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창업 입문자를 위한 선행 학습
1%의 소수가 누리는 브랜드 비즈니스의 기회를
소외된 99%의 기업도 함께 누릴 수 있을까?
[프로그램 설명]
아래 글은 소설이 아니라 브랜드 창업 수강생의 웍샵용으로 구성된 유니타스브랜드 자기다움 교재입니다.
자기다움에서 브랜드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브랜드 론칭의 이해를 돕기 위한 마케팅 웍샵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브랜드 론칭하는 [비스그램] 프로그램에서는 브랜드 및 휴먼브랜드를 론칭을 할 때 [자기다움]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브랜드 소설 기법을 활용합니다.
브랜드 론칭 수강생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자기다움의 가치를
어떻게 브랜드 가치와 연결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중력 이탈 “정말 충격적이었어.” 가게로 들어선 유진의 얼굴이 퀭했다. 어제 교육을 마치고 돌아가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지새웠다고 했다. 상철은 이미 가게에서 책을 읽으며 노트에 무엇인가를 옮겨 적고 있었다.
“뭐해?”
“시는 거짓말을 통해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가장 아름다운 글은 광기에 자극되어 이성적으로 쓴 글이다.”
“네 이야기야? 시인이 한 이야기야?”
“내 이야기는 아니야. 어디서 들었는데 출처가 불명확해. 공감되면 그것으로 충분해.”
“갑자기 웬 시집이야? 이제 시인이 되려고?”
“어제 우리가 적은 시를 들었잖아. 지금 자면 이 감정이 모두 달아날 것 같아.” 유진은 상철의 충혈된 눈을 보았다. 지금까지 보았던 상철 중에서 가장 진지한 모습이었다.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것 같아.”
“뭐가?”
“우리의 미래, 아니 나의 새로운 운명의 접점. 드라마에서 보면 그런 거 있잖아. 세렌디피티(Serendipity) 같은 거.”
“나도. 말로 표현은 못하겠는데 뭔가 내 주변이 바뀐 듯한 느낌이야.”
“무중력 같아. 예전에는 이런 것을 마음이 그냥 붕 떠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느끼는 중력 같아.”
“그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다른 세상의 다른 중력!” 유진도 뭔가를 느꼈다는 듯 말했다.
“시온이에게서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상철이 노트를 덮고 일어섰다.
“왜?”
“시온이의 포이에마는 그냥 포이에마가 아니야. 나는 그 포이에마에서 광기를 봤어.”
“맞아, 그냥 절규 같지.” 유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미치면 미친놈이지만 모두가 미치면 법칙이라고… 누가 그랬지?” 상철이 노트를 열려고 했다.
“니체가 그랬다고 했었잖아.”
“아… 그래, 니체가 그랬지. 이제 정말 시온의 법칙이 생길 것 같아.”
상철이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디 가?”
“집에. 너무 피곤해.”
“어머니는 어떻게 하실 것 같니?” 권정헌은 한 시간 동안 춤을 추고 마루에 쓰러진 시온에게 물었다.
“그게… 좀 애매해요.”
“그렇지, 애매하겠지. 모라비 그룹에서 한마음 포도원을 사 오려면 현금이 최소 50억 원이 필요하고, 그 돈을 만들기 위해 바젤 하우스와 계약한다면 그건 모라비 그룹에 선전 포고를 하는 셈이니까. 사실 현금을 받았다고 해도 바젤 하우스를 당장 살려내기는 어렵지.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 방법 외에 없어 보여. 보통 동화에서는 이쯤 되면 백마 탄 왕자님이 등장하는데. 극적 반전이 필요해.”
“엄마는 저한테 생각해보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대답이 없으세요.”
“원래 1막은 나쁜 사람이 대부분 이겨.”
“아… 형, 지금 이건 설정이 아니잖아요.” 시온이 땀을 닦던 수건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설정으로 만들 수도 있지.” 권정헌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며 시온을 보았다. “어떻게요?”
“네 춤 말이야…”
“춤이요?”
“이제 막춤이 아니야.”
“그래요? 그냥 췄는데, 그냥 몸이 움직이는 대로…”
“그래, 네 몸이 변했어. 예전에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흉내 내는 춤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변했어. 뭔지 모르겠지만 패턴이 있고, 의도와 의미가 있어.”
“오늘은 왜 이렇게 칭찬을 해주죠? 이러다가 무용가가 될 것 같은데요.”
“무용가는 될 수 없어.” 권정헌은 딱 잘라 말했다.
“뭐예요? 소질 있다면서요.” 시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없어.”
“그래요?”
“그러니까, 잘 추는 게 아니라 너의 춤을 추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예전에 내가 다녔던 교회에 작은 불이 났었어. 목사님이 화재 교육을 하려고 교회에 다니고 있는 현직 소방관을 초청했지. 그래서 그 사람이 실제 소방관 옷을 입고 설교 시간에 나왔어. 그런데 내 뒤편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실제 소방관인 줄 몰랐나 봐.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야, 저 사람 정말 연기 잘하네.’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은 소방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소방관이잖아. 그때 생각했어. 내가 백조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 봐. 백조가 되기 전에 백조처럼 춤을 출 수 없는 거야. 최고의 배우가 최고의 연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연기일 뿐이라고. 그런데 오늘 너는 너의 춤을 추기 시작했어. 누군가를 흉내 내면서 생각을 발산하는 게 아냐. 잘은 모르겠지만 너는 네가 된 것 같다.” “정말 그렇게 느껴지나요?” 시온은 진지하게 물었다.
“단순히 느끼는 것이 아니야. 오늘 네가 춘 춤은 내가 연기할 수 없는 춤이야. 너는 이제 너만 출 수 있는 춤을 추고 있어.”
바젤 하우스 최세준 실장과 모라비 그룹의 김유경 회장은 청담동의 개인 갤러리에서 접선했다. 김유경 회장은 1년에 서너 번씩 한국에 나오는데, 경매로 나와 있는 그림을 사서 미국으로 파는 일도 하고 있었다.
“최 실장님, 지금 MOU 하고 벌써 3개월이 지났어요. 질질 끌면서 이런 일로 만나야 하나요?”
“죄송합니다. 저희 내부에 검토 작업이 좀 남아서 곧 끝날 겁니다.”
“검토라뇨? 실사를 다시 한다는 얘긴가요? 돈을 더 달라는 것인가요? 최 실장님 아버지에게 100억, 그리고 최 실장님에게 드리는 50억 외에는 더 이상 드릴 수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제 동생이 미국에서 왔는데 바젤 하우스를 살려 보겠다고 우겨서… 지금 계속 조정 중입니다.”
“바젤 하우스를 살려? 다음 회계 년도에 상장해야 돼요. 어느 정도 몸집을 불려서 들어가야 된다고요. 일단 매출을 빼야 기존 주식을 쉽게 살 수 있으니까 매출을 더 내리세요!” 김유경은 자신 앞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독기를 쏟아냈다. “그런데 동생 분은 뭐해요?” 김유경은 최세준과 복도를 나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말했다.
“미국 패션 대학에서 공부 중입니다.”
“대학생? 무슨 대학이죠?”
“플라트 패션 스쿨입니다.”
“그래요? 내가 거기서 교수했는데!” 뇌리에 한승희가 스치면서 김유경은 하지도 않은 일을 지어냈다. 순간 김유경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몇 학년이에요?”
“다음 학기가 졸업입니다.”
“그럼 우리 회사에 취직시켜 준다고 해요. 플라트 다닐 정도면 수준 이상이네.” “네, 알겠습니다.”
“최 실장님, 아무튼 우리 빨리 갑시다. 이것 때문에 최 실장에게 착수금으로 20억 들어갔어요. 거기다 우리 주식도 드렸잖아요. 나는 많은 부분을 투자하고 있는데 실장님은 투자를 못하는 것 같네요. 젊으면 무서운 것이 별로 없어야 하는데… 뭐가 그렇게 무섭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야. 자신이 원본이지.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쯤이면 모두 복사본으로 죽게 돼.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래서 자기다움이라는 자기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이 원본임을 자각하고 원본다운 행동을 하는 거야. 나는 우리 아들 시온이에게 시온이라는 이름을 주었고, 시온이는 스스로 클래비스(Clavis)라고 부르고 있잖아. 시온과 클래비스 중에 어떤 것이 너의 원본에 가까울까? 오직 시온이, 아니 클래비스만이 알고 있겠지. 클래비스처럼 느껴진다면 원본을 느낀 것이고 여전히 어색하면 그것은 자신의 원본이 아닐 수도 있어. 브랜드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차별화야. 시장에서 똑같은 상품을 내는 건 상대를 공격하겠다는 뜻이잖아. 시장은 생태계를 이루면서 서로 발전해야 하는데 같은 것으로 하나의 타깃을 공격하는 건 생태계에 반하는 행동이지. 우리가 너희들의 원본을 먼저 찾은 이유는 똑같은 물건과 브랜드를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 우리가 시장에서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내놓으면, 경쟁하게 되고 비슷하게 되는 것은 조직과 시장의 생존본능이거든. 똑같아지려는 본능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경쟁자를 보지 않고 자신만 바라봐야 돼. 바로 원본을 만들어내는 자기다움이지. 우리는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근본적으로 차별화된 자신을 살피고, 자신의 자기다움을 브랜드다움으로 연결해야 해. 유진이와 상철이는 쌍둥이지만 확실히 서로 다른 자기다움을 가지고 있지. 아마 너희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음식도 다를 거야. 우리가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자기다움을 이해하고, 자신의 자기다움을 브랜드에 반영해야 해. 그래야만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른’ 브랜드를 창조할 수 있어.”
이렇게 한승희의 두 번째 세션이 시작되었다.
“그러면 먼저 큰 브랜드에 취직한 직장인들은 브랜드를 만들지 못하나요?” 유진이 물었다. “가장 좋은 브랜드는 너희처럼 처음부터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사람의 자기다움이 브랜드에 그대로 투영된 브랜드야.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 사람에는 여러 가지의 성향과 특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잖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겠지만 일반적으로 그것들은 연합되어서 잘 보이지 않지. 브랜드도 마찬가지란다. 브랜드는 오직 하나의 콘셉트와 아이덴티티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생존과 존재를 위해서 시장성과 성장성 그리고 희귀성을 추구하는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 만약 유진이가 어떤 브랜드에 입사하게 된다면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의 자기다움과 취직한 브랜드의 자기다움을 먼저 맞춰보는 일이야. 유진이가 자기다움을 추구하면 브랜드의 자기다움은 어떻게 구축되고 성장할까를 생각하면 돼. 그렇게 되면 유진이는 단순히 월급쟁이가 아니라 브랜드를 통해서 자기완성을 이루는 사람이 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면 공생이, 그렇지 않으면…” 한승희는 웃으면서 말을 멈추었다.
“기생이군요.” 유진은 약간 놀랐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좀 심한 단어지만 자연계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지. 자신의 노동력을 회사에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할 때마다 착취당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유진이가 자기다움을 의식하면서 힘든 일을 한다면 자신의 완성을 위한 연구, 탐험 그리고 모험이라고 할 수 있어.”
“아… 그래서 선생님께서 우리 자신을 먼저 찾게 해 주려고 새로운 이름과 가치 키워드, 휠 같은 것을 교육하셨군요.” 상철은 감동의 눈으로 한승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기업 정신과 개인의 자기다움은 맞지만 그 기업이 팔고 있는 아이템과 내가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그러니깐 기업은 창조성을 추구하지만 만들어 파는 것이 두부라면, 창조적인 두부는 만들 수 없잖아요.” 유진이 물었다.
“창조적인 두부! 그렇지, 두부의 맛이 창조적일 수는 없지. 하지만 두부의 포장지, 두부의 보관 방법, 두부 요리의 레시피가 지금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두부와 콘셉트가 전혀 다른 햄버거, 과자 같은 것을 만들면 창의적이지 않을까? 유진아! 너의 가치 키워드에 창조가 있는데, 그 창조가 진짜라면 그렇지 못한 기업과 아이템을 창조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해. 너 자신을 믿어야지. 물론 너희의 창조성이 기업과 브랜드의 안정성과 서로 충돌되는 부분도 있을 거야. 그렇다면 너의 창조성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자기다움으로 브랜드를 창조할 수 없는 사람도 있겠군요. 근본적으로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이거나, 체제에 순응을 잘하거나 아니면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브랜드에는 독이겠는데요?” 상철이 물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 사람들은 뭔가를 찾고 있거나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이야. 물론 선천적으로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은 브랜드 쪽보다는 자신의 성향과 맞는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산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빌딩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지 틀린 사람은 아니니까. 이건 같고 다른 문제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야.”
“브랜드와 잘 맞는 자기다움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시온이 물었다.
“Living the brand라는 말이 있어. 즉, 브랜드처럼 살거나 브랜드로 사는 삶을 말하는 거야. 어떤 브랜드냐에 따라서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것 같아. 먼저 브랜드라는 건 자기를 위한 게 아니라 남을 위한 상품에서 시작되지. 자신의 재능과 가치로 상품을 만들고, 그것을 이웃들이 기뻐하면서 구매한다면 서로가 행복할 수 있겠지. 모든 브랜드는 ‘이웃을 위한 섬김’이 바탕이 돼야 해. 이웃의 필요를 독점하거나 이용해서 이익을 만드는 것은 브랜드 정신이 아니야.” “그러면 최고의 브랜드는 어떤 것인가요? 사람들은 해외 명품이나 고가의 상품을 최고의 브랜드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럭셔리 브랜드가 브랜드의 궁극적인 기준이 되어야 하나요? 그런 브랜드에는 이웃이라는 개념보다는 사회 계급만 보이던데, 좋은 브랜드의 기준은 뭔가요?” 이번에도 유진이 물었다.
“럭셔리 고가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브랜드는 아니야. 그런 브랜드들의 고객은 살 수 있는 사람과 그것을 부러워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좋은 브랜드는 좋은 생태계를 만드는 브랜드야. 만약에 어떤 기업이 TV를 1억 원어치를 팔았다면 내부 직원들은 행복하겠지만 세상이 과연 즐거워질까? 1억 원 매출을 만들기 위해 야기한 환경피해와 사회 문화 훼손은 얼마나 큰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고 판매하면 기업 경영이 매우 복잡해지겠지. 좋은 브랜드 기준은 말하기 어렵지만 좋은 브랜드가 고민하는 질문은 말할 수 있어. ‘이 브랜드가 팔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복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좋은 브랜드야.”
“그러면…” 상철이 뭔가를 말하려다가 잠시 멈추었다.
“말해보렴.” 한승희가 말했다.
“아니요, 정말 궁금한데 말하기가 좀…”
“그럼 말하지 마!” 유진이 상철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아니야, 어떤 질문도 좋아. 이제 곧 나도 너희를 곤혹스럽게 할 질문이 있거든. 어떤 질문이지?”
“이 브살렐 매장은 어떤 가치와 자기다움 그리고 좋은 브랜드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어요.” 한승희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시작할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내가 운영하는 브살렐에 대해서 이야기해줄게. 먼저 브살렐의 아이덴티티는 시온이의 아빠에게서 시작했어. 시온이는 아빠와 같은 존재가 필요했지. 아빠는 아니지만 아빠와 같은 존재, 부성애를 가진 그 무엇이 필요했어. 그래서 브살렐 매장은 시온이 아빠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아이템 중심으로 구성했단다. 나의 자기다움이라고 한다면 시온이 아빠를 지금까지 사랑하는 마음이겠지. 나는 그 사랑을 시온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어떻게 생태계를 만들까를 고민하는 건데, 나는 내가 팔고 싶은 상품을 직접 만들지 않고 사입해서 공급하려고 해. 이렇게 되면 영세하지만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과 함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지. 작은 브랜드들의 유통망을 확보한 매장이 생기면,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업체에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자신의 브랜드를 팔 수 있는 곳이 생기는 셈이야.”
“와! 정말로 생태계 플랫폼이네요! 이것은 나의 협력 가치 키워드와 완전히 일치하잖아!” 상철은 놀란 얼굴로 한승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나중에 한마음 포도원 아이들을 위한 기업이기도 하지.” 시온이 말했다.
“정말 부끄럽고, 감사하고, 대단하십니다!” 상철은 한승희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했다.
“박상철, 너 왜 그래? 예전부터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거 아니야?” 유진은 유난을 떠는 상철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때는 좋은 브랜드라는 것만 알았잖아. 내가 감탄하는 건 스승님이 이런 자기다움과 남과 다름을 비롯해서 새 이름과 가치가 완전히 일치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야. 스승님의 가치 키워드 조합이 The Creative Service from Love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창의적 섬김)고, 새 이름은 크레비스 프로브(Crevice frove)잖아. 완전 일치, 완전 결합, 완전 융합… 철학과 행동이 일치하는 아레테(Arete, 탁월함)… 완벽하잖아!”
유진도 상철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자… 그 말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터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꿈, 사랑, 창조’의 가치 키워드를 가진 크레이브드(Creved)가 브랜드를 만들면 무엇을 말하려고 할까? 자, 이제부터 어려운 질문을 할 테니까 적어두고 다음번에 이야기해보자. 먼저 크레이브드(Creved)가 ‘꿈, 사랑, 창조’로 브랜드를 만든다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세상에는 어떤 행복이 찾아올까?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줄까? 그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 달라지는 생각으로 인해서 어떤 생태계가 만들어질까? 그렇게 다른 가치를 주기 위해서는 어떤 아이템이 좋을까? 창조된 브랜드는 100년 동안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질문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해.”
“뭐죠?” 유진과 상철이 물었다.
“왜 내가 브랜드를 론칭해야 하는지에 관한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으면 돼.”
“정말요? 그럼 평생 브랜드를 못 만들 것 같아요.” 유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브랜드는 평생 만드는 거야.” 상철이 유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기다움으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다른 사람에 의해서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돈이 되는 것과 돈이 되지 않는 것처럼 수많은 이유와 조건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해. 그리고 유진이에게 했던 질문들은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일을 통해서 알아가야 하지. 유진이는 자기다움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니?”
“꼭 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미술학원이고, 꼭 도전하고 싶은 것은 건축 디자이너예요.”
“그러면 먼저 미술학원으로 시작해보자. 브랜드를 만드는 첫 번째 원칙은 안티떼제야. 유진이의 미술학원은 미술학원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니? 예를 들어 스타벅스는 커피 비즈니스가 아니라 휴먼 비즈니스라고 말하잖아. 그런 것처럼 네 가치 키워드에 입각해서 너의 미술학원을 부정하는 정의를 해보겠니?”
“그냥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로 노는 곳… 놀이터! 그냥 미술 놀이터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미술이라는 단어를 부정하고 다른 단어를 사용해보렴! 어떤 단어가 놀이터에 가장 잘 어울릴까? 미술로써 놀 수 있는 궁극의 가치는 무엇일까?”
“음… 예술가로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창조적인 놀이터!”
“와우, 멋진데!” 상철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래. 크레이브드(Creved)가 세우는 학원은 미술학원이 아니라 창조적인 놀이터구나. 그런데 유진이는 왜 그런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 하지?”
“어려서부터 미술을 배우고 싶었는데 학원비 때문에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요. 마땅히 놀 곳도 없어서 힘들었고요. 미술적 감각이 있는 아이들에게 미술로 치유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시작이 좋아. 그런 가치와 목표를 가지면 주변 사람들도 동참할 테고 큰 원을 그리면서 그 브랜드가 이루어질 거야. 그런데 건축은 왜 나왔지?”
“그것도 아이들에 대한 마음에서 나왔어요. 아이들을 위한 건축물이 없어서요. 아이들 관점에서 소아과와 치과… 이런 눈높이 건축을 하고 싶었어요.”
“좋았어. 유진이가 바라보는 북극성은 선명하구나. 그럼, 이번에는…”
“저, 박유진의 쌍둥이, 박상철이 말하겠습니다. 제 가치 키워드는 혁신, 열정, 협력인데요. 이건 돈으로 만들 수 없는 인간 내면의 불이죠. 이런 사람들과 함께 열악한 산업분야를 임팩트 비즈니스로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분식점의 메뉴를 고급 레스토랑에서 요리로 만들어 파는 거라든지…”
“그런 분식 레스토랑 있는데?” 유진이 놀란 얼굴로 상철을 보았다.
“그래? 군대 있는 동안에 그런 것이 생겼나? 아니면 폐자원 재활용 업체?”
“그런 재활용 업체도 많아.” 유진은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그럼, 북카페인데, 그냥 북카페가 아니라 콘셉트가 같은 책으로 구성한 북카페야.
사랑의 북카페는 사랑에 관한 책을 볼 수 있고 살 수도 있는 곳이지. 만약에 심리학 카페라고 한다면 온통 심리학 책만 있는 북카페야. 이런 것도 있어?” 상철은 유진을 째려보았다.
“호크마 박상철도 접근은 좋아. 일단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분야에 혁신이라는 지혜를 활용해서 열정과 협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주 좋은 발상이야. 그런 관점을 가지면 너무나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상철은 한승희의 칭찬에 다시 우쭐해졌다.
“전 두 사람이랑 출발이 좀 달라서…” 시온은 겸연쩍은 얼굴로 한승희를 보았다. “아직 정리가 안 됐으면 나중에 말하렴.” 한승희는 머뭇거리는 시온을 보았다. “아니에요. 저는 좀 특수한 상황이잖아요. 성경에 바울이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하나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네가 받은 은혜가 충분하다. 너의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라고 말했대요. 굳이 성경의 인물이 아니라도 헬렌 켈러, 스티븐 호킹 같은 장애인들은 보통 사람의 한계를 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의 새 이름인 클래비스(Clavis)는 약점을 극복해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저에게 붙인 이름이에요. ‘주변을 밝힌 힘’이라는 개념인데, ‘진리를 알기 위한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 거죠. 수천 년 전 고대인들이 돌을 불로 녹여서 철을 뽑아냈고, 지금은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것처럼 저는 저의 한계를 넘고 싶어요. 또 그걸 장애인들에게 알려주어서 그들도 한계를 초월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패션을 통해서요.” 한승희는 이렇게 말하는 시온을 쳐다보았다. 시온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가 제게 아버지의 존재를 패션 매장으로 만들어 주셨다면, 저는 아버지와 함께 저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요. 색맹 윤시온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보는 클래비스가 되어서요. 클래비스가 만든 브랜드는 자신의 한계를 넘는 브랜드죠. 사람들은 제가 만든 브랜드를 보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될 거예요. 실제 제가 그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희망’이에요. 그래서 제가 비록 완전 색맹이지만 정상인도 어려워하는 패션에 도전하고 싶어요. 클래비스의 눈은 장애가 아니고 특별한 눈을 가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의 자기다움과 브랜드의 자기다움 그리고 이런 마음을 함께 나누면서 브랜드를 통해 생산자와 사용자 모두의 우리 다움을 만들고 싶어요.”
“시온아, 특별한 눈을 가졌다는 생각은 클래비스가 되고 난 후였어?” 상철이 물었다.
“엄마가 옆에 있어서 좀 쑥스러운데, 내 눈은 그야말로 백만 명 중에 한 명 있다는 유전적 희귀성을 가진 눈이야. 이 눈은 나의 부모님이 주신 거잖아. 이게 유전일까, 아니면 신의 계시일까 생각했어.”
“신의 계시?” 유진이 물었다.
“별자리를 그리면서 내가 만든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나 봐.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고 고민하니깐 관점이 바뀌더라고. 내 눈은 희귀 유전 질환이 아니라 신의 계시다. 처음에는 이런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했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수록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니까 주변의 일들도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
“그게 너의 자기다움이야?” 유진이 물었다.
“자기다움이라기보다는 엄마와 한마음 포도원 그리고 아버지와 나를 하나 되게 하는 우리 다움에 가까운 것 같아.”
새벽 1시. 오늘도 시온은 브살렐 매장에 혼자 앉아 있었다. 시온은 한승희에게 일주일 동안 완전 색맹의 눈으로 패션 매장을 연출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시온은 모든 옷을 단지 명암만으로 구분해서 걸어 놓았다. 정상인의 눈에는 여러 컬러가 뒤엉켜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한승희는 시온의 모습을 건너편 길에서 지켜보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만, 작업 마지막 날에는 일부러 매장에 들어갔다.
“엄마, 안 주무셨어요?” 시온이 문을 여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오늘은 같이 집에 들어가자. 잘 되고 있니?” 한승희가 매장을 훑어봤다.
“아이가 물감으로 장난친 것처럼 보이죠?”
“그렇지 않아. 어떤 규칙이 있어 보이는데. 사진 찍어서 볼게.” 한승희는 아침 마다 윤시온이 정리한 매장을 흑백 사진 모드로 찍어서 보았다.
“어떤 규칙이 보이세요?” 시온은 한승희가 찍은 사진을 같이 보면서 물었다.
“그라데이션에 충실한 것 같은데? 맞아?” 한승희는 시온을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엄마!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바꾼 것과 제가 보는 것은 많이 달라요.” “그래? 그럼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VMD를 했지?”
“내가 입고 싶은 옷과 내가 입고 싶지 않은 옷!” 시온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한승희는 다시 한번 벽과 행거에 걸린 옷을 살펴보았다. 시온의 말이 맞았다. 오른쪽에는 시온이 주로 입는 옷들이고 왼쪽에는 그렇지 않은 옷들이 걸려 있었다.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있는 옷의 분류는 이런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어쩌면…” 시온의 목소리에는 깊은 절망의 기운이 묻어났다.
“시온아, 그렇지 않아. 너는 지금 정상인의 눈으로 계속 옷을 보려는 거야. 너만이 볼 수 있는 관점으로 옷을 봐야 한다고 말했잖아. 그렇게 봐야 돼. 지금 너의 눈으로 보는 것은 단지 흑과 백으로 보는 것이 아니야. 컬러가 아니라 스타일과 가치 그리고 메시지를 생각하면서 매장을 구성해야지. 매장에 온 사람들에게 옷을 보여주지 말고 이미지, 가치, 느낌을 주는 관점에서 다시 한번 연출해 봐.” 한승희는 다시 한번 정리를 마친 시온에게 장미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시온은 말없이 꽃다발을 보면서 의식적으로 무슨 색깔인지 확인하려고 했다.
“어떤 색인가요?” 시온이 냄새를 맡으면서 물었다.
“네가 보는 그대로의 색깔이야.”
“흑장미와 백장미인가요?”
“맞아. 시온아, 장미에는 색깔도 있지만 냄새, 모양 그리고 가시도 있어.” 시온은 한승희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깨달았다.
“엄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너는 일주일 동안 불가능에서 가능성을 찾았고, 엄마는 가능성에서 가능성을 찾았어. 시온아, 네가 보는 세상에서 브랜드를 만들어보는 거야. 과거와 현재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관점의 세상을 보여주면 돼.”
“사람들이 그걸 원할까요?”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건 아마 배고프거나 졸리는 그런 본능이겠지. 아기는 생후 몇 개월 동안 시신경이 발달하지 않아서 세상을 흑과 백으로 본대.”
“제가 다시 신생아가 된 건가요?”
“갓 태어난 아기에게 흑백이 장애일까? 아니면 Clavis로 태어난 윤시온의 다른 세상일까? 그렇다고 흑백 세상이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냥 외침에 불과해. 네가 발견한 가치가 진실하고 선하다면, 네가 보여주는 모든 옷은 아름다울 거야. 그렇게 아름다움과 선함 그리고 진실함이 하나가 되어야만 선동이 아니라 가르침이 되겠지.”
“그럼 엄마는 흑과 백으로 보는 세상의 가치에는 어떤 게 있다고 생각하세요?” “시온아, 가치는 정의되는 것이 아니야. 그 가치는 너만이 느낄 수 있어. 그리고 그 느낌과 깨우침을 네가 설명할 수 있어야겠지. 콘셉트가 특이하다고 생명력이 있는 것은 아니야. 일반적으로 브랜드의 생명은 가치에 있단다. 하지만 가치가 트렌드나 시대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브랜드는 시대적 사이클에 의해서 살고죽는 거야. 브랜드는 인문학적 가치, 그러니깐 인간들의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지속성을 가진 가치로 만들어져야 영속할 수 있어.”
“인문학적 가치…? 아! 이제 기억나요! 엄마의 노트에 적혀있던 ‘Liberal Brand’와 ‘Brand Humanitas’가 인문학을 염두에 두고 만든 개념이군요. 그런데 리버럴(Liberal)의 의미는 인문학이기보다 자유라는 의미잖아요. 자유의 브랜드 개념인가요?”
“음…” 한승희는 미소를 지으면서 시온을 보았다.
“왜요? 엄마?”
“갑자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생각이 나서… 시온이의 질문은 내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첫 번째로 하는 질문이지. 그래,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을 Liberal arts로 표현하는 이유는, 당시 교육은 노예와 외국인이 아닌 자유민, 그러니까 국가를 이루는 자유 시민이 대상이었기 때문이야. 그렇다고 내가 말하는 리버럴 브랜드(Liberal brand)가 그때처럼 특정 계층이 누리는 브랜드라는 것은 아니야. 아까 말한 인문학적(Humanitas) 가치인 인류공헌, 나눔, 봉사, 협력, 자유, 행복을 담고 있는 브랜드를 의미해. 하지만 자유(Liberal)와 인문학적(Humanitas) 가치보다는 계층, 욕구, 갈증, 탐욕, 불만, 교만, 시기가 만들어내는 게 브랜드의 실상이잖아. 그럼, 생각해보자. 오만 원짜리 셔츠를 입은 사람이 50만 원짜리 해외 명품 브랜드 셔츠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가치를 알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추구하는 기쁨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주잖아. 엄마가 생각하는 인문학적 브랜드는 가격에 의한 가치가 아니라 가치에 의해서 가격이 자유로워지는 브랜드란다.” 한승희가 말했다.
“이제 엄마의 새 이름이 왜 Crevice frove(The Creative Service from Love)인지 확실히 알겠어요.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창의적 섬김’이 바로 엄마가 발견한 인문학적 가치군요. 엄마가 저에게 말하려는 게 눈의 한계를 자유롭게 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브랜드인 거죠?” 시온은 뭔가 알게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에서 흑과 백은 컬러가 주는 한계를 벗어나게 하겠지.”
“저도 방금 그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상대적인 자유일 뿐이야. 그러니깐 다른 브랜드도 흑과 백으로 충분히 그런 자유를 줄 수 있다는 뜻이란다. 시온이 네가 만들 브랜드는 흑과 백의 자유가 아니라, 가치로서 자유로워져야 해.” 한승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은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세린과 승희가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워낙 손님이 없는 곳이어서 그들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만남을 주선한 권정헌은 짧게 인사하고 자리를 비웠다.
“시온이에게 세린 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리처드 교수님께 교수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수라는 칭호보다 그냥 한승희 간사라고 불러주세요. 한마음 포도원 간사가 제게 딱 맞는 직함이에요. 한 교수는 제가 불편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린은 엷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리처드 교수님과는 어제 통화했어요. 그리고 시온이 편으로 제 노트도 잘 받았고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시온 코치에게 많은 걸 배웠고, 이렇게 교수님, 아니 한 간사님을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교수님… 아, 죄송합니다. 간사님이 쓰신 논문과 리포트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런 생각을 하셨다니 대단하세요. 정말 존경합니다.”
한승희는 그런 세린의 모습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더 이상 말을 미루는 것은 오히려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것 같아서 바로 본론을 꺼냈다.
“감사합니다. 만나자마자 불쑥 말씀드리는 것은 실례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세린 양에게 빨리 말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깐 권정헌 실장과 시온이에게 말했던 부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모라비 그룹과는 부딪히고 싶지 않아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돌아가신 박부길 회장님이나 지경원 부회장님도 저의 부모님이십니다. 부모님의 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모라비 그룹과의 경쟁을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젤 하우스가 적대적 M&A를 받지 않게만 해주세요. 저희 브랜드 리뉴얼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쪽과 아무 상관없이 자구책을 찾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 모라비 그룹과 어느 정도 계약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에요, 저희 오빠가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도 리뉴얼해서 브랜드를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세요. 바젤 하우스의 직원도 모두 같은 마음입니다. 저희도 한마음 포도원과 같은 운명이에요. 부탁합니다.” 한승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창가 너머로 펼쳐진 구름만 바라보았다.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 시온, 유진, 상철은 한승희의 브살렐 매장에 모였다. 적막한 침묵을 깨고 한승희가 말을 꺼냈다. “그래… 고생했다. 수고했어.”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진이 눈물을 쏟았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시온이 유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상철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창 밖의 어두컴컴한 밤하늘만 바라보았다.
“너희가 어렵게 시작한 매장을 겨우 정리한 만큼 아버지께서도 쾌차하실 거야. 너무 울지 말고. 가게가 정리됐다고 모든 게 다 끝난 건 아니니까. 얘들아, 힘내자. 지금이야말로 다시 다잡고 시작할 때야.” 한승희가 유진과 상철을 다독였다. “제가… 제가 결국 제 꿈을 버린 거예요.” 유진이 울먹이며 말했다.
“네가 스스로 꿈을 버린 게 아냐.” 상철이 냉정하게 말을 잘랐다. “단지 어쩔 수 없었을 뿐이지.”
“유진아, 우리가 힘을 모으면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것도 같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잖아. 우리가 찾았던 우리만의 가치로 가장 우리다운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이 브랜드로 다시 매장도 만들면 되잖아. 할 수 있을 거야.” 시온이 들썩거리는 유진의 어깨를 다독였다. 상철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시온이 말처럼 다시 시작하면 된단다. 브랜드는 언제든 시작할 수 있어. 세 명 모두 자기다운 가치를 찾았고, 그것으로 삶은 이미 변화를 맞은 거야. 너희가 만들 브랜드 씨앗이 심겨진 거란다.” 한승희가 셋을 바라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겨우 울음을 그친 유진이 물었다.
“일단 속도를 좀 더 내보자. 저번 수업에서 시온이 안으로 브랜드를 구축해보기로 결정했으니까, 시온이가 주축이 돼서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꾸나. 유진이랑 상철이도 그때 말한 리서치 함께 진행하고, 다음 수업까지 시온이는 자료 정리해서 콘셉트 휠을 그려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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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소수가 누리는 브랜드 비즈니스의 기회를 소외된 99%의 기업도 함께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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