 아니에요. 하지만 예전의 세상과는 매우 다른 세상이죠.”
“미안하다. 내 감정에 몰입돼서 그만…” 권정헌은 애써 웃음지었다.
“생략된 세상이에요.” 시온이 말했다.
“생략?”
“컬러는 메시지와 상징을 가지고 있잖아요. 흑백 세상은 그런 것이 없어요. 흑백사진은 과거의 사진을 의미하죠. 저는 현재 시대에서 과거를 느끼고 있어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세상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초현실적인 세상이죠. 제 눈에 보이는 세상은 명암과 계조(階調, gradation)만으로 윤곽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살았던 세상과는 전혀 달라요. 처음에 완전 흑백이 되었을 때는 뭐랄까… 눈, 코, 귀, 입이 뚜렷하게 인지되지 않았아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뒤통수만 보이는 것 같았죠. 비교하자면 미국에서 한국말 하는 느낌, 한마디로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그런데 제가 볼 것만 보니까 오히려 흑백 세상이 더 명확히 보이더라고요.”
“그래? 이제 나도 검정 선글라스를 쓰고 시온이의 세상에 입장해볼게!”
“그렇다고 단순히 흑과 백으로 생략된 세상은 아니에요. 검정과 흰색은 무채색이죠. 검정과 흰색의 콘트라스트는 다른 어떤 컬러보다 강해요. 콘트라스트가 강하다는 것은 식별이 높다는 뜻이죠. 흑백사진의 명암에는 계조라는 것이 있어요. 사진 용어로 말하면 하이라이트와 쉐도우 사이의 농도 범위를 말해요. 사진작가들은 쉐도우가 넓고 풍부하면 그러데이션이 좋다고 하고, 이 범위의 편차가 적으면 콘트라스트가 강하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흑백 사진은 콘트라스트가강한 사진과 계조가 부드러운 수묵화 사진이 있어요. 흑백 세상에는 컬러가 주는 이런 묘미가 있어요. 이런 것을 이해하고 검정 선글라스를 쓰면 컬러풀한 세상 너머의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예요.”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장으로 향했다.
“윤시온!” 권정헌이 나지막이 불렀다.
“네?”
“최세린 어떻게 생각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시온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권정헌을 쳐다보았다.
“최세린… 알잖아. 네가 가르쳤던 친구…”
“알죠, 최세린. 그런데 갑자기 그 이름이 왜 나오죠?”
“글쎄… 왜 나왔을까?” 권정헌은 발레 동작을 하면서 시온의 주변을 가볍게 돌았다.
“뭐예요?” 시온이 자신의 주변을 돌고 있는 권정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춤은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로트바르트의 춤이야. 강렬하고 매혹적이지. 유혹적이면서도 현란하고. 로트바르트가 지금 최세린 주변에 있다면 지크프리트 왕자는 어떤 춤을 춰야 할까?”
“무슨 이야기 하는 거예요?”
“최세린이 네게 도움을 요청했어. 구해달라고!”
“정헌이 형!” 시온은 자신의 주변을 돌고 있는 권정헌을 붙잡았다.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녀가 네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승희와 이영숙 원장 그리고 이번 소송사건을 맡은 진경민 변호사는 아무 말 없이 찻잔만 응시하고 있다. 모라비 그룹의 김유경 사장이 한마음포도원 재산권소송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일단 항소를 하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어요. 하지만 길어봐야 6개월입니다. 어떻게든 가압류는 막아 보겠습니다.” 진경민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김유경은 한승희의 미국 방문 이후 한마음포도원 재산 환수 작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진 변호사가 떠나고 이영숙 원장과 한승희 두 사람은 생각에 잠겨 말없이 앉아 있었다.
“승희야.” 이영숙 원장이 한승희를 조용히 불렀다.
“안 됩니다. 어머니, 무조건 지킬 거예요. 시온이 아빠와 40명의 아이들에게 약속했어요. 약속은 끝까지 지킬 거예요.”
“하지만 얘야…”
“어머니, 마지막까지 간다 하더라도 더 나빠질 것이 없어요. 어차피 우리는 잃을 것이 없잖아요.”
“하지만 그동안 모아둔 돈을 법정 싸움으로 다 쓰지 않았니? 통장에 한 달 먹고 살 돈 밖에 없어. 원생들도 갑자기 다른 고아원에 배치 받으면 혼란스러울 거야. 지금부터 준비해야지. 진 변호사도 우리가 이길 확률이 20%가 안 된다고 하잖아.” 이영숙 원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지금 저희는 이길 준비를 하고 있어요. 조금만 인내하면 돼요.”
“얘야, 너에게 대안이 있는 거니?”
한승희는 나름의 대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승희는 ‘브살렐’이라는 이름으로 단독 의류 매장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같은 컨셉과 의류를 판매하는 매장은 지방에 약 33개가 있었다. 한승희는 단골손님과 지인 중에 브살렐 매장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매장을 내어주고 의류 공급라인을 열어주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한마음포도원 운영 지원금으로 쓴 자금은 33개 매장에서 매월 받고 있는 의류 판매 수수료와 시즌별로 받고 있는 VMD 비용이었다. 그녀의 대안은 하나의 브랜드 이름으로 33개의 간판을 동시에 바꾸는 것이다. 즉, 보세집을 제도권 브랜드처럼 만들어 대기업에서 투자를 받는 전략이었다. 현재 교육 받고 있는 세 명을 중심으로 영업팀을 운영하거나 33개 브랜드를 다른 기업에 인수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 이제 저도 적극적으로 나설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잘 될 거예요.”
“2주일 전 너희가 나에게 준 세 개의 키워드를 기억하니?” 한승희는 세 명에게 질문하면서 브랜드 교육을 시작했다. 세 명은 함께 큰소리로 자신의 가치 키워드를 말했다.
“좋았어, 방금 너희가 말한 가치 키워드는 살면서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너희의 가치잖아? 오늘은 이런 가치 키워드에 맞는 새이름을 결정할 거야. 새이름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세 개의 가치 키워드 중 하나를 버려야 해. 아쉽지만 하나를 골라봐.”
한승희의 말에 셋은 당황했다. 2주일 동안 세 개의 가치 키워드로 새이름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이제는 그 중 하나를 버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10여 분 동안 고심하다가 결국 모두 하나의 가치를 버렸다. 유진은 꿈을 버렸고, 상철은 협력을 버렸다. 그리고 시온은 끝까지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엄마, 전 못 버리겠어요. 이 세 가지 가치가 지금 저를 지탱하고 있는데, 하나를 빼면 전체가 무너질 것 같아요.” 시온은 실제로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한승희는 물러서지 않고 버려야 하는 상황을 침묵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결국 시온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능성을 버렸다.
“왜 그 가치 키워드를 버렸는지 이야기해보겠니?”
“혁신은 목표지만 열정과 협력은 수단인 것 같아요. 열정이 빠진 혁신은 있을 수 없잖아요. 저는 그래서 협력을 뺐습니다.” 상철이 말했다.
“저는 포기하지 않음과 가능성인데, 가능성은 기대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진리를 향해 나아갈 때 가능성을 추구하기보다 포기하지 않는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저는 가능성을 뺐어요.”
“저는…” 말을 하려던 유진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자신의 아버지와 매장, 현재와 미래 등 가치 키워드가 관계 속에서 겹쳐 있었다.
“괜찮니? 유진아?” 한승희는 유진의 반응에 놀라서 물었다.
“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몰입했나 봐요. 저는 꿈을 버렸어요.”
한승희는 유진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다. 상철도 오늘따라 차분하고 말이 없었다.
“좋아, 오늘 교육은 집중도가 상당히 높은 것 같구나. 그러면 이제 두 개 중 하나를 버려보자. 하나만 남겨보는 거야.” 처음보다 더 어려웠다. 하지만 10분 안에 세명은 모두 키워드를 하나씩 버렸다.
“저는 진리를 버리고 포기하지 않음을 남겼어요.” 시온은 버린 가치가 쓰인 종이를 접으면서 말했다.
“저는 열정을 버렸어요. 열정이 있더라도 혁신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은 무식한 열심일 테니까요. 그래서 열정을 버렸습니다.” 상철과 시온이 유진의 얼굴을 보았다. 유진은 울고 있었다.
교육은 거기서 잠시 중단되었다. 유진이 화장실을 간 사이 세 명은 유진의 남은 종이를 확인했다. ‘창조’ 키워드가 버려졌다. 이것이 단순히 유진의 성향이었다면 상철은 유진을 놀렸겠지만 상철도 매우 진중한 얼굴이었다. 애써 태연한 얼굴과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어색했다. 한승희는 뭔가 직감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유진은 마음을 추슬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자, 다시 시작해볼까?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남은 한 개의 키워드가 어쩌면 진짜가 아닐 수도 있어.” 한승희는 세 명의 키워드를 보면서 말했다.
“네?” 세 명이 동시에 외쳤다.
“내가 너희에게 목숨 걸고 지킬만한 가치라고 했던 거 기억하니? 너희가 목숨 걸고 지킬만한 가치를 두 개나 버렸으니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은 두 번 죽었다 부활한 셈이야.”
“네?”
“원래는 세 개 모두 버릴 수 없어야 해. 목숨 걸고 지킬만한 것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겠니? 너희를 핀잔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속인 것도 아니고. 유진이처럼 버리는 과정에서 아픔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오늘 교육은 충분해. 하지만 자신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해. 비록 교육이지만, 목숨과 이름을 걸고 지킬만한 가치를 찾는 건 중요한 일이야. 그리고 그 가치로 브랜드를 만드는 거야. 그 가치를 지키려면 현실적으로 많은 역경을 넘어야 할 거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브랜드가 브랜드 되는 브랜딩이 일어나는 거란다. 너희가 버린 것이 가짜라는 말이 아니야. 좀 심한 말일 수도 있지만 가치를 버린 쪽이 어쩌면 가짜 마음일 수도 있어. 이렇게 강하게 말하는 이유는 다시 한 번 너희가 스스로 만든 새이름과 가치에 대해서 점검했으면 하기 때문이야. 그 가치 키워드는 사실 브랜드를 만들어야 할 이유(Why)니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상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가치 키워드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질문하는 유진의 얼굴이 자못 진지했다.
“좀 아픈 추억이겠지만 너희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결정한 기준을 떠올려봐. 그리고 지금 세 가지 가치 키워드 중 어떤 것을 결정할지 생각해봐. 그때 마음과 결단이 지금의 세 가지 키워드와 같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너희가 지금 보여준 것은 너희에게 없거나 추구하는 마음일지 몰라.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음이좀 벅찰 수 있지만 가장 힘들었을 때를 떠올려야 해.”
“지금 당장 하는 건 아니죠?” 상철이 물었다.
“오늘은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앞으로 2주 동안 숙제 하면서 찾아봤으면 해. 만약 찾았다면 그 가치 키워드를 가지고 미니 자서전을 써보는 거야. 자서전이 거창하면 회고록이 되니까 가치 키워드 관점에서 작성해야 해. 그리고 하나의 가치 키워드 또는 세 개의 가치 키워드를 가지고 포이에마를 써봐. 미니 자서전으로 가치 키워드를 찾고, 포이에마를 통해서 오직 자신만의 정의, 느낌 그리고 이미지를 갖는 거야. 오늘은 자서전과 가치 키워드 포이에마는 쓰지 않고 너희가 만든 새이름에 대한 점검을 해볼 거야. 하나의 가치 키워드와 새이름을 연결해서 말해보자. 잠깐 쉬었다 할까?”
상철과 시온이 서재에서 나가고, 유진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유진은 조용한 목소리로 한승희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죄송하다니? 뭔지 모르겠지만 포기하는 아픔을 경험하고 있구나.”
유진은 한승희 무릎에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상철은 애써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얼굴은 굳어 있었다. “상철이의 새이름과 남은 가치 키워드는 뭐지?”
“저의 새이름은 ‘호크마’에요. 지혜라는 뜻이죠. 탈무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로 자주 등장하는 ‘지혜’가 저에게는 부족한 것 같아요. 저의 가치 키워드인 혁신, 열정, 협력만 살펴봐도 이성이 없는 것 같고요. 앙드레 지드는 가장 아름다운 글이광기에 자극되어 이성적으로 쓴 글이라고 말했는데, 저에게는 이성적 개념이없어요. 가치 키워드가 혁신인데 그 혁신을 이루는 지혜가 없다면 그야말로 혁신을 빙자한 파괴가 아닐까요? 그래서 제게 필요한 단어인 호크마(Hokma)로 새이름을 지었습니다.”
“저의 새이름은 크레이브드(Creved)에요. 제 가치 키워드는 꿈(Dream), 사랑(Love), 창조(Creativity)잖아요. 한글로 모아보니까 새로운 단어인데 의미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Creativity의 Cre와 Love의 V, Dream의 D를 가져와 단어를 만들었어요. 크레이브드(Creved)는 얼핏 보면 크레이브(Craved, 갈망하다)처럼 보이지만, 아직 세상에 없는 단어에요. 어원을 보면 갈망하다 Crave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데,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은 단순한 갈망을 넘어 ‘창조의 꿈을 사랑하다’라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꿈 꿀 정도로 강력한 영적 갈증의 갈망’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싶었어요.”
유진의 설명에 예전의 상철이라면 인용구나 빈정거리는 말을 건넸을 텐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시온도 이런 분위기를 인지하고 조용히 얘기에 집중했다.
“저는… 만들고 보니… 무슨 로봇 이름 같네요.” 시온은 머리를 긁적였다.
“빨리 말해봐. 그래서 아까 혼자서 히죽거렸구나!” 상철이 분위기를 띄우려고 톤을 높여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눈은 완전 색맹이 돼서 흑백사진처럼 보여. 세상에 흑백사진 말고 흑백으로 이루어져서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 있을까?” 시온은 상철을 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흑백으로 된 것을 생각하다 피아노 건반이 떠올랐어요.” 이번에는 시온이 한승희를 보며 말했다. 한승희는 시온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며 잠시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피아노 건반! 맞아, 건반도 검정과 흰색으로 만들어졌지.” 유진이 깨달았다는 듯 외쳤다.
“피아노 건반은 영어로 클래비어(Clavier)야. 라틴어 어원은 Clavis이고, 이 뜻 안에는 열쇠(Key)라는 뜻도 있어. 그래서 건반을 키보드(Keyboard)라고 하잖아. 어쨌든 나는 피아노 건반의 고대 라틴어 어원인 클래비스(Clavis)를 새이름으로 정했어. 그런데 여기까지는 이미 있는 단어잖아. 나도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Clavis를 쪼개고 나의 세 가지 가치를 이용해 다른 의미로 만들었어. 나의 가치 키워드는 포기하지 않음, 가능성, 진리잖아. ‘진리를 알기 위한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라틴어로 클래로(Claro)라고 하거든. 그래서 ‘환하게 하다’라는 뜻과 힘과 가시성의 뜻을 가진 비스(Vis)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들었어. 나의 새이름은 클래비스(Clavis)야.”
“그럼 너의 새로운 이름의 의미는 어둠을 밝히는 사람이야?” 유진이 물었다.
“어둠보다는 가려져 보이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밝혀주는 사람에 더 가까워.” 시온이 대답했다.
“오… 피아노 건반에서 시작해 주변을 밝히는 힘까지 포함하는 대단한 단어인데!” 상철의 흥분된 얼굴로 감탄사를 던졌다.
“그런데 시온아, 진리가 뭐냐?”
“변하지 않는 가치!”
“변하지 않는 가치는 뭔데?”
“변하지 않는 가치는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야. 인류가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하는 힘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면, 나는 인류애가 그 가치라고 생각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인류가 세상에서 서로 공존하고 진보할 수 있게 하는 가치이니까.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이 바로 인류애가 아닐까? 흑백으로 보는 사람이 느끼는 세상은 아주 평등하게 보여. 재미있지? 컬러가 주는 위압감이나 사치가 없어. 그저 평범한 사물과 사람으로 보이지. 나는 이런 관점이 나로 하여금 세상을 변화시킬 틈을 보게 하는 것 같아.” 한승희는 조용히 웃으면서 시온을 보았다. 시온도 그런 엄마의 시선을 느꼈다.
브랜드 이름을 만들 때 브랜드 네이밍 전문 대행사에 ‘좋은 이름을 정해 주세요’ 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이름을 짓기는 어렵다. 일단 좋은 이름에 쓰이는 모든 단어들은 이미 등록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거나 조합해서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네이밍 작업을 거쳐 등록 가능한 이름을 만들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낯설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결국 서너 개의 후보로 압축시켜 거수로 결정한다. 이렇게 결정된 이름은 그 브랜드에 적합할까? 그 이름은 어떤 영적인 힘을 가질까? 가령, 자식의 이름을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의 거수로 결정한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상품에 이름을 정하는 것, 곧 브랜드가 브랜드 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갖는 방법 중에 최선의 방법은 말 그대로 브랜드에 ‘자신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남의 귀에 좋다는 이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성(性)씨가 마음에 안 든다고 자신의 자녀에게 다른 성(性)을 주지 않는다. 이름은 바뀔 수 있지만 성(性)은 바뀌지 않는다. 시온이 새롭게 만든 새이름 클래비스(Clavis)는 윤시온의 ‘윤’이라는 성에 해당한다. 이제 윤시온은 가치와 삶을 일치시키는 클래비스가 되어 자신의 자식과 같은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에 그대로 물려준 사례로 델(Dell) 컴퓨터의 창업주 마이클 델이 있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과 성으로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은 상표등록 가능한 이름일 때만 유용하다. 이외에도 자녀의 이름으로 만든 현주컴퓨터, 창업자와 투자자의 이름으로 만든 Abercrombie & Fitch도 있다.
한승희가 원하는 것은 세 명이 자신의 새이름 대로 사는 것이다. 시온은 가리워진 것을 드러나게 하는 클래비스(Clavis)로, 상철은 열정으로 무장한 호크마(Hokma)를 가진 사람으로, 유진은 마음이 따뜻한 크레이브드(Creved)로 사는 것이다. 클래비스(Clavis)가 클래비스(Clavis)되기 위해서는 시온이 가지고 있는 지식, 지혜 그리고 경험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윤시온이 세 개의 가치를 추구하며 클래비스(Clavis)가 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한승희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해서 세 명에게 이야기했다.
“혹시 내가 THE BODY SHOP의 창업자 아니타 로딕(Anita Roddick)에 대해서 말한 거 기억하니?” 상철은 다시 노트를 뒤지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네! 제가 적었어요. 우리가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 우리가 제품을 만드는 방식, 우리가 원료를 공급받는 방식,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다른 것입니다.”
“맞아. 우리는 시장에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나누는 사람이야. 물건은 가치를 공유하는 필수품이 되어야 해. 그리고 너희는 클래비스(Clavis), 호크마(Hokma) 그리고 크레이브드(Creved)가 되어야 해. 지금과는 다른 관점으로 상품을 고르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말이야. 만약 너희가 알고 있는 남의 성공 방법대로 브랜드를 경영하면 결국 너희 브랜드는 시장에서 비슷한 브랜드로 성장하게 될 거야.” 상철은 뭔가 말하고 싶은 얼굴로 한승희를 바라봤다.
“상철이 노트에서 보물을 발견했구나. 뭐라고 적었니?”
“음… ‘지식을 얻고 싶으면 무언가를 배워라. 지혜를 얻고 싶다면 날마다 무언가를 버려라’라고 노자가 말했는데요. 더 재미있는 것은 혼다 자동차가 ‘철학이 없는 행동은 흉기이고 행동이 없는 철학은 가치가 없다’는 말로 캠페인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혜를 얻기 위해 내가 가진 것으로 배우며, 자신의 가치에 맞는 행동을 하면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상철은 자신의 깨우침에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은 상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을 이었다.
“상철이가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인용집을 버리는 게 먼저야. 그리고 인용했던 모든 문장에 따라서 행동하면 너는 진짜 호크마가 될 거야.” 유진의 말에 한승희와 시온은 동시에 웃었지만, 상철은 예전과 달리 함께 웃지 않았다.
“그래, 네 말이 맞는 말 같다!” 상철은 생각지 못한 깨달음으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상철아, 상처받았어?” 유진은 상철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아니, 네 말이 맞아. 나는 타인의 말에서 유희를 즐겼고, 그들의 지혜를 사탕처럼 핥아 먹었어. 네 말이 맞아.” 상철은 유진의 말을 인정하며 다소 풀이 죽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상철아. 너는 지금 학습 중이야. 처음부터 자기다움과 가치 키워드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찾고 발견하는 거야. 나도 이 교육을 처음부터 한 건 아니야. 배워가면서 전체를 알아가는 중이란다. 상철의 독서 노트로 상철이는 더 지혜로워질 거라고 생각해. 상철이가 회의 때마다 시의 적절한 인용구를 노트에서 찾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관심을 통한 필연이지. 그리고 지금 노트는 우연을 필연에서 숙명으로 끌고 가는 지혜의 노트라고 생각해. 나는 그렇게 보여.” 한승희가 상철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아무튼, 언젠가는 이것도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호크마의 세 가지 가치 키워드로 살아갈 거예요.”
“그런데 대기업에서도 이런 식으로 브랜드를 런칭하나요?” 상철에게 미안한 유진이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시장에서 브랜드는 대부분 대기업이 만들잖아요.” 시온도 거들었다.
“지금 한 질문은 대답보다 수많은 의문을 더 끌어낸단다.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상표들은 브랜드일까? 브랜드를 어떤 기준으로 정의해야 할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브랜드일까? 브랜드를 가져서 대기업이 된 걸까? 대기업만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걸까? 이외에도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먼저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대기업에서는 너희가 받았던 교육으로 브랜드를 만들기 어려워. 너희의 교육은 창업주와 런칭 멤버들에 의해서 브랜드가 결정되는 경우야. 그러니까 너희의 영적 가치가 브랜드 안에 녹아 있는 셈이지.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그런 목적으로 브랜드를 만들지 않아. 기업은 이윤을 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더 많은 이윤을 내는 방향으로 결정해. 가치와 가격이 생존을 위해서 경쟁한다면 절대로 가치는 가격을 이길 수 없어. 생리적으로 대기업은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 없으니까. 단 창업주나 최고 경영자가 이 작업을 한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다르지. 그리고 이게 대기업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한계야. 그들은 너희가 경험한 것처럼 영혼을 투영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취업한 사람들이 아니야. 만약 가능성을 높이고자 했다면 인원 선발부터 이런 가치 키워드 기준으로 뽑아서 함께 만들며 가능성을 높였겠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먼저 차별화된 브랜드가 되어야 해. 대개 대기업을 가장 안정된 직장이라고 하잖아. 가장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차별화를 통해서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만약에 우리가 안전한 시장 질서를 위해서 가장 안정된 상품, 그러니까 튀지 않는 상품을 만든다면 생존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이 교육의 핵심은 시장과 환경을 다르게 보는 사람이 되는 거야. 서울이나 부산이나 비슷하지만 서울과 울란바토르는 다른 세상이지. 우리는 다른 세상에 와서 다른 관점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를 만드는 거야. 다르기만 하다고 특별한 것은 아니야. 우리가 만들 다른 브랜드의 기준은 ‘가치’가 되어야 해. 그 가치는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진짜 가치, 숨겨진 가치, 그리고 기존의 질서에 의해 무시 받은 가치야. 그것으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해.”
“저희가 그런 브랜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유진이 물었다.
“우리가 먼저 그 가치를 경험해야지. 그 가치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런 관점으로 보아야 하고, 그런 관점을 가지려면 먼저 그런 영혼을 가져야 해.” 한승희가 시온을 바라보았다.
“그런 영혼을 가지려면 저는 다시 태어나야 하나요?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야 하네요.” 시온의 말에 모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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